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부터 생소했다. 이미지가 낯설었다. 덩그러니 석류가 등장하고 메뚜기처럼 보이고 뭔가 했더니 소설 속 단편소설 <릴리의 손>이었다. 그러고보니 석류도 단편소설 <고기와 석류>에 등장하는 식인종에 가까운 '그 녀석'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먹거리 석류였다. 첫 번째 좋아하는 것은.... 놀라지 마시라. 썩은 시체.
트로피컬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있게 '열대의..' 라고 한다. 열대지방의 열대? 네이버 사전 뜻을 찾아봤더니 역시나 열대 지방에서 입는 천, 옷감 이런 뜻이었다. 표지 전체의 이미지 느낌이 역시나 열대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책 속 단편소설인 <새해엔 쿠스쿠스>도 모로코 사막 지방에서 먹는 요리였다. 작중 주인공은 헬리코터맘의 등살에 못이겨 어찌어찌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엄마의 바람대로 살아가지만 결국은 현실에서 오는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렸을 적 이불 속에서 즐겨 보았던 모로코 밤 하늘을 쫓아 훌쩍 바람처럼 사라진다. 쿠스쿠스를 입에 담고 현실을 도피하여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말이다.
조예은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4차원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참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은 사람인데 배경은 죄다 현실 세계가 아닌 보다 한 차원 높은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릴리의 손>은 서기 2200년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갑자기 땅에 빈 틈이 생기고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주인공은 또 다른 지구 세계로, 아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지구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고. 그러면서 손수건을 통해 머나먼 과거의 자신의 흔적을 더듬는 장면을 통해 기계와 인간이 함께 공생해 가야 하는 미래의 지구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도 기후위기라는 말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지구 곳곳에서 100년 만에 가문이 생기고 폭우가 생기면서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듯이 <가장 작은 신>에서도 초특급 울트라 미세먼지가 공습해 오는 미래의 지구의 모습을 맞딱뜨리게 된다. 메세먼지 경보음이 울리고 사람들은 미세먼지 방독면을 필수품을 챙기며 일상의 외출이 화생방 훈련을 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 와중에도 공기 정청기를 판매하는 다단계 업체들은 사람들을 속이고 속이는 영업 전략을 펼치며 '먼지의 신'이라는 가짜 상품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주변으로 펼쳐진 세상은 암울하기 그지 없다. 고독사를 걱정해야 하고, 각종 기후 위기로 늘 질병을 걱정해야 하며 늘 익숙했던 세상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 와중에도 변함이 없는 것은 인간이라는 속성 그 자체다. 세상과 등지며 살아가며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태 속에서도 결국에는 위기 속에 인간이라는 본성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인간을 구출해 내는 것은 곧 인간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코로나 펜데믹을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앞으로 영원히 생각지도 못하는 질병과 더불어 함께 지내야 하는 암울한 현실, 기후 위기가 이제는 최우선 해결 과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땜방식으로 대충대충 임시처방으로 넘겨야 하는 현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립과 고독, 치열한 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누가 과연 나의 이웃이 되어 줄련지...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사람의 본성' 이다!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회복' 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