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들으니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인간수명과 관련된 우화가 떠올랐다. 조물주가 소를 만들고 60년을 살도록 했다고 한다. 단 사람을 위해 평생 일만 해야 한다고 했다. 소가 말했다. 너무 길다고 30년 만 살겠다고. 다음에 개를 만들고 30년을 살라고 했다. 단 사람을 위해 평 생 집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개가 말했다. 너무 길다고 15년만 살겠다.
다음에 원숭이를 만들고 30년을 살도록 했다. 단 사람을 위해 평생 재롱 을 떨어야 한다고 했다. 원숭이가 말했다. 너무 길다고 15년만 살겠다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들고 25년을 살도록 했다. 단 생각할 수 있는 머리 를 주었다. 사람이 말했다.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 린 15년, 모두 60년을 전부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25살까지는 그냥 살고, 55살까지는 소처럼 일만 하고, 퇴 직해 15년은 개처럼 집만 보고, 15년은 원숭이처럼 손자들 앞에서 재롱 을 떨며 살다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삶은 어떤가. 스무살까지는 우화처럼 그럭저럭 살았 다. 부모가 계셨으니 가능했다. 결혼을 한 후에는 자식을 낳고 10년은 가 정을 이루며 살았다. 그리고 남편이 떠났다. 고칠 수 없는 병을 얻었으니 별도리가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도 하나 둘 섬을 떠났다. 중 학교가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큰 집에 덜렁 혼자 남았다.
남편이 이승에 남겨준 것은 작은 집과 자식들 그리고 자그마한 산비탈 밭 뙈기였다. 산을 일궈 고구마를 심고, 갯바위에서 미역과 톳을 뜯어 생활 했다. 자식들은 잘 커 주었다. 국가공무원이 되었고 큰 회사에 취직도 했 다. 정말 소처럼 일도 하고 개처럼 집도 지키며 살았다. 때론 집을 팔아버 리고 훌훌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행여나 자식들이 팔자고 하면 더욱 서운해 할 사람은 할머니였다. 남편을 보내고 자식들과 살면서 뭍에서 물을 길러오고, 산에서 나무를 해 다가 지은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하다 중간중간 자신이 직접 지은 안채를 바라보기도 했다. 할머니의 눈빛을 가늠할 수 없었다. 바깥채 가마솥에는 산에서 캐 온 약초들이 가득했다. 장작을 지펴 푹 삶아 약물을 내서 자식들에게 보 내려고 준비하고 계셨다. 매년 겨울이면 하는 연례행사였다. 처마에는 며 칠 전에 만들어 놓은 메주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할머니는 조물주가 일하라고 준 나이를 훌쩍 넘어 남의 나이까지 살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밭고랑처럼 주름은 깊었지만 표정은 온화하고 어린 아이처럼 해맑았다. 작은 섬마을에서 ‘젊은 여자가 할머니가 되도록 혼자 살아온 세월을 어찌 다 말로 하것소’라며 말을 잇는 표정은 한도, 원 망도 없이, 그저 편안해 보였다.
거의 한평생을 일만 하고 살아오면서도 “할머니 같은 얼굴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라고 묻자 대답 대신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그녀의 얼굴은 자연이었다.
첫댓글 난 놈의 나이를 사십 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