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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架上七言) 고난주간 설교자료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설교>
성경 : 눅23:26-38 종려주일새벽
제 1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눅23:34)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십자가상에서 7마디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을 가상칠언이라고 합니다. 이번 한 주간동안 한 마디 한 마디 그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십자가상에서 제일 첫 번째 하신 말씀은 눅23:34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봅시다.
1. 예수님에게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속죄 권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① 죄 많은 여인의 죄를 속죄하여 주실 때 그는 구원을 받고 평안히 돌아갔습니다. 눅7:36-50에 보면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부을 때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하시더니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
②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의 죄를 사죄하여 주셨습니다(마9:1-8).
마9:2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5:14에는 38년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는데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했습니다.
③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마26:28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2. 예수님은 원수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의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눅23:34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셨는데 이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사주에 의해서 빌라도가 불의한 재판을 하게되고 예수를 잡아다가 때리고 욕을 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② 베드로를 비롯한 배신자들의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배신자였습니다. 괘씸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사53:4-6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 했습니다.
3. 우리에게도 용서하라고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①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골3:13-14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② 주기도문에서 명령 하셨습니다. 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③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마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스데반 집사는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용서했습니다.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서로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고소하면서 교회를 소란케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행위를 불의하다고 규정했습니다. 고전6:6-9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 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 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서 피차 용서합시다. 절대로 용서가 안 되는 사람, 괘씸한 사람을 그려봅시다. 십자가 앞에서 용서하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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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누가복음23:39-43
제 2언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 리라 (눅23:43)
골고다 언덕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좌편과 우편에는 두 사람의 행악자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들은 큰 죄를 범하여 당시에 최고형인 십자가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신 데도 불구하고 단지 나의 죄와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 두 강도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희롱하는 무리들과 함께 예수를 비방하고 욕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당신이 정말 구원자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강도는 그 사람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당연한 값을 당하는 것이지만 이 분이 행하시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면서 다시 예수님께 간구하기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청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십자가상의 두 번째 말씀입니다. 그러면 가상 제2언의 말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1. 두 강도의 시각
본문의 행악자를 마태와 마가는 강도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강도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희롱하는 무리들과 함께 예수를 비방하고 욕했습니다. 이 두 강도는 모든 인류를 대표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같은 죄인으로 예수를 몰랐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비방하는 사람과 회개하여 구원받는 사람으로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ꊱ 멸망한 행악자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비방하는 행악자는 자기의 행위가 악함으로 빛이신 예수를 싫어했습니다. 이 행악자는 자기의 악한 행위를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욕하고 비난했습니다.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지혜, 지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ꊲ 구원받는 행악자
눅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구원받는 행악자는 예수를 바로 이해했습니다.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는 자기 죄에 대한 정당한 이해, 즉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인간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죄 자체가 아니라 죄에 대한 몰이해입니다. 즉 회개하지 않는 일입니다.
눅23:40에 보면 구원받는 행악자는 회개하지 않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본문 42절에 구원받는 행악자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낙원에 있을 자와 음부에 있을 자를 갈라놓는 분기점입니다.
2. 예수님은 낙원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① 주님이 승천하실 때 낙원을 예비하러 가신다고 했습니다. 요14:2-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② 영원한 천국의 주인이십니다. 계22:3-4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③ 낙원에 있는 하나님이 지으신 집은 세상의 집과는 다릅니다. 고후5:1-2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3. 낙원에 제일 먼저 간 사람은 강도입니다.
① 회개와 기도함으로 낙원에 갔습니다. 눅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②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눅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③ 예수가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함으로 낙원에 갔습니다. 그러므로 한편 강도는 고백하기를 눅23:42에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했습니다.
4. 주님이 가시고 우리가 갈 낙원입니다.
