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미륵도용궁사
 
 
 
카페 게시글
미륵의 소리 청법가 가사, 진짜 문제가 있는가?
리허브 추천 0 조회 405 09.05.24 08:54 댓글 25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9.05.24 12:11

    첫댓글 ?

  • 작성자 09.05.25 11:52

    일망타진님! 올린 게시물을 삭제한 점은 사과드립니다.(잘 안 보여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성스님의 주장을 충실히 담은 내용을 상불사 카페에서 복사하여, 반론 앞부분에 다시 올려놨습니다.죄송!) 그리구요, 관점과 견해가 다른데서 펼치는 비판을, 근거없이 주장하는 비방과 같은 개념으로 바라보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는 점을 일망타진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망타진님, 너그러이 이해하시고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청법가 가사를 묵상해보시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종교의 발전은 끊임없는 논쟁, 즉 주장이 있으면 그에 대한 수용과 반론, 그리고 이해를 통해 이뤄져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09.05.25 09:10

    글쎄요. 타인이 올린 게시물을 삭제하면서 개인적인 주장만 하시는 모습은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이나 스님도 적을 두었던 종단을 비방하시는 모습도 스님답지 못하신 것 같구요. 언짢다면 이해바랍니다. 저로서는 올린게시물이 남을 비방한 글도, 만인을 눈 어둡게 한 글도 아닌데 삭제되어 없으니 영...

  • 09.05.24 21:31

    저도 리허브 스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나쁜 인연은 다 버리고 좋은 인연만을 만나야 옳은가요?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는 일이 우리 불자가 해야할 행이 아닌지요?_()_

  • 09.05.25 08:54

    한국불교의 맹점이 스님이나 재가자나 확실한 근거에 의해 법을 전달하지 않고 개인의 판단에 의해 그냥 법을 전하는 것이죠. 마성스님은 찬불가 초기 보급을위해 전국을 누비신 스님이고 그 때 보급하시든 내용이 잘못 되었기에 잘못된 자료를 추적하여 확실한 근거를 갖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좀 있으면 논문도 발표하실 계획이라 하고요.

  • 09.05.25 09:14

    이광수 선생의 원작을 복원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왜냐면 원작자의 가사를 편의대로 바꿨기 때문이죠. 하지만 청법가는 법사에게 바치는 노래인 만큼 내용과 곡이 어울려야 하고 곡조도 불교의 정서와 어울려야 하는데 이 노래는 전혀 아닙니다. 참으로 부르기가 어렵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못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 작성자 09.05.25 11:30

    찬불가에는 물론 원작자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없이 다듬어지고 변행되어온 민요(아리랑)처럼 많은 불자들이 자연스럽게 유통시켜온, 또한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노래가 바로 찬불가라는 점에 우리 모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다만 하나의 주장이고 반론임을....

  • 09.05.25 09:19

    먼저 작곡하는 분들이 제대로 해야 하고 가사도 청법의 의지를 담아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옛 인연은 옛날 일이라는 말이고 새인연은 새로운 일을 의미한다고 할때, 옛일을 잊어야 하는지 아니면 옛일을 계속 이어가면서 새일을 도모해야 하는 것인지... 이광수 작사자의 의도는 옛일은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듯 합니다. 왜냐면 옛일은 예전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옛 믿음을 버리고 새 믿음을 가져야 하기에... 새 인연은 새로운 발심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자는 뜻이었다고 봅니다. 옛 인연이 무엇인지에 따라 가사의 내용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 09.05.25 09:25

    종민 사형님 주장대로 고쳐서 부른 '옛인연을 이어서...'라고 한다면 새인연을 맺어 옛인연을 완성하고자 하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옛인연은 낡은 믿음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법에 기울여야 한다는 부처님의 설법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쨋거나 저는 청법가는 의식의 노래로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예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간절하게 청법의 게송으로 대신하거나 사회자의 청법말씀으로 대신하고 법사께 삼배의 예를 갖추는 편이 낳다고 봅니다.

  • 작성자 09.05.27 12:45

    <옛인연=낡은 믿음>이란 근거는 무엇인지요?...나의 관점으로는, 부처님 법을 믿기 이전의 모든 인연(가족, 세상 기타 등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만약 낡은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맞다면, 춘원 이광수 선생이 옛인연이란 모호한 표현보다는 "옛 믿음을 잊고서 새 믿음을 갖도록....." 이렇게 분명한 표현을 썼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 09.05.25 12:01

    옛인연을 이어서가 변모된 과정 : 맨처음은 옛인연을 '잊도록'에서 어느사찰 법요집에서 잊도록이 '잇도록'으로 다시 그것이 불어기 쉽도록 '이서서'로 바뀐 것을 추적해서 자료를 갖고 있답니다. 부처님법과 관련된 것은 근거없이 변화되면 어서 본래자리에 앉혀야 된다고 판단합니다.

