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에는 많은 종류나 수준이 있다. 리더십은 꼭 정치적, 관리적인 계층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사회이든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흡사 우리들은 목자 없는 양떼 같고, 장님을 데리고 다니는 장님 길잡이의 빈약한 지도자 상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지도자의 위치에 선 이들은 그 곳이 회사든, 가정이든, 학교든, 교회든, 각자의 분야에서 지도자적인 책임을 갖는다. 그런데 지도자는 태어나기도 하고 길러지기도 한다.
베니 굿윈은 “소질 있는 지도자들은 탄생하는 것이고, 효율적인 지도자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위대한 것을 두려워 말라. 어떤 이들은 위대하게 태어나지만,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성취하고 어떤 이들은 위대함이 그냥 그들을 찾아오기도 한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타고난 것과 영적인 것의 조화 혹은 타고난 재주와 영적인 재능의 조화가 리더십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리더십의 표지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우리는 누군가 시작하자고 부추기기 전에 우리 스스로 시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따를 만한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리더십의 다섯 가지 기본요소를 살펴보자.
1. 비젼
잠언서에 보면 비젼이 없는 곳의 사람은 멸망하게 된다는 말씀이 있다. 틀림없다. 또 오순절 이후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행 2:17절은 특징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젼 없이 살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평범한 삶, 차선의 삶, 미루는 삶을 살면서 만족한다면 비젼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꿈, 비젼, 꿈 쫓는 사람, 이상가 등등의 용어들은 어쩐지 비현실적이고, 각박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다른 말로 바꾸어 장단기 목표, 군사 행동전략 등의 목표, 성명서, 등등으로 평범한 말을 쓰려한다. 과연 비젼은 무엇인가?
그것은 통찰력과 선견을 가지고 상상력을 통해 사물들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불만을 가능한 형태의 뚜렷한 파악으로 발전적인 대안 모색을 이르는 말이다. 이 두 가지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인간의 질병과 죽음, 기아가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났기에 이것들에 대하여 분개하였다. 그래서 그 희생물에 대해 더 없는 연민을 느끼셨다. 분개, 연민은 강력한 결합으로 결국 비젼과 리더십을 이루는 필수적 요소로 작용한다. 무감동, 무감각, 편견, 부정적, 범죄의 묵인 등등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쉽게 용인되어 지는 것 중의 하나이다. 리더십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잘못을 고치고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지 못하면, 리더십으로 발휘되지 못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잔혹하게 압박당하던 동료히브리인들의 현실에 자극 받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 행해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의 전 인생을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젼에 쏟아 부었다.
선지자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망명 중에 성스런 성전이 훼파되고 성민이 큰 재난에 빠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 소식은 그의 온 생각을 압도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다. 그래서 성민들에게 “자 예루살렘 성전을 수축하자”고 말했고, 성민들은 “일어나 건축하자”고 응답하게 되었던 것이다 (느 2:12 - )
다소의 사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사이의 소원함을 불가피하고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이방의 세계로 복음을 전하라고 분부하자, 그는 “천상의 비젼을 온전히 따랐다. 진정 하나의 새롭고 화해된 인간성의 비젼에 매료되어 그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고난 받다가 그것을 위해 죽었던 것이다.”50년 만에 세계의 ⅓을 얻었던 공산주의자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어째서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리 자신의 이념에 대해 헌신적이며, 성공적인 리더가 되는가? 에 대한 답을 구하자면, 만약, 당신이 공산주의자가 공통적으로 소유한 독특한 점이 뭔가 묻는다면 난 그들의 이상주의적 태도라고 답하고 싶다고 더글라스 하이드는 말했다. 그들은 ”압박 받거나 착취당하는 사람이 없는 어두움과 무지, 퇴보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 서로 속이고 적대시하고, 서로 해하고, 싸우는 비 이상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자들 보다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혁명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다이내믹한 슬로건 중 하나가 세상을 변혁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칼 막스보다 더 위대하고 영광스런 지도자이다. 투쟁이 아닌 복음전도로 세상은 획득될 수 있다. 우리 신자들의 열정이 이것 아닌가? 식어 없다고? 비젼 없이는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대한 일의 발생지엔 반드시 위대한 꿈이 있다. 모든 업적 뒤에는 위대한 비젼을 가진 사람이 늘 존재하고 있다. 비젼을 소유한 자는 혹시나 하는 대안보다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미를 찾아 주고자 하는 자가 비젼가이다. 우리 비전은 어떻게 생겨날까?
