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협정무효야, 고시철회하고 이명박 탄핵시켜야 해!” “미친 것은 소가 아니라 정부야 ” , “대통령이 미친 거야! 정말로 미친 거라고!”,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값싸고 질 좋은 고기면, 그렇게 말한 대통령이나 장관들, 국회의원들이나 먹으라고 해!”, “국민들이 무신 광우병 실험하는 쥐로 보이는 거야 뭐야!”, “중국에서 돌아오지 마!”
결국 우려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고시되자 국민들의 분노와 함성은 광야를 불태우듯 전국을 뒤덮었다. 어제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서울시청을 비롯해 인천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 서울시청을 밝힌 2만에 촛불 - '협상무효, 고시철회'
촛불집회 참가자는 그 누구랄 것도 없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도 있었고, 어린 아이들은 목말을 태우고 거리행진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전동차를 행진하는 장애인들과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에 예비군복 차림의 사람들도 촛불행진에 함께하기도 했다.
▲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 온 촛불집회자
거리행진은 그 옛날 ‘독재타도’를 외쳤던 네 박자 구호(협정무효, 고시철회)와 훌라송(이명박은 물러가라~ 물러가라~)이 등장하기도 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한 아주머니는 “쥐새끼를 때려잡자”며 수 없이 절규에 가깝게 부르짖기도 했다.
다양한 피켓을 만들어 온 사람들과 티셔츠에 문구를 손수 넣어서 입고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근조 대한민국, 근조 민주주의’와 ‘차별에 저항하라, 이윤보다 생명을,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피켓과 티셔츠는 많은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었다.
▲ 미녀들의 수다에도 출연하는 풀리너 (뉴질랜드)도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외쳤다.
▲ "미친것은 소가 아니라 정부란 말이야!"
▲ 촛불행진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들
▲ 아이와 함께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외치는 시민
▲ 인터뷰하는 정태인 교수 - 그 외국인은 미녀들의 수다에도 출연하는 폴리너(뉴질랜드 출신)이고 아마도 최초의 외국인 진보신당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는 불고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면 이제 못 먹을 것 같아서 나왔답니다. 앞으로도 매일 나올 거고, 외국인 혼자라서 조금 무서운데 앞으로도 진보신당 방송팀하고 같이 다니겠다고... (정태인 교수 - 진보신당 발췌)
▲ 움직이는 현장 방송국 - 진보신당 칼라tv 방송국팀
▲ '국민언니' 심상정 대표 - 촛불행진을 하는 가운데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현장파' 진중권 교수 - 최근 인터넷 방송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거리행진에는 현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움직이는 인터넷 방송국’도 많았다. 진보신당은 ‘칼라TV 방송팀’자체적으로 꾸리고 연일 촛불집회 현장을 ‘날것’으로 전하기도 했다. 방송진행자도 최근 네티즌들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장파’ 진중권 교수에 ‘국민언니’ 심상정 대표까지 나서기도 했다.
집회참가자도 초기와 다르게 진화(?)하고 있었다. 어린 중고등생로부터 시작된 촛불은 88만원 세대로 옮겨가더니 이제는 과거 80~90년대 운동권 물 좀 먹었다는 사람들까지 촛불을 들고 나선 것이다. 자신을 80년대 운동권이었다고 소개한 분은 “역사를 돌아보아도 5월은 이렇게 뜨겁고 분노로 가득했던 날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어제도 경찰들의 ‘철벽수비’는 완벽했다. 속칭 ‘닭장차’로 불리는 경찰버스로 촛불행진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차도를 완전히 봉쇄하고, 인도까지 차단하는 그물망 수비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상부의 지시’로 철벽수비로 무장한 그들이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그들의 밥상에 제일 먼저 오른다는 사실은 비극에 가깝다.
연이은 수십만의 촛불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저항의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80년, 아니 87년에도 겪어보지 못한 촛불의 힘은 광야를 태우는 들불이 되었다. 또 사이버공간은 ‘아고라 현상’을 몰고 왔다. 누리꾼들 사이엔 벌써 ‘아고라당’이 등장하고 저항의 메카이자 촛불집회 ‘상황실’로 변한지 오래다.
오늘도 우리는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운다”는 역사를 다시금 배우고 있다.
▲ 촛불행진을 하면서 한 시민은 '근조 민주주의'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 만약을 대비한 의료봉사단 - 과거 80년, 87년에도 집회현장에는 의료봉사단이 있었다.
▲ 예비군도 거리로 나섰다 - 질서유지와 위험한 현장을 미리서 알려주는 예비군들.
▲ '철벽수비'가 따로 없다. 그러나 작은 촛불하나에 그들만의 철벽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