  • 09.05.25 12:06

    여기서 엣인연은 춘원 이광수선생께서 믿었던 기독교를 얘기하고요. 이는 다시 칠불통계게의 제악막작의 제악을 잊자는 의미이고, 새인연은 춘원선생님이 효봉큰스님을 인연맺어 큰스님과 맺은 불법을 말하고 중선봉행을 의미 한답니다.

  • 09.05.25 09:30

    또 한가지는 청법가를 받는 위치에 있는 법사의 입장에서 보면 청법가는 상당히 부담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이 구절을 듣는 순간 자신감이나 부족함을 느껴 설법사의 열정을 식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법을 청중에게 맞춰 해설하고 안내하는 것이 설법이어야 하는데 부처님처럼 진리를 선포하는 입장에 서게 하니 평범한 법사에게는 마음 편한 노래일 수가 없습니다. 옛인연을 잊든 아니면 이어가든 이 참에 청법가 없애기 운동을 전개하면 어떨지... 황당한 주장일 수도 있는데, 청법가 없이 법사에게 간단한 예를 갖추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 작성자 09.05.25 11:43

    공감되는 지적입니다.

  • 작성자 09.05.25 11:42

    노래는 마음이 정화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찬불가 역시 그런 점에 하나 더하여, 불교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고 불교를 더욱 아름답게. 더욱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전파하고 또한 그 마음 속 깊이 다가갈 수 있는 내용으로 작사 작곡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 작성자 09.05.27 09:03

    제일 좋은 방법은 춘원 이광수 선생을 무덤에서 불러내어, 왜 그렇게 작사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민심이 천심>이란 명언도 있듯이, <문법도 세월따라 변하듯이>, 불교 믿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불러온 데로> 인정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잊고서...."와 "이어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복잡하게 생각지 말고 간단히 봅시다. 세상은 외면한 채 혼자 득도를 향해 나아가는 소승불교와는 달리, <함께 부처님께로 나아가는> 대승불교 정신이 "잊고서"가 아닌, "이어서" 속에 들어 있지 않겠아요?....!!!

  • 09.05.25 19:51

    스님의 주장이 이해가 갑니다. 원문이 '잊어서'인 것은 분명하나 현재 모든 이들이 바꿔 부르는 만큼 현재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낳겠습니다. 그러나 옛인연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필요할 듯합니다. 스님의 주장대로라면 '이어서'도 문제가 없겠습니다.

  • 작성자 09.05.26 06:31

    마성스님의 주장을 충실히 대변하고 계신 일망타진님!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만약 청법가를 춘원 이광수의 기독교에서 불교로의 개종 상황(옛인연=기독교, 새인연=불교라는 식으로)에 국한 시켜서 해석하고 만다면, 그것은 이광수 혼자만의 청법가요, 기독교 믿다가 불교로 개종한 사람들만의 청법가이지 어찌 그것이 전체 불교인의 청법가가 될 수 있겠어요?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 09.05.25 13:53

    대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보면 부처님의 원음은 부처님의 원음대로 보존 전해야 되고 부처님과 관련된 찬불가 또한 원음으로 보전되어 전해져야 하기때문입니다. 감히 부처님 제자라면 그 누가 함부로 그 원음을 바꿔치기 할 수야 없다는 맘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민요 등과 비교할 수야 없지 않을까 합니다만...

  • 09.05.25 18:43

    불교를 깊이 있게 잘 모르는 신자입니다.저의 생각은, 찬불가 내지 이 청법가의 작사와 작곡자가 누군가 또는 이 작곡을 하신 배경이나 곡절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를때 그 노랫말의 의미가 가슴을 적시는 감동을 주고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가사에 더 비중을 줍니다. 아마,청법가의 "옛인연을 잊고서 새 인연을 맺도록" 이러면 인쇄오류라고 생각 할겁니다.( 말이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인연을 중요시하는 불교에서 옛인연을 잊고서.....

  • 작성자 09.05.27 09:02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09.05.26 12:20

    하늘님의 말이 저또한 맞다고 생각합니다 춘원 이광수선생의 개인 감정을 모든불자들이 동화되어 옳다 라는 말은 적합치않습니다 청법가의 옛인연을 잊는다는것은 단절이라 생각합니다 스쳐가는 인연도 중요시여겨야 진정 진실됨이 아닐련지요 또한 바른사회가된다고생각합니다

  • 작성자 09.05.27 09:02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09.05.28 12:38

    '옛인연을 이어서...' 이렇게 부르는 지금의 청법가는 우리가 지금까지 맺어온 어떤 인연도 다 나의 것이니 ..라고 생각이 되어서 저도 별로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덕 높으신 스승님' 이 부분도 저는 그렇습니다 어찌 되엇던 불자들에게 부처님법을 전해주시는 순간은 그 분을 덕높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상좌시) 존경의 예를 표하는것이란 생각입니다. 당연히 불자들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부처님 법을 전수받는 한은 그분이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최고의 스승이란 생각으로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 작성자 09.05.27 08:55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