① 거기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합니다.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②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십자가상의 일곱 마디의 말씀 중에 오늘은 두 번째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천국 본향은 회개와 믿음으로 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한편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임하는 말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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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요한복음19:23-27 (화) 새벽
제 3언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6-27)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써서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써서 붙였고, 이윽고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십자가를 친히 지시고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 마침내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그런데 바로 그 밑에서는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 서로 다투며 네 깃을 잡고 하나씩 나눠 가지며 속옷도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한 군병이 말하기를 속옷은 통으로 된 것이니 나누지 말고 제비를 뽑아 가지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제비를 뽑아 속옷을 취하였습니다.
이는 시22:18절의 말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 밑에서는 벗긴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에 혈안이 된 모습…, 여기서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이 잔악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있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그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니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의 값을 대신 갚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시지만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똑같은 성정을 갖으신 분이라 얼마나 고통이 크셨겠습니까?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시고 그 고통 중에서 주님은 십자가상에서의 세 번째의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효도의 계명을 지키셨습니다.
①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순종하며 받들었습니다. 눅2:51에는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12세 때는 부모와 함께 성전에 예배하러 갔습니다. 눅2:41-42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 갔다가" 라고 했습니다.
② 십자가상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셨습니다. 요19:26-27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③ 이런 예수님의 사도인 바울은 효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예수믿는 사람들은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① 십계명 중에 인간에게 주신 첫 계명이 효도입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잠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② 당시 종교계의 그릇된 가르침인 고르반의 진리를 설명하셨습니다.(막7:11-13) 그들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릴 것을 드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 가르쳤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서 부모님을 잘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 고 핑계를 대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 일이나 신앙을 핑계하면서 불효해서는 안됩니다.
③ 효도하는 자에게 장수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는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① 우리는 부모님에게 순종을 해야 합니다. 웃어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마21장에 보면 어느 포도원 주인이 멀리 여행을 가기 위해 두 아들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일을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안 했고, 작은아들은 안 하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잘못을 뉘우치고 포도원에서 일을 했는데,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말들은 사람이냐고 하시면서 아버지의 말씀, 즉 부모님에게 순종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② 부모는 타락과 실패의 자식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눅15:11-24의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부모의 품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③ 예수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요, 성도는 주안에서 한 형제요, 부모입니다. 막3: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더니 막3:35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했습니다. 君師父一體란 말이 있습니다. 낳은 부모, 기른 부모, 학교의 스승, 교회의 목사 등 웃어른들을 잘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이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충성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웃어른들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 교회에 충성 할 수 없습니다. 충신은 효자 가문에서 난다고 하는 말이 옳습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불효한 죄를 회개합시다. 찾아가서 참회합시다. 세상을 떠나셨다면 하나님께 불효를 회개합시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면서 효성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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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마태복음27:45-54 (수) 새벽
제 4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6)
예수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 라 쓴 죄 패가 붙어 있고,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는 강도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면서 온갖 저주스런 말로 예수를 모욕하였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그와 같이 희롱하였습니다. 갑자기 제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하였는데, 제9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를 지르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절규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영혼이 떠나가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4번째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는 이 순간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순간입니다.
① 흑암의 권세가 잠깐 이기는 듯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오전 9시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돌아가시기까지 6시간동안 온몸에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 45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6시로부터 제9시까지, 그러니까 12시에서 3시까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사탄과 마귀들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기 위하여 갈보리 언덕으로 총집결하여 환호하는 장면인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가 이기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온 인류를 대속하기 위한 구속의 순간이었습니다.
② 또한 이 순간은 하나님이 얼굴을 돌이키신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돌아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죄의 대가를 철저히 물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극심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절규한 것입니다.
시22:1절 말씀에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그 값으로 말미암아 저주받아 멸망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가 당해야 할 죄와 사망, 온갖 저주와 고통, 질고와 슬픔, 멸시와 천대, 허물과 죄악, 병듦과 상함을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③ 그러므로 이 순간은 한편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담을 허시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순간 마27:51절 말씀에 보면,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소의 휘장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을 말합니다. 성소 안의 지성소는 일년에 단 한차례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대제사장 외에 누구든지 이 지성소에 들어가면 죽음을 면할 수 없고 설령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의식을 행하거나 부정하면 죽음을 당하였던 곳입니다. 이 휘장은 매우 튼튼합니다. 잘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순간, 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찢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찢어질 수 없는 일로서, 이는 곧 막혔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완전히 허물어 버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휘장 가운데로 새롭고 산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지성소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아무도 죽음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려진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을 통해서만 속죄하던 구약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엡2:14-16절 말씀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는 말씀의 의미는 참으로 큽니다.
