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원생 84인 학살사건 발굴추진위원회 원생자치회」는 지난 8일 국립 소록도병원 앞에서 임영진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살 현장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녹동/김은동 기자 해방직후인 1945년 소록도병원 운영권을 둘러싸고 학살당한 소록도병원 원생 84명에 대한 진상규명과 위령탑 건립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소록도 원생 84인 학살사건 발굴추진위원회 원생자치회」(회장 강대시)는 지난 8일 소록도병원 앞에서 임영진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살 현장 발굴작업을 펼쳤다.이날 작업에서는 당시 뿌린 송진유, 뼈 모양을 발굴해 임영진 교수에게 정확한 원인 조사를 의뢰했다.
소록도원생 학살사건은 지난 1945년 8월22일 소록도 병원 운영권을 둘러싸고 의사, 간호사와 원생간의 갈등이 심화되자 의사, 간호사들이 고흥치안대에 지원요청해 원생 84명을 학살, 병원 앞에 매장한 사건.강 위원장은 『현재 증인으로 살아있는 원생들의 기억을 토대로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소록도의 해방은 1945년8월17일이다 섬이라 이틀뒤에 해방소식을 안것이다
원생들은 해방이 되었으니 자치권을 찾자는 주장들이 일어났다. 병원 당국자들은 다음날로 협상을 약속했다
다음날 협상을 조건으로 모여온 원생대표들을 유인하여 미리 준비한 치안유지대라는 사람들에 의해 처참하게 대창으로 찌르고 총으로 학살해서 구덩이에 다 넣고 원생들이 전쟁용으로 강제 채취한 송탄유를 쏟아부어 생화장을 시켰고 그 때 살아남은 자들도 함께 화형을 당했으니 그 원한이 얼마나 컸을지 하나님은 아실 것이다. 그 때가 바로 1945년 8월 22일이었다
이 때 희생된 교회 직분자들이 12명이니 중앙교회 전도원 이경도(李京道), 집사 정수완(鄭守完), 김원식(金元植), 이차하(李且夏), 신성교회 전도원 김학로(金學魯), 집사 김금영(金今永), 북성교회 집사 김칠송(金七松), 강윤형(姜允衡), 서성교회 집사 김이진(金伊辰), 남성교회 전도원 강암우(姜岩佑), 집사 송인범(宋仁範), 동성교회 집사 유유순(劉裕順) 전도원 3명, 집사 9명이요, 그 외에 모두 신실한 성도들 84명이나 희생되었다
2001년12월8일오후1시에 56년3개월16일만에84명의 학살 소각 현장을 수많은 원생들과 유관 기관의 관계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발굴하여 유골과 크고 작은 송진 덩어리들을 발굴했다 그 송진 덩이에는 녹아진 흰 유골들이 엉켜있어 그때 그날의 처참함을 가늠케하고도 남는다
이 일의 주관자들은 그현장에 추모 기념비를 세우고 맺혀진 원한을 다 풀고 다시는 이땅에 이같은 참상이 사라지고 연약한 자들이 마음 놓고 살수있는 세상이되기를 기도하면서 참된 평화를 선언하고자 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