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을 올려다 보면서 새해 첫 지리에 든다. (10:50)
순두류계곡의 편백나무 숲.
호젓한 산길 숲 속에 쉼터까지 갖추고 있어 잠시 다리쉼을 한다.
지류에 걸린 다리. 첫 발자국을 남긴다.
순두류계곡 본류를 건너면서 또 한번 천왕봉을 우르러 본다. (12:25)
제단으로 들어선다. (12:40)
가지수는 적지만 정성스레 진설한다.
올 한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탈하게 지리에 들 수 있도록 산신께 빌어 본다.
느진목이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름길에서 뒤돌아본다.
순두류계곡 본류를 건너기 직전 만난 발자국이 느진목이까지 동행해주어 편안하게 올라 간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황금능선 상의 느진목이. (15:10)
이곳까지 동행한 발자국은 아쉽게도 오른쪽 국수(사)봉 방면으로 사라진다.
이제부터 황금능선 분기점까지 러셀을 하며 힘들게 진행한다.
장구목(잘록이)과 동래정씨 묘가 있는 1252봉.
첫 봉우리를 향해 오르는데 황금능선의 적설량이 만만치 않다.
키 큰 산죽이 눈을 이고 엎드려 있는가 하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곳이 많아 애를 먹는다.
때문에 운행속도는 뚝 떨어진다.
키 작은 산죽이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헬기장을 지나 물가름이재에 도착한다. (17:00)
중봉골(마야계곡)로 떨어지는 길이 왼쪽에 열려 있고,
산길은 여기서부터 허리를 곧추 세운다.
노을이 드는 천왕봉에는 짙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17:35)
잠시 후 밧줄구간이 나타난다.
이 슬랩을 오르면 위로 또 하나의 밧줄이 걸려 있고 그 아래쪽으로도 또 다른 밧줄이 걸려 있다.
노을과 함께 어둠이 찾아 든다. (18:02)
머릿불을 단다.
머릿불을 달아도 밤에는 시야확보가 어렵다.
게다가 이처럼 눈이 많고 러셀이 안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길 찾기에 애를 먹는다.
황금능선은 몇 번 내려온 경험이 있어 나름 산길을 궤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 문제였다.
이럴 땐 짐승 발자국이 곧 길이다. 마침 짐승 발자국이 나 있어 한동안 따르니 얼마 후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 사면을 택해 얼마쯤 간 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사면을 에돌며 길을 찾아보지만 허탕하고 한참 후 되돌아선다.
그리고 돌아와 기다리던 일행에게 한마디 건넨다.
확실한 지점까지 되돌아가서 거기서도 길을 잇지 못하면 적당한 곳에서 비박할 수도 있다고.
텐트가 없지만 매트와 동계용 침낭이면 그런대로 하룻밤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산행계획을 세울 때는 중봉에서의 야영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리99> 늘산님의 표지기. (19:30)
확실한 지점으로 되돌아 가던 중 아래의 표지기를 만난다.
참으로 반갑다.
오를 땐 왜 이 표지기를 못 보았을까?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한다.
다시 짐승 발자국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다다른다. 이번에는 당연히 왼쪽이다.
경사 급한 비탈을 조금 오르자 낯익은 구간이 반긴다.
그 구간을 통과하여 조금 더 오르자 전망바위로 오르는 난구간(?) 바로 밑이다.
이 구간만 올라서면 이 능선 분기점까진 시간문제다.
황금능선 분기점. (20:03)
마침내 이정표[천왕봉 3㎞, 치밭목산장 1㎞]가 있는 주등로에 합류한다.
발자국을 따라 치밭목산장까지 부담 없이 내려간다.
20여분 후 산장에 도착하여 첫날 산행을 마무리한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산장을 떠난다. (13:00)
써레봉능선 전망바위에서 황금능선을 내려다 본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바위 가장자리로 나가지 못한다.
써레봉능선에서 바라본 상봉과 중봉.
이 능선은 내가 고교 졸업하던 그해 2월에 하산하면서 처음 접했던 능선이다. 그래서 母山으로 여긴다.
중봉 오름길에서.
어느덧 중봉에 올라선다. (15:45)
그런데 먹구름이 삽시간에 중봉과 천왕봉을 집어 삼킨다.
이제부터 조망은 기대할 수 없다.
중봉에서.
황금능선은 보여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중봉 안부를 지난다.
중봉안부에서.
동릉이 날을 세우고 서 있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다.
천왕봉 정상부의 관목지대.
상고대가 활짝 피었다.
천왕봉. (16:35)
바람은 엄청 불어대고 조망은 없다.
하산길의 석양.
촛대봉남릉이 화염에 휩싼인 듯하다.
적막한 로타리산장. (18:00)
취사장에 들어가니 대구에서 왔다는 한 무리의 남여 대학생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
종주에 나선 첫 밤이란다.
떡국을 끓여 저녁을 먹고 7시 20분쯤 산장을 떠난다. 또 머릿불 달고 하산이다.
걸어간 길. 노란색 실선.
첫댓글 오늘도 산에서 보낸 시간 34시간 20분이라는 단어가 야코를 죽입니다. 그런데 시간대를 보면 정말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산행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두 분이 뉘신지는 모르오나 물론 다들 초고수님들이시겠지요만.. 텐트없이 동계침낭과 매트만으로 과연 지리산의 혹독한 추위를 견딜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나머지 두분의 정체는 사진에서 안 보이니 그저 상상만 합니다. 산행기를 읽어보면 산학동자님이 산행대장이 아닌가 합니다만..
때로는 치열한 산행이 그리워지죠. 어차피 등산은 모험 아닌가요. ㅎㅎ
사실, 텐트를 가지고 중봉에서 야영하려 했는데, 시산제와 연계한 코스가 잘 안 나와서 텐트 없이 치밭목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눈 속이든, 또 다른 장소든 하룻밤 정도는 노숙(비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소를 잘 고른다면 말이죠. ㅎㅎ
또 저의 산행기에는 특별한 사안이 아니고선 인물이 안나옵니다. 히말라야 고산도 아니고 인증샷 보일 데도 없고, 일행도 원하지 않구요.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산제 산행치고는 너무 빡세게 산행하신 듯 합니다.
요즘 동상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합니다.
늘 안산,즐산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런가요. ㅎㅎ
어두워지니 춥긴 춥습디다.
깊은골 심설 산제 동화속경치 참으로 대단 하십니다,
덕분에 앉아서 여유롭게 보고 있지만 .산학동자님 올 한해도 즐산 하시라고 길이 열린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산에서 보낸 시간이 즐거웠겠습니다.
앞으로 저도 산행 기준을 산에 얼마나 많이 있느냐를 기준점으로 정해야 겠네요.
얼마만큼 많이 갔는냐가 아니고요.? 올해도 동자님의 왕성한 산행기를 많이 볼수 있어 즐거움이 배가 될것 같네요.
잘 하면 올해 지리산에서 한번 조우하기를 저는 작은 소망으로 기원 드립니다.
저도 많이 가고, 빨리도 가고 싶을 때가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산 속에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드시 바람직 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저도 조우 하길 기대해 봅니다.
즐산 하십시오.
러셀 않된 황금능선 오르느라 정말 수고하셨네요.
그래도 1박 준비를 해갔기에 조금은 여유가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늘 변치않는 지리사랑!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요즘은 장비 싸움이라고들 하네요.
저는 변변찮은 장비지만 최대한으로 효율을 높인다면 하룻밤 정도는 보낼 것으로 생각하고 산에 듭니다.
어쩌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요. ㅎㅎ
늘 관 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