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유년 시절의 봄은 과일나무 가지치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날이 풀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계곡물이 불어나고
해가 길어지면서 풋풋함으로 버들강아지가 기지개 켜는 때가 되면
복숭아 가지 끝에도 빨갛게 물이 오르곤 했지요.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과일의 다수확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부러지거나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병에 걸리거나 웃자란 가지도 제거해야 하고
공기 순환이 잘 되게 하고 햇볕을 잘 받게 하려면 잔가지를 솎아 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나무에 전정 가위를 대는 것은 나무에 아픔을 줄 수는 있겠으나
가지치기는 수형을 바로잡고 나무의 생기를 돋게 하는
나무의 수목 외과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수확을 바라는 인간 욕심의 발로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무의 입장에서 봐도 전지는 나무에 도움이 되는 손길일 수 있습니다.
아프면서 크는 것이지요.
삶은 고해라고 합니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습니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지요.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입니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시린 겨울을 잘 이기고, 쓰디쓴 동토의 시절을 인내하고
화사한 꽃으로 봄날을 노래할 나무를 봅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의 여명이 아름답듯이
그 인내의 계절이 빛나는 시절을 만들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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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가지치기
정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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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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