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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웰컴투동막골 촬영지-평창 글/사진: 이종원 가히 동막골 열풍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할 지경이다. 개그프로그램에서도 단골소재가 된 지도 이미 오래다. 개천절을 전후해서 이미 800백만 관객을 넘어섰다. 쉬리(621만), JSA(621만)를 깨더니 조만간 한국영화 역대 3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 친구(818만)의 기록도 조만간 깰 예정이다. 실미도(1108만),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가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보니 역대 흥행 6위까지 영화들은 '친구'만 빼면 남북분단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이 흥행의 가장 큰 요소가 된 것이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통일을 향한 국민들의 열정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구나 금년이 광복 60주년이며 금강산, 개성, 평양까지 구경하는 화해 분위기가 이 영화는 성공발판이 되었는지 모른다. 특급배우 하나 없는 것이 오히려 이 영화의 순수성에 기여했다. '이념과 전쟁도 순수한 사랑 앞에는 허물어 질 수밖에 없다'라는 보편적이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영화에 몰입한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동막골 사람이 되어 함께 화해를 부르짖고 있었다. 남북이 함께 힘을 합쳐 외세와 싸우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감동이 큰 영화일수록 영화세트장에 가면 대개 실망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영상이 이렇게 초라한 시설이라니 분개마저 일 정도다. 얼마 전 영동의 '집으로' 촬영지를 갔을 때는 아예 세트장조차 허물어져 무척 서운했는데...... 평창의 동막골 촬영지는 그나마 평창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인해 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소품도 제대로 갖춰 놓았고 엑스트라로 참여한 마을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세트장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었다. 하긴 관람객들은 옛집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동막골 사람들의 정을 느끼고자 이곳을 찾지 않았던가? 그렇게 애써 준 마을 사람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세트장은 안말에서도 1.1 Km 떨어진 산속 폐광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넓힌 주차장에서 5분 정도 올라가니 세트장이 나온다. 생각한만큼 그 규모가 크지 않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숲이 우거지고 전신주 하나 없는 것이 영화세트장이 된 이유란다. 태백산맥 줄기의 산간 화전마을을 그리기엔 적당하다. 물론 충무로에서도 가깝고...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배경이 바로 촌장집이다. 촌장은 부락민 삶의 구심체 역할을 한다. 마을사람들을 평상에 몰아 놓고 남북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던 모습이 오래오래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동막골 사람들의 코믹 휴머니즘. 연합군, 국군, 인민군들은 동막골 사람들의 이런 면모에 반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촌장님댁 대청마루에 고추를 널고 있다.
스미스, 국방군, 인민군의 밥을 해 주었던 부엌 황토벽에 걸린 소품 옥수수 관람객들이 몇 알 빼먹었다.
걸려진 수수에도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골망태와 짚신. 인민군이 기거했던 촌장댁 사랑채. 이수하(정재영), 장영희(임하룡), 소년병(류덕환)이 국군과 대치했던 곳이다. 개인적으로 임하룡의 코믹과 감정연기가 놀라왔다. 이렇게 집집마다 안내판을 달아놓아 영화 속 배경과 명대사를 알려주고 있다. 국군이 거주했던 집이다. 영화속 가장 하이라이트는 촌장집 곳간이다. 감자, 옥수수를 저장하던 곳으로 국군과 인민군 대치중 실수로 수류탄이 흘러들어가 폭발하면서 지붕이 산산조각나 옥수수가 팝콘이 되어 동막골을 하얗게 덮고 있는 장면이 최고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동막골 사람들도 군인도 모두 신기한 듯 하늘을 바라본다. 반목과 질시가 한순간에 반전된다. 최근에 군청에서 소품을 입고 체험할 수 있는 소품코너를 만들었다. 영화속 주인공이 되어 나만의 연기를 펼치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다. (항아리에 1천원을 넣으면 된다. 어린이인 동구옷은 5백원 ) 여일의 옷과 리수화의 옷이 가장 인기 있다. 모놀가족들이 영화속 주인이 되었다. 좌로부터 오지사랑님, 마을사람(동막골 때 엑스트라를 했다고 함), 팔색조님, 청한님 ^^ 원작보다 훨씬 더 낫다. 모놀식구들의 연기모습을 한번 볼까요? 불꽃 튀는 연기대결. 팔색조님 리수화역을 맡고 있는 청한님...정말 잘 어울려요. 충무로에서 연락올 겁니다. 국군 표현철(신하균)역을 맡고 있는 오지사랑님..이번 영천답사 참여합니다..아는척 해주세요.
촌장댁 뒷편에 스미스가 머물던 방이 있고 그 위에 미군 스미스가 불시착한 비행기가 보인다. 나무로 절묘하게 만들었는데...잘려진 날개 한쪽에 나무판이 훤히 보여 영화속 감흥이 일순 사라진다. 연합군은 동막골이 적군의 포격지로 오인하고 스미스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침투한다. 동막골 남자들이 주로 모였던 장소인 철공소다.
순박한 동막골 사람중에 약초꾼 달수처럼 익살스런 캐릭터가 없다. 달수는 국군 신하균과 서재경을 동막골로 안내한다. 그의 집은 이새집으로 너와와 굴피집과는 다르다. 이새는 억새와 비슷한 풀로 지붕을 얹혔다.
