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이글은 일본 농구 잡지 Dunk Shot 2007년 5월에 실린 내용을 번역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아이버슨과 스노우의 상황은 상당히 글과는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인 필라델피아의 내용이 중점이 되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빛과 어둠의 사이에 있던 AI에게는 명 지도자와 파트너가 필요했다.
지금 NBA에서 가장 뜨거운 듀오라면 덴버너게츠의 카멜로 앤소니와 알렌 아이버슨이다.
매시합마다 각각 30득점을 해줄 수 있는 콤비이지만, 아직 상승효과를 낳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필라델피아 식서스에 있을 때에도 아이버슨은 몇 명인가의 스타 선수와 함께 플레이했지만, 그 누구와도 공존하지 못했다. 키스 밴혼, 글렌 로빈슨, 크리스 웨버 등 모두 아이버슨의 부담을 경감시켜줄 득점력은 있었지만 볼을 독점하는 경향을 가진 아이버슨과의 플레이에서는 그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시합에서 30득점을 하고 싶어 하는 선수라면, 알렌과 함께 플레이 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팀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선수라면 그와 같은 선수는 오히려 제 역할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죠.”
이렇게 말하는 인물은 아이버슨과 6시즌 반에 걸쳐서 가드 콤비였던 에릭 스노우이다. 그를 결코 스타 선수라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NBA 굴지의 야생마 아이버슨을 최고로 만들어주었다.
죠지타운大에서 활약을 한 이후 아이버슨은 96년 드래프트에서 1위로 식서스에 입단했다. 포인트가드(이하 PG)로써 1위를 얻은 것은 79년도 매직 존슨 이후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버슨의 플레이 스타일은 전형적인 PG의 역할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플레이메이킹보다도 많은 득점을 올리는 데에 열중하였다.
신장은 183CM밖에 되지 않았지만, 천성적인 스피드와 민첩성,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으로 농구계에서는 치명적인 결점인 신장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처럼, 작은 신체의 아이버슨이 덩치 큰 선수들을 가지고 놀면서 득점을 올리는 모습에 팬들은 환성을 질렀다. 시즌 종반에는 5시합 연속 40득점 이상을 해내면서 루키 기록을 세웠다. 특히 마이클 조던과의 매치업에서는 크로스오버드리블로 조던을 제쳐 득점을 하는 모습에서 많은 팬들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평균 23.5 득점을 올려 신인왕으로 선정되는 등 루키시즌에서부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한 아이버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플레이
태도에서는 의문점이 붙여졌다. “코트 위에서는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겠다”는 그의 발언은 “베테랑 선수를 존경하지 않는다” 라는 취지로 보도되어져 심한 비난을 받았고 불쾌하고 건방진 녀석이라는 지우기 힘든 이미지가 붙어버렸다.
이 단계에서 아이버슨은 최고의 플레이어로 될 수도 혹은 파멸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갈림길 사이에 서있게 되었다. 이러한 그에게는 선수로써, 그리고 한 인격체로써의 성장을 이끌기 위해 고삐를 꽉 잡아줄 지도자가 필요 하였다.
이러한 타이밍에 절묘하게 헤드코치를 맡게 된 인물이 바로 명장 래리 브라운이었다. “내 코치인생에 있어서 그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던 선수는 없었다”라고 말 할 정도로 아이버슨을 높게 평하였던 브라운이었지만, 자기중심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하였다.
“너의 득점과 팀의 승패는 완전히 비례하지 않는다. 팀 메이트와 볼을 나누지 않으면 이기는 팀이 될 수 없어.”
브라운은 아이버슨을 타일렀고, 아이버슨은 이에 반발하면서도 따라해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플레이 할 수 없었던 아이버슨은 색채를 잃었고, 득점과 어시스트의 수가 줄었다. 결국 브라운은 아이버슨을 PG로써 키우는 것보다 탁월한 득점력을 살리는 것이 승리로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 이리하여 슈팅가드로 옮겨진 아이버슨의 후임으로 준비된 선수가 바로 스노우였다.
게임 운영에 철저한 스노우와 득점에 철저한 AI는 완벽한 콤비로 탄생하였다.
