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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대상 -----------------------------------
환생
김창훈
습기를 탈, 탈 털어내고 가볍게 타오르는 왈츠를 춰 봐요
손끝에 닿는 조그만 뭉치
주먹처럼 돌돌 말린 지폐의 표정
원망이 웅크리고 있어요
세탁기에 들어간 바지 주머니
세탁에서 탈수까지 되어 버린 이방인
꽉 쥐고 있는 주먹을 펴기 위해
조심조심 벗기는 만원의 껍질
수분 없는 손가락이 펴져요
조금 더 힘내 봐요
열흘 동안 걸려 있는 마침표에 곧 싹이 날 것 같아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할머니
입술이 벌어지며 엇박자의 리듬을 쏟아내요
할머니는 사소한 물음에도 재깍, 재깍 이빨을 부딪쳤고
할머니가 한 줄의 자서전을 읽자
시계는 크레셴도로 방점, 방점, 방점
마구 뛰지는 말아요
절뚝거리는 사슴
눈망울이 총알만큼 깊숙이 박혀 있어요
붕대를 감자 움츠리는 사슴 다리
사슴 뼈는 메밀꽃과 접붙이기에 안성맞춤
짧은 꼬리처럼 네 목소리는 분명하지 않아
어떻게 살아, 어디로 갈 거야, 대답이 없는 거야
너는 질문을 받지 않아
발랄하게 뛰쳐나간 사슴
보신 분 연락하지 마세요
도돌이표를 찍어요 붉은 꽃잎처럼 눈을 뜨고 돌고 돌아요
발바닥이 뜨겁게 처음부터 다시
부메랑
나에게는 수천 개의 입이 우글거린다
파프리카, 파프리카 소리를 내며 초승달이 돌고 있다
나는 아프리카, 아프리카라고 말하고
5분 후에 코끼리를 쓰러뜨렸다고
뻔뻔스럽게 세 번을 외친다
사람들은 나의 입에서 독초가 자란다는 사실을 모른다
열린 입은 자꾸 커지고 부드럽고 달콤한 것만 삼킨다
입안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구름은 바람을 따라 진화한다
사라지기를 바랄 뿐
말꼬리를 흐리고 딴 곳을 쳐다본다
거짓 문장을 읽을 때 마다 코를 만지고
눈은 커지고 눈동자는 흔들린다
건조한 눈썹에서 포유류의 웃음이 들린다
가식과 가학의 유래가 폴라니족*으로부터 나왔다는
가설을 되풀이한다
기역 기역 기역을 수천 번 발설할수록
베이킹파우더를 넣은 듯 입만 부풀어 오른다
입술에서 피가 난다 칼날의 단어로
증명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는 나를 넘어뜨린다
* 입술을 바늘로 찌르고 찔러서 문신을 새기는 부족
착각
왼쪽에 숨었다
오른쪽으로 숨었다
들키지 않았다
몰래 뒷이야기를 한다
뉴스에서 범죄자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렇게 단언했고
그렇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마스크가 사라졌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늑대처럼
얼굴은 흰색이나 검은색 또는 투톤으로 변한다
거울은 보이는 얼굴만 보여준다
웃고 있는지 슬퍼하는지 나만 알 수 있다
거울 앞에서 궁금하지 않으면서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입김을 불어넣으면 음모라는 글자가 새겨진다
내일은 비가 내린다
얼룩을 지울 수 있을까
먹구름이 몰려와도 상냥하게 웃을 수 있을까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오보였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골목에 쓰레기가 쌓여간다
나는 쓰레기 사이에 숨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신神은 모른 척 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웃는 사람이 철쭉보다 더 많아지기를
드디어 긴 겨울이 떠났습니다. 덤덤했으나 기뻤습니다. 전화가 몇 번 왔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흐릿한 봄날을 생각하다 놓쳤습니다. 봄의 오후를 걷습니다. 철쭉 동산이 연분홍색을 내뿜습니다. 우리는 꽃만 봅니다. 냉해로 인해 피지 못한 무리가 사람보다 많습니다. 나는 무리에게 말합니다. 그래도 내년이 있으니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많은 계절을 보냈습니다. 가끔 눈길을 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지만 결과는 모두 실연이었고 시련이었습니다.
땅속에는 빛난 서러움이 자라고 있습니다. 분홍의 계획이 묻습니다. 이 계절은 어디입니까? 어디에서 멈춰야 합니까? 앞으로는 화려한 철쭉이 사람보다 더 피기를, 웃는 사람이 철쭉보다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시에 대한 문학성과 진정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정성을 다해 시를 쓰겠습니다.
