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2년새 4배로… 광역 7곳은 진압수조 없다
전기차 보급 늘며 화재도 급증
열폭주 현상에 이동식 침수조 필수
전국 소방서 235곳에 44개만 보유
감전위험 막는 절연장비도 부족
“경북 지역에는 이동식 침수조가 한 개도 없어서 급하게 수소문하여 인근 한국도로공사 본사에 있다는 얘길 듣고 급하게 빌려왔습니다.”
지난해 12월 경북 김천시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진압에 투입됐던 소방관은 3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전기차 화재도 급증세지만 현장에선 화재 진압에 필요한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광역지자체 7곳은 이동식 침수조 없어”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 1건에 불과하던 전기차 화재는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4건 등으로 매년 폭증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의 특징은 일반 차량에 비해 훨씬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전기차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서울 강북소방서 관계자는 “총 82명이 출동했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오들오들 떨며 8시간 동안 진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전기차 화재 진압에는 시간이 10배 더 걸린다’는 말이 통용된다. 효율적으로 진압하지 못할 경우 소방력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효율적 진압을 위해 가장 필요한 수단이 이동식 침수조다. 전기차는 배터리 온도가 순간 1000도까지 오르는 열폭주 현상 때문에 아무리 물을 뿌려도 불이 되살아난다. 이 때문에 조립식 벽을 설치하고 오랜 시간 차량을 물에 담그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입수한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소방서 235곳에 지급된 이동식 침수조는 44개에 불과하다. 이동식 침수조를 보유하지 못한 광역 지방자치단체도 17곳 중 7곳(인천 광주 대전 충북 전북 경북 경남)에 달한다. 개당 1000만∼600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보니 보급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한강 북쪽에는 종로 동대문 성북소방서와 특수구조단이 이동식 침수조를 1개씩 보유하고 있고, 소방학교에서 교육용 2개를 보유 중이다. 반면 한강 남쪽에는 송파소방서가 2개를 보유한 게 전부여서 전기차 화재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테슬라 서비스센터에 주차돼 있던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출동했던 성동소방서 관계자는 “소방서당 1개의 수조가 확보된다면 전기차 화재 대응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 전문가 “충분한 침수조 확보 서둘러야”
이동식 침수조 외에도 감전 위험을 막는 절연장갑과 절연신발 등도 현장에 충분히 보급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은 “절연 장비가 부족해 전기차 화재를 진압할 때 일반 화재 장갑을 사용한다”며 “감전 등 2차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용 장비 보급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버스와 전기차의 비율이 높아지고 이로 인한 화재가 급증하는 만큼 화재 진압 장비를 선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도 ”지금으로선 침수조를 이용하는 게 전기차 화재 진압에 가장 효과적”이라며 “충분한 침수조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소방청은 동아일보의 질의에 “일선 소방관들의 고충을 경청하고 있다”며 “연내 이동식 침수조 72개를 추가 보급해 광역자치단체 17곳에 모두 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문수 기자, 최미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