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은 냅킨 사용법을 보고 그 사람의 매너 수준과 출신 성분을 가늠한다고 한다. 이는 냅킨을 사용하는 방법이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는 의미일 터이다. 아닌게 아니라 유럽의 귀족들이 냅킨을 적절히 써 가며 식사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이지 기품이 넘친다. 특히 포도주를 마시기 전 입 주변을 냅킨으로 우아하게 닦아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말하나 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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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들은 냅킨을 쓰는 매너에 서투르다. 아니 진실을 말하면 서투르다는 표현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고 실은 최악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식당에서 온돌방에 좌정하자마자 물수건으로 얼굴의 땀방울을 훔치며 비장한 모습으로 출전 준비를 서두르는 한국의 중년남성들을 보라!
어디 얼굴뿐이랴? 심지어 셔츠 단추 서넛을 주섬주섬 풀어헤치고 가슴팍의 땀을 훔쳐내는가 하면 바짓가랑이를 둘둘 말아 올리곤 장딴지의 땀까지 닦아 내는 철면피들도 있다.
냅킨 실수는 양식당에서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멀쩡한 냅킨 놔 두고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쓰거나 종이 냅킨을 청하는 일이 다반사다. 개중에는 아예 입김을 호호 불어 가며 냅킨으로 나이프나 포크를 꼼꼼히 손질하거나 막간을 이용해 안경알을 닦는 결벽증 환자와 유비무환파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심지어 수프나 음식을 엎지르고는 냅킨으로 닦아 내는 임기응변의 달인들도 있다. 냅킨이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해 마침내 걸레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종업원의 도움을 요청한답시고 냅킨을 휘두르며 구조신호를 보내고, 여성들은 여성들대로 트로픽 오렌지니, 스틱 블루니, 르윈스키 레드니 하는 이름도 요상한 원색 립스틱을 잔뜩 바른 입술을 순백색의 리넨 냅킨에 마구 문질러 주변 사람들을 대경실색케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냅킨 사용 매너에 서투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찍이 냅킨을 써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혹자는 "아니,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냅킨이 존재하지 않았나?"며 백안을 뜨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나라에도 냅킨이 엄연히 존재했다. 조선시대 임금님이 수라를 저수실 때 기미상궁이 둘러 드린 '휘건'이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임금님들이 사용하던 휘건이 후일 양반가로 전해졌으며 종국에는 여염가로 전해져 행주치마로 발전했다고 한다. 임금님들이나 사용하던 휘건이 양반가로 전해진 것은 식사를 할때 의관을 바로하고 심지어 두루마기까지 걸친 상태에서 밥상을 받았던 반가의 엄격한 식사 예법 때문이다. 이때의 휘건은 일종의 보호대였던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휘건과 냅킨은 쓰임새가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점이다. 냅킨은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서양문화의 산물로, 손과 입을 닦는 용도로 쓰였다면 휘건은 서양의 비브(bib), 곧 일종의 턱받이로써 옷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휘건이 이처럼 턱받이로 사용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엘리어스가 참으로 문화적인 식기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마지않은 젓가락에 숨겨져 있다. 생각해 보라! 한쌍의 날렵한 젓가락을 이용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식탁을 종횡무진 누비는데 도대체 손이 더러워질 까닭이 어디 있으며, 또 냅킨을 사용해야 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냅킨의 대중문화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바로 젓가락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양식당에서 죽 진열되어 있는 이름 모를 나이프와 포크류, 그리고 곱게 접혀져 있는 냅킨을 보고 주눅들 필요는 없을 법도 하다. 까짓 냅킨 사용법이야 익히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단, 사람들은 흔히 냅킨이란 용어를 만국 공용어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영국, 캐나다 등 일부 영연방 국가의 레스토랑에서 냅킨(napkin)을 청하면 종업원들이 뜨악한 얼굴로 기저귀를 들고 나오기 십상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들 국가에서 냅킨을 부탁하려면 서비에트(serviette)라 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