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설집 서평
‘동정同情 없는 세상’을 견디는 한 방법
──박현욱의 『그 여자의 침대』
김효석
1.
요즘 한국은 피겨 선수 김연아 열풍에 휩싸여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김연아를 모른다 한다면 간첩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얼마전엔 WBC야구의 한일전을 보며 나라 전체가 울고 웃었다. 아마 2002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민의 저력은 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던 3·1운동에 비견할만 하지 않을까 싶다. 이승엽이 있다면 일본─평소엔 지면 잠도 못잘 듯 여기는 스포츠 라이벌─의 야구 상징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우리 편이 된다.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TV리모콘을 찾는 일도 수고스러워하지 않는다. 히딩크식 축구전략, 김인식표 야구운용─이런 말이 성립할지 잘 모르겠지만─ 등을 들먹이며 이를 마치 대단한 인생의 경영지침이라도 되는 듯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처럼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물론 나도 그러하지만 스포츠를 인생의 축소판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스포츠를 통해 펼쳐지는 약육강식의 세계, 결국 승자와 패자로 갈릴 수밖에 없는 그 동정없는 그라운드는 인간 세상과 다름없다.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이승엽도 되고 박지성이 되어 승리를 위해 그라운드를 함께 달리고 경기를 지배하려 한다. 이기는 것이 목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경기의 결과에, 승리에 집착하는 이유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이 또한 현실과 같다.─ 때론 패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될 것이 없는데 경기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실패했더라도 다음 경기를 기약하면 된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엄연히 현실과 다르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고 이를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스포츠는 현실과 달리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 현실처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솔직히 나는 이전 박현욱의 장편소설들─『동정 없는 세상』(2001), 『새는』(2003), 『아내가 결혼했다』(2006)─을 마치 스포츠를 즐기듯 읽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최동원/박노준’, ‘레알마드리드/FC바르셀로나’가 벌이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보듯 ‘송창식/산울림’이 주는 그 시절 향수에 젖어, 절묘한 위트와 풍자가 담긴 문장들에 키득키득 웃으며 그의 소설에 열광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사람들이 냉정히 현실로 돌아오듯 나는 소설 속의 준호나 서영(『동정없는 세상』) 은호, 은수(『새는』) 덕훈, 인아(『아내가 결혼했다』) 등을 현실의 인물들로 소환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만 소설 속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을 현실 속의 인물들로 여기기엔 그들은 너무 어른스럽거나 또는 발칙했으며 그러면서도 솜털처럼 가벼웠다.
이번에 박현욱이 등단 8년만에 내놓은 첫 단편집인 『그 여자의 침대』를 펼쳐 읽으면서도 삶에 대한 진지함이나 깊이있는 성찰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이번에는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앞섰다. 하지만 내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는데 장편과는 달리 그의 단편들은 별로 흥미롭지도, 가볍게 즐길수 있는 재미도 담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역설적이지만 몇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장편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삶을 통찰하는 작가의 시선과 그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같은 경험은 내게 박현욱의 이전 소설들을 다시금 진지하게 들여다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2.
『그 여자의 침대』에 실린 단편들은 지금까지 발표된 박현욱의 장편들과 소재적 차원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표제작인 「그 여자의 침대」(『문학동네』, 2002)를 비롯하여 「링마이벨」(『한국문학』, 2004), 「그 사이」(『한국문학』, 2005), 「연체」(『현대문학』 2006), 「생명의 전화」(『문학사상』, 2008) 등은 30대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의 문제를 천착했던 장편 『아내가 결혼했다』(2006)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또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해피버스데이」(『한국문학』, 2007), 「이무기」(『문학사상』, 2008)는 장편 『동정없는 세상』(2001)과 『새는』(2003)의 연장선에 있다 하겠다.
이 글은 이 중 30대의 결혼생활을 소재로 한 단편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이 주제가 양과 질 모두에 있어 이 단편집의 본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표제작이기도 하면서 본고가 다룰 주제의 키워드를 쥐고 있는 단편, 「그 여자의 침대」엔 허물어진 결혼생활의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는 서른 살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짧은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스물두 평의 아파트로 홀로 이사한다. 하지만 그후로 오랫동안 그녀는 이 낯선 공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그녀는 이 ‘새로운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p.12)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새롭게 맞닥뜨리게 된 낯선 공간에 익숙해지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무기력증의 근저에는 잃는다는 고통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그녀의 잠재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익숙해진 공간을 떠나와야 했다는, 익숙해진 공간이 일거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그녀에게 있어 또다시 주어진 낯선 공간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엔 너무도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자신의 일부마냥 여겨졌던 시간과 공간이 일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그녀의 두려움은 새롭게 만난 남자와의 관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가 일년여의 고통스런 결혼 생활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공간을 완벽히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여길즈음 만나게 된 남자는 정지되어 있던 그녀의 일상에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녀에게 무의미하기만 했던 VTR이나 에어컨, 빨간 마티즈조차 남자에 의해 효용성을 얻게 되면서 그녀는 점차 이 새로운 남자가 또다시 자신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여자는 한 남자가 또다시 자신의 익숙한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새로운 관계맺기에 대한 여자의 거부와 두려움은 들여놓은 지 삼년이 넘어 삐걱거리고 종종 매트리스가 밑으로 빠져버리는 낡은 ‘침대’를 바꾸지 못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사한 첫해 낯설게만 느껴졌던 아파트 안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싱글 침대. 결국 그녀는 그와의 잠자리를 위해 새로 구입한 더블 침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래되고 익숙한 싱글 침대를 고집한다. 그녀는 그와 공유할, 이후 점차 그녀의 일부가 될 한뼘 남짓의 공간을 거부한다. 그 좁은 공간이 ‘영원히 헤어나질 못할 깊은 심연’(p.29)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는 또다른 관계맺기를 주저한다.
