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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3. 큐티
창세기 46:1 ~ 34
고센 땅에 정착하는 이스라엘
관찰 :
1) 애굽으로 가는 길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야곱
- 1절.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 야곱은 이미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46장을 시작하면서 언급하는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은 구속사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호칭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작은 무리의 족장이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루는 민족 집체의 대표로서의 이름이 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출애굽한 250여만의 무리들을 모두 부르는 이름이 되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의 이름이 되는 “이스라엘”의 차원에서 이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브엘세바”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모두 그곳의 왕인 아비멜렉과 조약을 체결한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떠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신앙적 의미가 있는 이곳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돌아오기까지 430여년의 시간이 흐르게 될 것을 그들은 다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고,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큰 민족, 큰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을 언약하셨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하시게 됩니다.
- 2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 하나님은 야곱을 브엘세바에서 만나주셨습니다. 밤에 천사와 씨름했던 야곱에게 다시 임한 이 체험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사용된 “이상 중에”라는 표현은 복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었고, 브엘세바에서 다시금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에게 그곳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밝혀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인큐베이팅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하나님의 민족을 보호하시며 크게 성장시키신다는 계획은 세상의 그 어떤 역사에서도 있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역사의 주관자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차원의 일이셨습니다.
- 4절.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는 이스라엘의 여정을 친히 인도하실 것을 언약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요셉이 야곱의 눈을 감기게 될 것을 언약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야곱이 오매불망 소망하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중심을 아시고, 그의 불안을 모두 제거해 주시고 있습니다.
- 5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 바로는 왕족이 타는 수레를 요셉을 통해서 야곱에게 보냈습니다. 그 크고 화려한 수레에 야곱이 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레에는 야곱의 아들들의 처자들을 태웠습니다. 그렇게 안전하게 애굽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 6절.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 이번에 이동하면 4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오게 될 것이기에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 모두와 가족들이 다 애굽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남은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 7절.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본문에 보면 “딸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기에 야곱이 12명의 아들들과 1명의 딸 디나만을 둔 것이 아니라 여러 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만 이름이 등장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2)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
- 8절.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 9절.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 10절.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 11절.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 12절.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 13절.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 14절.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 15절.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
- 16절.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 17절.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
- 18절.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육 명이라”
- 19절.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 20절.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 21절.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 22절.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사명이요”
- 23절. “단의 아들 후심이요”
- 24절.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에셀과 실렘이라”
- 25절.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칠 명이라”
- 26절.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 27절.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 모세는 이렇듯 애굽에 들어가게 된 야곱의 자손들의 이름을 정리했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생활이 일단락되고, 이제 애굽에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록이 없습니다. 노예로 고통받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탈출하는 출애굽기로 곧장 넘어가게 됩니다.
- 애굽 이주자들의 명단에서 ‘가족’에 해당하는 단어는 원래 ‘벤’ 즉, ‘아들’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명단 가운데는 딸들의 이 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15. 17절). 그렇기에 ‘가족’이라는 표현도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드러내고 있는 명단은 아들 위주의 명단입니다.
- 이 들은 모두 후에 이스라엘 가문의 대표가 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창세기의 일차적인 독자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애굽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명단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가나안을 떠날 때는 70명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후에 모세에 의해 이 글이 기록될 당시 즉 출애굽 할 당시에는 장정만 무려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 되는 엄청난 증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로 놀랍게 축복하셨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3) 마침내 요셉을 만나는 야곱
- 28절.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 야곱은 르우벤이 아니라 유다를 형제들의 대표로 삼고 있습니다. 유다가 형제들을 이끄는 리더였다는 것을 아버지 야곱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옥한 땅 고센으로 인도하고자 했고, 유다는 요셉의 안배대로 고센 땅으로 가족들을 이끌었습니다.
