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계공 휘 돈대의 차남이신 휘 택규 宅珪< 자 (子) 순옥 舜玉 > 는 무진년 1868~갑진년 1904년 졸하셨다
슬하에 1남을 두셨으며 그 분이 휘 원구 이다
휘 원구 {源求 -> 개명 遠求 자 박여 博汝< 1896~1981>} 가 4살 무렵 대은 이수영 증조부님이 졸하셨고 부친은 대략 8세에 졸하셨고 조부이신 휘돈대는 세상에 나오시기 대략 10년전에 졸하셨다
부친이신 휘 택규는 그당시 척암 김도화 <항일독립운동가 유학자> 가 이끄는 독립군이 안동 일직면에서 일본군이 들어올때 척암 김도화가선봉장 이었으며 척암은 대은 이수영이 외손주의 학문등을 부탁한점등 유추해보았을때 그분을 따라서 활동을 하셨는지 아니면 친척이 있는 사촌마을 김수담 항일독립운동가를 따라서 가셨는지 아니면 질병으로 졸하셨는지는 이제는 파악하기가 다소 많이 힘이든다.
조부이신 휘 원구가 너무 소실적 일어났던 유방가 가문의 아픈 이야기이며 그렇게 조부는 안동 일직면 서산서원 밑 원골 소호리 지금은 망호리 맞은편 대략 350년정착지를 뒤로하고 북쪽 맞은편인 안동시 길안면 묵계서원 용담사근처로 모친이 사는 마을로 이주를 하였다
물론 큰집인 휘 완규는 안동 일직면 원골에 그대로 사셨다
더자세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게시하고자한다
조부이신 휘 원구는 원래 소실적 이름은 遠求였다고 한다 하지만 수은공파 종택의 큰집도 遠求이었고 그래서 족보등에 遠求 라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1960년대 말에 이곳 부산으로 이주하여 큰형이 원래 이름인 遠求로 개명하여 저자와 같은 한자인 원자라고 항상 나는 할배를 닮았다고 모두를 그렇게 불렸다
그 분 휘 원구의 첫번째 손녀따님은 고성이씨 휘 승박에게로 시집가셔서 3남 1녀를 낳으셨고 평생 대구 서대문 시장 골목 한복판에서 그렇게 청빈하게 사셨고 지금도 그곳에서 조그마한 도매업을 하고 사신다
평생 저자의 제일 큰 자형 (매형)이신 분이 한량이신 인연으로 인하여 슬하의 자식들 뒤바라지는 모두 큰 누이의 몫이었고 청빈의 인생사에 대한민국 수학의 최고의 권위있는 한분이며 미국에서도 인증해 주는 수학 응용해석학 분야의 이동원 교수를 낳으셨다
소실적 공부는 동원이 처럼 아니면 누나처럼 해야된다고 듣고 자랐고 나보다 2~3살 나이가 많아서 지금도 호칭에서 다소 힘든 우리조카는 현재 경북대 사범대 수학교수이며 학창시절 평생 일등을 한번도 놓친적 없고 평생 국가장학금만 받고 대략 26살쯤의 최연소에 가까운 나이로 교수가 되었다
현재 경북대 수학영재원 원장도 하면서 사회적 배려대상자 및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80년대 카이스트가 서울대를 넘어선다는 시점에 입학하여 대한민국의 항공우주의 기초분야인 수학연구로 우리별등 인공위성에도 헌신하였고 25~27살까지 서울대 교수직하려고 기다리다가 평생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지내다 여러군데 교수직 제안이 왔었지만 모친이 있는 경북대로 갔다
그렇게 휘 원구의 첫번째 손녀 따님은 고성이씨에게 시집가서 대한민국이 인증하고 보증하는 수학교수를 낳으셨고 또한 막내인 삼남은 연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항상 청빈하게 사시면서도 가족의 중대사가 있을때마다 만나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한번씩 이야기해 주시며 큰 삶의 희망을 주는 제일 큰 누이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동생 이대원 삼가 글을 게시하다
첫댓글아우님의 가족사는 감동 그 자체네. 인생의 굵고 가는 숱한 질곡을 헤치고 명문가의 후손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당당한 사실을 몸소 실천하며 오늘날 이 세상에 우뚝 선 자랑스런 한산이문 소호문중의 산 증인들이시네. 생활력이 강하시고 집안의 기둥같으신 분으로 훌륭한 아드님을 키워내신 아우님의 큰 누님 이야기를 접하니 마치 나의 누이들을 대하는 것 같아 공감하는 바가 많네; 나에겐 다섯명의 누이가 있는데 모두가 시집가서 남부러워하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진 나의 누이들의 숨은 공, 밖으로 드러난 내조들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소개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암튼 아우님의 흥미진진한 가족사를 지금까지 읽으며 소호문중에 대한 나의 이해와 지식도 몇 갑절 더 풍족하게 되었고 역사속에서 움직이신 위인들을 대하며 깨닫는 바도 컸다네.
