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보스톤대학 독문과 명예교수로 있던 왈드 씨 피풀 박사가 하버드대학을 나올 때
현대어 및 현대문학에 대한 논문을 제출하고 그때 대학에서 최고상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현대문학면에서도 최상의 논문이라 하여 소히이어상도 받은바 있는 우수한 작품이었으나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신학사상이 얼마나 젊은 문학청년 괴테를 감명케 하였으며
그가 노경에 이르러서는 스베덴보리가 보여준 새로운 기독교 사상에 얼마나 중심으로 확고한 신앙을 가졌었는가를
우리에게 였보여 준 것으로 본다.
필자는 피풀 박사의 자천을 얻어 아래에 그의 논문의 줄거리만을 실어 여러분의 참고가 될까 한다.
쿠노 프랑크 저 1905년 현대철학 461-462 파우스트 와 크롭스톡크에 있어서 `축복받은 소년들` 을 보면
크롭스톡크가 괴테에게 적어도 간접적으로 얼마나 작용하였는가는 세인이 잘 아는 사실이다.
괴테는 그를 거쳐 스베덴보리의 영계의 천사들의 성질을 알게 되고 `메사이아`에는 그의 이론을 체계화하기도 하엿다.
괴테가 직접적으로 스베덴보리의 저서에 접한 것은 `Fraulein von Klettenberg and Herder`을 거쳐서 였다.
그들을 거쳐서 괴테는 1774.7.27일 일기에 스베덴보리의 저 `천국의 신비` 449-454의 천국 및 천국의 기쁨을 친히 적어 놓기도 하였다.
그밖에 라베이델, 슈리펠등을 거쳐서 `천국의 기쁨으로 둘러싸여 있는` 영예로운 견신자와 알게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품기도 하였으며 육을 가진체 영체로 저 세상을 갔다가 다시 육으로 돌아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엇다.
헬델은 신학자였기 때문에 스베덴보리의 소명 및 입신관계를 샅샅이 알아보고 자기 비판도 썼었다.
그런 관계로서 괴테는 스베덴보리에 관한 한 헬델과 상의 하고 `필경은 스베덴보리는 지각적 재료가 없었던들 천국과 지옥이란 것을 내세울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괴테의 편지를 보면 스베덴보리의 사상이 끊임없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1771년 말에 헬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복수하려는 영인들의 천적 격노가 나의 주위를 소리치며 윙윙댄다`하여
스베덴보리의 영인관이 벌써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1775년 7월 25일 스톨벨그에게 ` 우리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선한영인들이 자기 영혼에게 달콤한 향유를 부어준다.`하여
모든 인간에게는 최소한도 선한 영인 둘과 악한영인 둘이 따른 다는 스베덴보리의 말을 인용하였으며
1781년 라베이텔에게 `나는 누구보다도 보이는 세계외에 보이지 아니한 저 나라에 마음을 기울이며 스베덴보리의 영계를 다 서 볼 심산이다`하였으며
1781년 10월 3일 후라우라트에게 `저나라를 보려면 어린이의 눈을 가지는 것이 상책이라` 하였다.
카라일이 번역한 월헴 메이스텔 제 1권 454를 보면 `내 영혼은 마치 몸을 떠나 생각하는 듯 영혼은 몸을 딴 사람같이 아니 마치 자기옷 같이 본다.`고 한 것은
스베덴보리의 영혼과 육체와의 교류를 문학적으로 잘 표현 하였다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말로 할 수 없는 감추인 힘이 있다고 말하는 신비가를 그에게서 발견 하였다고 놀란 것은 없다` 하였다.
또 Schlieper의 박사 논문에 괴테의`Fragment on the Cranium` 과 스베덴보리의 `동물계의 경제`는 비슷할 뿐만 아니라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 거쳐서 그렇게 병행 할 수도 없다 한 것은 아직도 기억에 새로운 것이다.
특히 괴테의 최대의 작품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파우스트에서는 스베덴보리의 이론이, 경험이, 사상이 그리고 괴테의 일생을 결정한 것이 충분히 나타나 있다.
파우스트 419행은 세상 지식만으로는 족하지 아니한 파우스트가 스베덴보리에게로 돌어선 것이었다.