- 29절.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 요셉은 고센 땅으로 아버지를 맞이하러 갔습니다.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난 요셉은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정말 많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아버지를 헤어지게 하고, 이제 만나게 하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 30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 이스라엘은 요셉을 만나 여한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정말 그랬을 것입니다.
- 31절.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 요셉은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서 가족이 왔는데, 자신은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가족에게 가장 좋은 땅을 안배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권세를 사용해서 목축을 업으로 삼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최고의 땅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에게 할 말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 32절.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 요셉은 애굽 사람들이 목축하는 사람들을 가증히 여기기에 지근거리에 거하더라도 함께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목축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각시켜서 말하도록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 33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 요셉은 이미 바로와 자신의 형들과 아버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반드시 물어볼 질문이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하는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 34절.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들에게 그들이 목축하는 이들이라고 강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옥한 고센 땅에 가족들이 머물게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야곱은 진작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개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46장에서 언급되는 이스라엘의 이름은 그 의미가 좀 더 무겁습니다. 즉 창세기의 1차 독자가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 430년간 애굽에서 노예 생활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 출애굽한 이들에게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인가 하는 차원에서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의도적 표현입니다. 이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개명된 개인적 차원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이름으로서의 이스라엘로 야곱의 이름이 사용된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떠나기 전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때까지 애굽으로 가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던 이스라엘에게 그과 가족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이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을 해 주십니다. 야곱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무는 존재가 되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가나안 땅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약속된 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애굽으로 가족이 이전하게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이스라엘의 번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요셉에 의해서 눈을 감게 될 것이라는 소망스러운 언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애굽으로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 때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400년 뒤에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이 기억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애굽으로 이주한 이들의 명단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명단이 모계를 따라서 정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12지파의 근간이 되는 야곱의 12 아들들의 직계 가족의 명단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의도적으로 70(7 x 10)으로 맞추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7이란 숫자는 언약 관계의 표시로 여겨지는 숫자입니다. 신적 숫자인 3과 세상적 숫자인 4가 합하여진 숫자로 완전수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10은 ‘충족성’과 ‘안정성’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70명”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지향하는 예언적 숫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 70명의 근간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구약적 형태인 구약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그리고 애굽으로 이주하는 이들의 숫자를 70에 맞추어서 강조해서 기록했습니다.
4) 애굽 사람이 목축을 혐오하는 이유는 목축하는 자들이 애굽인들이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숭배하는 신 “아피스”가 소의 형상이었고, 그 외에도 여러 우상들이 가축으로 형상화되었기에 그러한 가축을 잡아먹는 이들을 경멸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농경에 종사하는 애굽인들은 난폭한 유목민들로부터 여러 차례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목축하는 이들을 혐오하는 정서가 가득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인들은 목축하는 사람들과 혼인을 피했고, 그들이 신전에 참배하는 것도 금했습니다. 이러한 얘굽의 관습은 오히려 이스라엘 후손의 혈통과 신앙을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 사람들과 격리된 곳에서 살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애굽인들과 동화되지 않고 계속 이스라엘의 혈통과 여호와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보호를 위해서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이 따로 거주하도록 안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적용 :
1) 요셉은 이스라엘의 애굽 이전이 단순히 자신의 가족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사하는 차원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에 와서도 애굽 사람들과 섞이게 되는 것을 매우 주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되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할 이들이기에 이들이 온전히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이 따로 구별되어 거주해야 한다는 명확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총명함과 연관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요셉은 가족들을 고센 땅으로 인도했고, 아버지 야곱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로를 만나서도 그 땅을 배정받도록 최선의 방책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은 이들이 하나님 주신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경험하는 것들도 그냥 일이 어쩌다보니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되어지는 일들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역사가 온전히 이뤄지게 되기를 날마다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백성들과 혈통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고센 땅에 이스라엘을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430년간이나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유지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애굽으로 인도하셔서 고난 속에서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성장하게 하시는 큰 일이었습니다. 70명이 430년 만에 250여만의 큰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신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