먼저, 지금까지 저를 인도해 주신 당신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동안 여러 시인을 만나면서 시에 대한 갈망이 더해졌고 그들의 한마디가 나의 서툰 문장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일일이 호명할 수 없지만 감사의 마음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주신 박미산 시인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갈 곳 잃은 손을 잡아주신 나희덕 선생님, 황정산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와산문』 장병환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영신의 공동체를 위해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동역자들에게 쑥스러운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또한 시 합평을 함께한 예비 시인과 이미 시인이 되신 분들께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전해 드립니다. 등단보다 그 뒤가 더 중요하다는 말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성용, 홍옥남님 그리고 정일영, 박금자님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멘토가 되어줄 정민우, 김규리, 김두영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시와산문문학회를 위해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동반자의 꿈을 펼쳐보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시부문 우수상 -----------------------------------------------
네 번째 계단에 앉아
박혜경(박 숲)
햇빛요양원 204호에 월급을 털어 넣던 날 나는,
당신의 집이 있는 루르마랭에 갔다
좁고 긴 골목으로 죽은 계절이 뒹굴고
햇빛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잘게 부서졌다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자줏빛 낡은 대문
나는 네 개의 계단을 올라 당신의 문 앞에 섰다
집주인이 된 적막이 강하게 나를 밀어냈다
뒤집힌 물음표처럼 엉덩이를 네 번째 계단에 묻고
나는 볼록렌즈가 되어 당신의 말속에 스민
알제리의 햇빛을 조각조각 모았다
엄마의 방은 알제리의 태양보다 뜨거웠다지
어느 틈엔가,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다는 당신이 나타나 소리쳤다
맞장뜨란 말야!
소스라치게 놀란 내게
잇새에 문 담배를 잘근잘근 씹으며 당신은 침묵,
그게 부조리란 말이지!
조롱기 가득한 독소로 내 몸 어딘가를 할퀸 뒤 사라졌다
요양원 204호와 대척점인 당신의 집 루르마랭!
당신을 쫓아 긴 회랑 같은 골목을 뛰었다
군데군데 박힌 조각난 햇빛처럼
날카롭게 빛을 내던 당신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뫼르소*가 되어 오랫동안
당신의 집 앞 네 번째 계단에 앉아
여름의 정수리를 헤아리다
무거운 그림자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도,
그제도,
엄마가 죽었다는 간병인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이름.
하프문 베타
아몬드 잎 위에 잠든
당신의 꿈을 산책해요
입술 틈새로 방울방울 호흡을 나눠요
수초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
서로의 파동이 지나가요
당신이 지느러미를 펼칠 땐
물 위로 뜬 반달이 출렁거려요
물결무늬 곡선의 유려한 몸짓이 다가와요
푸른 빛 미끈한 꼬리 사이로 감춘
날카로운 가시의 비밀!
내 등은 꼿꼿하게 긴장해요
우리는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없어요
손을 잡고 수초 사이를 유영하며
완성된 원을 펼치는 춤은
꿈에서나 가능하죠
각자의 방에는
유리알 눈동자가 굴러다녀요
당신은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베타의 습성*을 지녔어요
당신의 꼬리에 새로운 반달이 출몰해요
바닥에 깔린 조약돌의 기분을 아시나요
거품으로 지은 집이 물 위를 떠다녀요
찢겨나간 지느러미의 아픔을 당신은
제대로 느꼈어야 했어요
우리는 이제,
서로의 꿈을 산책하지 않아요
유리 벽 너머 당신의 플레어링
숨이 막혀요
나를 할퀴고 물어뜯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 베타는 종족끼리 합사하면 서로 죽도록 물어뜯고 싸운다.
더욱 치열하게, 단단한 작품을
쓰는 것으로 보답할 것
빛을 향해 손을 뻗으면 시가 있었다. 밤 문턱 너머 골목에 서면 차가운 바람의 살갗처럼 또 시가 달려들었다. 오래 품어온 비밀이 저 혼자 헝클어지고 멍울지고 영글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올려다본다. 모두 비슷하면서 서로 다른 나뭇잎들. 반짝이며 흔들리는 한 장의 나뭇잎을 표현하기 위한 단 하나의 언어.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내게 시를 쓰기 위한 최고의 각성제였다.
몇 해 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뒤, 빠른 속도로 기억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당신이 지닌 화양연화의 순간은 기억의 주름 어디쯤 담겨 있을까. 전소全燒된 어머니는 떠나간 자들의 뒷모습처럼 소슬하고 아련했다. 어머니의 현재는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었다. 문득 어느 날 뭉텅 사라질지도 모를 내 기억들을 걱정했던 그 부조리한 순간.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시적 단상이 끝내 울음처럼 터졌다.
남몰래 가꾼 정원처럼 묵묵히 물을 주고 가지를 치며 그렇게 혼자 시를 보살폈다. 햇빛 아래 내밀고 싶었지만, 자라지 못한 화초처럼 늘 부족했고 부끄러웠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궁금했던 시기, 이제 거의 다 왔다며 용기를 주었던 이영주 시인. 그 한마디는 최면처럼 시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부추겼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최고의 멘토가 되어준 이영주 시인께 감사 인사 전한다.
짧은 여행처럼 내 곁을 스쳐 간 몇몇 시인들의 열정을 떠올린다.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는 별처럼 묵묵히 시를 위해 사는 그들의 한결같은 삶을 동경한다고 고백하고 싶다.
여전히 무르익지 못한 나의 시 쓰기에 적당한 토양과 바람과 태양을 선사해주신 ‘시와산문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부족한 작품을 세상 밖으로 꺼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 올린다. 더욱 치열하게, 단단한 작품을 쓰는 것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봄이 무르익었다. 두꺼운 옷과 침구를 세탁하고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창문을 활짝 열어 폐부 깊숙이 봄바람을 들인다. 옥상 빨랫줄에 걸린 셔츠처럼, 어쩌면 나는 꽤 긴 시간 하얗게 펄럭일지도 모르겠다.