2. 근면/노력
세계는 꿈꾸는 이상가에게 야박해 왔다. “저기 그 꿈꾸는 자가 오는구나!” 요셉의 형들은 서로 말했다. 자 이제 그를 없애자. 그러면 우리는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창 37:29) 밤의 꿈들은 아침이 되면 햇볕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꿈을 지닌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 계획을 세우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근면, 성실, 노력을 필요로 한다. 비젼을 가진 이는 행동하는 행동 인이 될 필요가 있다. 천재성이란 무엇보다 고난을 감내하는 탁월한 능력을 의미한다. 에디슨도 천재는 1%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된다고 했다. 작가들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별 노력도 없이 이룬 것 같지만 그 작품들의 배후엔, 고심한 자기 수양이 들어 있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도 한 소절씩 수십 번을 쳐서 익숙하게 하는 법이다. 노력하는 리더, 이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비젼과 근면이 어우러진 인물이 역사상 위대했던 지도자들의 상징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모세가 꿈만 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약속의 땅을 위해 출애굽과 광야의 길이, 고난의 길이 정복되어져야만 가능했다.
자유를 꿈꾸는 자가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없으면 자유를 쟁취되지 않을 것이다. 성공의 비결은 불굴의 근면과 결합된 창조적 상상력 덕분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성 없는 리더는 그저 옅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꿈을 구는 몽상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3. 인내/충성
인내하는 것은 곧 성공하는 것이다. 성실함은 성공의 보장이다. 리더십에 있어서 인내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비젼을 가져도, 실천력이 있어도, 반발을 인내할 줄 모르면 일을 이룰 수가 없다. 항상 반발이 있기 마련이다. 특권을 보호하려하고, 경제적 문제와 맞물린 일이라면 더욱 위기의식으로 경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적대감을 이기는 길은 인내 밖에 없다. 하나님의 진실한 사업은 아무리 큰 반발이 있다고 하더라도 번성하고, 세련되며, 더욱 튼튼해진다. 진정한 리더는 한 곳에 머물러 안주하지 않고 점차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발에 채는 벽돌을 디딤돌로 사용할 줄 아는 지혜와 인내의 은총이 있는 사람이 리더인 것이다.
구약의 모세도 12번이나 이스라엘이 불평으로 중얼거리고 반발했을 때, 든든히 이겨내었다. 바로의 군대가 뒤에 와서 위협해도, 물이 메마르고 물이 쓰게 되었을 때, 먹을 고기 없다고 불평할 때, 가나안의 요새들이 강하다고 했을 때, 모세를 시기하는 이들이 등장했을 때, 등에도 그는 인내했다. 탁월한 리더는 그럴 때 포기하거나 팽개치지 않고 언약과 비전을 더 의지하고 끝까지 견디어 나가는 사람이다. 신약의 사도 바울도 자신의 행동 기준을 끝까지 지키어 나갔다. 주위의 반대가 극심하고 극렬해도 매 맞고, 돌 맞고, 투옥되어도, 육체적 고통을 다 견디어 내었다. 하나님의 새롭고 구원받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였고 선포하는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순교 앞에서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가고 나의 믿음을 지켰다(딤후 4:7)”고 말할 수 있었다.
리더는 반발에 대항할 만큼 충분히 강인하고 장애나 지체될 요소를 가볍게 그리고 철두철미하게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과연 한 가지 확실한 목적에 집착하여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그런 사람인가? 당신은?
진정 우리가 명심할 것은 인내는 어리석은 고집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리더는 비판에 대해 오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귀 기울이고 그 비판을 중시한다. 그것에 따라 자신의 계획을 수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에 관해서는 결코 요동하지 않는다.
4. 봉사/섬김
리더십은 교회와 세계가 나누어 가진 개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과 비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동일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 여과 없이 수용하는 것도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리더십은 이 세상의 스타일이나 종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리더십을 소개하셨기 때문이다.
막 10:42절 이하엔 이방인 집권자의 권력 행사와 섬기는 자의 모습인 신자의 섬김이 대조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리더십이라는 용어가 주권이라는 용어와 동의어로 생각지 않는다. 우리의 사명은 주인이 아니라 섬기는 자이며 남을 부리는 자가 아니라 충실한 종이 되는 것이다. 물론 확실한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 그것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키는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강조는 지배자적 권위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서의 지도자의 겸손이었다. 그리스도인인 리더가 이끄는 권위는 힘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하며 모범이며 설득이라야 한다.
