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며칠 앞둔 9월 하순이 열린 가을의 길목인데도,
주위를 살펴도 가을다운 풍광도 보이지 않고 그 어디에도 <가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올 여름은 기상관측사상 유례없는 연일 계속된 섭씨40도를 오르내리는 최악의 폭염 탓인지
아직 아침 저녁으로만 약간 시원할 뿐이지 낮에는 더워 여름 옷차림의 행인들이 많다.
오늘따라 날씨는 청명하며 하늘은 높고 나무잎은 서서히 색이 변해가는 듯하나
앞뜰 나무엔 단풍 드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먼산을 둘러보고 나무밑 벤치에 앉아
심호흡하며 꽃잎을 만지면서 귀를 기울려도 귓전에 울리는 소소 바람소리,
지나가는 행인의 웃슴소리뿐 그렇게도 듣고싶은 <가을 소리>는 언제 들릴런지....
그래서 늦은 밤시간엔 혹시 가을 소리가 들리는가 해서 인간사의 상념을 내려 놓고
거실 불을 끄고, 커피 한잔 들고서 가까이 창을 열고 밖을 내다 봤다.
추석을 향한 둥근달, 서늘한 바람, 높은 하늘, 달빛에 부서지는 어수레한 밤 풍경,
무언가 가을 풍경은 보이고 가을 냄새는 약간 나는데, <가을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늘 목요일 늦은시간에
<가을 소리>에 대한 강한 욕구가 느닷없이 발동되어,
추석이고 성묘고 자녀들 오는 것이고 간에, 에라~모르겠다 만사를 제쳐 놓고,
추석때의 교통혼잡 때문에 멀리 갈 수는 없어, 집에서 그리 멀쟎는 용인 에버랜드 부근의
산속의 통나무집, 홈브리지 케빈을 예약하고서,추석연휴 전날 집에 돌아 올 계획 잡고,
1박2일의 일정으로 간단히 짐을 꾸여 식구와 훌쩍 떠났다.
그러나 그곳 산속, 숲속, 통나무집에서도 높은 하늘, 휘영청 밝은
달, 맑은 공기,
스산한 계절의 흐름, 서서히 가을이 익어가는 분위기는 있으나,
그 어디에서도 내가 듣고 싶어하는 <가을 소리>는 들리지 아니했다.
그런데, 그 인근에 있는 호암미술관에 들려,
오랫만에 고미술과 도자기(청자,백자,분청)를
감상하는데, 한쪽 벽면에 있는 어느 고미술 앞에서 깊디 깊은 <가을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름아닌, 단원(檀園) 김홍도의
가장 늦은 나이의 작품인, 추성부도(秋聲賦圖)이다.
나는 그 그림과 그림속의 글(宋나라 구양수가 지은 詩를 단원이 직접 씀) 제목도
추성부(가을소리)인 시를 짧은 한문실력을 총동원하여 대충 뜻이나 읽어며, 단원이 그린
그림속의 글 작가인 구양수와 동자(童子)와의 대화에 귀 기울리며 30여분 꼼짝 않고 있었다.
다 보았으면 빨리 나가자는 식구를 불러, 11C 중반 송대(宋代)의 시(詩)를,
19C초 단원의 그림에서 세월을 넘어 탄생시킨 <가을 소리>를, 우리 한번 들어 보자고 하였다.
단원 김홍도가
61세에 그린 "추성부도"는 죽기 얼마전에 그린 가장 늦은 작품으로,"추성부"는
중국 송나라 구양수(1007~1072)가 쓴 글로, 가을 밤에 책을 읽다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며 자연의 연속성과 인간 삶의 덧 없슴을 노래한 시(詩)이다.
화면은 어두웠고 갈필(渴筆)의 거친 붓질로 가을
밤의 스산한 분위기를 실감있게 표현했다.
집안에 구양수가 있고, 하늘을 향해 가르키는 동자의 몸짓을 통해, 이 장면의 시를
풀어보면,
구양수가 밤에 책을 읽고 있는데,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섬칫하여 이를 듣다가 말했다
" 참 이상하도다, 처음에는 우수수 스산한 소리를 내더니 느닷없이
솟구쳐 물결이
이는 듯한 것이 마치 파도가 밤중에 일어나고 비바람이 갑자기 몰려 오는 것만 같구나,
그것이 물(物)에 부딛치면 쟁글쟁글 쇠붙이가 일제히 우는 것만 같아, 마치 적진을 향해 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내달리며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 듯 하구나, 이것이 무슨 소리냐? 네가 나가서 살펴 보아라"
동자가 말했다 "달과 별이 밝게 빛나고 하늘에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 인적이 없는데,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 소리>구나"
이렇게 시작되는 시는 자연의 연속성과 인간 삶의 허망함을
한(恨)하며 말미에,
"그럴진데 어째서 가을 소리를 한탄만 하는가?
동자는 나의 말에 대답도 않고 고개를 떨구고 잠을 자고 있다.
다만, 사방벽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찌륵찌륵 들려와, 나의 탄식을
부추기는 듯하다"고
하고 끝을 맺는다.
그림과 그림속의 글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니,규정에 안된다는 안내원의 말에
따라 찍지는 못하고, 팔고 있는 간단한 화록만 사서 나왔는데, 길옆 이름 모른 대여섯 그루의
큰나무밑에 낙엽인지 누른 잎사귀 몇잎이 떨어진걸 보고 차에서 내려 밟아 보았다.
불어오는 호숫가의 바람을 타고 들려 오는 발밑에 부서지는 소리를 초가을 입구에서 들으며,
벌써 낙엽이라니 그 나무 성질 한번 급하다 생각하면서 인간이나 자연세계에 성질 급한
녀석은 남보다 빨리 죽거나 떨어진다는 교훈을 얻으며,<가을 소리>와 함께 일찍 찾아온
가을의 첫 정취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며, 生과 死가 공존하는 창조의 신비를 맛본다.
전통회화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그림과 글이 한 작품에 같이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의 회화에서도 나타나는 오랜 전통으로
문인(文人)사상과 관련이 깊다. 이는 전통회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대체로 왕실과 귀족등
상류계층이고,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학식과 사상을 회화에 투영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에서는 송대(宋代)에 이미
문인화(文人畵)라 부르는 장르가 등장하였고,
시와 서예,그림에 모두 뛰어남을 뜻하는 삼절(三絶)은 하나의 최고 경지이자 이상이 되었고,
그림속에 글을 뜻하는 제발(題跋)도 이런 사상과 관련이 깊다.
회화가 문인들의 성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문인들의 시나 문장들이 그림에 들어 가게 되었다.
오늘날은 시인, 서예가, 화가가 각각 다른 예술의 한 장르를 만들고 있지만,
그때의 고미술(古美術)을 보면, 그림과 시, 서예가 한 작품에 같이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가을이 서서히 짙어지는 9월
하순의 문턱에 들어서서,
가을풍광을 즐기고 가을냄새를 맡았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에는, 자연의 연속선상에서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계절속에, <가을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