지구 공동설
김성민
중환자실에 누워 있으면 우주를 들이마시는 기분이 들어 천정은 매일 환하고 사람만 사멸하거든 침묵이 아무리 허공을 멸균해도 형광등은 플라스마 비말을 펄펄 흘리며 온 병실을 오염시켰지 누구도 이 전이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어 빛은 입자이면서 파장이니까, 어쩌면 빛과 사람은 같은 패턴으로 생존해왔는지도 몰라 자기가 무슨 상태인지도 확신할 수 없어서 평생을 깜박거리지
환자들에게 천체망원경이 지급되면 좋겠어 너무 오래 누워 있으니 중력이 뭉쳐서 삶의 뒷면까지 관측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거든 우주는 원내 감염이 심각한 병실일 뿐이지 어떤 진통제를 투여해야만 번식하는 억겁을 무한정 받아내는 숙주가 되는 건지
45억 년 동안 전신 마비에 걸린 지구에게 마비는 곧 정신이었지 우주는 육체를 계속 돌려주었고 낮의 감각이 밤까지 잠열을 쑤셔 박았지 그저 뱃속으로 침강하는 지진파를 한 음절씩 곱씹으면서 머리털까지 나부끼는 자전을 느끼며 의식의 명암이 퇴적될 때까지
우주를 골라 태어나는 천체는 없지 살을 오래 멈추고 겪는 죽음이 그럴 거야 속옷 밑에서 마비의 진물이 흘러나오면 그때 이런 질문을 하게 돼
지구의 속살도 온통 녹아있나요?
방 탈출 게임
아가미를 움츠리며 게가 쪽방에 살을 넣어요
아무리 말려 비틀어도 개폐되지 않는 외골격 고독들
이 밀폐를 탈출하기 위해선 겉부터 개봉해야 하죠
갑각에 입주한 삶은 노환과 평수를 짜 맞추지 못해요
내부가 외부로부터 흠집나요
웃자란 그늘이 쩍쩍 벗겨지는 방
인기척에 놀란 게들 화들짝 움직임을 감춰요
등판 밑의 응달이 불면으로 넓어져요
방의 모든 영역이 검게 잠겨요
게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생애를 탈출했는가, 같은 질문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적막과 체취로 가득한 방을 허우적거려요
깜깜하면 육신은 똑같죠
게는 단단했다가 물컹해지며 죽어요
제 흠집에 이불을 끌어 바르는 손놀림이
열 개의 부속지를 뚝뚝 꺾어요
이번에는 단단해질 수 있을까요
등딱지에 올라타는 광택들 혼탁해지고
오래된 속살이 밤새 생사를 탈피해요
열 개의 다리는 없고
여러 개의 관절만 분절된 노년
옆걸음만 부축하며 곁눈으로 걷는 생명들
껍데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입맛을 찾아
바닥을 긁어요
절박을 짊어지고 시와 인간,
세계의 무게를 내려놓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서 시를 쓰며 영혼의 공복을 달랜 시간이 길었습니다. 한때는 사람이 무서웠습니다. 타인의 내밀을 발굴하는 데 익숙하지 못해 세계와 오차를 겪은 적이 많았습니다. 경제적 우세종으로 살 수 없는 삶을 치르며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 낙담한 시절도 깊었습니다.
병원 입원비 청구 문자, 체납액 독촉 전화만 가득하던 일상 속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햇빛을 한 번 바라보고, 거울 속 제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있음을 들이밀던 공허한 눈부처가, 오래 묵은 울음의 장력을 동공 속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날,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일시에 마을 회관이 개방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다시 간격을 좁혔고, 서로의 등을 긁어줄 권리를 돌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등이 세상을 등진 후였습니다. 그렇게 전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후략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를 다시 쓰게 된 이유입니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혼자 겪는 삶이었다고 쓸쓸히 말씀하던 주름진 눈매를, 응급실에 누워 생사를 처방받는 이들의 온기를, 도로에 버려진 유기 동물의 갈 곳 모를 발버둥을, 전쟁이 포탄으로 뭉개버린 몸서리를, 인간이 망쳐버린 것들을 인간이 재건해나가는 의지를 채록하겠습니다. 끝끝내 남은 것들을 표기하겠습니다. 시의 표의는 유기된 것들이 내뱉은 마지막 표음으로부터 후속하리라 믿습니다.
부족하고 허점 많은 저를 시인으로 호명해주신 계간 『시와산문』 심사위원 나희덕 선생님과 황정산 선생님, 장병환 이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인생의 편차를 함께 견뎌준 내 영혼의 손잡이 이선영에게 여생의 애정을 헌신하겠습니다.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시와 삶을 격려하고 지지해준 박신우, 제 글의 내력을 다독여주신 차진명 선생님, 우리 글쓰기 모임 「유난」 회원들 고맙습니다. 어려운 시절 동고동락한 박성환, 오케이민 실장님들, 제 생활과 인격까지 보듬어주신 고래실 이범석 대표님, 『월간옥이네』 식구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절박을 짊어지고 시와 인간, 세계의 무게를 등에서 내려놓지 않겠습니다.