섬김을 통해 지도자는 남들의 소중함을 무언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먼저 하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리더들이 스스로 봉사함으로써 선동의 위치를 확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도 예수님의 본에 의해 점검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봉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귀족에로의 디딤돌이 아니라 고귀한 행동 그 자체인 것이다. 진정한 위대함과 진정한 리더십은 사람들을 어떠한 사람의 봉사자로 만드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봉사하는 것 자체에서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는 리더십이 프로그램이나 계획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사람이 계획들보다 우선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조정 당하거나 관리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회용품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리더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챙기는 자이다. 리더는 혼자보다는 팀을 이루어 같이 행사하는 리더십이 훨씬 더 견고함을 알아야 한다. 서로 보충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에게 타인을 격려함이 있는가? 봉사에 대한 이 모든 강조는 오직 그의 스승인 예수님을 따르고 반여 하려는 노력에 근거한 것이다. 진정 어떠한 리더십도 낮은 자로서 기쁘게 섬기지 않는 한 그리스도와 결코 같아 질 수는 없을 것이다.
5. 훈련/우선순위
리더도 지치고, 식어버리고, 후회하게 된다. 리더도 살과 피로 조성된 사람들이다. 정말 강한 사람일수록 약한 면이 늘 존재한다. 성경의 리더들도 치명적 결함들을 갖고 있었다. 노아도 술을 취하도록 마셨고, 아브라함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아내를 내어 주기도 했고, 모세도 곧 잘 이성을 잃고 흥분했으며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행한 비도덕적 사건 하나가 간통, 살인, 절도, 위증, 탐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예레미아의 고독한 용기는 자기 연민으로 인해 무너져 버렸다. 세례 요한도 종종 의심에 잡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는가? 그리스도인 리더가 소지할 마지막 표지는 훈련이다. 단순히 자기 훈련만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시는 특별한 훈련도 포함한다. 약함을 아는 리더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임을 인식하고 그분의 은총의 힘을 구하는 자여야 한다. 곤고한 자에게 힘을 주고 연약한 자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그를 인내력 있게 기다리는 자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높이 날고 달음박질해도 지치지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기 때문이다.(사 40:29-31)
그렇다 진정한 리더의 힘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려고 부단히 자신을 단련하고 자신의 비젼을 항상 환하게 지키고 있는 자에게만 가능하다.
오직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아는 리더들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분석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것은 대략 다섯 가지 요소로 나누어진다.
즉, 선명한 비젼, 고된 노력, 끈기 있는 인내, 겸손한 봉사, 투철한 훈련이 그것들이다.
훈련으로 연단되지 않고 준비되어지지 않는 리더는 그 역량을 발휘해야 할 그때에 포기하고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인 리더는 그 훈련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알고 자신을 개량시키고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결론
염세주의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주의 나라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신앙 있는 리더는 이 세계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그의 충만하신 통찰력으로써 건설해 나가실 것을 알고 잇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리더는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려 전진해 나갈 것이다. 아마 그는 빛이요, 소금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훈련도 필요 없고 개선이나 영적 성숙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리더는 자신 속의 하나님께서 주신 잠재적인 능력을 다 사용하려는 사람이다. 안주하는 이는 리더의 자격이 없다. 거룩한 야망을 품고 하나님을 향해 모험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천적인 특질과 양육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우리로 만드셨기에 쓸데없는 곳에 능력이 낭비되지 않고 주께 쓰임받기를 원하신다. 그 분의 목적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그분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기를 바라신다. 이는 다른 리더십을 허락하셨다는 의미이며 이 다른 종류와 수준의 리더십을 가지고 온 정성을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며 우리의 삶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우리의 할 수 있는 한 주께 드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인생의 종말에 다다랐을 때 바울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끝까지 나의 믿음을 지켰노라” 라고 말이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말씀으로 “그래 정말 잘 했구나, 착하고 신실한 나의 종아!” 하심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리더의 자세 신진수
교회의 리더들은 언제나 기억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모델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후배들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삶으로, 언행으로, 믿음으로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르는 이들은 그런 리더의 본을 보고 자연스레 배우고, 닮게 되는 것이다.
또 기억할 것은 헬퍼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린 타인이 리더로 서고, 자라가도록, 그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과 같은 리더들이 생겨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어 전체의 수준을 높여 가는 자이다. 못한다고 꾸짖기만 하고 나무라고, 윽박지르면 그가 자라날 수 있겠는가?
또 기억할 것은 리더는 멘토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이다. 멘토링은 요즘 들어 떠오르는 이슈이다. 전인격적으로 멤버를 챙겨 주는 것이다.
남인도의 반얀 이라는 나무는 매혹적인 나무이다. 가지는 넓게 펼쳐 대지를 가득 덮는 큰 나무이다. 그 아래 그늘은 한 에이커 이상을 차지하는 나무이다. 그런데 그 밑 그늘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바나바 나무는 싹이 나고 6개월 후엔 새로 작은 가지가 돋아나고 도 6개월 후엔 또 다른 싹이 새로 돋아난다. 그래서 18개월 후엔 굵은 줄기에서 바나나가 열리고 시들면, 67개월 후엔 다음 가지에서 바나나가 열린다.