「생명의 전화」에 등장하는 ‘나’나 ‘파니’도 서로가 서로에게 사라질지도,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맺는 일 자체를 주저하는 인물들이다. 「생명의 전화」의 ‘나’는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었으나 애인의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애인은 함께 살고자 마련했던 신혼집의 모든 물건들을 챙겨 사라져 버린다. 물론 하룻밤을 같이 했던 애인의 친구조차 사라진다.
매사 확실한 성격이었던 애인은 스무 평 신혼집에 들여놓았던 가구들을 모두 가져갔다. 나는 그때 신혼집에 미리 들어가서 지내고 있던 중이었다. 퇴근해서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니 집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자그마한 빨간 소파도, 갈색의 푹신한 카펫도, 베이지 색의 두꺼운 커튼도 모두 사라졌다. (…중략…) 더불어 서른 몇해 동안 조금씩 쌓여왔던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p87~88)
이처럼 자신의 일부라고 느꼈던 모든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낯선 공간 속에 던져진 ‘나’는 조금씩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 같은 이상한 경험을 한다. 게다가 ‘나’ 또한 현실에서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생각없는’ 결혼까지 감행한다. 하지만 허공으로 떠오르는 몸을 묶고자 시작한 형식적인 결혼생활은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하기에 현실에 대한 그의 불안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소설 속의 ‘나’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새털처럼 가벼운 파니’ 또한 세상에 화해하고 온전히 세상에 붙박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선험한, ‘나’와 소실의 경험을 공유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파니’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그 자신 또한 아무도 사랑하려 하지 않는다. ‘나’와 ‘파니’가 자주 사용하는 발신자 표시 제한의 통화는 상대가 자신의 공간으로 침범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또한 상대에게 자신의 어떠한 흔적도 남기길 원치 않는 현대인의 일방적이고 자폐적인 관계맺기 방식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장편 『아내가 결혼했다』의 덕훈이 조금은 뻔뻔스럽고 발칙하기까지 한 인아의 요구에 끌려가는 모습이 수동적으로만 비춰지지 않는다. 아내가 떠난 후 겪게 될 상실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든 피하고픈 덕훈의 입장에선 차라리 제 3자와 아내를 공유하는 방법도 하나의 방책이 아니었던가 싶다.
3.
「그 사이」의 ‘나’와 비교한다면 덕훈(『아내가 결혼했다』)은 결혼생활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훨씬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한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그 사이」의 ‘나’는 어렵게 시작한 새로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하지만 ‘트리코모나스’라는 성병의 감염으로 아기를 유산하게 된 아내가 ‘나’를 의심하고 멀리하게 되면서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는 ‘나’이기에 아내의 인터넷 메일을 해킹까지 해가며 아내를 붙잡으려 애쓰지만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가버린다. 그런데 이후 소설 속의 내가 아내와의 결별로 빚어진 현실의 고통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하게 되는 것이 바로 다이어트다. 그는 다이어트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고통을 주고 식욕을 억제함으로써 아내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잊고자 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또 다른 고통으로 현실의 고통을 치환하고자 하는 소설 속 ‘나’의 행위가 박현욱이 그려내고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의 현실 대응 방식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박현욱 소설의 주인공들은 무너져버린 현실 앞에 당당히 대면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그 여자의 침대」)하거나 소통 자체를 거부하고(「생명의 전화」) 또다른 고통으로 현실을 잊고자 하며(「그 사이」) 지나간 과거에 연연(「연체」)한다. 그들은 현실의 허물어진 시간과 공간을 견디지 못하고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과 공간에 집착한다. 어쩌면 불행하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한때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했던, 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갔던’(『새는』, 『문학동네』, 2003, p245.) 그 시절 그때를 추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동정 없는 세상』(2001)과 『새는』(2003)은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던 창공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과 동경이 낳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시간은 현재를 위무하는 추억이 될 뿐 현재나 미래의 시간을 메울 수는 없다.
행복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가.
별빛에 이끌려가던 중에는 혹시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는. 별빛이 환하게 밝혀주던 아름다운 길을 걷는 동안 행복했던가. 어느새 별빛이 사라지고 어두운 길에 다다르자, 또는 별빛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어두운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본 후에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고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던 창공을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새는』, p268)
지금 여기. 과연 창공의 빛나는 별은 사라졌는가. 혹여 여전히 별은 빛나고 있건만 잠시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아니 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누군가의 마음 속에 빛나고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냉정한 현실 앞에 번번히 좌절하면서도 끊임없이 현실과의 부대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같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박현욱이 덕훈(『아내가 결혼했다』) 보다 더욱 진지하고 평범하게 성장한 준호(『동정없는 세상』)나 은호(『새는』)를 그려냈으면 하고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효석 /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중앙대, 남서울대, 순천향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