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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眞正)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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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없음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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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眞正)한 "스승"🕯
-----------------------------------
한 청년(靑年)이 길을 가다가
어느 노인(老人)과 마주쳤습니다.
청년은 노인에게 다가가서
혹시 자기(自己)를 기억하시는지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대답하기를
그 젊은이를 알지 못한다고
대답합니다.
청년은 오래 전 학창시절
노인의 제자(弟者)였었고
노인 덕분에 자기는 지금 대학교의
교수(敎授)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청년을 기억하지 못한 노인은
불현듯 그 때 있었던 일이 궁금했습니다.
청년은 학창시절에 있었던
당시의 잊을수 없었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시절 청년은
자기 반 친구의 새 시계를 훔쳤고 시계를 잃어버린 학생은
선생님에게 시계를 찾아줄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시계를 훔쳐간 학생이 자진해 나와서 용서를 구하길 바랬지만
누구도 자기가 시계훔친 도둑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모든 학생을 일어나게 하고
절대로 눈을 뜨지 말라고 당부한 후에 직접 학생들의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시계를 찾았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시계를 찾았으니 이제
모두들 눈을 떠도 좋다."
"그 날 선생님은
누가 시계를 훔쳤는지를,
제가 시계를 훔친 도둑이라는 걸
우리반 친구들에게
공포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자존심을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그 때 아니 훗날에도 선생님은
저에게 어떤 훈계도 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분명히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노인께서 여전히 청년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자니
청년은 노인에게 위의 내용같은
"이런 사건을 기억하시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것
물론 지금 기억이 나네.
그 날 모든 학생의 주머니를 뒤져서 없어진 시계를 찾았던거 기억하고있지.
하지만 난 자네를 기억하지 못하네. 왜냐하면
그때 나도 눈을 감고
모든 학생들의 주머니를 뒤졌거든......”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뭉클해진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으로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줄을 아셨던 인품(人品)이 훌륭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다른 이야기 하나 더 소개 하겠습니다.
“야! 이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왔어?
빨리 꺼져!!”
한 때
탈옥수(脫獄囚)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창원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매우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새 엄마가 들어왔는데
새엄마는 창원이의 어린동생이
아무리 아파도 모른 척했습니다.
화가 난 신창원이 하루는
부엌칼을 들이대고 오늘 내로
집을 나가라고 새엄마를 협박했습니다.
계모는 그날로 집안의 패물을 챙겨
집을 나갔고, 신창원은 아버지로부터 죽도록 얻어맞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서울로 도망갔다가
가출 소년으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가난한 집안 사정 등으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야단맞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학교를 포기하게 됩니다.
6년 뒤인 1982년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중학교를 중퇴한 신창원은 1982년 2월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이 훈방 조치하자
다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고 하며 끌고 가서 “소년원에 보내 달라”고 사정해 소년원에 송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창원은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반항적인 인생을 살게됩니다.
신창원은 소년원에 들어가면서
마음을 돌이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범죄를 배우고
계속해서 범행을 저지러게 됐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한 번씩 갔다 올 때마다
그의 범죄는 나날이 대담해졌으며, 결국에는 강력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를 중퇴한 신창원은
1982년 2월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소년원에 송치된 뒤 바로 풀려났고
다음해에 서울로 상경합니다.
그 후 음식점 배달원을 비롯한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계속 절도죄를 짓게 되고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하던 중 탈옥을 하게 됩니다.
훔친 거액의 돈으로 인심(人心)을 쓰고, ‘부잣집만을 털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그의 일기장를 통해
신화(神話)를 만들어 내며
‘성공한 탈옥수’를 꿈꾸던 신창원은, 그러나 한 시민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제압하자
마침내 체포되었습니다.
신창원은 그의 저서
''신창원 907일의 고백''에서
자신이 범죄자가 된 계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비를 못 내자
담임 선생님이
“이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왔어! 빨리 꺼져.”라고 소리쳤는데,
그 순간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악마(惡魔)가 태어났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를 체포할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고 있는데
나같은 놈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만약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쓰다듬어 주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신창원은 훗날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에서 문제아동이라고
치부해 버린 아이들은
정(情)에 굶주린 불쌍한 애들” 이라며 “저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동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시라.” 며
사회의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연못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재미로 던지지만
그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는
재미로 죽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되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모욕적인 말 한 마디는
어린 신창원의 마음에
크나큰 트라우마가 되었고,
심한 모멸감과 반항심을 갖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몸에 생겨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 깨끗해질 수 있지만, 가슴에 생긴 마음에 상처는
오래,오래도록 아물지 않고
아픔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모로코 국가의 속담에
''입에서 나온 말로 당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더 깊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칼이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의 모욕적인 말 한 마디는 신창원의 인생을 망쳐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너는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라는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인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 의사로
인정받고 있는 이국종 교수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면서 부유한 삶은 꿈조차 꾸지못했고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게다가 가장인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지뢰를 밟아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인 국가유공자였습니다.
이국종 소년은 중학교 때까지
학교에 국가유공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에게 반갑지 않은 이름이었습니다. ‘'병신의 아들’'이라고 놀리는
나쁜 친구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술의 힘을 빌려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국종 교수는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려고 이 병원 저 병원
문을 두드렸는데, 국가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다른 병원에 가보라''며
내치듯 돌려보냈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이 교수는 아직 어렸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냉정하고 비정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찾던 중, 그는 자기 인생을 바꾸어 놓는
의사 한분을 만나게 됩니다.
‘이학산’이라는 외과 의사였습니다.
그분은 두 손에는 날카로운
매스를 들고 있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따뜻한 사랑을 품은 의사였습니다.
그는 어린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고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인술(仁術)의 본보기 의사 이학산은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해 주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하고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한 마디가
어린 이국종의 삶을
훌륭한 의사가 되게 했습니다.
이학산 선생님은 이국종에게
나라를 위해 싸운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니 진료비도 받지 않겠다고 하셨고, 그 후 이국종 소년이
병원에 갈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용돈까지 챙겨주셨습니다.
이학산 선생님은
주위의 모두가 이 교수와 그 가족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등을 돌릴 때, 군말없이 두 손을 내밀어
소년 이국종을 보듬어주면서
차가운 세상에도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산 증인이었습니다.
소년 이국종은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꼈고,
그분과 같은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라는 대표적인 삶의 원칙도 그 때 탄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국종은 가난과 장애로 인해 무시받았던 서러움을 맛보면서
“아픈 사람에게 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이를 실천한 본보기 의사이기도 합니다.
이국종은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외과의사가 되었습니다.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
이말은 이국종의사의
대표적인 삶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이학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국종이 역시 없었을 것입니다.
차가운 말 한 마디,
그리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의
가시같은 말 한 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반대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고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두사람의 인생관에서
말 한마디의 힘이 어떤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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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을 갖고싶은 사람입니다. 평소의 생각들을 기고하여 친구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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