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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교수와 함께한 봄날의 도자기. 탐매, 선현유적답사
고려다완문화제추진위원회(위원장 최정경)는 20~21일 사천시 사남면 화전리 구룡요에서 '2010 고려다완 문화축제'를 개최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구룡요 김남진 작가(토승)가 지은 '천년의 혼 고려다완 그 뿌리를 밝힌다' 개정증보판 출판기념회를 겸해 열린다. 행사 첫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식전행사는 임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 도공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 살풀이로 이어졌다.
토승 김남진(金南珍)씨는 1960년 사천군 사남면에서 출생해 학창시절 4-H운동, 20대에 향토사 연구를 하면서 고향에서 농민운동에 앞장서 왔다. 지역 신문사를 하며 사천 구룡 일대에서 발견된 옛 가마터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고려다완 실체 연구 및 관련 역사 규명을 시작했다.이후 일본을 오가며 고려다완의 실체 연구와 함께 가야비파구룡요를 개요해 현재 전통 방식으로 실험과 연구를 하면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굽고 있다.
바다와 바로 인접된 곳 삼천포항. 그런 이점으로 형성된 이곳 어시장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행락객들의 발길 주체할 수 없으니, 이곳은 날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맛도 좋고 횟감도 저렴하니, 한번 왔던 관광객들도 두 번 발길 마다할 이유없지예.” 그랬다. 바로 인접한 바다는 싱싱한 횟감을 조달하는데 큰 장점이 됐고, 산지직거래라 그 값 또한 상상외로 저렴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곳 어시장을 어시장답게 돋우는 것은 바로 어시장 바로 옆 바다가에 갈매기가 나는 풍경이다.갈매기 소리 들어가며, 싱싱한 횟감을 즉석에서 먹는다는 것. 미식가들에게는 황홀 그 자체다.
경남 지리산 자락 산청에는 유명한 매화나무 3그루가 있다. 정당매, 남명매, 원정매이다. 정당매는 벼슬이 정당문학에까지 오른 강회백이라는 분이 심은 매화나무로 단속사지터 석탑 뒷편에 있고,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산천재 경내에심었다는 남명매 그리고 남사마을 하씨 고가에 원정공이 심었다는 원정매이다. 당일 정당매와 남명매를 탐매(探梅)하였다. 원정매는 고사하였다는 이야기와 시간 관계(일몰)상 차일로 미루었다.
산천재(山天齋) 산천재(山天齋)는 산청군 시천면 사리마을에 있으며 1561년(명종 16)에 건립 되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구조로 되었다. 산천재(山天齋)의 ‘산천(山天)’이란 이름은 주역 대축괘(周易 大畜卦)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축괘(大畜卦)는 상간하건(上艮下乾)으로 이루어졌는데, 간(艮)은 산(山)이요, 건(乾)은 천(天)이니 산천(山天)은 바로 간건(艮乾)의 형명(形名)인 것이다. (교육후생 : 敎育後生), (보은천지 : 報恩天地) 이제까지 배운 지식과 인격(人格)을 실제로 행하며, 더욱 그 덕(德)을 축적 일생(一生)을 하여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해서 일어난 의병장(義兵將)들이 여기서 가르친 인재(人材) 속에서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덕계(德溪) 오건(吳建), 한강(寒岡) 정구(鄭逑), 모계(茅溪) 김우용(金宇容),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등 수많은 제자들이 나왔으므로 커다란 교훈(敎訓)을 남겨 준다. 유물로는 고서(古書) 다수와 남명집(南冥集) 목판, 약 100매가 보존되어 있으며, 기와 중에는 1576년 4월의 성명을 기록한 것도 남아 있다.
산천재(山川齋) 주련(柱聯) 德山卜居 : 南冥 春山底處無芳草 춘산저처무방초 只愛天王近帝居 지애천왕근제거 白手歸來何物食 백수귀래하물식 銀河十里喫有餘 은하십리끽유여 덕산에 살 곳을 잡고서 봄 산 어느 곳엔들 芳草가 없으랴만 다만 천왕봉이 하늘나라에 가까운 것이 부러워 찾아 왔네 늙어 빈손으로 돌아와서 무엇을 먹고살거나? 맑은 물 십리 흐르니 먹고도 남으리.
