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43:1-7 보배롭고 존귀합니다.
세계경제가 인플레이션 압력에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것이 값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주변에 모든 것이 값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7000원을 돌파했습니다. 석유 값은 세금을 깎아주는데도 1700원이고 김장철이 다가오는데 무 배추 양념값 모두 오르고 있습니다. 생필품값을 비롯해 모든 물건 값이 다 올라가고 있습니다.
내려가는 것도 있습니다. 무엇이 내려가나? 생각하실 텐데 사람값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사람이 하는 일이 단순해지다보니 임금도 내려가고 사람들에 대한 가치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 스스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값어치 없게 여깁니다. 친구보다 잘나지 못했고 가진 것도 이룬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나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사람들은 전쟁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의 화려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비참하게 했습니다.
자기 꼴이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끌려간 백성들은 천대받고 멸시받았습니다.
스스로 부끄럽고 천하게 여기고 그것을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명하여 불렀고 구속하였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며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주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자신을 초라하게 가치 없게 생각합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모든 것에 값을 메깁니다. 시장의 모든 물건에는 가격표가 있습니다. 사람도 값을 메깁다.
사람들이 값을 정하는 기준은 보이는 것에 값을 메깁니다. 짐승은 튼튼한 것에 과일이나 채소는 얼마나 깨끗한지 색이 고운지 크고 실한지 보고 가격을 정합니다.
사람에 대한 값어치도 어는 학교를 나왔는지 외모가 얼마나 수려한지 무슨 기술을 가졌는지 어떤 학력을 가졌는지 그것으로 사람값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생활과 환경을 결정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값을 메깁니다. 성공했어 부자야 출세했어 대단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믿는 사람들도 점점 자존감이 약해지고 위축되고 스스로 부끄러워합니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아무쓸모도 없어 그렇게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가치가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당하라 영광스러운 자다. 아름다운 자다. 너는 존재 자체로 보배롭고 존귀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에 허덕인다고 여러분도 여러분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있는 것으로 교만을 부리라는 것이 아니고 당당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보배롭고 존귀합니다.
병들었어도, 실패했어도, 못 배웠어도, 뒤쳐졌어도 보배롭고 존귀합니다. 이제 당당하십시오
삼상25장에는 도망자로 살아가는 다윗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힘도 없는 다윗에게 사람들은 이전과 같은 눈길은 아니었습니다. 나발이란 사람도 멸시합니다.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분노한 것은 그런 감정에 젖어든 것입니다. 분에 못이겨 죽이려고 쫒아가는 다윗에게 아비가일은 [삼상25: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다윗은 그러한 존재였습니다. 그의 조건 환경 체격 집안이 하나님 앞에 다윗의 가치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온천지의 하나님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사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심장에 품고 있는 자녀이다.
광대하신 하나님이 보배같이 소중히 여기시며 끝까지 지키는 자녀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창조된 것입니다. 우연히 태어난 것도 어쩌다 태어난 것도, 어쩔 수 없이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 하나님이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요 구원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이 다가오지만 물이 다가오지만 그것이 우리를 태우거나 삼키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라는 말은 모든 피조물의 면류관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영광의 면류관이십니다.
당당하십시오 이기게 하십니다.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최후승리자는 여러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