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 |||
수퍼리그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초창기 한국프로축구는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전국에 축구 열풍을 몰고왔다. 팀수 5개에, 형식적으로 연고지를 정하긴 했지만 홈 앤드 어웨이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경기도 매주말 전국 각 도시를 돌아다니며 유랑극단식으로 열렸다. 그러나 새로운 구경거리를 만난 각 도시의 축구팬들은 운동장을 꽉꽉 채웠다. 마땅한 오락이 없던 지방 소도시로 갈수록 그 열기는 더 뜨거웠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퍼리그 홍보를 도맡은 KBS가 주야장천 광고와 중계를 해댄 영향도 컸다. 포니나 엑셀같은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걸기도 하고, 칼라 TV나 오토바이, 심지어 자전거도 추첨해서 대량으로 관중들에게 선물했다. 코흘리개 어린아이부터 축구 규칙도 잘 모르는 할머니들까지 떠들썩한 분위기에 이끌려 운동장을 찾았다. 더구나 <00시 시민의 날> 같은 때에 맞춰 흔히 그 도시에서 프로축구를 했기 때문에 경기는 언제나 동네 장터같은 분위기에서 열렸다. 한 도시에 모여서 토요일과 일요일 경기를 치르다 보니 팀마다 이틀 연속 경기를 치르고, 한 경기장에서 하루에 두, 세 경기가 잇따라 열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으나 그때는 그걸 별로 이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선풍적 인기는 요즘의 K리그보다 훨씬 더 높았다. 사진은 1984년 5월 6일 화창한 날씨에 청주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퍼리그 할렐루야와 유공의 경기 모습이다. 유니폼 가슴에 십자가가 그려진 할렐루야는 당시 최강의 프로팀이었다. 왼쪽 코너부근에서,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신현호가 오른발 크로스를 올리자 달려들던 할렐루야의 장신 스트라이커 오석재가 방아찧기 하듯이 멋진 헤딩골을 성공시킨다. 주먹을 불끈쥔채 쾌재를 부르며 뛰어나오는 오석재의 오른쪽으로 할렐루야의 주장 박성화가 미소를 머금고 달려간다. 그 아래에 누워 있는 선수는 헤딩 다툼을 하다 넘어진 유공의 신문선. 실점 장면을 안타깝게 쳐다보는 더벅머리 신문선의 일그러진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 오른쪽에 망연자실 서있는 선수가 유공의 백남수 선수고, 바닥에 쓰러진 골키퍼는 지금은 고인이 된 오연교다. 잔디 관리가 잘안됐던 그 시절엔 언제나 그랬듯이 선수들이 엉켜지나간 골문 앞에는 뽀얀 흙먼지가 날렸다. 홈팀, 어웨이팀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골이 터지는 것은 무조건 신나는 일이었으므로, 햇볕 가리개 종이모자를 쓴 청주의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낸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먹고 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운동장 너머 광고판의 간장약 광고가 이채롭다. 사진 : 월간축구 베스트 일레븐 |
========================================================================
출처:축협 사이트
첫댓글 우와~ 주먹 쥔 아저씨는 김도훈 아저씨? 그리고 넘어진 수비수는 김씨? 그 뒤에는 폴리스 스토리의 성룡?! 우와~~
어 ~ 저기 뒤에 할렐루야축구단 ,, 김도룡아저씨가 하고있는ㄷ ㅔ ... 김도룡아저씨 아시는분 ? 경남진주시 /./ 묘기합니다 ~
관중 진짜많ㅇ네
저 관중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저런 마케팅이 필요해 KBS
뒤에 술독엔 헬민의 압박..ㅋ
관중 많다!!!!!!ㅋㅋㅋ
저기 뒤쪽에 키큰 성룡도 축구한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관중이 지금보다더많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