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서둘러 섬진강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3월 24일 섬진강을 떠나왔으니 벌써 10일이 지났다. 서울에 있는 동안은 무척 바쁘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왔기에 병원, 모임, 봉사, 잡다한 일이 서울만 오면 기다리고 있다.
24일 날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아산병원 치료를 받으러 갔다. 25일 날은 내가 또 아산병원에 과민성장증후군이라는 이상한 병 때문에 소화기내과에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 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벌써 두 달 째 설사를 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25일 날은 자비공덕회 거사들의 모임으로 삼청동 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두 달에 한 번 식 모이는 거사모임은 매우 진지하다. 그동안 각자가 공부를 했던 경험을 서로 토론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모임에서는 도명거사와 대정 거사의 선문답이 하이라이트였다. 주역을 공부한 도명과 참선을 꾸준히 해온 두 거사의 선문답은 매우 진지하고 불꽃 튀는 토론이기도 하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간신히 중재를 하여 끝내야 했다.
26일 날은 수유리 향운 사에서 자비공덕회 기도법회와 지상스님의 법문, 점심 공양후 다과를 하며 법담을 나누었다. 이번 모임에는 의외로 많은 법우님들이 참석하였다. 기도는 진지했으며, 기도법회 후 점심공양과 다과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보살님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준비해온 정성스러운 공양은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다.
향운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토올라님을 바래다주다가 우린 다시 몇몇 보살님과 거사님들과 함께 옴레스토랑에 들려 난과 커리, 라씨, 찌아 차를 마셨다. 커리에 난을 찍어 먹는 것은 마루래도 진이 박힐 것만 같다. 네팔의 향기를 물씬 맡고 오는 것이다.
27일 일요일 날은 잠실에 사는 큰 조카가 점심을 먹자고 한다. 이번에 큰 조카의 딸이 사법고시를 1차 시험을 보았는데 붙은 모양이다. 서울대 수시 특차로 들어간 조카 손녀는 매우 영특하다. 우리는 1시간 먼저 올림픽공원에 가서 공원을 한 바퀴 산책을 하였다. 공원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고 산수유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놀라운 발견은 작년 12월에 까치들이 집을 짓기 시작 한 것을 보았었는데, 그 집이 멋지게 완성이 되어 있었다. 까치 부부가 다정하게 그 위에 앉아 까악 까악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알을 낳았을까? 궁금했지만 워낙에 높아서 볼 수도 없고.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12시다. 우리는 평화의 문 근처에 있는 후레쉬 하우스에서 조카 부부를 만나 돌솥 비빔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조카는 이번 31일 날 서울대 근처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서울법대 4학년에 다니는 조카손녀를 위해 이사를 가는 것이라고 한다. 조카의 향학열은 참으로 대단하다. 맹부 삼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서울대 가까운 곳에서 살겠다는 의지다.
오후에는 부부사랑모임에 참석했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은 부부사랑은 40년 가까이 만난 모임이다. 예술의 전당 앞에서 '세븐일레븐'을 하고 있는 안정근 회원의 가게에서 만난 우리는 우면산 등산을 했다. 예술의 전당을 통해서 대성사, 우면산 정상까지 등산은 정겹고 즐거웠다. 우면산 정상에서 과일과 떡을 먹고 다시 예술의 전당으로 내려왔다.
예술의 전당에는 분수대 앞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분수 쇼를 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만 해도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6시에 우리는 사당동 두부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부부사랑 모임은 만날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친구들이다.
28일 날은 서울병원에서 건강보험공단의 정기 건강진단을 받았다. 아침을 굶고, 위 내시경, 간 초음파 등 건강검진을 받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이거 안 받으면 안 되나? 공짜로 받게 하니(보험료를 내지 공자는 아니다), 아니 갈 수도 없고. 내시경을 찍던 의사가 위장이 틀어 졌다고 한다. 그래도 큰 지장은 없으니 걱정은 말라고 한다.
29일 날은 아내친구 부부 세 쌍이 다시 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잠실에 사는 향란 씨의 생일인데 향란 씨의 남편이 네팔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여 다시 간 것이다. 세 부부는 아내의 생일날이 돌아오면 함께 식사를 하는 전통이 언제부터인가 내려오고 있다. 세 부부가 앉아 수다를 떨며 먹는 점심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막역한 사이이니 부담도 없고…
30일 날은 고향친구 세 명과 함께 세운상가 골목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40년 넘게 만나온 죽마고우들이다. 세운상가 12번 출구에서 만나 우리는 목포집이란 식당으로 가서 김치찌개, 자반을 시켜 놓고 소주를 마셨다. 나는 대장에 탈이나 소주를 마시지 못하지만 이 죽마고우들과 만나는 시간이 즐겁기 만하다. 그중에 원석이라는 친구는 정말 모르는 것이 없다. 하기야 너무 많이 알아도 병이다.
