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전 헌책방거리 찾기
1998년에 찾아간 뒤 여섯 해만에 대전 헌책방거리를 찾아갔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제대로 찾을까 걱정되더군요. 여섯 해 앞서 찾아왔을 때 걷던 길을 더듬어서 시장 골목을 지나갑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가느라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헷갈립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헌책방은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문을 닫았을까? 길을 잘못 들었을까? 등줄기엔 땀이 줄줄 흐르고,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듯해서 그만 돌아갈까 생각합니다. 골목 하나만 더 지나가 보자 하고 마지막으로 접어든 모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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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동구 원동에 자리한 `중앙시장' 끝쪽. 이곳에는 <청양서점>부터 여러 헌책방이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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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
| 이제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돌던 모퉁이 한켠에 책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뭐지?'하고 생각하며 지나치니 헌책방 몇 곳이 이웃해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구름다리 아래로도 책을 잔뜩 쌓아 놓은 헌책방이더군요. 아. 맞구나. 여기구나.
참 힘들게 찾았습니다. 대전 동구 원동에 '중앙시장'이라고 있는데, 대전 헌책방거리는 그 중앙시장 맨 끝쪽에 있더군요.
<2> <세계발행금지도서 100선>
중앙시장 끝쪽에는 <청양서점> <대광서점> <합동서점> <종로서점> <영창서점> 들이 있습니다. 지난날엔 퍽 많았겠으나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줄었어요.
그 가운데 맨 끝에 있는 <육일서점>을 구경합니다. <육일서점> 아저씨는 헌책방을 넘겨 받아 새롭게 꾸려온 지 몇 해 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이웃한 다른 헌책방과 견주어 무척 부지런히 새로 들어오는 책을 매만지고 다루고 꽂고 쌓습니다. 원동 헌책방거리에서 가장 활기에 넘치는 곳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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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일서점> 모습 가운데 하나. 구름다리 아래에 있는 빈자리에 책을 가득 쌓아놓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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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
| 구름다리 아래에 쌓아둔 책 사이에서 <송건호-민족통일을 위하여>(한길사, 1985)를 만납니다. <세계발행금지도서100선>(안춘근 편저, 서문당, 1974)이라는 책도 만납니다. <세계발행금지도서100선>을 가만히 읽다 보니 새로운 내용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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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발행금지도서 100선> 겉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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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당 | …이것은 프랑스의 여류 신문기자 마리즈 쇼와지의 < Un mois Chez lis filles >를 번역한 것이다. 1930년 11월에 일본에서 마쓰오 역으로 新時代에서 출판되었는데, 우연히도 가은 때 타카하시 역이 <파리의 뒷골목>이라는 제호로 平凡社에서 출판되었으나, 이 모두가 판매금지 처분되었다…<180쪽>
…전세계에 소개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 안데르센의 작품인 <동화집>은 사상적으로나 또는 외설적으로 발금되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1946년 일본 岩波書店에서 출판된 이 책은 일본 점령 미군사령부에서 일부 삭제를 명해서 사실상 그 전과 같이 재판으로 증쇄했던 책이 금서되는 형편에 이르렀던 것이다… <136~137쪽>
…지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좁은 문> <전원교향악> 등 많은 작품이 있는데 이 <私錢군들>은 1946년에 일본에서 미군정 포고인 국제저작권 50년설에 저촉되었던 것이다… <148쪽>
1970~80년대에는 일본책을 몰래 옮겨서 우리 나라에서 처음 펴낸 듯 낸 책이 참 많습니다. <세계발행금지도서 100선>도 이 혐의 그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듯합니다.
<3> 알뜰하게 꾸리는 젊은 헌책방
<육일서점>은 간판이 따로 없습니다. 좁다란 매장을 여럿 쓰고 있는데, 좁다란 매장마다 책을 따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책방 안에 따로 걸상이나 책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육일서점> 아저씨는 추운 날씨이든 더운 날씨이든 책방 바깥에서 책을 묶고 풀고 싸고 닦고 쌓고 헤치면서 일을 해요.
책값을 셈할 때 간판이 없느냐고 여쭈니 벽에 적은 글귀를 보여 주며 그게 간판이라고 말합니다. 헌책방 <육일서점> 벽 한쪽에는 매직으로 쓴 '육일서점'이란 글씨와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주일은 쉽니다"란 글씨를 적은 쪽지를 붙였고요.