얼마나 유익한 나무인가? 더 많은 가지가 계속 돋아나고 열매를 계속 맺어 가는 것이다.
뒤를 이은 리더를 길러내는 일은 이처럼 풍성함에의 보장인 것이다. 반얀나무라면 자신은 커도 사실은 그 밑에 후속 리더들은 자라지 못하는 비극이 생기게 된다. 카리스마는 강하겠지만 리더의 후속이 없으므로 사실은 실패한 지도자라는 것이다.
지도자의 진정한 열매는 그가 죽은 후에 드러난다. 이 세계에, 그 교회에 크게 영향을 주기 원한다면 멘토의 대상을 키워나가야 한다. 진정한 유산은 프로그램이나 전설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멘토링, 리더 키움은 소그룹 안에서 행해질 때 가장 효과적이다. 그래서 셀이니 소그룹이니, 다락방이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셀이 살아 있다면, 이 셀들이 연합되어 있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매우 밝다 하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① 지도자의 비젼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② 자료를 공유, 나누어야 한다
③ 다른 지도자들과 네트웍을 형성해야 한다.
④ 리더십 전수의 특별 훈련이 필요하다. 상위 멘토, 내부동료 멘토, 외부동료 멘토, 프로테제가 잘 어울려 있어야 효과적인 멘토링이 된다.
교회 안의 일군이 된 사람은 언제나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일 큰 정성과 위로는 참여하는 것이다. 어떤 회의, 모임, 예배 등등에 꼭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별반 재미없어도 참여함 자체가 곧 중요한 본이 되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무게를 지닌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언제나 지키는 이가 될 때 사람들이 다르게 된다.
잘못된 내용이나, 헐뜯는 내용은 가능하면 들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모르면 서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모르면 서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보통 문제는 해결해야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삼지 않는 것이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없는 문제를 만들지 말자. 걱정하지 말고 무게 중심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이지 스피커가 역할이 아닌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믿음 좋은 사람이다. 말을 줄이고 오히려 미소를 띠어라. 그것이 리더이다.
리더쉽말씀연구 1
본문: 요한복음 21: 15-21
제목: 베드로의 리더쉽
서론
우리는 이제 목회자적 심령을 가진 베드로와 교회개혁의 선구자적 지도자인 바나바와 이방세계로 담대히 나아간 실천적인 지도자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우선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보고 뒤에 좀 더 구체적인 사항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베드로라는 인물은 우리가 잘 알 듯이 다혈적이고 성미급한, 의협심 뛰어난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 중 지도자를 선정해 따르자 할 때 훨씬 친근하고 우리와 가깝습니다. 요셉 보다는 야곱이 더 친근한 이유와 같습니다. 베드로는 약점이 많은 인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성경의 언급은 이처럼 리얼한 면이 많습니다. 우리 생각엔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할 때 왜 그를 쓰셨을까? 더 유능한 인물을 사용하지 않으셨나? 이방인 구속에 대한 원대한 메시지를 왜 베드로를 통해 들려 주셨을까? 하는 의문들을 갖기 쉽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수준과 우리의 경험으로 다른 사람의 능력이나, 적합 여부를 미리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수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의 선정은 놀랄만한 것이 아닐수 없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철저히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좌절하여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바로 이런 복음기의 체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들어 쓰신 것입니다.) 돌이킨 후 타인을 돌보는 특성을 갖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애를 고백중심으로 구분해보면
①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죄인고백)
②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신앙고백)
③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랑고백)
1. 죄인고백
누가복음 5: 4-10을 보면 죄인의 고백부분이 나오는데 그의 고백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입니다. 주께서는 어부를, 지극히 평범한 어부를 불러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십니다. 놀라우신 임재와 부르심앞에 베드로는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만선(가득차도록 잡음)의 복 앞에서 죄인된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깨달게 됩니다. 신앙의 고차원 선이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삶의 한계적인 상황에서 주를 찾고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는 것인데. 베드로는 아닙니다. 보통은 위기 상황에 빠져서야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번영신학, 축복위주의 교회가 가득찬 현대의 우리들은 죄를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사역을 외면합니다. 가이오를 축복한 사도요한은 당시의 특별한 상황을 위한 축복을 한 것이지 3박자 축복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부자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도 부자되기 위한 축복성회의 가능성을 연 것으로 사실 이런 것들은 구속의 복음이 아닌 물질 만능의 황금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은행이 되십니다. 돈방석 위에 눕게 하십니다. 하지만 영적거인으로 자라난 베드로는 놀라우신 축복 앞에 겸손했습니다. 영적으로 매우 민감한 자세가 드디어 이 고백을 만든 것입니다. 주를 따르는 이 길이 고난이 있는 길이지만 결코 물질적인 시각에서만 끝나지 않고 영광의 미래로 이어지는 복이 있으므로 유익한 길이었습니다. 선물을 줄 때, 꼬마의 관심과 사주는 부모의 관심이 다릅니다. 베드로는 처음 모든 것을 버리고 主를 선택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리더란, 철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린 베드로를 주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2. 신앙고백
마 16: 16-17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초대 교회에는 예수가 누구냐 하는 신학적 문제가 논쟁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고백은 정확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바른 고백이란 그리스도의 인식과 하나님 아들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 고백이 반석이 되어 주의 교회가 설립되지 않았습니까? 바른 교훈에 바로서는 리더가 절실합니다. 타락과 개혁이 반복 되어온 기독교 역사는 진자 운동처럼 그 사이를 오갔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개혁의 선구자들을 지탱 시켜준 신앙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른 신앙고백이 있어야 교회가 바로 세워질 것 아닙니까?