① 이는 버림받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십자가의 최고봉의 순간입니다.
딤전2: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② 또한 이 말씀은 죄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③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버림받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53:6절 말씀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 했습니다.
3. 엘리 엘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한 것입니다.
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삼상2:6절에 보면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했습니다.
② 또한 이 말씀은 전폭을 하나님께 맡기시는 고백입니다.
대하20:20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신뢰와 신앙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③ 주님도 끝까지 충성과 순종하셨습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지신 예수님, 아픔을 알고 고통을 알고, 저주와 모욕을 아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마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잠잠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53: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지신 예수님… 그러기에 옷을 다 벗기고 채찍으로 때리고 못으로 손과 발을 박으면… 아픔을 알고 고통을 알고, 저주와 모욕을 아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순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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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요한복음19:28-30 (목) 새벽
제 5언 : 내가 목마르다 (요19:28)
우리는 조금만 땀을 흘려도 곧 갈증을 느껴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경우를 상상해 볼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데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눅22:4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 역사상에 예수님처럼 간절히 기도를 해 본 사람이 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22:14에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시69:21에 “저희가 쓸개로 나의 식물을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라고 예수님의 갈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 마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의 갈증은 이미 잡히시기 전부터 목이 마르셨습니다.
1.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목이 마르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철야기도, 6차례의 심문을 받으시면서 받으신 정신적인 고통,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시면서 흘리신 땀,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일을 보면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육체적 죄악을 속죄하시기 위한 사랑과 속죄의 갈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 죄인들이 혈과 육으로 지은 죄를 없애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혈과 육으로 지은 죄는 일단 혈과 육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간의 혈과 육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무죄하신 예수님 만이 해결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은 영혼까지도 목이 마르셨습니다.
(1) 죄라는 것은 육신의 죄만 아니라, 영혼으로 범하는 죄까지 포함됩니다. 죄는 영혼과 육으로 짓는 것이지 부분적으로 육으로만 짓거나 영혼만으로 짓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죄가 있고 영혼의 죄가 있습니다. 인간들이 육으로 지은 죄로 인한 예수님의 목마름, 또한 인간들의 영혼의 죄로 인한 예수님의 목마름, 두 가지를 다 생각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육신의 갈증은 생리적인 갈증이요, 예수님이 느끼시는 영혼의 갈증은 여러분들의 사랑의 생수를 요구하시는 갈증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영혼을 시원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청결한 양심, 깨끗한 심령을 가집시다.
(2)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 몸이 그와 같이 목이 마르셨을까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길목에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잃어버린 외로운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십자가의 거룩한 사건이 있기 5일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때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환영하던 사람들이 어느 틈에 마음이 변하여 미움과 증오의 욕설을 주님께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던 하늘의 아버지마저 무심한 듯 자신을 버리는 것 같은 상황 속에 놓여 있었으니 목이 마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3.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죄악으로 인해 갈증을 느끼는 죄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는 바다에 빠진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바다에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배반을 받으셨으면서도 오히려 사랑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사랑을 값없이 주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요구하셨듯이 예수님은 인간들을 향해 정성으로 가득 찬 생수를 요구하시면서 생수를 무한히 값없이 주시려고 합니다.
요7;37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생수는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이 십자가 위치에서 각자가 예수님처럼 “내가 목마르다”라는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늘 간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생수를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생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할 각오를 해야 보혜사 성령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4. 예수께서 목이 마르다고 하셨지만 무정하게도 물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쓰라린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하여 신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목마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원한 생수를 드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신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누구 하나 물을 떠다 주는 사람도 없었단 말입니다. 막15:23에 골고다로 향하는 도중에 몰약을 섞은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골고다에 막 도착했을 때는 쓸개를 탄 포도주를 주었습니다.(마27:33), 십자가 위에서 신 포두주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두 거절하셨습니다. 주님이 목마르다고 하셨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5. “목마르다”는 말은 “애타게 바란다”는 뜻입니다.