에세이부문 대상 -----------------------------------------------------
빅뱅
김영욱(김이응)
꾀죄죄한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든 장터 초입, 로켓 모양의 무쇠 덩이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땡전 한 푼 없는 아이들의 눈동자도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달달한 냄새를 참지 못해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 곧 있을 로켓 발사를 앞두고 긴장감이 맴돈다. 어느새 회전 속도를 높인 무쇠 덩이는 벌겋게 달아오르고 흰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다. 장을 보러 온 어른들은 귀를 막고 멀찍이 돌아가고, 아이들은 눈까지 질끈 감고서 뒷걸음을 친다. 속으로만 외쳐대던 카운트다운 숫자가 작아지길 여러 번, 마침내 대폭발음이 시장바닥을 뒤흔든다.
그야말로 빅뱅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쇠 덩이 문이 활짝 열리면서 급속으로 연결된 철망 자루로 뜨거운 튀밥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고작 쌀 한 바가지를 쇳덩이 기계 속으로 밀어 넣었을 뿐인데, 쌀 한 말쯤 부피로 부풀어 오른 튀밥이 쏟아진다. 주인아저씨가 결정적 순간에 무쇠 로켓의 걸쇠를 잡아당기며 ‘뻥이요’라고 외쳤지만, 눈앞에서 직접 본 광경은 전혀 뻥이 아니었다. 이 정도 뻥튀기라면 쌀, 보리, 옥수수, 콩알만 잔뜩 부풀릴 것이 아니라 코흘리개의 오백 원 동전도, 독거노인의 다섯 평 쪽방도 뻥뻥 튀겨주면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내가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던 눈 깜짝할 사이, 아저씨가 무쇠 덩이를 비스듬히 기울이고도 한 자루에 전부 다 담을 수 없던 튀밥을 플라스틱 소쿠리로 옮겨 담았다. 이윽고 삽시간에 달려든 아이들의 시커먼 손들이 잽싸게 한 움큼씩을 낚아채 갔지만, 아저씨는 그 아이들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저 허겁지겁 입안으로 뻥튀기를 쑤셔 넣고 또다시 소쿠리로 향하는 날랜 손등을 빗자루로 툭툭 쳐낼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룩했던 양 볼이 홀쭉해진 아이들은 혹시라도 입술 가장자리에 튀밥 한 알이라도 붙어 있을까, 혀로 한 번 쓰윽 훑고는 아저씨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아가고 있다. 나도 서둘러 그 틈바구니로 끼어들어 온기가 남아 있는 튀밥 한 봉지를 사 들고 무리에서 벗어났다. 겨우 천 원과 맞바꾼 것이지만, 두 팔 가득히 안기는 튀밥 한 봉지만으로도 부자가 된 것만 같다.
무려 132억 원, 글쎄, 이 금액은 동그라미를 몇 개나 쳐야 도달할 수 있는 숫자일까? 이 정도라면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열심히 일해도 가져볼 수 없는 천문학적 금액이건만, 몇 해 전 불꽃 튀는 경합을 벌인 지 고작 십여 분 만에 김환기 화백의 <우주>가 이 가격으로 낙찰되었다. 이 작품으로 말하자면, 화가가 고단하고 외롭던 뉴욕 시절에 캔버스 바깥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푸른 동심원들을 점묘로 그린 추상화다. 점 하나에 그리운 이의 얼굴과, 점 하나에 고향집과, 점 하나에 화가 자신이 살았던 신안 앞바다의 섬을 담아내려 했으니, 작품 속의 동심원이야말로 절절한 그리움을 발신하고 수신하기 위해 화폭 속에 세운 대우주 안테나라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얼마나 사무치는 마음이기에, 몇 백 몇 천 몇 만 개의 점들을 찍으며 무엇이 되었든 꼭 다시 만나길 기원했을까? 어쩌다 이 세상은 돌아가신 화가의 바람은 아랑곳없이 그 간절함을 천문학적 금액으로 사고파는 곳이 되어버렸을까?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눈이 큰 여배우가 그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광고가 자주 보였다. IMF의 광풍으로 시중은행 대출이 막혀, 중산층이 도미노로 무너지고 쓰러진 직후였다. 내게도 그즈음에 집과 공장을 전부 잃은 가까운 친척이 있었으니, 그 말은 소위 루저들을 격려하는 덕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그것은 불난 집을 부채질하는 조롱만 같아서 두 볼이 화끈거렸다.
지구 종말 운운하던 세기말적 소문을 뒤로 하고, 새로운 각오로 다 함께 문을 연 21세기의 1분기도 어느새 거의 끝나가고 있다. 그 사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가상화폐를 주고 파는 인터넷 장이 들어섰다.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닌, 핸드폰을 손에 쥐고 태어났다는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성장해 투자한 비트코인이 몇천, 몇만 배로 부풀어 올랐고, 그들은 신흥 부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뻥튀기 사건이자, 시쳇말로 ‘대박’난 전설이었다. 뒤늦게 대박의 판타지를 쫓는 인간 개미군단이 떼 지어 주식시장이나 가상화폐시장을 기웃거리며 은행에서 빌린 돈까지 쏟아 부었지만, 현실에서의 그곳은 고급정보를 쥔 자들에 의해 운용되는 롤러코스터가 기다리고 있는 이상한 놀이동산일 뿐이었다.