동막골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고 가장 귀여운 역할을 맡은 사람은 동구다. 그의 아버지는 바깥세상을 보겠다고 집을 나간후 9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수화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원도 사투리가 옥수수 마이크에서 흘러나올 것 같다.
마을 우물은 여성들의 공간이다. '탄광에서 나온 물이므로 절대 먹지 말라' 라는 경고문을 보고 화들짝 놀라본다. 현실과 영화와의 차이다. 김선생님댁. 미전투기 조종사인 스미스와 서툰 영어를 나누었던 김선생...이 곳 마루에서 동막골 아이들을 가르쳤다.
마을 한가운데 수백년된 정자나무가 서 있다. 아쉽게도 스티로풀로 만들어 하얀 속내를 휜히 드러내고 있다. 이 나무를 제작하는데 무려 32백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나무는 동막골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고 화합의 장으로 설정된다.. 이 나무 아래서 국군, 인민군, 주민이 이념을 초월하고 서로 하나가 된다.
마을 잔치날 떡메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강원도에서조차 너와집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 더 간절한 것은 점점 잊혀져만 가는 산골사람들의 살가운 정이고 남북이 하나되는 모습이다. 마음 속에 꿈꾸어 왔던 장면을 만나기 위해 극장을 찾았고 박수를 쳤떤 것이다.
토종벌통 위에 놓여 있던 탈. 밤에 촛불을 넣어 두었다. 촛불이 움직일 때마다 ..방긋미소 짓는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주차장에는 막장터널이 있는데 '동막바람굴' 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막장에서 불어온다. 율치리는 송어회 명소인데 그것을 홍보하기 연못을 만들고 송어를 풀어 놓았다. 이곳에선 송어회를 떠 주지 않고 아래 마을로 가야 한다. "아줌마. 송어도 떠주지 않으면서 뭣하러 이 곳에 풀어놨어요?" "그럼. 송어 멕아지를 줄로 묶어야겠어요? 미탄면 특산물인 송어를 홍보할려고 그래요." 아이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 꼭 영화속 동막골 사람들 같다.^^ 주차장에는 간이 포장마차가 만들어져 있다.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 집도 바빠졌다. 강원도 사투리를 들으며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것도 꽤 운치있는 일이다. 영화속 주인공인 여일의 이름을 가진 옥수수도 보인다. 평상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글귀가 가득하다. 아직도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발빠른 평창군청에서 관광안내센타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말에는 3천명이 이 곳을 찾아 하도 북적거려 현재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하고 있다. 좁은 길에 버스가 올라오면 아래사람과 무전기를 연락을 취하며 교통정리를 할 정도란다. 영화 성공에 힘입어 평창군에서는 이 근처에 대규모 영상단지를 만든다고 한다. 영화전반부에 나온 절벽은 전남 해남의 두륜산에서 촬영했고, 가을철 순백의 메밀밭은 고창의 학원농장에서 찍어왔다고 한다. 계곡장면은 미탄면에서 물 좋기로 소문난 수하계곡에서 찍었다. 미탄면 한탄리에서 기화리, 마하리에 이르는 계곡은 동강과 합류한다. 영화를 그리며 드라이브 하기에 그만이다.
안흥찐빵 옛날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던 시절
선조들은 어렵게 구한 밀가루를 이용하여 막걸리를 숙성 발효시켜 찐빵을 만들어 먹었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안흥은 서울- 강릉간 필수적으로 통과했던 중간지점으로서 서울에서 출발하든, 강릉에서 출발하든 비 포장도로를 4시간 정도 달려오면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바로 안흥이다. 당시 안흥의 식당집에서는 점심준비를 위해 쌀을 2~3가마씩 씻어 밥을 준비하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나 영동고속도로가 놓이면서 그런 밥집은 서서히 사라졌다. 오로지
살아남은
것은 빵집이었다. 이들 왕래객은 다시 먼길을 가야하는 부담감 때문에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많이 먹을 수도 없었다. 먹거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도시락을 손쉽게 준비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안흥찐빵은 허리춤에 끼고 먼길을 가는 나그네와 함께 장도에 올랐던
최고의 도시락이었다. 감자, 옥수수와 더불어 찐빵만큼 강원도의 맛을 대변해주는 것이 어디 있을까? 따끈한 찐빵을 두손에 쥐고 한웅큼 베어 먹었다. 화려한 맛은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담백하고 우직한 맛이 목구멍에 자꾸 걸린다. 페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는 찐빵이 싱겁게 느껴질지 모른다. 찐빵을 통해 희미해진 옛 추억을 되시기고 싶다면 안흥은 찾을만 하다. "할머니..하루에 찐빵 얼마나 만들어요?" "되는 데로 만들어요." 찐빵만큼이나 대답이 무뚝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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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장님 오타 신고요~~한흥찐빵을 거쳐 가려면~~
어젠 그냥 지나처서 아쉬웠는데... 대장님이 그 아쉬움을 채워주시네요.ㅎㅎ.하지만 안흥찐빵은 한 상자 사가지고 오면서 먹었답니다.ㅎㅎ.
저는 동막골은 보고 안흥찐빵은 못 먹었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