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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217) 2019. 12. 6
주안에서 사랑하는 문대헌 형제 부부에게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시39:4-5)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벌써 2019년도의 달력에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시간의 빠름을 느낍니다. 잠시 지나온 20년의 시간들을 잠시 돌아보게 됩니다. 1999년 6월부터 오늘까지 기간입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지나온 시간들이라 다시금 회상하여 봅니다. 고통스러운 3년의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어언 50살이었습니다. 70살까지 사역을 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앞으로 20년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이 임하였습니다. 때마침 선교회관 봉헌식을 가졌습니다.(2002. 2. 23) 그때부터 새로운 결단으로 오늘에까지 깨어 근신하여 정신을 차리고 날마다 회관에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였습니다. 타지방이나 해외에 출타하지 않는 한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내년 2월 23이면 18년의 기간이 됩니다. 조급하게 느꼈던 70살의 문턱에 들어선 듯합니다. 주마등처럼 그렇게 빨리 지나갔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더 빨리 지나갈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세월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금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금년에는 지구 사역 가운데 하나님께서 많은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날마다 저희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복스러운지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4:7) 주님과 깊이 동행하면서 기도하는 삶에 발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일하신다>는 간증이 풍성하기를 기대합니다. 주님의 지상사명,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에 대하여 다시금 묵상하여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팀 인도자들과 함께 지상사명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가 행하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개인적으로 묵상하며 확신을 나눌 때 더 깊은 확신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2020년을 앞두고 사역적인 목표와 방향을 돌아보며 재정립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힘쓰고 달려갈 목표(GOAL)를 묵상할 때, 가져야할 분명한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1) Generational ministry(세대를 형성하는 사역) (2) Only Calling& Vision(오직 부르심과 비전) (3) Abiding in Christ(주님과 동행) (4) Lifelong Laborer(평생일꾼)
주님과 깊은 동행가운데 우리의 부르심과 비전을 따라 평생일꾼들을 재생산하는 사역이 우리의 주된 목표와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동역할 수 있는 평생일꾼들이 각 사역지에서 풍성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요한이가 내년 1월 10일에 결혼할 예정입니다. 인혜는 한의원을 개원했습니다.(예인한의원) 주님의 은혜로 형통하게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가오는 성탄과 새해에는 각 가정과 사역에 풍성한 주님의 은혜와 소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안에서 박 남규 부부 서신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본문>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6-20)
여러분은 개인적인 기도 시간을 어떻게 시작하는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주기도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눅11:2)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한국 네비게이토 기도제목(당일)으로 시작합니다. 한국 네비게이토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북미, 대양주, 중동 등, 국제 네비게이토 사역을 통하여 일꾼들의 영적 세대를 통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20)는 예수님의 지상사명의 성취가 이루어지도록 기도 합니다. 그때는 모든 선교단체들, 지역교회들, 주님을 섬기는 각 기관들(교육기관, 구제기간, 여러 단체들)의 사역을 통하여 세계복음화, 즉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일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시22:27-28) 그리고 난 후에 우리 지구 사역의 필요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세계비전을 마음에 품은 World Christian과 세속적인 비전을 가진 Worldly Christian이 있습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주님의 지상사명을 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세계비전의 소유자와 예수님을 믿기는 하되 세상적인 목표와 가치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자신은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입니까?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나라의 인구의 40%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50%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북쪽에는 처음에는 약 5000여개의 교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회교국가가 되었습니다.
