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축제
1.
대체로 여름밤이란 길고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의 여름 저녁 풍경은 언제나 정겹게 느껴진다. 저녁 식사를 마친 늦은 밤 평상에 둘러앉아 어머니가 갓 쪄온 감자나 강냉이를 먹으며 온 가족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밤하늘엔 별똥별이 지나가고 모기를 쫓기 위해 피운 연기는 풀냄새로 마당을 자욱하게 만든다. 그래도 더위가 가시지 않으면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길어낸 차가운 물을 한바탕 뒤집어쓴다.
이 여름밤의 청량제는 간혹 군청의 공보원에서 상영해 주는 무료 영화였다. 그 밤엔 초등학교 운동장에 기둥을 세워 스크린을 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굳이 스크린 앞에서 볼 필요도 없다. 돗자리를 가져와 스크린 뒤쪽에 누워서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피서법인가. 오른쪽과 왼쪽의 영상이 서로 바뀌기는 하지만 그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벤트는 가끔 열리는 이웃 동네 콩쿠르대회에 구경 가는 일이었다. 시골에서 여름밤의 문화행사는 그게 모두였다.
2
”여름 장이란 애시 당초 글러서“라는 이 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첫 머리말이 생각났다. 역시 무료 공연 ‘가곡의 밤’도 그랬다. 8월 마지막 토요일 밤 예술의 전당 야외 공연장을 메운 인파는 객석을 단숨에 채웠다. 어쩔 수 없이 무대가 겨우 보이는 계단에 앉아서 잠시 감상 하려 했으나 주위의 소음으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는 분수가 있는 광장 벤치에 앉아 한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누가 먼저라고 말할 수 없이 우리는 동시에 문득 우면산 등성이에 가려져 있는 반쪽 달을 보았다. 잠시 사이에 그 반쪽 모습이 산등성이를 넘어서 서서히 움직이자, 보름달이 되었다. 도시에서 보아도 역시 한 아름 꽉 찬 보름달은 우리 가곡의 정서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그 보름달은 한 달 전에 뉴잉글랜드지역 여행 중 탱글우드 음악 축제(Tanglewood Festival)에서 본 둥근 달이었다.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넓은 잔디밭에 구름처럼 모인 무리는 무릉도원에서 잔치를 벌이는 방문객처럼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준비해 온 음식과 포도주로 즐거운 담론을 주고받는다. 이런 일이 일상인 듯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각기 간이 테이블과 비치 의자, 돗자리, 모기향과 촛불 등을 가져와 마치 자기 집에서 친지들을 초대해 저녁 만찬을 즐기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시간이 무르익자,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날 밤의 연주곡은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의 콘체르토와 심포니였다. 무더운 낮의 열기를 식히듯 밤하늘엔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오케스트라공연장 지붕에 조금씩 모습을 보이던 달은 어느새 보름달이 되었다. 이 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의 풍경을,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했다.
천상의 소리와 같은 감미로운 선율이 흐르는 곳에서 끝없이 펼쳐진 풋풋한 초원을 비치는 달빛은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흐붓한’이란 수식어를 쓰기엔 규모와 정서가 달라 어울리지 않는다. 흔히 말과 글이란 너무 한정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실체를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어느 시인이 어떤 자연에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실체는 꽃이란 이름에 갇히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음악제의 역사는 1936년 매사추세츠 서부 버크셔 카운티의 레녹스 타운에 있는 한 개인(Mary Aspinwall Tappan)소유의 사유지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기증하여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탱글우드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여름 공연장이 되었다. 이 공연장이 자리한 레녹스는 인구 6천 명 정도의 조그만 도시로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1890년대 길드 시대부터 문화와 예술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여름이면 보스턴을 중심으로 한 매사추세츠 주민들이 관광과 휴가를 즐기는 리조트 장소이기도 하다.
숲과 호수가 어울려있는 목가적인 풍경이어서 미국의 유명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이주해 와서 살았다. 그중 〈주홍 글씨〉의 작가인 너새니얼 호손은 고향인 세일럼에서 1850년 가족 모두를 이곳으로 옮기어 1년 반을 살았다. 그는 1853년 아이들을 위해 그리스신화를 각색하여 “탱글우드 이야기”를 출판하였다. 이 이름을 본떠서 그 개인 사유지의 명칭이 ‘탱글우드’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음악제도 그 이름을 쓰게 되었다. 결국 한 작가의 책 이름이 사유지의 이름이 되고 또한 음악제의 명칭이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사물의 이름이란 한 대상의 실체를 제한시키기도 하지만 그 외연이 확대 재생산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도 하므로 무릇 이름은 잘 지어야 할 일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환경파괴로 지구온난화를 자초한 탐욕스러운 인간에게 자연은 본격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것 같다. 이스터섬의 파멸은 숲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연환경을 무시한 채 거석의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마지막 나무 한 그루도 남기지 않았다. 그 마지막 나무를 벤 사람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뉴잉글랜드지방을 여행하면서 부러웠던 것은 어느 곳이나 숲과 호수와 나무와 물이 풍요하게 넘쳐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농장과 사유지를 야외 콘서트공연장으로 흔쾌히 희사하는 그 사람들의 지혜이다.
우리도 돈 많은 땅 부자들이 야외 공연장을 위해 자기 땅을 기꺼이 사회에 기증하는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거대한 회색의 아파트와 빌딩숲에 포획될 뿐 아니라 그 도시가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일상에서 가끔은 일탈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청량한 쉼터가 곳곳에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문화가 싹트게 될 것이다. 이 가을엔 ‘청량산 산사 음악제’라도 갔으면 좋겠다. 산사 계곡마다 단풍이 흐드러지게 물들 자연에 이번 여름이 어떠했냐고 문득 안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