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군위 ‘사유원(思惟園)’을 다녀와서/안성환
경북 군위에 있는 사유원! 법적으로는 수목원이다. 실제 내용은 수목원이 아니다. ‘사유원’이란 이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먼저 사유원에 관람 하려면 미취학 아동은 입장 불가하고 일체의 음식물은 반입금지다. 입장료는 평일 5만원, 주말 6만9천원, 여기서 점심 포함하면 평일 입장료 1인기준 1십1만원 이고 주말 입장료가 12만9천원이다. 그리고 100% 예약제로 하루 140명으로 한정 입장시킨다. 보기에 뭐~이렇게 비싸! 하며 놀랄 수 있다. 하지만 입장 해 보면 아깝지 않다는 것을 바로 피부로 느낀다. 사유원의 규모는 약 10만평(축구장 46개 크기)이다. 포르투갈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곳곳에 이름이 없는 곳이 없으며, 글씨는 중국의 서예가 웨이랑씨의 행서체이다. 서체마저 탐복 한다.
‘사유원’의 의미는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와 마음을 빚은 석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함께 하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이다. ‘사유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소요헌’이다. 알바로 시자의 작품으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피카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1937년 스페인 작은 마을에 독일비행기가 이 마을을 맹폭하여 2천명의 시민이 사망한 비극적 사건을 그린 그림)를 전시하기 위해 설계한 ‘아트 파빌리온’(박람회나 전시장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만든 건물)이다. 본래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으려 했으나 건축이 취소돼 설계도로만 남아 있다가, 사유원에 세워졌다. Y자 형태의 건물이 땅으로 스미는 듯 낮고 겸손하다.
사유원의 창건자는 태창철강 유재성회장(1946년생)이다. 창건동기가 기가 막힌다. 일본으로 밀 수출 위기에 처한 300년 넘은 모과나무를 그냥 보기가 안타까이 여겨 웃돈을 더 주어 사들인 것이 사유원 창건 시발이다. 그 이후 일본으로 밀 반출을 막기 위해 전국에 300년 넘는 모과나무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사유원의 명칭들 대부분 창업주의 깊은 뜻이 담겨 있으며, 장자에게서 따온 내용들도 들어 보인다.
필자는 치허문(致虛門,사유원의 정문)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또 한번 놀란다. 비싼 입장료에 비해 정문은 정말 소박하며, 극도의 비움에 이르러 평온을 지키며, 자연에 거슬리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다. 예감이 범상치 않았다. 카메라를 메고 사유원에서 제공하는 생수 한 병을 들고 입장했다. 먼저 찾은 곳은 소요헌(逍遙軒)이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곳이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따온 말이라고 했다. 천장을 뚫고 들어온 철 구조물이 전쟁과 폭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유원에서 가장 경이로운 공간이다. 조금 더 걸어 올라 가면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이 기다린다. 오랜 세월 동안 풍상을 이겨낸 모과나무가 있는 곳이다. 수령 300년~600년 이상의 모과나무 108그루가 도열한 정원이다. 모든 모과나무에는 명찰이 있었고, 어디서 누구에게 매입했는지 기록 되어 있었다. 모과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좁은 콘크리트 벽 사이의 길을 통과해야 하고, 이 길을 지날 때 자신의 발자국에서 울리는 공명의 소리는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했다.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108그루의 어마어마한 모과나무 형상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조금 더 걸으면 명정’(瞑庭)이 나온다. 이곳 역시 신기하다. 지하로 파 내려간 건축물인데 회랑을 만들고, 물을 가두고, 벽의 질감을 다듬고, 시간에 따른 빛을 계산해 경건한 느낌의 공간을 빚어냈다. 시간을 두고 명상을 해도 좋은 곳이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오면 새들이 주인인 건축물 ‘조사’(鳥寺)가 보인다. 새를 불러 모으다가 썩어 넘어져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건축물로 역시 승효상의 작품이다. 그 옆에 유원의 정자와 계곡, 연못이 어우러진 전통한국정원의 으뜸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봇짐 풀고 정자에 앉아 한가로이 노닐면, 시의 감정이 생기는 곳이다. 주변에 소나무 숲이 즐비 하여 시간을 멈추게 한다. 묵현으로 자리를 옮겨 보면 정상에 자리한 침묵의 언덕위에 서면 천지가 다 보인다. 잠시 사색을 즐기며 휴식 하는 곳으로 조용하며 매우 아늑하다.
중턱으로 돌다 보면 내심낙원(內心樂園)원이 나오는데 이곳은 동양철학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통해 찾아가는 마음의 정원이다. 이곳에서 치허문 쪽으로 내려오면 오당(悟塘) 보인다.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 할 수 있는 깨달음의 연못이 있다. 연못 위에 코르텐강(鋼)으로 지은 ‘와사’(臥寺)의 내부는 둥근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벽에 무늬가 돼 찍힌다. 코르텐강의 특성은 구리와 크롬을 적당히 포함시켜 만든 철인데 금속의 부식에 대한 저항력을 개선해 주는 역할을 한다. 코르텐강의 특징은 녹을 철판 표면에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후 더 이상 부식이 진행되지 않도록 방어 해주는 기능을 가진 철판이다. 그래서 코르텐강은 녹이 슬어야 멋스럽고 보기 좋다. 사유원의 특징은 밴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구조물들이 코르텐강으로 설치되어있다. 재미있는 것은 하얀 옷을 입고 밴치에 앉아도 녹이 옷에 묻지 않는 것이 이 철의 특징이다.
사유원을 거닐다 보면 장자의 사상을 그대로 옮겨 놨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사상은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어느 날 장자가 호랑나비가 되어 근심 없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꿈이 지나치게 현실 같아 잠에서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호랑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호랑나비가 자신이 된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의미다. 장자 사상의 중요한 특징은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사유원은 인생에 있어서 ‘일’의 삶보다 ‘소풍’의 삶으로 살아야 된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에도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다. ‘소(逍)’자는 소풍간다는 뜻이고, ‘요(遙)’자는 멀리 간다는 뜻이며, 유(遊)자는 노닌다.‘는 뜻이다. ‘소요유(逍遙遊)’는 묘하게도 글자 세 개가 모두 책받침 변(辶)로 되어 있다.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착’이란 그 뜻이 ‘쉬엄쉬엄 갈 착(辵)’이다. 그러니 ‘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내리 세 번을 쉬어야 하는 것이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멋진 인생이다.
사실 사유원의 건축도 매우 중요 하다. 하지만 주변 나무들을 흘깃 보지만 말고 대화를 해야 사유원의 진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사유원은 바로 내 마음을 다듬을 수 있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이었다.
2022년 12월 12일 사유원을 다녀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