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들의 시간
이순주
사랑하는 당신, 당신께 말하고 싶어요*
요즈음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며
찻집에서 새롭게 태어나요
창밖을 보면 귀가 커진 토끼구름, 그 아래 은행나무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고 있나요
맥문동이 그려놓은 보라색 군락을 지나며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허리가 긴 개를 끌고 걸어가고 있어요
혀를 길게 뺀 오후 3시의 그림자가 뒤뚱뒤뚱 걸어가요
게으른 창문 밖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가 마시는 건
한 모금의 슬픔, 그 장면들이 존재의 문장들이라면
그 문장들 표절하고 싶어요
찻잔을 기울일 때마다 하루가 이울고요
입술 문양을 찻잔에 새겨 놓는
달콤한 시간의 죽음,
찻잔 위에 침묵하는 구름들이 유유히 떠가고 있어요
우리가 구름을 연구하는 동안
낙타가 사막을 걷는 동안,
당신 거기 있나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양떼구름들 사이
카톡 카톡,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라떼 한 잔의 시간이에요
* 버지니아 울프가 쓴 마지막 편지의 한 구절
―시집 『어떤 계절은 구석에서 시작된다』 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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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주 / 강원 평창 출생. 2001년 《미네르바》에 시로 등단. 200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 2008년 〈기독공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목련미용실』 『어떤 계절은 구석에서 시작된다』 동시집 『나비의 방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