Dwight Baker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북 아프리카 교회가 사라진 중요한 원인 4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 성경을 등한시하였다. ◆ 복음의 참뜻을 상실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잃어버렸다. ◆ 영역(영적인 힘과 능력)을 상실하였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었다. ◆ 선교의 비전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 선교의 비전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 스스로도 힘을 잃게 되고 사역이 위축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헬렌 켈러 여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3중 장애자였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았고, 귀도 들리지 않았고,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불행을 딛고 한평생을 살았던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일생동안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심지어 많은 저술도 하였습니다. 말년에 한 기자가 그녀에게 질문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한평생을 살아왔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하여 본적이 없습니까?” 헬렌 켈러 여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원망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뻐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없는데 언제 원망할 시간이 있느냐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노라.” 하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 안에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이 땅을 떠난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또 다른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그녀는 “두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일에 대하여 볼 줄 모르는 비전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공통적인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겉은 보면서 속을 볼 줄 모르는 것, 남은 보면서 자기를 볼 줄 모르는 것, 그리고 현재는 보면서도 미래를 볼 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보아야 하지만, 오늘 보다는 내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비전이란 본다는 것입니다. 시력(sight)을 말합니다. 상상력, 환상, 이상을 말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2:28)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NIV)
흔히들 비전을 가진 사람을 visionary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꿈꾸는 자라고 말합니다. 요셉을 말할 때 꿈꾸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37:19)고 하였습니다. 그는 꿈을 가졌습니다. 무슨 꿈(Dream)을 가졌습니까?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장차 이루실 일에 대한 꿈(Vision)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 비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비전을 위해 일생동안 헌신하였습니다. 그 꿈, 비전 때문에 엄청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내하였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의 성취를 경험하였습니다. 얼마나 축복된 일생입니까!
세계비전이란 하나님께서 세계를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영혼들이 자신의 사랑으로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시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영혼들을 바라보시고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9:36-38) 구원받아야 할 대상들은 너무나 많은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도록 도와주며, 주님의 제자로 세워줄 일꾼들이 너무 부족함을 바라보시며 탄식하고 계십니다.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이와 같은 하나님의 꿈이 나의(우리의)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흔히 이것을 지상사명이라고 합니다. 지상사명(至上使命)이란 무엇입니까? 땅위의 사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보다 더 높은 사명은 없다는 뜻입니다. 경북대학교 병원 입구의 큰 표지석에는 인명지상(人命至上)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최고, 최대의 사명이라는 뜻입니다. 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명령에 가라,(going), 세례를 주라(baptizing), 가르치라(teaching)는 분사형의 동사입니다. 분사형 동사란 주동사를 수식하는 분사형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에서는 제자를 삼으라(make disciple)가 주동사입니다.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먼저 가야 합니다. 또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또한 가르쳐서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까? 왜 주님께서 이와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까? 다른 사명을 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부자를 삼으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박사를 삼으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00를 삼으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지 않고는 인간의 행복을 대체할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의 행복을 대체할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돈, 명예, 권세, 인기, 지식, 향락 등 어떤 것도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1. 왜 제자 삼는 사역이 중요하는가?
(1)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습니까?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주님을 배우며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배우며 따르는 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것을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삶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쳐라.”(The Message)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자격요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첫 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가장 귀한 분, 가장 중요한 분, 가장 존귀한 분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과연 행복한 것입니까?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갈등 가운데 직면하면서 살아갑니다. 내 중심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갈등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여전히 옛 습관, 옛 사람, 육신적인 과거의 죄 된 행동으로 살아갈 유혹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중심의 특징은 죄의 본능가운데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육신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영적인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으로, 자기의 소욕대로, 육체의 욕구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영적으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욕설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나쁜 짓들을 다하며 살아가는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입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에게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주님의 참된 기쁨이나 소망이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불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만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자신의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주님을 삶의 첫자리에 모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답이며 해결책입니다.
“어떤 가난한 달동네에 12살 되는 한 아이가 소아마비로 절름발이가 되어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교회의 한 자매가 아이를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를 찾아가 수술을 부탁했습니다. 수술이 잘 되어 같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자매님이 우연히 길에서 그 소년을 수술하여 주었던 의사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절름발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의사가 그 자매에게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여기에 없습니다. 감옥에 있습니다. 살인자로 형기를 보내고 있지요. 선생님, 우리는 그 아이에게 걷는 법만 가르치려 애를 썼지, 그가 걸어가야 할 곳(삶의 목적)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걷는 것만도 너무나 신이 나서 말입니다. 아, 참 그랬네요! 그걸 잊고 있었네요. 걷고 뛰면서 가야할 목적지를 가르쳐 주지를 않았네요!”