한국교회 성장의 비결 중의 하나도 이 신앙고백의 유지와 강조였습니다. 미국의 교회는 이제 점차 쇠퇴해가고 있습니다. 바로 신앙고백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재건교회가 기독교의 리더쉽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선배들의 신앙은 눈 부셨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절하는 신자는 이미 그들의 신앙고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앙고백의 순수성이 없어진다면 그들의 신앙이 만들어 낼, 그리고 도착할 최종의 모습은 가히 짐작이 갈만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재건교회의 재건 운동은 이 잃어 버렸던 신앙고백을 회복하는 운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신앙청결의 운동이며, 신앙회복의 운동이며, 영적부흥 운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른 신앙고백이 주님 오실 때 까지 유지되어 나가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며 우리의 후세, 후배들에게 양보 없이 강력하게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칭찬 받은 직 후 실수로 인해 꾸중을 듣게 되었고, 급기야는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는 수준까지 떨어져 버립니다. 나만 바른 신학을 한다는 아전인수 격 해석의 위험성을 우린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면을 살펴서 실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베드로는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긴 합니다.
눅 22:31-34를 보면
주여,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겠나이다. 다른 이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안 버려요. 그것도 모르세요? 그러나 여기엔 베드로의 자기 우월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다 배반해도 나는 아니하리라? 내말이 맞지요? 예수님? 저 예수님, 그건 그렇고,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열심히 잘하고 있지요? 예수님? 그럼 쟤는요? 그리고 쟤는요? 너나 잘해...
이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베드로가 넘어지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결국 서로를 헐뜯게 됩니다. 진리 보수의 재건을 일반교회는 욕을 해대고 이단이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검사, 자기교만의 발견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성찰에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만 냉엄한 연고였습니다. 은연중에 타인을 무시하거나, 정죄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겸손이 없고, 자기성찰이 없는 리더는 결코 대중의 항복을 받아낼 수 없습니다. 껍질을 벗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만, 죄의 노예가 되는 것 보다는 회개로 씻어야 합니다. 바울도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양보할 수 없습니다. 겸손한 진리 운동가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합니다.
3. 사랑고백
요21장의 본문에선 드디어 사랑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실패로 낙담하여 낙향한 베드로를 주께서 직접 찾아오십니다. 그를 다시 리더로 서도록 일으키십니다. 죄인 된 우리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찾아오십니다. 사회, 종교가 어지러울 때 신앙의 수진 선배들을 보내신 하나님, 오 나를 직접 찾아오신 하나님. 로뎀 나무 밑의 엘리야를 찾아 도우신 하나님.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구체적인 도움으로 찾아오십니다. 베드로의 그 찢겨진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 사랑으로 나를 부르십니다. 처음부터 날 부르셨던 그 자리에서 다시 나를 부르십니다. 주를 찾으라. 세 번이나 부인한 그를 다시 찾아 부르셨고, 꾸짖지 않으셔서, 베드로를 더욱 큰 리더로 세우십니다. 그저 사랑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세 번 콤플렉스 가진 이에게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를 사랑하는가? 더욱 주를 사랑하는가?
리더의 생명은 곧 주를 제일 먼저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내 생명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 있다면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희생적인 사랑을 주께 드리는 이가 리더입니다. 이제 돌이켜 교회를 굳게 세우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기둥이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철저히 자기를 회개하고, 철저히 기도하여 주께 맡기는 삶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교회도 회개운동, 기도회복의 운동이 재개되어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주님과 관계를 지속하고, 영적인 민감함으로 깨어 있는 리더들이 나와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 된 인물이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우선순위인가를 물으십니다.
