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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종교의 영역은 현실과 유리된 별세계인가?
한국 개신교는 메타버스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고(신학) 또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목회)에 대한 15인의 신학자와 목회자의 글을 모아 펴냈다. 시대가 변했으니 그 시대를 선도해야 할 종교로서 기독교가 이를 적극 수용하고 더 나아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아직 섣부르다는 의견이나 종교의 영역은 세속의 영역과 다르니 별개이며 그저 지금 우리의 길을 계속 가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견해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사실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는 메타버스와 기독교의 관계를 굳이 한 방향의 의견으로 모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계에 대해 일선에 서 있는 신학자, 목회자들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평가하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를 펼쳐보이고 싶은 의도였다.
그러나 한편 메타버스는 미래, 가상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화두자 이미 실현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단지 선진 기술의 영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3차원의 현재를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같은 새로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종교, 기독교계, 한국 신학이 어떻게 평가하든, 기독교 교회들은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든 관계 없이 이미 기술적인 영역은 극히 당연하며, 실제 생활에서도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종교, 한정적으로 기독교는 초월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며, 때로는 영성이나 미지의 세계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세계라고 한다. 한편 현실에 땅에 붙이고 있는 인간들의 지향성이지만 다른 한편 초현실의 세계로부터 오는 메타언어의 신의 계시라고도 한다. 그러면 그 메시지는 땅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전해질 것인가. 메타버스 시대에서 신학과 목회를 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저자 소개
김상일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서 문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필립스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클레어몬트대학교 대학원에서 과정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현재 미국 클레어몬트대학교의 Center for Process Studies에서 Korea Project Director로 연구에 종사하며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의 수학소』,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 『악학궤범 학제적 연구』, 「악학궤범 新연구 - 한태동의 악학궤범 연구에 대한 이해와 고찰」, 『한의학과 현대 수학의 만남』, 『대각선 논법과 易』, 『괴델의 불완성성 원리로 풀어본 원효의 판비량론』, 『러셀 역설과 과학 혁명 구조』 등 다수가 있다.
허호익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스도신학대학교와 대전신학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한국기독교학회 총무, 한국문화신학회 부회장, 한국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한국문화와 천지인 조화론」, 「천지인신학」, 「한국의 이단기독교」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신학」, 「길선주목사의 목회와 신학사상」, 「단군신화와 기독교」 같은 한국문화와 한국신학에 관한 저서와 「야웨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1, 2」, 「신앙, 성서, 교회를 위한 기독교 신학」과 같은 성서적 조직신학과 「동성애는 죄인가」, 「안티 기독교 뒤집기」와 같은 책을 저술하였다. 아울러 신학전문 사이트인 한국신학마당(www.theologia.kr)을 운영하고 있다.
📜 목차
머리말
추천의 글
제1장 _ 메타버스 시대와 신학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의 문명사적 이해 _허호익
메타버스 시대의 메타 신학 _ 김상일
메타버스(metaverse) 시대의 소통 문제와 신학적 소회(素懷) _ 서정민
메타버스 시대와 신학의 과제 _ 박숭인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 _ 이명권
제2장 _ 메타버스 시대에 목회하기
메타버스 시대의 목회 _ 윤사무엘
메타버스 시대의 교회, 예배 그리고 목회: 르네상스에서 인간지리학을 거쳐 신실존주의까지 _ 조은석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과 목회를 묻기 전에 _ 이민형
코로나19, 메타버스와 한국교회의 신학적 반성 _ 박호용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_ 김치범
제3장 _ 메타버스 시대에 신학과 목회의 미래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과 윤리 _ 강원돈
메타버스 시대에 신학의 미래 _ 김동환
세례 요한이 청계천에 나타난다면: 21세기 디지털 시대와 기독교 _ 이정철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과 목회 - 함께 성찰하며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하기를 _ 김종우
기술적 진보가 신학적 진보로 이어지길 _ 김기대
글쓴이 알림
📖 책 속으로
2022년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과 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른 신세계, 즉 디지털 시대에서 펼쳐질 멋진 신세계로 불리는 메타버스의 세계 앞에 서 있습니다. … 신세계로 나아가는 메타버스라는 시간과 공간을 기존의 패러다임과 틀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생성되고 진화하는 플랫폼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신학적 상상력이 요구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적용되었던 규율과 규칙이 새롭게 형성되는 패러다임에는 적용이 될수 없을 뿐 아니라 소통조차도 불가능(incommensurability)하다면, 현재의 우리와 신학을 구성하고 있는 틀을 넘어 생성되는 메타버스의 신세계의 진화 과정에 참여하여 담론을 이끌어나가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_ 방연상(연세대학교 신과대학 학장) “머리말” 중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초래한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서 신앙공동체로서 교회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 연세신학이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창조적 소수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메타버스 시대에 신학과 목회’라는 주제로 열한 번째 연세신학문고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각 분야에서 눈에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여러 동문이 주옥같은 글로 동참해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신학 담론이 우리 앞에 이미 불쑥 다가와 있는 메타버스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마땅히 선택해야 할 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_ 유요한(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회장) “추천의 글” 중에서