돌이켜보니, 세기말에 등장했던 ‘부자 되세요’란 광고문구 안에는 어떻게 부자가 되길 바란다는 노하우가 담겨 있지 않았다. 반면, ‘대박 나세요’란 신종 덕담 안에는 땀 흘려 꾸준히 일하는 노동보다는 제대로 된 타이밍에 제대로 된 종목을 노리는 투자의 기술을 독려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후자를 따르는 이들에겐 대박이냐 쪽박이냐, 그것만이 결정적인 세계관이다. 게다가 빨라진 인터넷 덕분에 대박 신앙 역시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처럼 ‘대박 첩경’을 바이블로 섬기는 신도들에게 점 하나를 다짐하듯 찍으면서 점점이 소망에 가닿으려는 간절함은 무당에게 쌀점이나 물으러 가던 어머니 세대의 푸닥거리로 치부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래전 자신을 흑우黑牛라 부르는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 선생의 드럼 연주를 무대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손가락 사이의 살점이 찢어져 너덜거릴 정도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소리를 단련해 온 선생의 드럼에서는 묵시록의 검은 비가 내렸다. 그 비는 인간이 사라진 세계 이후 쌀 한 톨 나지 않는 불모의 벌판을 내리치는 무서운 채찍이었다. 그날 밤 이후 나는 쌀 한 톨도 예사로 볼 수 없었다. 극미각極微刻의 세계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생명이 빅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도 개수대에 떨어진 쌀알들을 주워 담으며, 이것들도 하나하나 소중한 별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물며 밭에 씨를 뿌리고 곡식이 여물어질 때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구닥다리 마음이야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의 283자를 새겨 넣는 마음과 기실 다르지 않다고 믿게 되었다.
여전히 삼오일이 되면 마석우리엔 왁자지껄한 난전이 펼쳐진다. 장터 한쪽 구석에는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세워지고 뻥튀기 아저씨도 그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땡볕이 이글거리는 한여름에도 예외 없는 성실함이다. 그런데 MZ 세대는 얼씬거리지도 않고, 아저씨의 하루벌이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단내 섞인 열기가 후끈거린다. 그 와중에도 섭씨 200도가 넘는 쇳덩어리를 만지다 입은 아저씨의 화상 자국에 자꾸만 내 눈길이 머문다. 고마운 손이다. 저 손으로 바퀴 달린 작은 화로에 장작불을 붙이고 무쇠 기계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하면, 내 상상 속의 블랙홀도 덩달아 빙글빙글 돌아간다. 아저씨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잠시 뒤면 암흑물질 속에서 태어난 별들을, 생명을 품고 있는 따뜻한 씨앗들을 맞이하게 될 터인데, 얄궂게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번에도 ‘뻥이요’ 소리가 들린 듯하다. 그러나 아주 먼 데서 온 소리인 듯, 이내 눈앞이 뿌예지면서 먹먹해진다. 이건 또 무슨 징조일까? 지구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데 가슴까지 뻥 뚫린 듯, 후련해지는 이 느낌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눈을 감으니 어느 새카만 은하계로 초롱초롱한 샛별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있다. 생명 탄생의 위대한 빅뱅이다.
검질을 그리는 여자처럼
계속 쓰겠습니다. 보잘것없고 하찮은 글이라도 누군가는 사람의 마음을,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많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글이 발견되고 읽어주실 분들을 만나게 될지 어떨지 몰라 안달복달했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임하지 못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난 몇 해 동안 삶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개인적인 아픔의 시간을 만났습니다. 언젠가는 누구나 결국에 맞이하게 되는 죽음의 곁을 지켜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삶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몸을 낮추고 시선을 낮은 곳으로 돌리고 여리고 자그맣고 사사롭고 소소한 것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 자신을 내려놓고 그들과 더불어 낮은 몸부림으로 살아가는 삶을 기록하라는 정언명령을 받은 때가 바로 그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저는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제주 섬 속의 또 다른 섬인 우도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제가 머물던 창작스튜디오 옆방에는 화가 한 분이 조용히 검질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검질이란 그 쓸모를 세상사의 잣대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뿌리째 뽑아져야 마땅한 잡초인데, 화가인 그녀는 매일 아침 녘 산책길에서 발견한 이름 모를 검질들을 화폭에 옮겨 심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방에 초대된 저는 그녀가 옮겨 놓은 캔버스 속의 검질들이 제각각 다른 개성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쓸모나 가치란 것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일시적인 것인지를 알아채게 되었고, 그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인간의 손에 의해 함부로 베어 버려지는 숨탄것들의 운명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운명은 낮게 움츠려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 곁의 타자들의 삶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을 뿐인 개개의 삶들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고유한 무늬는 감히 그 어느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대신 죽어줄 수는 있어도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누군가는 살아 있으되 자신의 아픔을 고백조차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언젠가부터 그런 아픔에 눈이 갔습니다. 그런 아픔 뒤에 담긴 사연을 좀 더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며 꾸준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왔던 저를 아무쪼록 『시와산문』에서 호명해주셔서 기쁩니다. 발이 없는 생명에게는 발이 되어주고, 입이 없는 생명에게는 입이 되어주는 글을 쓰겠습니다. 글보다 재미난 것이 많은 세상이고, 인공지능까지 창작품을 척척 내보이는 세상으로 탈바꿈되어가지만, 숨과 숨 사이에서 만난 세상 뭇 생명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글을 쓰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글로써 함께 호흡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에세이부문 우수상 -----------------------------------------------------
어디쯤 가고 있니, 전진호
전혜원
잔잔하게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로 하얀 물새가 낮게 날았다. 일을 쉬는 고깃배들이 한가로이 졸고 그 곁으로는 만선의 꿈을 싣고 출항하는 배가 지났다.