<보충심화연구자료1>
①비젼 점검
비젼세우기, POGS 작성하기, 교회 현황 파악하기
모임이 가능한지 점검할 것
②개인 점검
하나님 앞에 헌신되어 있는가? QT. 말씀 봉독, 기도하고 있는가? 신앙고백의 점검.
대체로 재건이 어떻고 말 많은 이들 보면 쥐뿔도 성경을 모른다. 삶이 없다. 기독교 서적은 얼마나 읽는가?
③소그룹모임시작(SGM)
형성/ 시간과 장소확보/ 인격적 관계 확립/ 열정필요
④지부세우기 CHAPTER BUILDING(LGM)
기타/ 리더쉽 훈련 켐프/소그룹 켐프
리더쉽말씀연구 2
본문 : 행 11: 19-26
제목 : 바나바의 리더십
서론
모든 모임은 부드러움과 따스한 온정과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임에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쉽게 섞이게 되고 동화될 수 있습니다.
항상 밝게 살아야 합니다. 리더의 미소는 멤버들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따스한 모임을 계획하십시오. 많은 성도들이, 지적인 수준은 높은데 영적인 감동은 낮은 불균형을 갖고 있습니다. 예배도 생동감이나 감동이 없이 일방적입니다. 여러 면에서 개혁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예배에의 개혁은 분위기의 변화를 꾀하는 면에서나 하나님께 집중하는 면에서 공히 필요한 것입니다. 지적인 면한 강조되면 영적인 진보가 없게 될 것입니다. 찬송의 놀라운 감격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늘 기쁨에 넘치는 충만한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리더는 기도하고, 찬송하고,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그 모임을 통해 영적인 산실이 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리더십의 발휘 여부는, 그 평가는 그 모임을 통해서나 개인들을 통해서 영적인 재생산이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봄으로 내려야 합니다.
영적 산실, 재생산은 곧 전도와 양육이라는 차원이 일정한 수준에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가 할 중요한 일로 전도를 꽂습니다. 그리고 그 전도만큼 성도를 자라게 하며 훈련하며 양육시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자라지 않고 느낄 때가 많이 있었지 않습니까?
① 행 4:36은 바나바를 총애 받은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브로(사이프러스) 출신의 요셉이었다가 바나바라는 닉네임을 얻습니다. 권위자라는 뜻의 이 이름은 권면하기, 위로해 주기에 달인이라는 뜻입니다. 리더로서의 바나바는 상처 입은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불안한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베풀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즉, 인격적인 리더였다는 사실입니다. 인격적이라 함은 상호존중이 인정되는 사이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역시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교류가 이루어지는 모임을 만들어 내는 리더가 바나바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따뜻한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또 행 4:37을 보니까 그는 예루살렘 교회가 필요하면 자기 소유의 밭도 팔아다가 드리는 놀라운 헌신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자기 재산을 아끼지 않는 마음의 넉넉한 사람의 소유자, 아낌없이 공적 유익을 위해 내어놓을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오순절 사건시 집에 돌아갈 생각도 아니 하고 함께 모여 전심으로 기도할 때에 그들의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고 도왔었습니다. 그는 이처럼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교회의 필요를 채운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도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를 따랐음을 기억하면 주를 위해 재물도 아낌없이 바치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결국 그는 안디옥 교회로 대표자의 위치로 파송 받게 됩니다. 당신의 이슈는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용납함이 가한가? 아니한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11장의 흩어진 제자들과 함께 페니키아, 사이프러스, 등지로 흩어져 가게 됩니다. 그때까진 유대인에게만 전했었고, 그중 몇몇이 구레네 몇 명과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믿고 돌아오자, 이들의 수용이 교회의 문제가 되게 됩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먼저 파송하게 된 것이지요.
② 이제 리더로 파송되는 바나바 그의 자질을 살펴봅시다.
ⓐ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신임 받는 자로 첫 출발합니다.
리더는 전체의 신임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지원해 줄만한 사람들이 있는가요? 그런 역할을 감당할 능력이 내게 있는가요? 소속 교회의 자랑거리가 되는가요? 지도자로 세움은 하나님의 은혜요 행하심입니다. 겸손히 맡아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아야 합니다. 뒤에서 돕는 자, 협력다도 좋은 리더 상이지요. 예루살렘회의 결정을 보면 바나바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고(행 11:24), 그뿐 아니라, 지도자 된 바나바는 후배를 잘 다스리고, 지도하고, 등용한 지도자였습니다(행11:25). 바나바의 놀라운 역할은 바울이라는 인물을 천거하고, 바울사도 되게 등용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숨은 역사 중엔 루터를 일으켜 세운 요한 스타비츠 같은 인물도 있습니다. 선배가 후배를 세워 주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바나바는 바로 이런 리더였습니다.