걷고 뛰기만 하도록 돕지 말고, 치료의 목적과 전망을 알고 실천하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기뻐하는 것만 가르치지 말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목적을 위해 살아가도록 제자의 삶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우리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자의 삶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3)
(2)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9:36-38) 목자 없는 양의 처지를 생각하여 봅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4-25)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영혼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살아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불쌍하셨으면 자신의 몸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셨겠습니까? 십자가를 통해 그들에게 죄 사함의 은혜(은총)를 입게 함으로 죄에서 돌아서서 의로운 삶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이제는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으로서 우리가 가장 선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날마나 인도하며 돌보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는 인간성을 말살하며 짐승과 같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무기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마침내는 우리 영혼을 파괴하여 영적으로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Burning Sun(버닝선) 사건입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그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인간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담당하셨습니다. 얼마나 우리 영혼들을 사랑하셨습니까? 민망히 여기시며 마음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compassion with pain) “목자 없는 양처럼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무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The Message)고 탄식하셨습니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한데,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가엾은 백성들입니다. 마치 유기견 즉, 버려진 강아지와 같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센터에 도착하였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불쌍하고 측은해서 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쏜살같이 도망하였습니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얼마 후에는 차에 치어 죽을 수도 있는 것이 강아지의 운명입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은 유기견이나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신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아무리 권고하여도 말을 듣지 아니하니까 그들의 욕심대로 <내어버려 두셨습니다>(롬1:24,26,28절) 주님은 내어 버러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세워줄 준비된 제자, 주님의 마음을 품고 추수터에 나아갈 추수할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준비된 제자와 추수할 일꾼들이 오늘날 시대적 요청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2. 어떻게 이 일을 성취할 수 있는가?
(1) 자신이 살고 있는 현 위치에서부터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이때 <가서>는 문법적으로 <가면서>(going)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가면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가면서>란 현재 있는 위치에서 부터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먼 곳에 가기 전에 먼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명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이것은 네비게이토의 부르심과도 일치합니다. 네비게이토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Our Calling is to advance the Gospel of Jesus and His Kingdom into the nations through spiritual generations of laborers living and discipling among the lost.>
(우리의 부르심은 잃어버린 영혼들 가운데 살면서 제자 삼는 일꾼들의 영적 세대를 통하여 모든 족속에게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복음의 진전 상황을 통계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 사역의 확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 한사람이 약 5명 정도에게만 복음을 전하면 세계 인구 모두에게 복음 전할 수 있다는 산술적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A.D 100년경에는 신자1명→360명에게, A.D 1000년경에는 신자1명→220명에게, 1500년경에는 신자 1→60명에게, 1900년경에는 신자 1→27명에게, A.D 1990년경에는 신자 1→7명에게, 2002년에는 1→5명에게, 2019년에는 신자 1→몇 명에게 복음을 전하면 세계 복음화가 가능할까요?