“봤어? 저 배 이름이 전진호네.”
동생이 눈을 반짝였다. 정말 ‘전진호’가 지나갔다.
“바다 참 좋다.”
감탄사 같은 동생의 말에 내가 물었다.
“너는 바다가 싫지 않아? 거기서 진호를 잃었는데.”
물새가 전진호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동생이 웃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부모님은 몇십 년 동안 막냇동생을 삼킨 바다에 가지 않았지만 나는 지칠 때마다 바다를 찾았다. 바다에 가면 철썩이는 파도에 답답한 마음이 뚫리고 그리움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나의 어머니, 나의 남동생, 나의 안식처.
그때 진호는 초등학교 1학년, 나는 6학년이었다. 어느 날 자기가 그린 것이라며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그림 속 배 이름이 ‘전진호’였다. 그림도 잘 그렸지만 자기 이름을 따서 배 이름을 지은 것도 기특했다. 진호는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우리 부모님에게 선물 같은 자식이었다. 부모님의 관심은 온통 진호에게만 쏠렸다. 용돈도 선물도 관심과 사랑도 모두 그 애 것이었다. 나와 내 여동생은 한 번도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용돈은커녕, ‘아빠’라고, 고작 그 당연한 두 음절조차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늘 술에 취해있고 취해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엄마와 싸우거나 엄마를 때리는 사람이었지 부모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나와 여동생에게는 그랬지만 진호에게는 달랐다. 그 애는 아버지와 장난을 쳤고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았으며 꾸중을 들어도 웃으며 안겼다. 아버지에게 자식은 진호뿐이었다.
우리는 무서운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진호를 더 미워했다. 나와 여동생은 진호만 빼고 가끔 친척댁으로 놀러 갔다. 우리 부모님들과는 달리 친척들은 얌전하고 순한 나와 여동생을 노골적으로 예뻐했다. 장난꾸러기인 남동생은 빼고 너희 둘만 놀러 오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뿌듯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고 진호는 나쁜 아이라는 말 같았다.
“얼른 일어나. 집에 가자.”
외삼촌이 나를 깨웠다. 창밖이 어두웠다. 새벽 두 시였다.
“진호가 아직 안 왔단다.”
달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길은 어두웠지만 별은 밝게 빛났다. 곧 돌아올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숨이 막혔다.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던 진호가, 내 동생이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남자아이들 몇이 해수욕장으로 놀러 갔고, 거기서 쌍안경 때문에 실랑이가 있었다고 했다. 실랑이 끝에 아이가 물에 빠진 건지, 놀다가 갑자기 보이지 않은 건지 아무튼 내 동생이 사라졌다고 했다. 남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연락하지도, 신고도 하지 않고 자기네끼리 진호를 찾느라 밤늦게야 돌아왔다고 했다. 길을 잃은 걸까,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실종이 나은가, 죽은 게 나은가, 이대로 영원히 볼 수 없다면,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들로 밤을 지새웠다. 여동생과 둘만 있는 집으로 다음 날 오전에 연락이 왔다. 진호를 찾았다고. 막냇동생은 8년의 짧은 생을 살고 바다로 떠났다.
1987년 8월 23일, 내 동생을 바다에서 찾았고 바다에서 잃었다.
아이들은 장지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운구차가 집 앞에 잠시 머물렀을 때 여동생은 울며 운구차를 쫓아갔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불볕더위가 이글거리던 날이었다. 나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벌을 받는 동안에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동생을 잃고도 울지도 못하는 내가 참으로 싫었다.
내가 기억하는 막냇동생의 모습은 물을 많이 먹어 배만 볼록했다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 애는 언제나 티 없이 밝고 명랑했다. 여덟 살밖에 안 된 꼬마는 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다. 친구들이랑 해수욕장에 가겠다며 생긋 웃던 얼굴, 그게 내가 기억하는 진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기다리면 동생은 곧 돌아올 것 같았다. 엄마는 진호가 놀러 간다는 걸 몰랐다고 했지만 나는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외삼촌 댁에 데려가지 않아, 보호자도 없이 아이들끼리 간다고 엄마에게 말하지 않아, 그 어린아이가 바다에 놀러 가도록 그냥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호가 아팠을 그 시각, 나는 친척 집에서 웃고 있었다.
