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토요일 강론>(2024. 5. 4. 토)(요한 15,18-21)
복음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 15,18-21).”
1)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라는 말씀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사실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니까 예수님의 신앙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움’은 적대감과 박해를 뜻합니다.
‘미워하거든’은, 뜻으로는 ‘미워하는 것은’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적대감과 박해는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실
때부터 시작되어서 계속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 끝 날까지......>
‘너희보다 먼저’ 라는 말은 ‘박해의 순서’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박해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알아라.” 라는 말씀은, “알고 있어라.”, 또는 “깨달아라.”
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종교박해는 예수님의 신앙인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다. 그러니 인내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2) 세상 사람들은 왜,
예수님과 신앙인들에게 적대감과 반감을 품을까?
단순하게 말하면, 자기들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편이 다른’ 사람들을 낯설어 하는 것은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닌데,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무조건 거부감과
혐오감부터 가지는 것은 잘못이고 죄입니다.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적이다.”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적대감과 반감도 죄가 되지만, 그 ‘편 가르기’가
더 큰 죄이고, 종교박해는 ‘대단히 큰 죄’입니다.>
싫으면 그만이지, 왜 예수님과 신앙인들을 박해할까?
자기들에게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자기들이 살아온 생활 방식, 기존 질서와 체제, 가치관
같은 것들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는 위험한 사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자기들의 영역에서
제거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종교박해입니다.
<유대교의 박해는,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위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박해는 황제의 통치 질서를 위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고, 조선시대 때의 박해는 조선의 사회
질서와 전통을 파괴하는 위험한 사이비 종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3) 박해자들이 ‘편 가르기’를 한다고 해도,
신앙인들은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셨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박해자들도 그 ‘모든 사람’ 속에 포함되고,
구원의 대상이며, 선교 대상입니다.
그들도 ‘잠재적인 예비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마태 10,16), 이 말씀에는
‘이리 떼’를 ‘양들’로 변화시켜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리 떼’를 ‘양들’로 변화시키는 것은,
‘양들’도 살고 ‘이리 떼’도 사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만일에 박해받고 죽는 것이 무서워서 ‘양들’이
‘이리 떼의 악한 힘’에 굴복하고, ‘이리’로 변해버린다면,
그것은 ‘양들’도, ‘이리 떼’도 함께 멸망하는 일입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고,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또 세상 사람들을
신앙인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미움 받고, 박해 받는 것은 분명히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긴 한데,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차지하려면
참고 견뎌야 할 십자가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4-45).”
이 말씀에서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박해자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여라.”입니다.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자신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부정하지만......
따라서 박해자들도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신앙인들의
형제이고 이웃이기 때문에, 그들이 멸망하기를 바라면서
저주하는 기도를 하면 안 되고,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해도 안 됩니다.
박해자들은 신앙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해도, 신앙인들은
그들에게 사랑과 평화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출처] 부활 제5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