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신의 결정
민서우
- 27.
금기에 대한 대화를 끝으로 방 안에는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단지 대화만 없을 뿐, 7명 모두 머릿속으로 그 가짜를 어떻게 꼬드겨서 밖으로 꺼내볼까, 그 생각뿐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오스카는 볼에 바람을 넣으며 투덜거렸다.
“뾰족한 수가 안 떠올라요.”
“스플린터, 여기는 조용해요?”
“아까 말했듯이 치세이는 소문을 쉽게 안 낼 거야. 그 점은 믿어도 돼.”
다이아의 물음은 중복된 물음이지만 스플린터는 덤덤히 대답했다. 3억이라는 거액의 해적인데도, 몰락했는데도 귀족이라는 품위는 잃지 않았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납치범임과 동시에 카인으로 위장한 가짜는 그가 아니라는 것을. 무엇보다 스플린터는 이번 사건을 도와주겠다며, 그들을 불러들였지 않은가.
다시 3분 후. 담배를 피던 칼리프는 꽁초의 불을 끄며 스플린터를 바라봤다.
“스플린터, 1억 이상의 해적단은 아니겠죠?”
“1억 이상이면 상류에서 놀지, 이렇게 아래로는 안 내려와. 너희들 중에 상류에 가본 사람은 없지?”
“나 있다.”
손을 살짝 들었다가 내리는 사람은 신이었다. 스플린터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하긴. 용제 전하는 비밀의 해역에 본국이 있으시죠. 아무튼 칼리프, 5천만 이하로만 생각해봐.”
“흠-! 그렇게 많이 없어요. 제가 알기로 포워드 대위가 5년 전에 잠시 본부를 나와, 항해를 하시면서 해적 소탕을 하셨거든요. 더군다나 대위의 아들이라는 사람까지, 배타고 항해 나섰다는 소식이 신문을 탔으니, 다들 시선 피하느라 바쁘겠죠.”
“그럼 떠오르는 해적단은 있어?”
“한 10개 정도?”
먼저 물었던 치프는 마시던 오렌지 주스를 뿜어낼 뻔 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다.
“그게 작은 거야?”
“로아스계는 넓다네, 친구. 칼리프가 10개 떠올랐으면 작은 거야.”
스플린터가 대신한 답변에 치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움찔. 신의 긴 귀가 쫑긋 움직였다. 무언가를 느낀 듯, 신은 빛에 휩싸인 채 열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들 눈만 껌뻑일 따름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신이… 창문을 통해 나간 건가?
스플린터가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향하자, 카인 일행도 급히 뒤를 이었다.
“!”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섬 항구 쪽에서는 약 10마리에 달하는 수의 용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 연보라색의 비늘을 가진 신이 얼핏 보였다. 거리가 꽤 돼서 대화는 일체 들리지 않았다.
“신 전하의 부하인 모양인데요?”
“응, 용족이에요.”
잠시 후 그들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갔고, 신 역시 여관 쪽으로 돌아오면서 빛 속에 휩싸였다. 창문을 통해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 신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장여자, 들켰어. 확실하게. 그러니 어제 다이아와 한 방에 자는데도 아무런 말을 안 했겠지. 그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부터 알았던 모양인데. 목욕탕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농담이라 여기면 되겠군. 어쩌지? 들통 난 마당에 계속 변장을 유지하는 것도 우습지만…….
꼬르륵.
각자 작전을 생각하느라 바쁘던 카인 일행의 시선과, 스플린터의 시선이 일제히 신의 배 쪽으로 움직였다. 체력 소모가 심한 변신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배고픈 것을 들켜버렸다. 얼굴이 홍당무 저리 가라 식으로 붉어진 신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케이크를 대령하도록.”
“…….”
카인과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허무하다는 표정 속에 묻혔다.
“케이크 천천히 먹읍시다, 신 전하. 지금은 그 놈들을 빼내는 게 더 급해.”