언젠가 진호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왜 나만 두고 갔어? 얼마나 찾았는데”
진호를 바다에 떠나보내고 우리는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 함께 바다에 갔던 아이들 무리를 보기만 해도 극도의 분노심에 사로잡혀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때문이라도 동네를 떠야 했다.
“나도 너 한참 찾아 헤맸어. 우리가 이사를 해서 집을 못 찾았던 거였구나. 살아있을 줄 알았어.”
여덟 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진호는 나를 찾아왔다. 나는 동생을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울었다. 그렇게 진호를 안아준 이후 다시는 꿈에서도 그 애를 만날 수 없었다.
고깃배가 흰 깃발을 휘날리며 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등대지기가 떠난 등대에 불이 깜빡였다. 내 동생, 등대가 있었다면 좀 더 빨리 우리에게 돌아왔을 텐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새삼 미안했고 많이 보고 싶었다. 이제는 미안하지 않다. 그저 가끔 보고 싶다. 내 동생, 우리 전진호, 지금은 어디쯤 항해하고 있을까.
“나도 사실 바다가 좋아. 너는 왜 좋아?”
“예전에는 진호를 빼앗아 간 곳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바다가 좋아. 바다에 가면 진호를 만나니까.”
하얀 물결을 일렁이며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이들,
나의 백만 송이 장미에게
당선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명예퇴직 신청서를 쓰던 중이었습니다. 1년 넘게 휴직했고 긴 휴직이 끝나면 당연히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글을 써보지, 그래?”
치병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던 내게 친구가 말했습니다. 한 번도 내 글을 읽어보지 않은 그 친구가 저에게 글을 써보라 권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또래 친구들과 단편소설을, 7년 전 발병 후에는 투병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은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만 열심히 썼습니다. 그런 내가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나같이 책 안 읽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달라는 친구의 말에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글짓기 대상을 받은 친구가 전교생 앞에서 글을 읽는 모습을 볼 때는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재능도 없고 글 쓰는 방법도 몰랐지만 ‘잘’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상 속의 누군가가 아닌 현실 속 나의 이야기를,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소설책 열권은 나온다며 하소연하던 엄마 이야기를, 그리고 지금도 어느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고 있을 내 동생 진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년간 말로 먹고 살아놓고도 말주변이 없어 늘 쭈뼛거리고, 화가 나도 화를 내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던, 아직 덜 자란 어른아이인 저는 글을 쓰면서 비로소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이름보다 많이 들어온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작가’라는 호칭을 설레게 받아드리려 합니다.
수원역에 모셔 드릴 때마다 ‘건강하라’며 사십이 넘은 딸에게 용돈을 쥐여주시는 아버지와 아픈 언니보다 더 아파하는, 늘 고마운 동생 윤정에게도 감사합니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과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나의 백만 송이 장미, 제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습니다. 힘을 낼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신 심사위원님들, 『시와산문』 이사장님과 편집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보리에 관한 몇 가지 단상斷想
김동수
우리 속담에 ‘보리방아 물 부어 놓으니 시어머니 생각난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의 농촌만 해도 대부분이 여름이면 보리를 베어다가 절구통에 넣고 물을 조금 부은 다음 이것을 절굿공이로 찧어 밥을 해 먹곤 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다 헤진 모시 저고리를 입으시고 저녁 내내 쿵, 쿵, 쿵 단조로운 리듬으로 보리방아를 찧으시던 어머니의 고단한 얼굴은 내 어린 시절의 아픔이었다. 보리방아를 찧던 일이야말로 당시 농촌 여성들에게는 가장 힘든 일과 중의 하나였으니, 그 일을 대신 해준 시어머니가 며느리로선 얼마나 고맙고 간절히 생각나는 추억이겠는가. 이때만큼은 고부간의 갈등도 잠시 휴전이 되는 셈이다.
갑자기 보리밥이 생각나 아내와 함께 농협 마트에 갔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은유하듯, 사실 예전의 보리는 대접받는 작물이 아니었다. 그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대청마루 한 모퉁이에서 권태로운 사색과 소외로 일관하던 보리가 아니었던가. 분에 넘치는 가공할 소화력과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던 방귀란 놈은 새색시의 무시할 수 없는 적이기도 했다. 그렇게 홀대받던 보리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마트 진열대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진설되었으니 어찌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치 않으랴.
당뇨병에 좋다, 다이어트와 섭생에 좋다고 하여 요즘에 와서야 보리의 참모습이 알려져 대접받고 있지만, 기실 어린 시절만 해도 보리는 우리에게 혐오를 넘어 경멸의 대상이었다. 오직 아버지의 밥그릇에만 보이던 희끗희끗한 흰쌀밥의 결정체는 그대로 우리 육 남매에겐 우상이나 다름없었던 터. 어쩌다 귀한 손님이라도 오시는 날이면 우리는 괜히 들뜨기 마련이었다. 천대받던 보릿자루와는 달리 안방 시렁 위에 신줏단지처럼 모셔 두었던 누렇게 바랜 각대 봉투가 내려지고, 드디어 그 안에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쏟아져 나오던 눈부신 흰쌀의 향연은 바로 우리의 꿈과 희망이었다. 손님이 남기고 간 흰쌀밥에 계란찜을 넣고 비벼 먹던 환상적인 그 맛을 이제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그렇게 먹기 싫었던 보리쌀과는 달리 보리밭은 우리에게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종달새가 높이 날고 자운영이 만발한 무논에 아지랑이가 안개처럼 피어오를 때면, 보리는 추운 겨울 땅 밑에서 모진 인고의 세월을 침묵으로 견디고, 마치 복수라도 하는 듯 온 들판을 진초록으로 덮어 버린다. 어쩌면 그 끈질긴 생명력과 포용력은 묵묵히 이 땅의 터전을 지켜온 우리 백성들의 모습과 어찌나 흡사한지 자못 경탄할 일이다.