ⓑ 그가 목회를 돕는 동안 그 교회는 주는 교회로 바뀌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울 때, 직접 도움을 전달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주는 공동체, 이것이 리더가 있는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우리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돕는 교회가 되도록 하자.
결론
행 13장을 보면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는 화평과 연합의 사람인 것이 드러납니다.
리더십은 모든 멤버로 하여금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독려하고, 또한 잘 섬겨야 제대로 된 리더일 것입니다. 바나바는 잘 섬기는 리더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잘 섬겨 하나 되게 하였고, 또 다툼이 있는 사람들을 화해 시켰습니다. 우리도 이제 같은 마음을 품어서, 더 나은 성숙에로 나아가는 자라남이 있기를 원합니다.
<보충심화연구자료2>
1. 유형
독재형 - 리더형 - 평가형 - 비젼형 - 방임형 -
2. 그룹 Dynamics
<그룹의 운영>
관심별 그룹 - 취미별/ 기독서적 읽기/ 영화/ 연극관람/ 볼링팀/
이슈별 모임 - 세계관/ 문화관/ 창조과학/ 예수생애 연구/ 사회참여/ 세계관/
한학기 12주 기준할 것
연구별 모임 - 성경각권별/ 배경사 / 신학사/ 기독교회사/ 교회론/ 전도론/ 성장론
그룹 운영 - 코디네이터훈련/ 소그룹 리더 훈련/ 각종 켐프/ 수련회/ 추구모임 /
대화법/ 중보기도/ 재생산/
리더쉽말씀연구 3
본문: 갈 2:11-13
제목: 바울의 리더십
서론
바울은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지도자이다. 그는 지중해를 넘어선 세계적인 인물이다. 우리 신앙의 선배로, 모범적인 지도자 상을 보여 주었다. 행 9:10절에서 그는 주님께서 택한 그릇이라는 누가의 평가를 받았다. 전도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 최고의 영광 아니겠는가? 주님의 택한 그릇, 이것이 지도자의 권위이다. 신약의 대부분을 저술한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인물이 아니겠는가?
①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이다. 준비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학문적 성취는 가말리엘 학파에서의 뛰어난 성적이 말해준다. 그는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산헤드린의 엘리트 사울을 보내어 예수 믿는 이들을 잡아들이도록 보냄 받을 정도로 리더십을 인정받은 그였다. 당시 유대주의 중 가장 인정 받던 젊은 엘리트였다. 주님 앞에 고꾸라지기 전까지였다. 그 후 그는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 전에 학문적인 준비와 기도의 준비와 고난을 통한 준비를 갖추었다. 그의 실력있는 논리와 표현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기초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더 잘 전하기 위한 도구로 쓰임 받았다.
진정한 리더는 다방면의 공부와 실력습득이 있어야 한다. 실력 없이 힘으로 만 리더가 될 수 없다. 그에 걸맞는 성숙함과 노련함이 연륜에 맞게 쌓여야 한다. 지금하는 공부나 경험이 후에 분명히 선한 일로 쓰여질 것을 믿고 잘 준비하라. 작은 일에 게으르면 나중엔 큰일도 게을리 하게 된다. 메이첸(신학자), 존 머리(교수) 등도 열심히 공부하였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기에 결혼도 아니하고 공부의 은사를 계속 살렸다. 언어를 통달하였다. 63세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버지도 65세에 결혼을 했었다. 공부를 하려면 적극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도록 하라. 평소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하루 하루를 값지게 살라. 인격도 매일 매일 준비해가자. 모든 시간을 아껴 가며 공부하라. 박윤선 박사는 미국유학 가는 뱃길에서 요한계시록을 통째로 외워 버렸다. 늘 공부하고, 늘 책을 읽고 실력을 쌓으며 살자. 기도하는 경건한 학자가 되자. 바울의 기도 준비는 무릎으로 준비하는 리더십의 자질을 보여준다. 행 9:11절에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소개될 때 그는 기도 중이었다고 한다. 기도하는 자, 기도하는 리더라는 인정을 받자. 지금 그는 무엇하나 물으면 기도하고 있다고 답을 얻도록 기도하자. 그는 금식하여 기도했다. (갈1:7)
아라비아에서의 3년간 그는 기도했다. 또 행 9:16절에서 처음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연 우리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해도 받을 수 있는 자인가? 우리에게 다한 고난도 당연한 분깃이다. 우리를 지키실 여호와를 기억하고 살자. 우리 고난에 이상히 여기지 말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했다. 광주리 타고 도망가기도 했다. 그 고난의 화학 작용이 바울이라는 놀라운 인물을 관련해 낸 것이다.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은 우리 아닌가? 바울은 감옥에 갇혔어도 기뻐하십시오 라고 빌립보서를 쓰지 않았는가?