`이 신비로운 책은 당신을 인도하는데 족하지 않은가?`고
424는 스베덴보리가 주님의 허락을 받아 저세상 영인들과 말할 수 있는 것을 인용하며
`영인들이 영인들에게 말하듯 능력의 빛이 나의 영을 빛나게 하리라`하였다.
442에는 지금까지는 영계가 인류사회에서 가리워 있었으나 이제는 스베덴보리를 거쳐서 열렸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그 성인이 말한 것을 안다. 영인들의 세계는 닫히지 않았다는 것을 네 감각이 둔하고 마음이 굳어 있어 학자여 일어나라 의젓이 적시어 보라`
483 및 512는 각 영인들에게 일종의 후광이 있는 것과 중세기 파우스트 사상이 가지고 있는 영을 영인들의 세계 아래에 두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스베덴보리의 사상은 제 1편에서는 이정도로 끝난다.
그러나 그가 파우스트를 쓸려고 한 원고에는 이보다 더한 것이 나타나 있으나 세상에 나온 파우스트는 중세게의 파우스트에 충실한 듯 보인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신비 1820에 이런 글을 썼다.
악령은 어떻게나 간교하던지 남을 추어주고 꾀어서 남의 참 사랑 속에 그들 자신을 스며들게 하고 일단 스며든 다음에는 그들을 산산이 깨틀려 한다고 있는데 괴테는 이에 대하여 거의 같은 뜻을 3794에
`슬프다 슬프다 내 자신이 아니고
나를 박살하려는 그 사상에서 내가 만일 자유하다면` 하였고
또 어려서 갑자기 죽은 어린 아이들은 부모 같이 돌보아 주는 천사가 받아서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11898에
정신과 감각이 흐리뭉실한 가운데
갑자기 너희 양친을 잊어버린
밤중에 태어난 소년들이
천사들의 도움을 얻노라. 하였다.
천사들은 두 겨레가 있어 그 중 신천국 천사들은 새로 어떠한 영인이 오면 떠나지 않으나 새로운 영인은 자기 부족을 알고 신천국 천사들을 떠난다(천지 450) 한 것은 12095에 노래로 썼고 12104에는 이 세상에서는 다달을 수 없는 것이 여기서는 모두 실재화 한다는 스베덴보리의 사상을 역력히 들어내고 있다.
지나간 모든 것은
다만 상징물
다달을 수 없는 것이
여기서는 실재가 되고
여기서는 우리를 이끄는
영원한 여성이 되어. 하였다.
중세기 가가구에 있던 파우스트가 가지고 있던 종말 사상으로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사후상태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중세기 파우스트에 충실하였던 괴테였지만 인생길 팔순이 넘은 그에게는 당위의 마지막을 무지와 비극으로 끝내지 않고 좀 더 희망적이며 비약적인 것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잘 안다. 괴테의 저 유명한 임종시의 마지막 말 `더한 빛을 달라` 는 말을, 어떤 전기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괴테가 임종시에 누워 있던 바로 그 머리 위의 창에 가리워 있던 휘장을 거두어 좀더 빛이 들어오도록 훤하게 하여 달라는 말일 것이라 하였다. 허나 피풀 박사는 그것이 아니였다고 한다.
심중에 스베덴보리의 내세관을 깊이 간직하고 있던 괴테는 어두은 방을 훤하게 하는 `더한 빛을` 말한 것이 아니고
그의 영적 눈이 떠 있었기 때문에 스베덴보리가 말한 하늘나라의 `더한 빛을` 이 세상 빛보다 1000배도 더한 천국의 화려한 빛을 보고 `더한 빛을 달라` 하였던 것이라 한다.
따라서 이것은괴테가 진심으로 스베덴보리가 보여준 새로운 기독교 사상을 굳혀 자기 신조로 믿고 있었던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정인보.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괴테보다도 더 뛰어난 사람인데 괴테의 10분의 1만치도 안 알려져 있는게 신비하지요.
그러게요. 언제쯤 빛을 발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저도 괴테라는 인물을 공부하는 가운데 스베덴보리의 영향을 받았다는것을 느꼈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참 많은것 같아요
네.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영향을 받으려고는 하지 않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