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나라에서
요네자와번으로 들어가자 번 내의 광경은 토지가 메말라서 폐허상태인 것이 눈에 덮여 있어도 잘 알 수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번민들도 전혀 생기가 없었다. 산도 죽었고 강도 땅도 모두 죽어 있었다. ‘이번 번주는 철저하고 엄격하게 개혁을 하려는 분이다.’라는 소문이 마을 사람들에게 퍼져 있었다. 철저하고 엄격하게 개혁을 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농민들을 더 짜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짜내도 이젠 우리들은 기름찌꺼기일 뿐이다….’ 번민들은 이렇게 조소하였다. 무엇보다도 죽어 있는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표정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벌써 죽어 있었다.
하루노리는 타고 있는 가마 속에서 식어 있는 연초쟁반을 보고 있었다. 하루노리는 그 재떨이에 눈을 멈추고 손에 그것을 쥐고는 탄식했다. ‘요네자와는 이 재와 마찬가지다.’ 차가운 재가 그대로 요네자와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아무 생각 없이 차가운 재속을 담뱃대로 휘저어 보았다. 그런데 재 속에 작은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노리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가마 옆에 있던 수행원들은 가마 속에서 하루노리가 무언가 훅훅 불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번주님,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불을 일으키고 있다. 가마를 세워주게.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가마가 서자 하루노리는 눈길로 내려섰다. 손에는 새로 일으킨 탄불이 담긴 재떨이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이 재와 같이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죽어있는 상태다. 어떤 씨를 뿌려도 이 재의 나라에서는 자라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기에 지금 번 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내가 바꾸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나로선 불가능해. 나는 좋은 취지에서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개혁안을 만들게 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번이 죽어 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 시점에서 깊은 절망감이 덮여와 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지. 그리고 담뱃대로 재속을 휘저어보았더니 조그만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불씨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남은 불씨가 새로 불을 일으키고 그것이 또 새 불을 일으킨다. 그런 것이 이 나라에서 반복될 수는 없는가, 라는 생각을 하였다. 너희들은 최초의 불씨가 된다. 그리고 많은 탄에 불을 붙일 것이다. 새 탄은 번사와 번민을 말한다. 젖어 있는 탄도 있겠고 축축한 탄도 있을 것이며 불붙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탄도 있겠지. 같은 모양일 리는 없다. 그것보다도 나의 개혁안에 반대하는 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탄들은 아무리 화동대로 불어도 한동안은 불이 붙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 한 개나 두 개쯤 불이 붙는 탄이 있겠지. 너희들의 가슴속에 타고 있는 불을 어쨌든 뜻이 있는 번사들의 가슴속에 옮겨주기 바란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가신들이 감동했다. 가신들은 하루노리가 갖고 있던 탄불을 받아서 그것을 작게 나누어 한 사람 한 사람 새로운 탄을 준비하여 불을 옮겨 붙였다. 탄불은 열 배 스무 배가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눈길에 타오르는 새로운 개혁의 불씨였다.
중신으로 하루노리를 마중나온 인물들은 치사카, 이로베, 스다 미쓰누시, 나가오 가케아키, 기요노 스케히데, 이모가와 노부차기, 히라바야시 마사아리 들이었다. 이로베는 하루노리의 입국보다 한발 앞서 요네자와에 돌아왔었다. 개혁의 취지를 요네자와번의 번민들에게 먼저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요네자와의 중신들은 에도에서 부탁한지 2년이나 되었는데 개혁안을 아직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중신들은 모두 하루노리가 달변인 찬밥파에게 속아서 번정개혁과 같은 중대사를 자신들에게 아무 상의도 없이 추진해 나가려고 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번주를 철저하게 훈련시키자.’ 모두들 그렇게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직 이로베만이 조금 동요 하고 있었다. 이로베가 하루노리를 가까이 보면서 느낀 것은, 분명 열일곱 살에 우에스기가를 계승하고 지금 열아홉 살에 불과한 어린 나이지만, 분별력과 행동의 신중함, 그리고 항시 미소를 잃지 않는 냉정함을 갖춘 매우 성숙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노리는 무엇보다도 번사들을 모두 집합시켜 요네자와번의 실태를 정직하게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번의 백서를 말로 발표할 요량이었다. 새 번주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알리려 하였다. 목욕을 한 후, 다음날 모든 번사를 성 안으로 집합시켰다. 하급무사들까지 불렀기 때문에 성 안은 번사들로 넘쳐났다. 전대미문의 대집합이었다. 하루노리가 이들을 보며 더욱 서글프게 느낀 것은 하급번사 대부분이 보수적인 중신들의 기색을 살피며 이 눈치 저 눈치로 눈에 띄는 행동은 물론이고 숨도 제대로 편하게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루노리는 말을 시작했다. “번은 현재 다이묘 반환의 궁지에 몰려있다. 그러나 나는 번을 반환하지 않겠다. 반대로 번정개혁을 실시한다. 번정개혁의 목적은 백성의 풍요에 둔다. 결코 번주나 번사, 번청의 부를 위하여 두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번주인 나에게 몇 가지 한계가 있다. 내가 대번 태생이 아니고 규슈의 소번(小藩) 태생인 것. 나이가 젊고 경험이 아주 부족하다는 것. 요네자와의 실태를 전혀 모르며 오늘 모인 너희들과도 처음 대면으로 에도 번저에서 같이 생활한 자들 외에는 거의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끝으로 너희들도 나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장애를 극복해 낼 수 있는 실력을 번주로서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지금 전부에게 부탁코자 하는 것은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협조요청이다. 나도 미약한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전부의 능력을 결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