치프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담배 꺼내 입에 물던 칼리프는 생각에 곰곰이 잠겼다.
꼭 빼내야 하는 건가? 빼지 않고는 방법이 없나?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 말이지. 음? 공주? 공주, 공주라…….
화려한 칼리프의 치장을 멍하니 보고 있던 스플린터를 향해, 시선을 돌린 칼리프가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스플린터, 크리스 공주 본 적 있어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신문에 난 기사로 공주 얼굴 본 적은 있어. 얼마 전이 24번째 생일인데 화려하게 치룬 모양이야. 근데 갑자기 공주는 왜?”
“생김새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줘요. 난 잠깐 배에 다녀올게요.”
“응?”
가짜 해적단 빼내는 생각에 잠겨, 칼리프와 스플린터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몰랐다. 일행이 고개를 돌려 칼리프를 봤을 때 그는 이미 방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카인을 제외한 모두는 눈을 껌벅이며 머리 한 쪽을 칼리프에게 할애했다.
어딜 간 거지?
“케이크 사러 갔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절대적으로. 신으로서는 심각하다 할 수 있었다. 배에 갔던 칼리프가 챙겨온 것은 스케치북과 필통,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가 든 가방이 두 개였다. 원인불명의 가방을 제외하면 어린이용 미술도구다. 칼리프의 취미와 이것저것 생각해보던 카인과 치프가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알았다.”
케이크가 없어 볼에 바람을 넣은 신을 제외한 모두가 두 의형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카인과 치프는 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칼리프는 슬쩍 웃으며 필통을 열어 연필을 잡았다. 그의 준비가 끝난 걸 본 스플린터는 이내 크리스 공주에 대해 상세하게 읊어댔다. 유심히 칼리프의 스케치를 보던 일행은 얼굴에 놀람과, 황당함 뒤섞인 표정을 떠올리며 다이아를 바라보았다.
“다, 다이아 마마?”
“네?”
다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칼리프는 입의 담배를 손으로 옮기고 말했다.
“머리 스타일이 다이아 마마를 너무 닮으셨는데요?”
“말도 안 돼! 나 미용실 머리 아니란 말이에요! 쌍둥이인 언니도 내 머리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놀랍다는 거죠.
노란 색에 머리 끝자락이 돌돌돌 말린 건 영락없는 다이아다. 다이아는 확인차 칼리프의 스케치를 보다 입을 쩍 벌렸다.
“말도 안 돼!”
경악에 찬 그녀의 얼굴을 보던 카인과 치프, 그리고 칼리프와 스플린터가 동시에 입을 모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무슨 얘기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오스카만이 예외였다. 스케치를 유심히 보던 치프가 씩 웃으며 물었다.
“칼리프, 자신 있지?”
“나한테 맡겨. 미용실 뺨 칠 정도로 해주지.”
칼리프의 입가에 미소가 왠지 두렵게 느껴지는 다이아와 오스카, 그리고 신이었다. 오스카가 대표로 물었다.
“칼리프 형, 뭐하려고요?”
“가만 있어봐. 다이아 마마, 눈 감고 가만히 계셔야 해요.”
팔소매를 걷어붙인 칼리프는 가방 하나를 열어서, 안의 화장품을 꺼내어 다이아의 얼굴을 치장하기 시작했다. 적색 머리카락을 끌어당겨 가만히 보던 카인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나도 염색할까?”
치프의 반발이 곧장 쏟아졌다.
“그 소식 신문에 나면 첫 번째, 너희 어머니 쓰러지실 테고, 두 번째, 포워드 대위 쓰러지시고, 두 쌍둥이 남매는 놀랄 걸로 끝날 테고. 네 번째로 해적단은 더 날뛰게 되겠지.”
“더 날뛸 거라고?”
“응. 내 생각은 그래.”
흠-.