南冥의 神明舍圖 舍는 집이니까 집 모양으로 어떤 사상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신명사도일 것인데 평면도에 철학사상을 정리하였다. 성곽 울타리로 쳐진 안에 태일군이 거처하는 신명사란 집이 있고 3곳에 문이 있는데 목개, 이개, 구개 하여 눈, 귀, 입의 세문을 달았다. 해와 달이 가운데 경을 두고 왕도와 천덕을 나누었다, 태일군은 마음을 의인화하여 임금으로 삼았다는 뜻이고 명당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올바른 마음의 바탕을 나타낸다. 안에는 총재가 있고 밖에는 백규가 있다. 이 그림은 마음의 작용을 마치 임금이 신하를 거느리고 정사를 보는 이치에 비유하여 도식화 하였다. 밖에는 금지하는 여러 가지 깃발이 서있다. 옛날 선비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때 묻지 않은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자 한시라도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하늘로부터 받은 깨끗한 마음을 혹시 더럽히지 않았나 싶어 항상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이를 자기성찰(自己省察)이라고 한다. 일찍이 공자께서도 사람이 하늘에서 받은 그대로의 밝은 마음을 더욱 밝히는 것을 훌륭한 사람의 학문 태도라고 하였다. 그래서 옛날의 선비들은 거울에 먼지가 묻지 않도록 매일 닦아야 하듯이 자신의 마음도 사사로운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매일 되돌아보았던 것이다. 남명선생도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1531년 친구인 이준경(李浚慶)이 ‘심경(心經)’을 보내오자, 남명은 친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마음 다스리는 공부에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마음은 죽고 몸뚱어리만 걸어 다닌다면 짐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이군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책을 저버린 것이며, 이 책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을 저버린 것이다. ‘내 마음을 저버리면 마음이 죽은 것이니’슬프기로는 마음이 죽은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했다.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짐승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참고로 남명에게 심경을 선물한 이준경(1499-1572)은 남명이 어려서 서울 동부 연화방에 살 때 옆집에 살았던 친구로, 훗날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남명의 마음 다스리는 공부는 그의 학문 요체인 ‘경의지학(敬義之學)’을 통해 알 수 있다. 남명의 경의지학은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을 곧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곧 마음을 곧게 하는 것은 경(敬)을 통해서 가능하며, 마음 바깥의 일을 반듯하게 처리하는 것은 의(義)를 기준으로 해야 된다는 말이다. 남명은 경과 의를 마치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과 같아서, 영원토록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만큼 강조했다. 남명은 경과 의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여겨, 그림으로까지 그려 나타내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명사도(神明舍圖)이다. 신명사도는 마음의 안과 밖을 잘 다스려 지극한 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남명이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마음의 안과 밖을 잘 다스리기 위해선 경과 의로서 해야 하며, 그렇게 되었을 때 지극히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명(神明)은 사람의 마음이고 사(舍)는 집을 뜻한다. 곧 ‘신명사’는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집이다. 그러니까 신명사도는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집을 그린 그림이다. 신명사도에서 성곽처럼 둘러쳐진 안쪽이 사람의 마음이고, 바깥쪽은 마음 바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신체적 외부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남명이 인간의 마음과 마음 바깥의 경계를 굳은 성곽으로 표시한 것은, 신체적 외부로부터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사사로운 욕심(私慾)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된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마음속으로 사사로운 욕심이 들어오는 것은 전쟁에서 적이 쳐들어오는 것과 같다고 보고, 이를 굳건히 지켜야 된다는 결연한 의지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남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마치 옛날 초나라 항우가 밥 해먹던 솥도 깨부수고 주둔하던 막사도 불사르고 타고 왔던 배도 불사른 뒤 사흘 먹을 식량만 가지고 사졸들에게 죽지 않고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의지를 보여준 것처럼 사생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좀더 자세히 보면, 성곽 안에 ‘태일군(太一君)’이 중앙에 있는데, 마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순수한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안으로 경(敬)을 통해 자신을 함양해 정성스런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천덕(天德)이고, 밖으로 의를 통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밝게 분별하는 것이 왕도(王道)이다. 천덕과 왕도는 경을 그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태일군 바로 앞에 경을, 그리고 좌우에 왕도와 천덕을 배치해 놓았다. 