31일 날은 아내가 심장내과 정규 검진을 받는 날이다. 3개월에 한 번씩 가는 심장내과는 아내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심장 이식 후 거부반응과 감ㅇ염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투병생활은 참으로 처절하다. 다행히 초음파와 혈액검사에서 모두 정상으로 나와 우린 큰 시험을 치른 사람처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내는 내분기과 검진도 함께 받아야 한다. 당뇨 검사와 인슐린 약을 처방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종합 병원이다. 그러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힘들어 하지 않으며,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라가는 아내가 고맙게만 느껴진다.
사실 아내의 심장내과 검진만 받으면 바로 구례로 내려가야 하는데 4월 2일 날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 딸이 결혼식이 있어서 할 수 없이 이틀 밤을 더 보내야 했다. 순천에 사록 있는 아내친구는 둘도 없이 지내는 절친한 친구다. 우리가 구례로 이사를 온 후 그 친구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4월 1일 날 월명수 보살이 왕오천축국전을 관람하러 가자고 전화가 왔다.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왕오천축국전은 4월 3일 날 전시가 끝나는 날이다. 그렇지 않아도 혜초의 왕오천천국전을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4월 1일 10시에 우리는 강변역에서 2호선을 타고 왕십리 역이서 중앙선 전철을 탔다. 한강을 내려다보며 전철을 타고 가는 기분은 꽤 멋진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촌역에서 내려 국립중앙박물관 서문으로 들어가니 월명수 보살과 선법성 보살님 두 분이 먼저 와 계셨다. 박물관이 옮긴 후 처음으로 와보는 곳이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박물관은 시원스럽게 보인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실크로드와 둔황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실크로드 여행을 다녀온 터여서 그 역사의 현장을 다시 보는 것이 더 진지하게 보였다.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참으로 귀한 보물이다,. 그러나 이 보물이 프랑스에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4월 2일 우린 마지막 행사로 압구정동 성당으로 가서 영애 씨의 딸 인형이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결혼식을 참석하면 언제나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신혼부부의 모습이 천지창조를 보듯 새롭다. 영애 씨의 단 하나의 딸 인형이는 넘 예쁘다. 그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드디어…
다시 구례다.
3일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중부를 타고 내려오는데 유영렬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함께 섬진강 꽃길 여행을 오는 중이란다. 그와 나는 인도여행을 인연으로 가끔 만나는 사이다. 우리는 구례읍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시 30분에 구례실내체육관 앞 선미옥에서 그를 만났다. 친구들 6명과 함께 온 그는 언제나 씩씩하다. 선미오겡서 다슬기로 점심을 먹으며 그동안의 담소를 나누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그들을 우리 집으로 초청하여 차를 대접하기로 했다. 섬진강을 따라 벚꽃길을 오는데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다. 아마 날씨가 너무 추워서 일주일정도 는즌 모양이다. 봉오리진 꽃망울이 터져 나오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수평리 집에 도착하니 보리 싹이 성큼 자라있다. 강낭콩도 푸른 싹을 내밀고 있다. 담장에 매화가 화려하게 피어 있고, 홍매는 벌써 시들고 있다. 화초 몇 개가 추운 날씨 때문인지 뭉개져 있다. 그러나 시골집은 이렇게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 대지가 숨을 쉬고, 화초와 꽃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돌틈에도 담장에도 푸늘 싹이 돋아나고 있다. 스프맃처럼 솟아나는 생명의 물결을 그 누가 막을 손가? 오, 아름답고 위대한 생명이여!
우린 유영렬씨 일행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을 보내고 아내와 나는 집안 청소를 하고 화분과 화초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108배를 했다. 아,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사하다. 오늘 이렇게 살고 있음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2011. 4. 3일 10일 만에 섬진강으로 돌아와서)
첫댓글 10일간 구례에서 서울로 만행을 다녀온 수행의 일기를 잘 읽습니다
병원엔 각하님 혼자만도 벅찬데 거사님의 검진 결과는 무탈하기를 빕니다
매달 정기적인 치료 상경 을 하는 각하님 내외의 지극한 투병 치료에 감탄입니다
가피 속에 가피속에 가피속에 쾌유하소서 합장
국립박물관 새 건물에는 가 보지도 못했지만 그 개관 기념 /혜초의 왕오천축 국전 전시회는
1300년의 타임머신을 타고 신비로운 경지를 탐색하십시요
오직 갈망하며 부러울 뿐입니다 월명수님 선법성님의 깊은 신심에 성불을 기원합니다
함게 하셨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섭섭했습니다. 월명수 보살 이번주에 섬진강 벚꽃놀이 옵디다.
하동에는 벌써 벚꽂 백리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옴 레스토랑 꾸준한 아용자님들의 네팔 맛 향에 익숙한 이야기 고맙습니다
울타리밑의 푸른보리와 갓모종한 양파를보니 어릴때자란 고향집 생각이납니다
사모님 모시고 서울에간 찰라님의 바쁜일상 이런저런 사람사는 정다운모습이
참으로 부러워 보입니다
참 좋은글을 읽었습니다
찰라님 사모님 수평리에서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