좋은 주말 잘 마무리하시고 원기를 곧 회복하시길 바라네. 이곳도 지금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온 대지가 목마름을 잠시 달래고 있다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가뭄이 극심한 캘러포니아나 서부 주들같진 않다네. 천연재해가 거의 없는 복많은 주여서 그 점만은 항상 감사하게 여기며 살고 있지. ^^
형님 여기는 비가와서 지금껏 티비로 영화보다 잘까말까한 순간에 좋은 덕담을 보내주오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집의 누이도 다섯분인데 원래 여섯 다들 좋은데 시집가셔서 ㅎㅎ 이야기는 차차 올리면서 아직 조금밖에 서술을 못하였습니다 다음편은 긍암 이돈우와 대은 이수영 선조님이 마지막에 합작하여 지으신 용재 문집 및 정재집 그리고 정재 류치명 후손의 독립과 그영향으로 청송에 일으난 항일 독립운동으로 가볼까 합니다 너무 기록이 많고 이야기 서술을 다할 수 있을지 --'
첫댓글 아우님의 가족사는 감동 그 자체네. 인생의 굵고 가는 숱한 질곡을 헤치고 명문가의 후손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당당한 사실을 몸소 실천하며 오늘날 이 세상에 우뚝 선 자랑스런 한산이문 소호문중의 산 증인들이시네. 생활력이 강하시고 집안의 기둥같으신 분으로 훌륭한 아드님을 키워내신 아우님의 큰 누님 이야기를 접하니 마치 나의 누이들을 대하는 것 같아 공감하는 바가 많네; 나에겐 다섯명의 누이가 있는데 모두가 시집가서 남부러워하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진 나의 누이들의 숨은 공, 밖으로 드러난 내조들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소개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암튼 아우님의 흥미진진한 가족사를 지금까지 읽으며 소호문중에 대한 나의 이해와 지식도 몇 갑절 더 풍족하게 되었고 역사속에서 움직이신 위인들을 대하며 깨닫는 바도 컸다네.
좋은 주말 잘 마무리하시고 원기를 곧 회복하시길 바라네. 이곳도 지금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온 대지가 목마름을 잠시 달래고 있다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가뭄이 극심한 캘러포니아나 서부 주들같진 않다네. 천연재해가 거의 없는 복많은 주여서 그 점만은 항상 감사하게 여기며 살고 있지. ^^
형님 여기는 비가와서 지금껏 티비로 영화보다 잘까말까한 순간에 좋은 덕담을 보내주오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집의 누이도 다섯분인데 원래 여섯 다들 좋은데 시집가셔서 ㅎㅎ 이야기는 차차 올리면서 아직 조금밖에 서술을 못하였습니다 다음편은 긍암 이돈우와 대은 이수영 선조님이 마지막에 합작하여 지으신 용재 문집 및 정재집 그리고 정재 류치명 후손의 독립과 그영향으로 청송에 일으난 항일 독립운동으로 가볼까 합니다 너무 기록이 많고 이야기 서술을 다할 수 있을지 --'
예 형님 공감가는 부분입니다 저도 형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마 형님 아니면 저도 틈틈히 글을 쓸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꿈나라로 가고자합니다
참 보기 좋은 흐믓한 일입니다.저는 그저 고개만 끄떡끄떡 입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