미시간 주립시대에는 정통파 PG로써 활약했었던 스노우였지만, 득점력의 부족이 장애가 되어 95년의 드래프트에서는 벅스에 2라운드 43위로 지명되는데에 그쳤다.
[어느 팀이라도 상관없다. NBA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기쁜일이니깐] 라면서 기뻐했지만, 드래프트 직후에 이적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는 게리 페이튼이 건재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출장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전환기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바로 3년차 시즌 중반에 이루어진 식서스로의 트레이드였다. 아이버슨의 교체 PG로써 어느 정도의 출장시간을 부여받았고, [게임 흐름에 따라 슛을 쏘는 경우도 있지만, 게임을 운영하고 오픈된 선수에게 패스 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그의 자세는 브라운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하였다.
98-99시즌에 스노우가 선발 PG로 정착하고, 플레이 메이킹의 중책으로부터 벗어난 아이버슨은 득점능력을 폭발시켰고, 평균 26.8득점으로 첫 득점왕이 되었다. [스노우는 내 스타일을 이해해주는 최고의 파트너이다. 나의 평균득점이 오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가지고 있다] 라며 아이버슨 역시 스노우라는 선수의 존재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아이버슨의 어시스트 역할만이 아닌, 리그 9위의 평균 2.08개의 스틸을 기록하는 등 스노우는 디펜스에서도 활약하였고, 이는 식서스의 8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98-99, 99-00 두 시즌 모두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버슨과 스노우의 컴비네이션은 4년차인 00-01시즌에는 더욱 예리해졌다. 평균 31.1점으로 아이버슨은 두 번째 득점왕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스틸 1위를 달성함으로써 조던 이후 처음으로 득점, 스틸 부문 타이틀을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공수양면의 뛰어난 활약이 평가받아져 당당히 MVP를 수상하였다.
[그는 훌륭한 팀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러한 발언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를 지도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아이버슨에게 최고의 칭찬을 전해준 브라운은 스노우에 대해서도 [스노우는 열심히 플레이하면서 디펜스도 뛰어나다. 매년 확실히 성장하고 있고, 이는 팀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버슨의 기세는 플레이오프에 들어가서도 멈추지 않았다. 먼저 1라운드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제압했다. 토론토 랩터스와의 컨퍼런스 준결승에서는 아이버슨이 빈스 카터와 치열한 득점 경쟁 속에서 승리를 얻었다. 밀워키 벅스와의 컨퍼런스 결승은 7차전까지 이어지는 혈전이었지만, 44점을 득점한 아이버슨의 활약으로 바라던 NBA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레이커스와의 결승을 앞두고 식서스에 대한 불리한 예상이 이어졌지만 아이버슨은 이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1차전에서 48점을 넣어 승리를 얻었다. 하지만 식서스에는 아이버슨 이외의 득점 옵션이 없었다. 시리즈를 통틀어 20득점 이상을 올린 것은 3차전의 디켐보 무톰보(23득점) 뿐이었고, 2차전에서 5차전까지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파이널 진출 후의 급락, 그리고 각각 새로운 곳으로 떠나게 된 콤비
결과적으로 이 파이널이 아이버슨과 스노우 콤비의 최후의 영광스러운 무대가 되었다.
01-02시즌도 아이버슨은 리그 1위의 평균 31.4 득점을 기록했지만, FG성공률이 30%대로 전락하였고, 연습태도도 이전과 같이 대충대충 하는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다 큰 어른이라면 연습에 참가하거나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터이다] 라며 브라운이 힐책하면 [연습을 내팽겨 둔 건 아니다. 그에 맞는 이유가 있으니깐 쉬고 있을 뿐이다] 라며 아이버슨이 반박하는 등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셀틱스를 상대로 1라운드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아이버슨의 수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프시즌에는 부부 사이의 트러블이 늘어났고, 협박 등 10건의 용의로 체포되고 말았다. 최악의 경우 징역 54년을 부여받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무죄 석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어수선한 영향으로 02-03 시즌에는 완벽히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말았다.
