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야 달려라
요즘 늦은 밤마다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을 즐깁니다. 기다렸던 개회식 장면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러시아는 자신이 지닌 예술적 잠재력을 모두 보여주려는 듯 보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습니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쌍뜨뻬쩨르부르그의 마린스키 등 발레의 본 고장답게 화려하고, 씩씩하였습니다. 한편의 러시아 서사시를 듣는 듯 장엄하고, 또 재기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이젠 올림픽이 스포츠 국력이 아닌 문화 콘텐츠를 경쟁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세심하게 소치의 풍경과 경기운영을 관찰합니다. 2018년 겨울올림픽이 바로 우리나라 평창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평창올림픽 조직위 관계자나 된 양 그냥저냥 신경이 쓰입니다. ‘우리나라에 러시아만한 겨울문화가 있던가’, ‘관중석을 가득 채울 관객이 강원도까지 올까’, ‘내 고향도 소치만큼 아름다운 영상이 비춰질까’, 이런 식입니다. 물론 지속적인 염려는 아닙니다. 당국 차원에서 걱정도 하고, 대안도 마련 할 테니 이내 무심한 관찰자로 돌아오곤 합니다.
역시 동계올림픽의 주인공은 선수들입니다. 아쉬운 부진이든, 놀라운 선전이든 흥미진진합니다. 그동안 한국은 겨울 스포츠의 주변국에 불과하였는데, 지난 뱅쿠버 올림픽 이후 부쩍 성장세를 탄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번 소치 올림픽에는 기대주도 많고, 그만한 가능성의 열매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500m, 1,000m 스피드 스케이트 경주를 보니 과연 첩첩산중이더군요. 그 빽빽한 인재의 장벽을 뚫고 메달 레이스를 경쟁하는 젊은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2연패를 한 이상화 선수는 얼마나 까마득한 노력을 했을까요?
어금지금 비슷한 차이에도 순위가 휙휙 바뀌는 것을 보면서 경쟁세계의 진면목이 느껴졌습니다. 결승선에 다다라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는 선수들의 천차만별한 눈길은 감동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기록은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페이스 메이커’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속도전은 결국 목표와 현실 사이의 틈을 좁혀나가는 자기 경쟁입니다. 4년 전에 이미 금메달을 딴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선수가 기를 쓰고 다시 4년을 준비했던 까닭입니다. 아직은 무명의 선수일망정 조금씩 간격과 거리를 좁혀가는 선수들에게도 응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규혁 선수는 무려 20년 이상 국가대표를 했다고 합니다. 16세부터 모두 6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다니 놀랍습니다.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규혁 선수지만, 올림픽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이미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나이가 한참 지났으니 소치에서 메달을 기대했을 리 만무지만, 그래도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으로 거인들의 숲 사이를 내달렸습니다. 대회가 끝난 후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 인생이 금메달이다”. 이규혁의 아름다운 도전은 곧 금메달감입니다.
안현수 선수를 두고도 이야기가 풍성합니다. 러시아 행을 선택한 배경은 둘째 치고라도, 사람들은 이미 러시아 대표선수인 그를 외면하지 않고 응원합니다. ‘빅토르 안’이든 ‘안현수’든 그가 보여준 발군의 쇼트트랙을 즐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 같으면 속 좁은 시선으로 ‘이완용 운운’ 했을 텐데 세상이 많이 너그러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러시아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이름 ‘빅토르 초이’, ‘나탈리아 리’와 비슷한 안 선수의 등장 때문에 위로를 받겠구나 싶더군요.
소치 올림픽은 이제 중반전에 접어듭니다. 당장 메달순위에 주눅들 일이 없습니다. 영화 ‘국가대표’의 주인공들인 스키 점프 선수들의 선전은 아직도 영화를 보는 듯 꿈을 꾸게 합니다. 그들은 영화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주인공인 ‘최흥철, 김현기, 최서우(용직), 강칠구’입니다. 그들이 러시아 하늘을 날아오르던 모습은 무려 다섯 번 째 도전의 결과입니다. 1998년 스키점프대 하나 없이 나가노 올림픽에 나가서 선전하던 모습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세상에! 겨울 올림픽에만 영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도 자신과 씨름하며 내일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합니다. ‘김준겸, 박소현, 박승규, 박승현, 서아현, 송한규’. 그리고 대학 입시를 향해 달음질하는 그들은 또 누구입니까? ‘김승현, 김연겸, 김한의, 박대현, 안종범 그리고 이현우’. 이들을 응원해 주십시오. 세상을 빛낼 좋은 친구들입니다.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시 18: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