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여, 깊은 베일의 문장이여
강병철
20대 중반에 조우했으니 40년 세월이 빛의 속도인 게 확실하다. 『삶의 문학』선배들 틈에 끼어 김백겸, 임우기, 지원종, 류달상, 송대헌, 최교진, 조재도, 정영상 등의 벗들과 시국을 토로하던 그 시절 언저리이다. 대전시 가장동 이은식 선배네 아파트였던 것 같다. 키다리 장발족 사내 하나가 건들건들 움직이던 스크린이 있었고 나는 구석에 웅크려 잡지책이나 뒤적이던 풍경이다. 그렇게 무리에 섞여 스쳐지나갔고 잠시 그를 잊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만남은 내가 시국사건으로 떠났던 그 학교 휴게실로 기억된다. 사라졌던 기억들을 조합하며 바깥에서 커피도 한 잔 했는데.
저 연약한 봄의 손등 위로
시간의 불길이 지나가면
화상을 입은 남은 몇 잎이
옛 편지처럼 적막하겠지
- 「담쟁이」전문
그는 그 복학생 시절 사랑의 실루엣이 특히 아름다웠다고 오래도록 회고한다. 술통을 껴안고 살아가던 부실한 청춘에게 웬 순정파 여자가 나타나 알토란 둥지를 틀었다며 감사하는 중이다. 또 하나, 결혼을 위해 교직을 선택했는데 그게 평생직장이 되었노라고 교육자적 사명감에서는 슬쩍 발을 뺀다. 그리고 매사가 편안해진 것이다. 외딴섬에 정박한 젖은 목선처럼 안착하여 여고생도 가르쳤고 전교조를 뛰었으며 시를 썼다. 설거지 하던 물 묻은 손으로 전화 받던 일상들이 모두 아름답다. 그래서일까, 그의 문장은 ‘그리움’으로 도배되어있다.
서른도 넘은 딸을 깔깔 웃고 툭툭 치며
바로 그날 목련꽃이 활짝 핀 것으로 치면
너 같은 건 거기에다 댈 것이 아니여,
삼십 년 전 학교 후문 한 남자를 만나서
꿈만 같던 그 봄날 꽃에 울던 한 여자가
-「청춘가」부분-
15년 전이었거나 그 이전일 수도 있다. 작가회의 신년회 심야 뒤풀이 이후 당연히 청진동 뒷골목 동트는 새벽으로 연장되는 중이다. 새벽 출정 전국구 선수는 대략 열댓 명, 전원 만 원 한 장씩 갹출시킨 이정록 시인이 나머지 계산을 책임지는 자리였는데 기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또 몇 순배 돌았고 해장술로 불콰하게 익었는데 좌중의 연장자인 권서각 시인이 건배사를 하면서.
“얼굴은 본 적이 없으나 김상배 시인의 「낮술」로 건배합니다. 제가 ‘이러면’ 하면 여러분들은 ‘안 되는데’ 하시면 됩니다. 자, 이러면! 으쌰으쌰!”
“안 되는뎃! 으쌰, 으쌰!”
그렇게 선창, 후창으로 이어진 이 건배사가 그의 한 줄짜리 시 「낮술」의 전체 문장이다. 그렇게 그의 시집을 통째로 올려 시인을 위한 건배사를 외쳤지만 정작 그는 작가들의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체질이 아니다. 그는 첫 시집 『코 고는 아내』발간 이후 한평생 출판사를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명망 있는 선배의 옷깃을 잡지도 않았다. 이번 시집도 제목부터 하필 『아무것도 아닌』인데, 표4도 없고 발문도 없다. 대부분 그의 페이스 북에 올린 글 400여 편에서 추려낸 편린들이란다.
오,
어쩔 뻔 하였느냐,
저 안개가 아니었다면.
정오의 햇살로도 결코 걷어낼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내 심중의 성문을
-「아무것도 아닌」부분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내 가족 사랑주의자’이다.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도 첫 서두 “내 아내가…….”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찬가지이다. 그의 시적 문장의 서정성에 빠지려는 찰나 가족사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늦깎이로 입대한 아들이나 법조인 부부가 된 딸의 사연이 빠지지 않더니 언제부터인가, 천사표 손녀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그는 터프한 체격의 ‘모태 가족주의자’였나 보다.