목마르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에는 갈망하다, 열망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애타게 바라고 열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과 평화, 그리고 그 나라와 그 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목 마르셨습니다. 우리들에게 영원한 사랑과 평화를 회복시켜 주시고자 주님은 아픔과 고통과 고독을 참으셨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갈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귀한 희생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셨기에 주님은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주님의 목마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고 합니다. 사랑하고 싶어 목이 마르고, 생명을 구원하고 싶어 목마른 안타까움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의를 행하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성경 읽고 싶고 십일조 헌금 성실하게 드리고 싶고 주일 성수하고 싶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 목마른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목마르다”는 고갈 성입니다. 곡 이루려는 욕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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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요한복음 19:28-30 (금) 새벽
제 6언 : 다 이루었다 (요19:30)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데체 무엇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까? “다 이루었다”는 6번째 외침의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다”는 전부, 또는 모든 것, 또는 온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 이루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온전히 성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취되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1. 속죄사역의 성취(완성)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속죄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니고는 “속죄를 위한 값”(贖錢)을 대신 갚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시면서 죄를 용서하시는 속죄사역을 이루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 용서의 은총이 우리들의 마음에 역사되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인간들의 죄는 하나님만이 없앨 수 있습니다.
사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속죄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언약의 완성입니다.
(1) 하나님의 언약은 계약 조건이 있습니다. 구약은 죄인에게 순종을 계약 조건으로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고 꼭 지켜야 할 십계명을 제시했지만 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은혜의 언약을 제시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제시하시고 그 아들의 희생을 통해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곧 신약입니다.
(2) 그러면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어떤 약속이 이루어졌는가?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약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 죄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사이에 막힌 담이 허셨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었습니다.
3. 율법을 다 성취하였습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고 하신 주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율법, 즉 구약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을 요구하십니다. 인간 그 누구도 율법을 성취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를 만족시키시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은 지키는 데 그 의미가 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 성취되었으니 이제는 그 율법의 성취를 믿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율법만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신약의 새 계명, 즉 사랑의 법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신 분이십니다.
순종을 완성하셨습니다. 빌2:6-8절 말씀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요일4:10-11절 말씀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했습니다.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요19: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했습니다.
인간은 다 이루고 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계획을 다 이루고 가는 이가 없습니다. 꿈을 다 이루고 가는 이가 없습니다.
못다 이루는 우리 인생은 다 이루신 주님을 믿고 가야 합니다. 요16: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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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누가복음23:44-49 (토) 새벽
제 7언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눅23:46-48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예수님의 가상7언 가운데 마지막 일곱 번째의 말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육으로 지어진 몸은 물질과 교제하고 세상 것만 좋아합니다.
갈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롬8:5-8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영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불어넣으신 생기입니다. 지. 의 성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사람의 육체도 귀하지만 영혼이 사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말합니다.
육체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건강하면 7,80이라고 했습니다. 때가 되면 가야합니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불멸입니다. 육체는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먼저라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도 잘됩니다.
2. 영혼의 주인, 창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창조자이십니다. 영혼은 부모로부터 유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창조자이시기에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본문 눅23:46절 말씀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고전1:3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갈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롬8: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 했습니다.
3. 우리의 영혼은 궁극적으로 내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은 생명(영혼)입니다. 마16:26절 말씀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께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요14:6절 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행7:59에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성도의 영혼은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도 아버지 손에 부탁하면서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결심을 가지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비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는 그 영혼은 주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셔서 각양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제 1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눅23:34)
제 2언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제 3언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6-27)
제 4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6)
제 5언 : 내가 목마르다 (요19:28)
제 6언 : 다 이루었다 (요19:30)
제 7언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가상 칠언의 말씀 속에 담겨진 깊은 진리가 우리에게 더욱 확신을 주며 주님을 따라 가는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나 위하여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나의 죄값을 대신 갚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잊지않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