보리가 초등학생의 허리높이까지 자라서 수잉기가 되면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김없이 깜부기를 뽑았다. 깜부기란 흑수병에 걸린 보리 이삭을 말하는데 보리가 이 병에 걸리면 이삭이 새까맣게 변해서 자칫 피농하고 만다. 이것을 뽑아주어야만 더 이상 전염이 없다. 학교에 갔다 오다 책보를 둘러맨 채로 한나절 동안 깜부기를 뽑고 나면 얼굴은 온통 숯검정이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깔깔대던 추억은 이제 한낱 기억 속의 수채화로만 남고 말았다.
보리밭에는 또한 우리 민족의 애환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 서정주 님은 ‘문둥이’라는 그의 시에서 천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기를 잡아먹은 문둥이가 보리밭에 숨어 핏빛 울음을 토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문둥이의 슬픔과 애절한 한을 그려내기에 보리밭보다 더 문학적인 배경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만약 보리밭이 아니라 배추밭이나 담배밭이라면 어떻겠는가. 한하운이란 시인은 자신이 문둥병에 걸리자 인간사의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소록도로 떠나며 그 유명한 ‘보리피리’란 애절한 시를 남겼으니,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 늴리리.
보리밭에는 이처럼 한과 서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네 처녀, 총각들의 낭만과 사랑이 있고 바람난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 또한 있는 것도 숨기고 싶은 역사이다.
모처럼 사 온 보리쌀로 밥을 해봤다. 구수한 보리쌀 익는 냄새가 자못 군침을 돌게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퍼낸 보리밥에 숭덩숭덩 알맞게 썬 호박 찌개와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을 한 숟갈 듬뿍 두른 다음 쓱쓱 비벼 보았다. 입안엔 벌써 침이 고인다. 알맞게 익은 열무김치를 사뿐히 얹어서 보리밥을 입 안 가득 넣었다. 까끌까끌하고 담백한 보리알갱이 씹히는 맛이 열무김치와 어우러져 일품이다. 간편식에 길들어 있던 딸아이도 맛있게 먹는다. 아내도 맛있다며 연신 먹기에 바쁘다. 더할 수 없는 행복감과 포만감이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보리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여섯 줄 보리’는 중국 양쯔강 상류의 티베트 지방, ‘두줄보리’는 카스피해 남쪽의 터키 지역을 원산지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보리는 인류가 재배한 작물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추측할 뿐 정확한 연대는 미상이다. 중국에서는 은나라 때 이미 보리에 관한 기록이 있었으며, 보리가 지금의 오곡 중의 하나로 설정된 것이 BC 2,700년경이다. 우리나라에는 4~5세기경 중국에서 전래하였고, 얼마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보리는 이처럼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희생정신이 강한 식물이다. 모진 추위를 인내하는 품성도 그렇고, 새봄에는 저 스스로 고독하여 우리에게 푸른 희망을 주며, 탈곡 후에는 제 몸을 썩히어 또한 거름이 되어주니 거룩한 보시인 셈이다. 모진 천대와 괄시에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어 오늘의 영광을 얻었으니 철학자의 면모도 있겠다. 보리밥에는 우리 민족의 가난했던 시절의 애환과 서정이 모두 스며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피와 눈물이 있고, 여인네의 고귀한 사랑과 한이 있으며, 기쁨 또한 있는 것이니 어찌 귀하게 대접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을 위한,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글…
‘펜은 칼보다 강하다.’
멋진 궁서체로 초등학교 교장실 옆 복도에 걸려 있던 문구입니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그 액자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이곤 했습니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일본도에 낙엽처럼 쓰러지는 악당들을 보며 전 그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갈대처럼 연약한 한 줄의 글이 날카로운 칼보다 어떻게 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의 소개로 ‘난중일기’를 읽으며 글의 위대함에 눈을 떴습니다.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며 천재 수학자 파스칼의 ‘팡세’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에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글, 인간을 위한 글,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계간 『시와산문』이 저의 이런 소망에 귀한 멍석을 깔아주셨습니다. 앞서 시와 산문 당선작들을 꼼꼼히 읽으며 저도 그분들처럼 훌륭한 글을 쓰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이 같은 다짐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입니다.
끝으로 결점이 많은 글임에도 당선작으로 선選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글을 쓸 때마다 엄혹한 잣대로 가차 없는 비판과 퇴고를 일삼았던 우리 아내에게도 본 지면을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제 곧 찬물로 세수한 청년의 얼굴처럼 싱그러운 오월이 다가옵니다. 그 오월을 외롭지 않게 맞도록 해주신 『시와산문』에 감사드리며 당선 소감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