20년 전이었을까, 예전에 그가 살던 계룡시에는 황재학, 정덕재, 김병호 시인이 모여 살아서 나로서는 방향키만 한 차례 돌리면 한 잔 술 땡길 만한 공간이 되었다. 내가 계룡으로 달려간 건 순전히 눈발 때문이었다. 백석의 ‘나타샤와 앞이 안 보이게 쏟아지는 눈발과 흰 당나귀’를 떠올리며 술잔 부딪치는 낭만을 꿈꿨으리라. 두만강 철교로 떨어지는 눈발을 보며 꺼이꺼이 우는 박용래도 올려놓으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이다. 그가 두어 잔 돌리더니 슬며시 일어나는 것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아내와 함께 걸어봐야겠다’는 것이다. 멀리 공주에서 날아온 나 역시 그의 맞춤형 코스에 수긍했을 뿐 ‘한 잔만 더’를 종용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술 한 잔 부어다오
사람이 아니고
남자가 아니고
찔레꽃 붉은 열매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참회록」부분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망자 윤중호 시인은 ‘날마다 반성하는 삶’이라고 답을 줘서 고개를 끄떡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긴 세월 조급증과 결핍에 시달렸다. 그 결핍의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 때마다 그를 찾아 허기를 달래던 기억이 있다. 전교조가 벼랑 끝에 몰리거나 특정 벗과의 갈등이 고조되면 나는 그를 찾아 미주알고주알 몸을 의탁했다. 그는 항상 해피한 표정으로 술청에 앉혀줬으며 웬만한 논쟁은 피하고 감싸주었다. 그랬다. 그가 옆에 있으면 나머지 배경들까지 식물성으로 편안해졌다. 커피를 내리거나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도 그가 옆에 있어야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나는 달랐다. 늘상 조급했고 목이 말랐다. 그는 능소화처럼 편안하게 그늘을 내렸고 나는 배롱나무처럼 하루라도 더 매달려 햇살을 오래 받고 싶었다. 그게 짝사랑이다.
시나브로 무대를 내려와
행인의 발길에 몸을 뉘이는
서슬 푸르던 낙엽들의
붉디붉은 후회를 보라
- 「시월」부분
그는 과연 행복에만 충만한 사람인가? 아니다. 그가 신산의 사연들을 그렇게 긍정의 채널을 고정시킨 것이다. 치열하게 살았으나 야비하지 않았고 질투는 소소했다. 눈에 넣고 싶은 손녀가 있고 구순의 병든 노부모가 균형을 이룬다. 청춘에 만난 여자에게 기꺼이 자유를 압수당했으며 지금은 저녁마다 부부의 건배사에 익숙해져있다. 가끔은 담쟁이 이파리에 편지도 보내는 로망을 꿈꾸며 쌓인 빚은 감당할만하다. 커튼 너머 풍금 치는 사람에게 시집을 건네주고 싶다며 적당히 자존도 지키는 중이며 그의 글에 메스를 대며 분석해줄 수 있는 아내가 있다.
또 있다. 30년 전 제자가 맥주를 박스 채 들고 찾아오면 엄청 민망해진다. 그러나 시인 역시 폐지를 쌓고 있는 어느 노부부의 주머니에 만 원 한 장을 찔러 넣으며 허리도 조아리는 예법도 갖출 수 있다. 이제 학교도 퇴임했으니 교무실 의자에서 깎던 손톱을 아파트 베란다로 이동시키면 된다. 그러니까 그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이다.
마침내 운명이라는 이름이
아랫목 따뜻한 집을 마련해 주던 날
청춘은 내 곁을 떠났지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처음부터,
청춘은 집이 없었다
-「청춘은 집이 없었다」부분
그에게 시가 없었으면 허허로웠을까? 아니면 오히려 행복했을까?
안개 낀 강변에서 새벽이슬로 깨어나는 횟수가 두어 배쯤 늘어났을 것이다. 사막의 지평선을 낙타처럼 하염없이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은행동 어디쯤 포장마차에서 얼큰하게 취하다가 찌질이 시비족에게 펀치도 날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문장의 조악을 벗어나서 더 과묵한 표정으로 바뀔 수도 있었으리라. 등허리에 어둠이 닿는 시간마다 문득 삶의 가련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더러는 가을 낙엽을 바라보다가 무덤을 지키는 소나무 아름드리에 초병처럼 침묵할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집 네 권을 발간했으니 빼도 박도 할 수 없다. 시인의 운명이다.
되돌아보면
그립고 부끄러운 날
젊은 베르테르의 시절, 그 거리에서
내가 나를 판매하던 모습이
저 멀리 애련하다
그때 그 길 위에서 호객하던 언어들이
지금은 혼자서 마른잎 소리로
아스팔트 위에서 바스락거리고 있다
-「가을, 은행동에서」 부분
그는 수십 년 문단 이력에도 아직도 스스로 시인인가, 반문하는 중이며 기실 나는 그런 해석에 관심이 없다. ‘용은 소똥구리의 똥구슬을 비웃지 않고 소똥구리는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박지원의「낭환잡서(螂丸雜序)」같은 문구도 기실 내 취향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문장에서 설핏 ‘소똥구리의 여의주’를 만나곤 하는 것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어쩌면 베트남 어느 농부에게 건너가
지난날 내전 시절로 치자면
적군의 나라 사람이 입던 옷을
다리미로 곱게 다려 입은 농부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장터로 가거나
당질녀 혼례식에 참석하여
맨 앞자리에 앉아있게 될 것이다
- 「인연」부분
내가 긴 세월 그의 표정에 시나브로 의지했던 건 확실하다. 그랬다. 그를 만나면 절망의 어느 찰나에 안개가 걷히듯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이제 겨울이 오고 눈발이 쏟아지면 그를 찾는 마음이 더 성급해질 것 같다. ‘바람 부는 벌판에 홀로 서도 나는 외롭지 않아’를 부르며 콜택시를 부르리라. 그러면 그는 아내를 부를 수 있을만한 거리의 술청 앞에서 눈사람이 되어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처럼 우리들의 문장도 깊어지리라. 그의 문장 속 베일도 걷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