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애도의 시간
그곳에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커다란 사랑에 둘러싸인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우리는 정말 죽음
또는 죽음을 선고 받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감히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죽음을 앞둔 이들
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언젠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불현듯 죽음을 당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책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어떤 감정의 변화를 느낄까?
정신과 의사이자 <인생수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분도 나처럼 죽어가는 환자들을
오랫동안 돌봐온 임상의 대가이다.
엘리자베스는 불치병을
진단받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심리상태를
'퀴블러 로스 5단계 이론'
으로 만들어 제시했다
1단계는 '부정'의 단계이다.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노출되어
"6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는
살 수 없다"라는 선고를 받으면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그 사실을 부정한다고 한다.
"아니야. 아마
진단이 잘못되었을 거야 "
만약 작은 병원에서
그런 진단을 받았다면 대도시의
큰 대형병원을 찾기도 한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봤지만 역시나
똑같은 병명을 진단받게 된다면,
그 환자는 빠른 속도로 분노와
원망의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2단계는 '분노'의 단계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사회봉사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조상님도 무심하시지.
부처님도 안 계신가 봐.
왜 나에게 이런 질병을 주셔서
이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부처님에게, 조상님에게. 옆 사람
에게. 때로는 자신에게 분노한다.
이때는 화를 잘 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주변 환경과 사람, 상황등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커져간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생각, 그러니까 삶에
대한 강한 애착 같은 것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살릴수 있을까.
어디로 가면 살 수 있을까...
허둥대며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타협을 하기 시작한다
3단계는 타협'의 단계이다.
부처님이나 하느님, 조상님과
같은 존재를 대상으로
타협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가 이만큼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습니다"
"제가 낫고 나면
이렇게 좋은 일을 하겠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고통과 함께 동행하겠습니다"
"저를 살려주시면 사람들을 용서하고,
저도 용서를 빌겠습니다" 하고 말이다.
이 단계가 되면 정말 절실하고
간절해진다. 평소보다 더
활동적이고 활기차 보일 수도 있다
4단계는 '우울'의 단계이다.
타협의 단계가 지나면
극심한 우울에 시달리게 된다.
타협할 힘마저 잃고.자신의
몸과 사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올
때 절망과 좌절. 우울에 빠진다.
사람들은 그 안에 머물면서 자신의
내면에 갇히고. 마지막 남은
소중한 시간을 다 놓치기도 한다.
이때는 무기력해하며 극도의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5단계는 '수용'의 단계이다.
내 가족과 부모 형제를
이 세상에 두고 떠나야 하며.
이 모습 그대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게 된다.
분노하거나 타협하지 않으며
우울해하지 않는다. 그저
죽음을 인정하는 단계이다.
사실 마지막 삶의 지점에서 이 단계
까지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단계를 경험하는 분들은 열심히
수행한 덕에 내적인 힘이 있는 경우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현실앞에
죽음을 인정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 분들은 어떤 어려운 일도
여여하게 수용해낸다. 다음생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기도 한다
부정, 부노. 타협, 우울, 수용과
같은 5단계를 다 겪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분노하다가 바로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도 하고 처음부터
타협을 시도하다가 분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5단계가
딱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사실 죽음이란
몇 가지로 나누어서 보기보단
그저 이 모든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이렇게 죽음을 앞두고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으며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일단 환자에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간혹
의료진이나 환자의 가족 중에는
환자에게 말기진단이나
삶이 얼마 남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진정
환자를 위하는 길이 아니다.
환자를 정말 사랑하고 아낀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그가 죽음을
준비하고 생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도반들과
당신의 삶이 어땠는지 그동안 무엇이
미안하고 또 무엇이 감사했는지,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환자가 느끼는
감정들을 마음으로 나누며
진심으로 슬픔을 애도해야 한다.
환자들은 분노와 우울을 넘어서
수용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할까?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우리도 언젠가 겪을 일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
이면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죽음에 이르는 것은 개인의 일이지만,
누군가가 떠나고 난 이후에
감당해내야 하는 것들은 남겨진
이들의 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타인의 죽음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삶과 죽음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을
준비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삶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는 것,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축복하고,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은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 모두에게
아름답고 성스러운 일이다.
카페 게시글
맑은 자유게시판
축복과 애도의 시간---능행스님
고구마감자
추천 0
조회 69
26.07.19 09:54
댓글 4
다음검색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