스노우 쪽은 자기 최다득점인 12.9점을 올려 유일한 개인 수상인 올 디펜시브 2nd팀에 선출되었지만, 에이스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서는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시즌 종료 후에 브라운은 감독직 사임을 발표하였고, 아이버슨과의 우여곡절로 가득했던 6년간에 종지부를 찍었다.
[브라운은 세계에서 최고의 코치이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그의 덕분이다. 그가 없어지면 쓸쓸해질 것 같다] 라는 아이버슨의 담화는 결코 립서비스적인 것은 성격은 아닐 것이다.
브라운의 사퇴 이후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브라운의 감시의 눈으로부터 떨어진 아이버슨은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플레이가 눈에 띄게 되었다.
04-05 시즌에는 스노우가 팀의 구상에서 제외되어 트레이드로 캐벌리어스로 떠나갔다. 그 후의 2시즌, 아이버슨의 득점력은 평균 30점을 넘었고 숫자상으로는 최고의 상태로 보여 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책임이 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그를 컨트롤할 수 있는 코치나 선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이버슨이 개인 기술로만 플레이를 펼쳐서 팀플레이를 저해한다고 느꼈을 때, 나는 그것을 그에게 지적했다. 거꾸로 내가 형편없는 플레이를 한다면, 그 역시 그리 하였다. 서로 피차일반이니깐 문제가 일어날 일이 없었다]
스노우가 말하는 것과 같은 신뢰관계를 아이버슨은 다른 선수와 쌓지 못한 채, 필라델피아를 뒤로 한 채 떠나갔다.
캐벌리어스로 이적한 스노우도 노쇠화가 진행되어 이전과 같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선수로써의 최전성기는 두 사람 모두 지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그들에게 해내야 할 목표가 있다. 아이버슨은 앤소니와 함께 너게츠를, 그리고 스노우는 르브론 제임스를 서포트해서 캐벌리어스를 최고로 이끄는 것이다.
일찍이 필라델피아 시절에 섰던 NBA 파이널 무대를 이번에는 동, 서 컨퍼런스의 대표로써 올라갈 그 날까지 두 사람의 도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첫댓글 스노우와 아이버슨 정말 잘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잘만했다면 조던과 피펜처럼 최고의 호흡을 가진 ~ 팀을 우승으로 이끌수 있는 조합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아이버슨은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스타일상 1옵션이 아니면 활약하기 힘들죠 ~
슛도 던지면서 영점을 잡는 스타일이라서 짧은 출전시간에는 스탯이 좋을리 없구요~ 과연그런팀을 구할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 꼭 그런팀을 만나서 제2의 전성기로 우리가 알던 그 모습으로 활약하다가 은퇴했으면 합니다 ~
스노우도 아이버슨과 좋은 콤비였지만 맥키의 존재도 컸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두 선수간의 호흡은 아이버슨 - 맥키가 더 잘 맞았던 것 같네요. 아이버슨의 최고 조력자로 전 단연 애런 맥키를 꼽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2001년 파이널 경기를 봤는데 맥키도 상당히 잘하더군요 ㅎㅎ 사실 여기선 안나오지만 아이버슨 무톰보 콤비도 아주 좋았구요 ~ 한마디로 그당시 필라델피아는 득점욕심 보다 궂은일을 많이 해줄수 있는 선수들이 많았죠~
저는 사실 당시의 파이널에서 무톰보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무톰보가 샥을 정~~~~~~~~~~~~~~~말 힘들게 막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한게, 응원을 안할 수가 없더라구요.
사실 당시의 선수들 하나하나가 모두다 너무나도 아이버슨에게는 최고의 파트너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SG 수비 하는 퓨어PG 스노우, PG~SF까지 나와주는 슈퍼 벤치 맥키, 그리고 수비왕 무톰보를 비롯해서 타이론 힐, 맷 가이어, 조지 린치, 비록 트레이드 되었지만 블락왕 라틀리프까지 말이죠.
01년에 50게임밖에 안 나온 스노우가 아이버슨과 듀오였다거나 대단한 조력자였다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그가 안 나온 32게임에서도 필라델피아 승률은 조금도 안 떨어졌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