경앞에 ‘총재’라고 표시를 해 두었는데 총재는 백관의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경이 마음을 다스리는데 으뜸이 된다는 뜻이다. 총재라는 글자 앞에 ‘성성(惺惺)’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성은 혼미하지 않고 깨어있다는 뜻으로, 총재가 한시라도 흐릿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써 놓은 것이다. 일(日)과 월(月)은 마음의 해와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늘의 도를 통하면 마음은 환하게 밝아 그 빛이 만물을 깨뚫어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성곽 안의 ‘국군사사직(國君死社稷)’은 임금이 국난을 당했을 때 사직을 위해 죽을 각오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마음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잠시라도 경(敬)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타냈다. 성곽의 이관(耳關) 목관(目關) 구관(口關)은 인간의 신체에 있는 9가지 구멍 중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마음을 어지럽히는 신체 기관이다. 마음 안과 밖의 경계인 셈이다. 이들을 굳게 단속하지 않으면, 바깥의 사특함이 마음으로 들어오게 된다. 구관(口關)밑에 충신(忠信)과 수사(修辭)를 표시한 것은 말로써 마음을 드러낼 때는 충과 신으로써 그 말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곽 밖 백규(百揆)·치찰(致察)의 백규는 내정을 살피는 관직이며, 치찰은 모든 만물의 출입을 살핀다는 뜻이다. 즉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의 출입을 하나하나 살펴, 통제하며, 그 생각의 움직임을 성찰한다는 의미이다. 그 옆 대사구(大司寇)·극치(克治)의 뜻은, 대사구는 병권을 막는 관리이며, 극치는 사람의 사욕이 일어나는 것을 용기 있게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백규가 기미를 살펴 치찰을 하고 대사구가 사욕을 극치해서 도달하는 곳이 바로 지어지선(止於至善)의 경지이다. 즉 지극한 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결국 남명의 신명사도는 남명의 학문 요체인 경의(敬義)를 기반으로 해 마음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사사로운 욕심들을 사생결단의 각오로 물리쳐야 한다는 맹렬한 자기 수양의 의지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남명은 신명사도의 내용을 생활화 하려고 했다. 바로 합천 삼가 뇌룡정을 신명사도에 따라 지은 것이다. 뇌룡정을 방문한 사람들이 뇌룡정 문이 왜 3개냐고 자주 묻는다. 바로 신명사도의 구관, 목관, 이관을 본떠 만든 것이다. 뇌룡정은 신명사도의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뇌룡정을 들어서면 남명의 학문 요체인 경과 의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다. 신명사명(神明舍銘) 안으로 자아를 완성하는 것이 敬이고, 內明者敬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이 義이다. 外斷者義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주재하는> 태일진군(太一眞君)이 太一眞君 명당(明堂)에서 정사(政事)를 편다. 明堂布政 집 안에서는 총재( 宰)가 관장하고, 內 家宰主 밖에서는 백규(百揆)가 살핀다. 外百揆省 추밀(樞密)을 받들어 言語의 출납을 맡아, 承樞出納 진실 되고 미덥게 언어로 표현한다. 忠信修辭 네 글자의 부절(符節)을 발부하고, 發四字符 백 가지 금지(禁止)의 깃발을 세운다. 建百勿旂 아홉 구멍의 사악(邪惡)함도, 九竅之邪 세 군데 요처(要處)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三要始發 낌새가 있자마자 용감하게 이겨내고, 動微勇克 나아가 반드시 섬멸[ 殺]토록 한다. 進敎厮殺 승리를 임금께 보고하니, 丹墀 復命 요순(堯舜)의 세월이로다. 堯舜日月 세 가지 관문을 닫아두니, 三關閉塞 맑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 있다. 淸野無邊 하나에로 되돌아가니, -돌아가 還歸一 시동(尸童)과도 같으며 연못과도 같도다. 尸而淵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으며, 國無二君 마음에는 두 주인이 없다. 心無二主 삼천 명이 한 마음이 되면, 三千惟一 억만의 군사도 쓰러뜨린다. 億萬則仆 사악한 마음을 막아 정성을 보존하며, 閑邪存 언어의 표현을 다듬어 정성스런 마음을 세우라.修辭立 정밀하고 한결같은 경지를 추구하려거든, 求精一 경(敬)을 통하여 들어가라. 由敬入 마음의 소리는 메아리와 같고, 心聲如響 그 자취는 인장(印章)과 같으니라. 其跡如印
세심정(洗心亭) 세심정(洗心亭)은 덕천서원(德川書院) 앞쪽에 있다. 세심정(洗心亭), “마음을 씻는 정자”란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성인이 마음을 씻는다.(성인세심 : 聖人洗心)”라는 말을 따라 그 이름을 붙였다. 세심정(洗心亭)이란 이름은 남명선생의 제자, 진주(晋州) 수곡(水鵠)에 사는 각재(覺齋) 하항(河抗)이 지었다. 세심정(洗心亭) 곁에 세워진 시비를 보자. 욕천(浴川)이라는 시에서 그는 「마음에 티끌이 생기면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씻어 버리겠다.」고 했다. 욕천(浴川) 사십년 동안 온 몸에 찌든 때 全身四十年煎累(전신사십년전누) 천 섬 맑은 물로 깨끗이 씻노라 千斛淸淵洗盡休(천곡청연세진휴) 만약 오장 안에 티끌이 생긴다면 塵土倘能生五內(진토당능생오내) 지금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리 直今刳腹付歸流(직금고복부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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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구향교에서 청년회장을 지낸 친구와 함께 경남 사천에 다녀와서...
봄 ㅜ나들이 잘 뎅겨오셨네
남쪽으로 봄마중 하셨군요..!!^^ 도자기전도 전이지만 앞뜯인지 한켠에 무우고구마 팔러나오신 분들을 보니 마치 고향의 농촌을 보는듯 합니다.그리고 그곳 뜰에 수선화와 크록커스가 벌써 활짝 피어 봄임을 확실히 알려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