간판도 없고 책값을 셈하는 책상도 없는 모습은 참 엉성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책은 여러 분야에 걸쳐서 알차게 갖춰 놓았고, 책 눈높이나 가짓수는 알뜰합니다. 대전을 찾아오는 서울 손님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하고 다른 곳에서 대전을 들르는 분들 가운데에도 단골이 많다는군요. 제가 책을 고르는 동안에도 서울이며 다른 곳이며 여러 곳에서 주문한 책을 택배 포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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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일서점> 간판(?)이랄까요? 벽에 적어놓은 글발이 책방 간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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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
| 여러 칸으로 나뉜 매장을 한 군데씩 들어가서 책을 구경합니다. <중국해학소설대계(2)>(이주홍 엮음, 평범사, 1975)를 한번 봅니다. <중국풍자소설대계>는 처음에는 1971년에 '동서문화사'에서 <중국해학소설전집>이란 이름으로 나온 책입니다. 중국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며 교훈성이 짙기도 한 옛날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이에요. 해학소설이면서 정치 풍자도 함께 담고 있는 책입니다. '공자와 도척' 이야기를 보면,
- 따지고 보면 이른바 성인이란 사람들은 모두가 큰 도둑놈을 위해 재물을 지켜준 사람들이다.
- 임금의 허리띠에 있는 쇠붙이를 훔치면 목을 베는데, 나라를 훔치면 제후가 된다.
이 같은 풍자의 글발을 만날 수 있어요. 재미와 교훈을 주는 한편 날카롭게 사회 현실을 비꼬는 이야기가 가득한 <중국해학소설대계>예요.
<4> 좋은 책 하나 찾는 마음으로
<에스테스 키포버-독점 소수의 손에>(박찬일 옮김, 까치, 1977)는 무척 재미있는 책입니다. 미국의 수많은 재벌들이 얼마나 독점 지위를 누리면서 시장 경제에서 대중들 돈을 긁어모았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독점 지위를 누리며 얻은 엄청난 이익 구조를 낱낱이 들어 밝히며 '겉보기로는 값싸게 만드는 물건' 같으나 속보기로는 '아주 높은 마진을 남기는' 현실을 세상에 알려 줍니다.
…원료 특허 사용료, 정제로 하여 병에 넣는 비용 등에 지출하는 비용을 고려하면 업존사의 총비용은 1알에 약 1센트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소매업자에게 1알에 8센트의 부담을 지웠다. 그리고 당뇨병 환자는 14센트를 지불했다. 업존사의 최고 비용은 1000알에 13.11달러였으나 소매 약국은 83.40달러를 지불하였으며 일반 대중은 139달러의 부담을 졌다…<39쪽>
마지막으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실>(이오덕, 한길사,1984)을 고릅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실>은 판이 끊어진 책입니다. 하지만 요즘도 헌책방에서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이오덕 선생이 살아 계실 때 엮어낸 글쓰기 길잡이책으로는 가장 뛰어난 책이거든요. 저는 이 책을 이미 읽었고 가지고 있으나, 이날 대전에서 만나기로 한 분에게 선사하고자 집었습니다. 지난날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던 대목 가운데 하나를 옮겨 보겠습니다.
…시는 국민학교 저학년에서 처음으로 쓸 때부터 온 몸으로 쓴다는 점에서 어른들이 쓰는 일반 시와 공통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는 것은 결코 시인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산문을 쓰게 하는 것이 소설가나 수필가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 것과 같다. 어디까지나 사람다운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하는 데서 비로소 시인이 될 자질도 형성되는 것이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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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일서점> 앞 모습. 아저씨가 부지런히 책 갈무리를 하는 뒤로 칸칸이 이어진 책방 모습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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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
| 그럭저럭 책을 고르고 책값을 셈합니다. <육일서점> 아저씨가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다음에 대전 들를 일이 있으면 꼭 다시 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며 가방에 책을 꾸려 넣고 발길을 돌립니다. 가방에 가득 넣은 책은 무게가 꽤나 나갑니다. 두 손으로 가방끈을 질끈 잡고 걷습니다.
대전 중앙시장 길을 되짚어 만나기로 한 분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가는 길에 시장을 구경하니 곳곳에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대전 또한 헌책방 여러 곳이 있는 곳만은 사람 발길이 뜸하고 한갓져요. 서울도, 인천, 청주도 그렇지만 대전도 비슷하군요.
사람이 살아가며 책을 꼭 많이 읽거나 늘 가까이해야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좋은 책 한 권을 즐기는 마음으로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즐겨 찾아가면서 마음밥도 먹는다면 더 좋겠다 싶어요. 몸을 생각해서 맛있고 알뜰한 밥을 챙겨 먹듯, 마음을 생각해서 아름답고 훌륭한 책을 챙겨 읽으면 어떠할까요.
헌책방에 가득한 아름답고 훌륭한 책은 늘 우리를 기다립니다. 다만 우리가 그 책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지를 모를 뿐이고,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 싶어요. 헌책방도 좋은 책을 알뜰히 갖추도록 애써야겠고, 우리들도 마음밥을 챙겨 먹는 마음으로 책 한 권 가슴 따숩게 안을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