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이된 옛 경기고

60년대 70년도에는 공립으로는 아시다시피 경기, 서울, 경복, 용산, 그 다음으로 경동과 사대부고가 엎치락 뒷치락 했고요~
성동고도 공립으로는 10위 안에 들어갔죠.
서울고 전신이었던 경성중학교는 해방 전 일본인 자제들이 많이 다닌 학교였습니다.
과거 경기고 교장을 맡았던 분이 서울고 교장으로 부임해오면서 그해 서울대 합격자 수에서 서울고가 경기고를 앞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사립의 경우 서울의 5대 사립이라 해서
중앙, 휘문, 보성, 배재, 양정이 이에 해당했고, 그 외에 중동, 신일, 대광이 있었죠.
특히 양정과 배재는 배양전 양배전을 치루던 학교로 연고전 고연전처럼 어느 학교를 먼저 내세울 건가를 가지고 순위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故 마광수 교수가 졸업한 대광고는 미션스쿨이라서 서울에 있는 고교 중에서 연대에 가장 많이 보냈습니다.연대가 미션계통인 탓도 크겠지요~
위에 언급된 중동은 쌈질 잘하는
깡패 학교로 소문 났어도 미안하지만
맞짱을 뜨면 남산공전엔 밀렸습니다.
참고로 중앙은 사립으로서 주로 1차 경기고에 떨어진 학생들이 2차 후기로 많이 갔던 학교였고요~
여자인 경우는 공립 사립 할 것 없이 경기여고, 이화여고, 숙명, 진명 순으로 나갔죠.
2차 후기로는 정신여고, 풍문여고 순이었고요.
재미있는 건 5대 극성 여고로 덕성, 한성, 명성, 보성, 계성여고가 있었고, 3대 발광 여고로는 은광, 신광,
염광여고가 있었죠.
이번엔 지방으로 내려가 볼까요?
부산은 전통의 경남고와 후발인 부산고가 그야말로 라이벌 연고대 이상으로 용호상박이었는데요.
고교 입시 시절, 기자가 부산고에 찾아가서 당신네 학교는 올해 서울대 몇명 보냈냐고 교장에게 물으면 교장은 되레 경남은 몇명 붙었다고 하던가요?라고 물었답니다.
기자가 경남은 150명 불었다고 말하면 부산은 기죽지 않으려고 그 숫자보다 10명을 더붙여서 답변하는 촌극도 빚어졌는데~
이듬해에는 반대로 기자가 부산고를 먼저 방문하고 나서 경남고를 찾아가도 경남고 역시 부산과와 같은 식으로 답변을 하더랍니다.
이는 학교 간의 치열한 신경전을 보는 단면이라 하겠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대학에서 각 고교별 숫자를 정확히 발표하지 않아 빚어진 해프닝이었죠.
경남고는 주로 일본인 자제들이나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닌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는 동래고등학교죠.
대구의 경우는 경북고 계성고 대륜고 대구고가 명문이었고~
광주는 광주일고 광주고 순으로 잘 나갔죠.
인천의 경우는 골때리는데~^^
1956년 이전 입학 세대들의 경우 제물포고가 생기기 이전이라 인천고가 명문이었는데 1954년에 제물포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역전이 되었습니다.
대전은 단연 대전고였지요.
그외 전주고, 청주고, 진주고, 마산고, 춘천고 이리남성고 등이 각道를 대표하는 명문학교였습니다.
남자 상고의 경우 서울은 덕수상고, 선린상고 순이었고~
남자 공고의 경우 경기공고, 서울공고, 서울북공고, 한양공고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상은 과거 6,70년대 전국의 명문 고등학교 현황이었고요~
해방 전 북한의 경우를 살펴보면~
평안남도의 평양고보
함경남도의 함흥고보
평안북도의 신의주고보
함경북도의 경성고보
황해도의 해주고보가
각 도를 대표하는 명문고등학교였습니다.
강남 이전의 옛 경기여고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