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75]섣달 그믐, 까치설날 유감
섣달 그믐 까치설날, 내일이 음력 설이다. 과학적으로 2026년 붉은 말띠 해, 병오(丙午)년이 시작되는 날이다. 혹자는 2월 4일 입춘이 해(年)를 가른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을 기준으로 해야 할 듯하다. 아내는 새벽부터 설 준비에 바쁘다. 저녁부터 내일 아침 떡국까지 식탁을 차리는 것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다. 올해는 호주에서 둘째아들네가 와 처음으로 설을 같이 쇠기 때문이다. 이게 어디 귀찮은 일인가? 큰 기쁨인 것을. 큰아들네도 곧 닥칠 것이다. 떡살을 썰고 삶은 시금치도 짜주고 더덕도 다듬어주는 등 덩달아 나도 손을 돕는다.
이른바, 핵가족(소가족) 명절 지내기 풍경인데, 어쩐지 자꾸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다. 오늘 따라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와 돌아가신 지 7년이 된 어머니 생각에 울컥해진다. 십수년을 명절은 대가족만이 지내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어머니는 그 숱한 세월 7남매 뒷바라지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총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명절때마다 그저 고향에 달려가 부모와 형제들을 만나 정담 나눌 생각에 마음이 달음박질을 치지 않았던가. 이제는 다들 장성하여 분가를 하고 제 식구들끼리 따로 모여 명절을 쇨 수 밖에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것이 조금, 아니 많이 서글프다. 예전처럼 추억을 나누고 좋은 시간을 가질 일은 아예 영영 멀어진 셈이다.
올해 상수(上壽)를 맞은 아버지는 내일이 설날인 것을 알고나 계실까? 지난해부터 ‘단기 인지장애’로 순간순간 직전의 일들을 까막까막하신다. 인지장애가 치매이다. 허나 젊은 시절의 일들은 지금도 말씀만 꺼내면 왕성한 기억력을 자랑한다. 대단하시다. 올해 100세 생신날에는 어떻게 기쁘게 해드릴까? 그것이 문제이다. 행사를 아무리 요란하게 한들, 희로애락을 초월한 듯 이제는 어떠한 감흥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하기는, 총생들 알아보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해보면, 전국 도처에 무수하게 산재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막말로 현대판 고려장인 셈이다. 두 기관은 ‘이 시대 효자’에 다름 아니다. 요양원이 '장남'(큰 아들)이다. 여느 아들 딸들이 할 수 없는 효도를, 그들은 남의 부모인 어르신들을 케어하고 있다. 진정 고마운 일이다. 모시고 명절을 쇠고 싶어도, 고향에 집이 없으니 어디에서 모시랴. 또한 어느 며느리가 노부모를 모시고 명절을 쇠러 할 것인가. 고향에 의지할 집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라는, 내용도 모르는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명절만 되면 귀성열차 표 끊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고속버스의 교통체증은 또 얼마나 심했던가. 표 사는 게 전쟁이었다. 심지어 귀성인파에 깔려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부모가 계시는 고향에 가야만 했었다. 당시 교통부 출입기자들은 명절때마다 기차표 예약 민원으로 분주했다.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래이지만, 즐거운 추억처럼 그리움에도 잠긴다. 1963년 영국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어느 한국인과 대담 중에 “한국의 효사상은 인류를 위해 소중한 선물이며, 서구문명이 부닥칠 비극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면서 "한국이 현대화 과정에서 이 가치를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경계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이 효를 잘 지켜나간다면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 되고 코리아가 세계 으뜸국가가 될 것”이라 했다는데,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
섣달 그믐, 까치설날에 요양원에 고독하게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토인비의 한국인 칭찬과 불길한 예언이 문득 떠올랐다. 끼니끼니마다 “밥 먹어야제?”라며 칠십 된 자식의 식사를 걱정하던 아버지의 전화. 그게 성이 가셔('숭실럽다'는 전북지역 사투리) 퉁명스레 대답하곤 했는데, 오늘따라 전화 한 통 없으시니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된다. 자주 와도 걱정, 오지 않아도 걱정.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까? 그것이 궁금하다. 5백원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명절에 모시지 못한 것도, 면회하거나 외박시켜 드리지도 않는 불효를, 핵가족, 우리끼리라도 좋은 음식 들면서 즐거운 시간 갖는 것을 용서해 주소서.
부기: 우리가 모르거나 알고 있는 것,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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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 혼자서 죽는다
3.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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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디에서 죽을지 모른다
3.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 세상에 없는 게 3가지를 아시는가?
1. 정답이 없다
2. 비밀이 없다
3. 공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