필자와 같은 세대는 ‘문명사적 행운아’이다. 1951년에 태어나 마이카 시대와 스마트폰 시대를 거치는 동안 1차에서 3차 산업사회까지 모두 경험했고, 운이 좋아 몇십 년 더 살게 되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과 메타버스가 구현될 스마트 안경을 쓰고 자율주행차를 타게 될 터이니 4차 산업사회까지 온전히 경험하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_허호익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의 문명사적 이해” 중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에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의한 과정신학은 전지전능한 신개념에 회의적이었으며 이에 ‘고난받는 신’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의 신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메타버스와 함께 인간들은 그동안 펜을 손에 쥐고 펜을 찾은 오류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신이 인간 자신 그 자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며 유발 하라리는 이를 ‘호모 데우스’라고 했다. 동학의 ‘인내천’ 같은 신관이 될 것이다. 이는 신을 찾는 방법의 어리석음과 오류를 말하는 것이지 신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호모데우스’를 넘어 ‘호모호모’가 될 것이며 이는 성육신된 ‘예수’를 두고 하는 다른 말이다. 이렇게 메타버스와 함께 예수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_ 김상일 “메타버스 시대의 메타 신학” 중에서
거칠게 생각하는 단상으로 바야흐로 ‘와이파이적 성령의 시대’를 사는 신학도, 목회자 그리고 크리스천들은 ‘와이파이 성령파’가 되어야 하거나 혹은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성부에의 신앙’과 ‘성자의 기억’을 어김없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따라서 신학은 정녕 ‘메타버스’ 세대를 맞아 조금 더 전향적인 토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대면 예배, 대면 목회, 대면 상담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거기에 거듭 말하지만 ‘성부에의 신앙’과 ‘성자의 기억’만 함께 공유한다면 새로운 시대의 신학도, 교회도 바탕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_ 서정민 “메타버스(metaverse) 시대의 소통 문제와 신학적 소회(素懷)” 중에서
발칙한 상상의 세상에서-별로 멀지 않은 미래에서- 우리 신학자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혹은 그 미래를 내다보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교회는 어떻게 변모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사 속에서 그러했듯이 아마도 두 가지 큰 흐름이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하나는 기독교는 메타버스와 같은 그러한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메타버스라는 트렌드에 발맞추어 지혜롭게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메타버스라는 트렌드를 거부하고 싶은 신학적 입장이 있는가 하면, 메타버스에서 정체성을 찾는 미래 세대를 위한 목회적 고려도 있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 중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받드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_ 박숭인 “메타버스 시대와 신학의 과제” 중에서
적응은 빠를수록 좋다. 신학이나 목회 환경이 메타버스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적응 능력이 빨라야 적자생존의 현실 세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떠난 가상은 여전히 가상일 뿐이다. 아무리 가상이 우리의 현실에 영향을 준다고 해도 현실의 뿌리를 떠나면 줄기와 가지 그리고 꽃과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가상현실을 무시해서는 또 현실에서 도태되기 쉽다. 가상현실, 그것이 또 하나의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_ 이명권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 중에서
메타버스는 제4차 산업혁명이 추구하는 상징 세계이다. 연세신학의 특징은 다양한 사회 속에서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 틀과 패러다임을 제공해 왔다. 팬데믹 가운데서 시대를 앞당기는 방안을 제안하는 일은 매우 시기적절하다.
1. 본질로 회복하는 목회 지향 2. 거룩성의 회복 3. 높은 자기 정체성(high self identity)의 회복
_ 윤사무엘 “메타버스 시대의 목회” 중에서
말씀에 선 그리스도인은 어디를 나가도 ‘돌아올 자리’를 늘 생각하고 있다. 그 자리는 ‘현실’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지어내신. 돌아와야 할 현실을 품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메타버스로 아웃(OUT) 했어도 그는 곧 따뜻한 우리의 집(the sweet home)으로 인(IN)할 것이다. 드나들기가 수월하다면 메타버스도 제법 쓸 만한 물건이 될 수 있다. 드나들기(IN & OUT). 그중에 돌아오기가 문제다. 탕자처럼 연어처럼 상처를 입고라도 돌아오기.
_ 조은석 “메타버스 시대의 교회, 예배 그리고 목회: 르네상스에서 인간지리학을 거쳐 신실존주의까지” 중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학자들과 기술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은 이미 기술의 생태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제들을 만들고, 이를 통해 기술 개발이 야기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미리 예상한 후, 이를 방지하는 방향으로 기술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연구를 보면서 그리고 ‘메타버스 목회’를 주장하는 교계의 일부를 보면서, 교회는 그리고 신학은 어찌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당장의 답은 없다. 답이 없으니 답을 찾을 때까지는 멈추어야 한다.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 종교는 늘 그래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적어도 새로운 기술을 도입함에 앞서 치열한 고민과 연구의 흔적은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신을 중개함에 있어 부족함은 있을지언정 부끄러움은 없어야 할 테니 말이다.
_ 이민형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과 목회를 묻기 전에” 중에서
제2의 종교개혁은 칭의를 강조한 나머지 성화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복음’으로 세상과 죽음과 사탄을 능히 이기는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로의 왕의 교체를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진정한 뜻을 바로 깨달아 변화된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실추한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아멘.
_ 박호용 “코로나19, 메타버스와 한국교회의 신학적 반성” 중에서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그리스도인은 최초의 메타버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꿈을 꾸는 자들이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춰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소망의 희미한 빛줄기마저 사라진 것 같은 절망의 일상 가운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은 위로와 희망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신음하는 피조물의 세계를 불쌍히 여기시어 치료하여 낫게 하실 것이고, 주민을 고쳐주고 평화와 참된 안전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실 것이다. 사람도 짐승도 자취를 감춘 쓸쓸한 곳에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렘 33:11)가 들리게 하실 것이다. 한 의로운 가지가 돋아나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기간이다.
_ 김치범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중에서
메타버스 시대에 신학과 윤리가 직면한 도전은 크고, 그 도전에 대응해서 신학과 윤리가 할 일은 많다. 신학은 메타버스에 등장하는 행위 주체들의 복수성과 다양성을 인지하고, 행위 주체성의 이론을 가다듬어야 하고, 메타버스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점검해야 하고, 하나님의 정의의 요구에 따라 메타버스의 윤리를 확립하여야 한다.
_ 강원돈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과 윤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