또한 전 세계의 약 24,000 여 민족들 가운데 약 12,000 민족 이상에게 복음이
증거 되었다는 선교적 통계가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주님의 지상사명은 현실적으로 점점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삶의 현장(캠퍼스, 직장, 지역사회)에서부터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2) 주님을 온전히 의뢰함으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제자 삼는 사역은 결코 간단한 사역이 아닙니다. 결코 쉬운 사역이 아닙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수고와 헌신이 요구됩니다.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간증)
<죽을 뻔한 고비가 몇 번이나 있었다. 죽이겠다고 부모가 칼을 들고 찾아왔었다. 죽을 각오도 하였다. 심한 고난과 상처도 있었다. 엄청난 배신감을 경험하였다. 많은 눈물의 기도와 고통을 감당하였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하며 포기하고 싶은 시험이 찾아온다>(고후11:22-28)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내가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상의 모든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고 고백하셨습니다. 마침내 승리하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희생과 상처와 눈물과 배신을 극복하였노라고 격려하십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믿음의 경주와 제자 삼는 사역의 성취를 위해 기도로 지원하고 계십니다. 또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성령님의 위로와 권능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능력)를 가지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우주의 창조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세,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권세, 모세를 통하여 홍해의 바다를 가르시고 자기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누구든지 막을 수 없고 폐할 수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사명은 인간의 힘과 권세로 결코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뒷배가 든든합니다. 북한이 가끔 큰 소리 치는 이유는 북한의 뒤를 봐주는 중국의 든든한 뒷배(권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큰 소리 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부여하신 권세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명령 하셨고,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격려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출20:2, 신5:6, 시81:10)
그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약속하십니다.
David Livingstone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선교사로서 19C 아프리카 대륙의 정글 속을 다니며 원주민들에게 선교사역을 하였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수고와 희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30년 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하면서, 열병을 20번 이상 앓았으며 다른 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자에게 물린 자국으로 인하여 그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년에는 극도의 영양실조로 인하여 임종 시에는 온 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 침상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이 땅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신은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묻혀 있는 유일한 선교사이기도 합니다. 그가 잠시 선교지에게 귀국하여 선교 보고하며 설교하며 다녔을 때, 어떤 분이 질문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위험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그에 대한 리빙스톤의 고백은 "나는 주님을 위해 아무 것도 희생한 것이 없다. 높고 높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생각 할 때 우리 중에 누가 주님을 위해 고난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능력의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이 받은 고난과 희생과 역경을 주님의 성육신과 비교하여 본다면 자신의 수고와 희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주님의 성육신은 선교사역의 모본이며 힘이 되며 능력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당한 고난과 십자가의 수난에 비교하면, 자신이 받은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육신의 사랑을 생각하면 자신의 고난과 희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성육신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과 조롱과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리빙스턴의 선교사역에는 두 가지의 원동력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고, 능력의 예수님을 온전히 의뢰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지상사명을 주시고 또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가 함께 있을 것이니, 결코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확신을 가지고 감당하라,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주님께서 명하신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하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3)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선교사입니다. 준비된 제자는 모두 선교사입니다. 선교지에 있든지, 이곳에 있든지 모두가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회입니다. 선교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목표입니다. 파송된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 그들을 헌금으로 지원하는 일, 모두가 선교의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물질적 후원을 통하여 선교지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헌신적인 후원으로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상급은 모두의 몫이 될 것입니다.
(4) 약속에 대한 믿음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15:58)
여러분의 믿음과 인내와 수고에 격려를 보냅니다. (끝)
<제자 삼는 사역의 실제적 제안-Practical Method(3Ts)>
•Teaching
Teach him what (개념과 정의를 가르쳐주고)
Tell him why (이유와 중요성을 설명해주고)
Show him how (어떻게 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Training
Get him start (그로 하여금 시작하도록 도와주고)
Keep him going (그가 계속 유지하도록 권면하고)
•Transmitting
See him pass on others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볼 것)
(Help him reproduce) (그로 하여금 재생산이 일어나도록 도울 것)
<Effective Outline of Disciple-making>
(1) 하나님의 사랑 안에 굳게 서도록 도와줄 것(Growing in God's Love)
(2) 주님과의 교제에 굳게 서도록 도와줄 것(Walking with God)
(3)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권에 굳게 서도록 도와줄 것(Strong in the Lordship of Christ)
(4) 주님의 비전을 깨닫고 비전에 굳게 서도록 도와줄 것
(Understand & Commit the Great Commission)
(5) 재생산의 부르심에 견고하며, 영적 세대를 형성하는 일에 굳게 서도록 도와줄 것
(Developing the third generation disciple making)
(6) Foundations +성품계발, 확신 계발, 사역 내용 계발, 은사 계발, 지도력 계발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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