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우주를 보며 시작한 2023년은 과학의 반쪽사를 찾는 것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습니다.
근데,
독토 송년모임 장소를 해운대 남천집으로 공지할 때부터 왠지 불길(?)했습니다.
그리고 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알리쿠시지, 자이싱, 그라만콰시, 알렉산드로 포포프, 자가디시 찬드라보스, 나가오카 한타로, 표토르 카피차, 저우위안페이... 저자(著者)가 개고생해서 찾아 맞춘 과학사의 나머지 반쪼가리는 문어삼합, 모듬전, 흑산도 홍어, 과메기에 밀려 명함도 꺼내지 못하고, 쏘맥, 생탁, 테라가 분위기를 장악해버렸습니다.
탄탄한 책읽기로 내공을 다진 독토 회원들을 이끄는 힘은 ‘지성’(知性)이 아니라 ‘먹성’이라는 점이 탄로난 시간이었습니다ㅋㅋㅋ
하기사, 위대한 과학자들이 인류의 행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군분투하는 동안, 우리 범부(凡夫)들이야 그분들이 만들어준 살만~한 세상 덕에 모처럼 마주한 푸짐한 술상 앞에서 허리띠 풀고 거~하게 한잔 걸치면서 한해의 회포를 푸는 것.. 이게 세상사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송년모임이니 만큼 참석자들이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소회를 한마디씩 풀어놓습니다.
먼저, 20대때 독토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오랜 총무생활 끝에 올해부터 독토를 이끌어갈 중책을 맡으신 회장님께서 올 한해 동안도 독토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학교에선 영어를 가르치다가 최근 ‘진로’과목으로 갈아탄 팔방미인 박모 회원이 몇 년만에 짠!하고 나타난 자신의 죄를 자백합니다. 바쁜 학사일정 때문이었다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네요.(송년모임 참석확인증 하나면 모든 죄가 사면된답니다)
이제 짠밥 4그릇째인 신참 회원 지드래곤님은 올해 새로 독토에 발을 딛게 되었는데도 회원들이 열렬히 환영해주셔서 낯설지 않고 친근감이 드는 모임이 되었다는 소감을 밝혔고요
지난 달 지드래곤님의 연주회에 참석했다가 광팬이 된 강모 회원은, 첫 연주곡을 들을 때의 뜨거운 감동을 회상하면서 “무슨 곡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온도는 지금도 남아있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매번 책을 열심히 읽는데 하필 독토 모임 날만 되면 중요한 계약이 생겨 번번이 참석을 못했다며 결코 변절한 것이 아니니 오해마시라는 심모 회원의 고백도 있었고요.
범생이 이미지에서 파마머리로 파격 변신한 김모 회원은 할 줄 아는게 책읽는 것 밖에 없다며 임박한 정년퇴직 후에도 독토에 열심을 다하겠다는 충성맹세를 하시네요.
모처럼 참석하신 조**님께서 여러 덕담을 해 주셨는데요, “독서에 나이를 논하지 말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도 남겨주셨습니다.
이 명언을 받들어 독토에서 은퇴하려는 생각을 접고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전까진 꿋꿋이 자리를 지키겠다는 하모 회원의 다짐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원로회원들을 모시고 초대 총무를 맡아 시작한 독토 생활이, 어느 듯 중년을 지나 원로가 되어 가는 회원들과 함께한 사반세기가 되었다는 이모 회원의 회고에 모두들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 그 숱한 세월 동안 토론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온 우리들 모습, 참 대견하지요!
몸살로 눈도장만 찍고 조퇴하려 했던 홍모 회원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은근히 자랑질을 합니다 올 한해 동안 제가 독토에서 제일 잘한 일은 촉망받는 뉴 페이스 지드래곤을 전도(!)한 일인 것 같아요~
전도왕(!) 자리를 뺏길까봐 얼른 나선 최 모 회원의 자랑은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저는 요, 절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독토에 와서 만나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전도한 분들이 독토의 알짜배기들인 조모, 홍모, 양모...
선정위원장님의 탄성 “아멘! 할렐루야!!!”
이 쯤되니 아무래도 ‘독서아카데미’를 ‘독토교’로 개명하고 종교단체 등록을 해야 할 것 같네요.
교주(敎主)야 강모 회원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존경과 흠모를 넘어 경외심의 대상이 된 선정위원장님이구요.
말이 나온 김에 탁월한 도서 선정에 대한 칭송과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요 그렇게 탁월한 책 선정의 비결은 뭘까요?
타고난 천재성이다, 아니! 머리숱이 백발이 되도록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참석자들간에 팽팽한 논란이 있었지만, 선정위원장님이 밝힌 핵심 키워드는 ‘좋은 작가’에 주목할 것! 덧붙인다면 ‘좋은 출판사’를 주시할 것!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고 법정스님은 당부하셨지만, 맛깔나는 음식들이 뱃속을 가득 채우고, 한 해동안 독토와 함께 했던 즐거운 기억들을 마음 가득 간직한 채 유쾌한 덕담들을 입으로 쏟아내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밤 10시에 털고 일어난 자리는 인근 구남로의 ‘까사 부사노’로 이어져 11시 반까지 뒤풀이로 아쉬움을 달래었습니다.
독토의 곳간이 바닥을 드러낼까 염려한 회장님께서 지갑을 털어 식대의 반을 부담해주셨습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새해 첫 책은 토니 모리슨의 소설 ‘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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