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7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아내와 함께 모처럼 극장(오리역 CGV)에서 봤다. 평생 옆지기와 1년에 한두 번, 이렇게 문화 향유시간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조선 초기 비운의 임금 단종(端宗. 1441-1457)과 관련된 영화라는 것만 알고 갔다. 지금은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중2때 읽은 박종화의 <단종애사>와 10여년 전에 고교 친구들과 가본 ‘청령포’가 생각났을 뿐이다. 2시간여 영화는 엄흥도(嚴興道.당시 영월현의 호장)역을 맡은 유해진의 찰진 연기로 흡입력이 완전 짱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슬프게 전개되는 바람에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에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아시리라? 병약했으나 조선 27명 임금 중 가장 저평가된 문종이 승하하자 태어나자마자 원손(元孫)이었던 이홍위(弘暐. 크고 찬란하게 빛나라는 뜻. 임금 중 유일하게 이름이 외자가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가 등극했다. 1456년 할아버지 '이방원(태종) 빼막'인 수양대군이 한명회 등과 쿠데타를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 고명대신을 죽이고 왕이 됐다. 거사 전에도 종친은 벼슬을 할 수 없는데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겸하는 횡포를 부렸다. 그것도 모자라 성삼문 등 사육신과 안평대군을 죽이고, 상왕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청령포에 유배했다. 금성대군이 역모를 꾸민다는 핑계로 끝내 친동생과 조카에게 사약을 내렸다. 그 가운데에 언제나 역적 한명회가 있었다. 임금을 여섯 명이나 섬기고 부귀영화를 누리면 무엇하나? 죽어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한 것을.
영화는 시종일관 재밌고 씁쓸했다. 일개 이름없는 지방의 호장 엄흥도는 ‘최선’을 다했다. 그가 있어 241년만에 숙종은 노산군의 묘호를 ‘단종’으로 종묘에 모시고, 잊혀졌던 영월땅의 무덤을 장릉(莊陵)으로 단장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든 이런 의인(義人)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래야 세상이 살 맛이 나지 않겠는가. 엄홍도는 “위선피화 오소원야”(爲善被禍 吾所願也. 착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단종을 말하려면, 왕비 정순왕후 송씨를 빠트리면 안된다. 18세에 단종이 죽자 대학로 뒤 낙산(타락산) 동망봉(東望峰. 누각에 영조의 친필편액이 있다)에 올라, 82세에 죽을 때까지 남편을 그리워하며 염색일을 하며 산 비운의 왕비, 남양주의 사릉(思陵)이 유택. 아마도 어린 나이인지라 합방하여 운우지정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는 500여년만인 1999년 사릉에서 자란 소나무 한 그루를 장릉으로 옮겨 심은 ‘정령송’(精靈松)으로 마무리된다. 영혼이나마 이승에서 못누린 사랑을 누리고 있을까? 또한 ‘자주동샘’은 정순왕후가 ‘정업원’에서 살며 옷감을 빨던 샘터인데, 염료를 풀지 않았는데도 흰천이 보랏빛으로 물이 들었다는 믿거나말거나 설화이다. 그 자취가 아직도 남아있고, 종로구청와 영월군은 ‘정순왕후 문화제’와 ‘단종문화제’를 해마다 지내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후손의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그런 일들이 아닐까.
아내에게 말했다. “유해진이 연기 죽이지? 참 그런 친구가 우리와 동시대에 있어 좋아. 안성기, 황정민, 이정재, 박중훈, 설경구, 송광호, 한석규 등이 우리 삶에 윤기를 더해 주잖아” “그렇지. 진정한 대중스타들의 향연 덕분에 이런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은 전혀 나쁘지 않아. 아니 행복해. 또 내 옆에 당신이 있잖아” 아내의 답변이다. 아무튼, 영화는 내내 아프고 씁쓸했다. 권력이라는 속성은 비운의 조카도 저렇게 때려잡아야 하는가(수양대군, 세조의 얼굴은 한 장면도 나오지 않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거늘. 참 부나비같은 인간들의 망나니짓은 곧바로 업(業. 카르마)이 되어 되돌아오는데,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것을 몰라(세조의 병사. 그 아들들의 짧은 인생, 증손자 연산군의 폭정). 21세기에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망나니부부'가 있잖아. 그것 참. 돌아오는 길,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려 간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가 생각나 읊조렸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희옵고(이별하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마음) 같아서 우러(울며) 밤길 에놋다(흐른다)
왜 아니겠는가? 나라도 그런 시조가 절로 나왔을 것이다. 왕방연은 평생 영월쪽을 바라보며 죄책감 속에 살았다던가. 그런가하면, 호장 엄흥도의 후손들은 신분을 속이고 울산 언양지역에 정착했는데, 엄흥도의 충절을 인정해 숙종은 창절사 서원에 배향하게 하고, 정조대왕은 '충의공'(忠毅公) 시호와 함께 공조판서로 추증했다고 했다. 장릉의 정려각에도 모셔져 있다. 이는 수양대군의 쿠데타가 잘못이고, 단종의 정통성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반증일 터. 대체 충(忠)은 무엇이고, 의(義)는 대체 무엇인가? 아지 모게라(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