카인의 적색 머리카락은 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순수한 색이다. 호위무사라서 염색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그다. 헌데 이번 가짜 사건을 계기로 생각이 ‘살짝 뒤집어지려고’ 했다. 다이아의 화장을 지켜보던 스플린터가 운을 뗐다.
“머리카락 색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움직일 수 없는 칼리프와 다이아를 제외한 모두의 눈동자가 재차 움직였다.
“자신의 순수 머리색과, 염색해서 덮이고 새로 나는 머리색. 이런 건 차이가 크겠지?”
“!”
그렇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아. 이번 작전에 난 빠지는 게 낫겠지?”
다이아의 화장이 스케치의 모습과 닮아가는 것을 보며, 뒤늦게 알아차린 오스카가 카인의 물음에 대신 되묻는다.
“당연히 그게 도와주는 거 아니겠어요?”
카인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칼리프가 해주는 화장이 끝나고, 그녀가 산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대로 작전 시작이다. 케이크에 대한 생각이 조금 꺾인 신이 물었다.
“스플린터, 같이 갈 텐가?”
“가도 되겠어? 솔직히 난 가고 싶거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작전 상당히 재미있어 보이거든.”
이로써 카인은 남고 스플린터가 대신 동행하게 됐다. 그런데 신이 초를 쳤다.
“나도 남겠다.”
웬일이지?
“카인한테 확인할 게 있다.”
나한테?
30분 뒤 다이아의 완벽한 변장이 끝났다. 카인과 신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여관을 나와 항구로 향했다. 방에 둘이 남자 신이 입을 열었다.
“아까 우리 용족 왔을 때 살짝 들은 게 있다.”
“?”
“인간이라는 종족 중에서는 기의 흐름이나 체형을 보고,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이 있는 모양이더군.”
“기의 훈련을 지겹도록 하게 되면.”
기의 훈련이 한계점을 넘으면 <전음(轉音)> 이라는 것도 쓸 수 있게 되는데, 카인과 치프는 아직 그 경지까지 이르지는 못 했다.
“그럼 너도 가능하다는 거군.”
“…….”
신의 말에 카인은 잠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돌려 말한 거지만 카인이 그걸 이해하지 못 할 정도의 바보가 아니다. 나 남장여자다, 너 그걸 알고 있지 않느냐. 하는 거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역시 그랬군. 그럼 치프는?”
“칼리프도 알고 있어. 오스카와 다이아는 정말 모르고 있고. 왜, 이제 와서 변장 풀고 싶어?”
“다 아는데 계속 이러는 게 바보 같기도 하고.”
신은 목소리를 풀지 않았다. 이미 들켰어도 적응 될 대로 된 목소리다.
“변장은 왜 하게 됐어?”
“용제 후계자로 승낙된 순간부터. 아버지가 용족이고 어머니가 인간이지만, 그런 게 이유가 된 것 같다. 용족 중에 혼혈은 내가 최초거든. 여자 용제는 없거든.”
“그렇다 해도 네 성별까지 바뀌지 않잖아. 남장을 한다 해도 그게 전부 아냐?”
카인의 말에 신은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며 반발하듯 물었다.
“그렇다 해도 이제 와서 변장을 푸는 건 어색하지 않을까?”
“마마께서 좋아하실 걸? 겉으로 말을 안 한다 뿐이지, 속으로 외로움 많이 타시거든. 언니도 없는 마당에 신이라도 있어준다면 마마, 감정적으로 많이 안정되실 거야. 알고 있겠지만, 나한테 화나 있거든. 그 때문이라도 더욱 더.”
길고 긴 카인의 말에 신은 살짝 웃었다. 남장여자, 풀 준비를 하는 옅은 여자로서의 미소였다.
Ace.Star.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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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목을 보니 현재 개봉중인 영화가 문득 생각나는….^^;;
아~ 그거~
서우누나 부스터?
^^;; 응, 달고 있는 거 이제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