대접받고 인정받으려 주의 일을 하는가? 멋있게 이름 드러내려고 열심내는가? 하나님 일하는데 고난의 각오 없으면 안된다.
② 바울은 철저히 겸손한 종이었다. 리더란 겸손해야 한다. 딤전 1:12절에 능하게 하신, 충성되게 여기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자.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할 것도 아니다. 겸손히 이 길을 가자. 죄인 중에 괴수라는 자기 겸손으로 자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 믿는 자는 결코 범죄 않는가? 혹은 육은 범죄 하지만 영은 범죄 않는가?
아니다. 이는 이단적 가르침이다. 우린 절대적으로는 의임이며 상대국으로는 죄인이다.
자신을 낮춘 바울은 엡 3:8절에 성도 중에 더욱 작은 자요 고전 15:9절에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겸손해야 리더는 칭찬 받는다. 지도자가 명예욕이나 교만이 있으면, 공동체가 어지러워진다.
세례 요한의 겸손함을 배우자.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인 그는 예수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자신을 하인의 자리 이하로 낮추었다. 그저 메시지만 드러나기 원했다.
그러므로 리더는 마땅히 생각할 것 그 이상의 생각은 받아야 한다. 주를 위해 헌신된 리더는 시간, 재능, 재물, 몸,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명함, 명칭에 신경쓰지 말고 낮아져 섬기자. 날 불러 리더로 쓰심에 만족하자.
③ 바울은 사명을 위해 인생을 드렸다. 갈 2장의 확신의 사랑인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해 가면서도, 사람을 베풀며, 복음 전파에 전 인생을 드렸다. 복음을 사수하며(갈1장) 진리를 수호하였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자신의 달려갈 길, 사명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생명을 다 드렸다.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것이 사명감이다.
리더는 사명감을 가지고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 사명 때문에 감격했고 담대했고 죽음도 무릅쓴 그였다. 죽으러 가는 로마로의 여행길에도 그의 담대함은 여전했다. 오히려 사람들을 격려했다. 두려워 말라고 .......
결론
하나님께서 리더를 택하시고 세우신 이유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였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며 사는 리더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증거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주께서 지금 우리를 각 교회의 리더로 부르신다. 무슨 고난으로 부르시든지 바울을 본받아 수고와 인내와 사명과 사랑이 풍성한 은혜로 살아가는 준비된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
<보충심화연구자료3>
1. PBS/ GBS/ EQT/
2. DPM/ WPM/ SPM/ (Weekly, Sunday)
리더쉽 강의에 대한 참고 도서목록
1. 스티븐 코비 “원칙 중심의 리더쉽” 김영사 12900원 2001년
2. 존 맥스웰 “리더쉽의 21가지 불변의 법칙” 청우 9000원 1999년
3. 명성훈 “성경속의 리더쉽 마스터 키” 극민일보 10000원 2000년
4. 존 니콜라스 “소그룹 운동과 교회 성장” IVP 신재구 역 1986년
5. 명성훈 “교회 성장 에센스” 크레도
6. 존 맥스웰 “파워 리더쉽” 청우
7. 마이런 러쉬 “새로운 지도자 상” 나침반
8. 앤드류 더브 “리더쉽” 두란노
9. 이원설, 문영식 “비전과 리더쉽” 신망애 출판사 1995년
10. “이 아침을 주님과 함께” IVP 큐티교재
참고 리더의 자질
1. 헌신
①그리스도 앞에서 : 주께서 하십시오
②이웃에 대해서 : 타인을 위해 살겠습니다.
③청지기정신 : Time, Talent, Treasure, Temple, Testimony
④일에 대해서 : 충성할 것. 벧전 3:2-6 기억하라.
2. 하나님 중심의 사람
①성령 충만한 자 되라: 행 6:3-5
②말씀과 기도하는 자 되라: 딤전 2:1
③믿음과 소망 가진 자 되라: 하늘의 소망, vision가질 것 영혼사랑의 열정 가질 것
④경건한 자 되라: 참된 경건은 능력 필요. 모양이 중요하지 않다. 경건의 시간/능력 소유
⑤헌신된 자 되라: 양떼 치기/주를 따르는 자 /자기 부인하라.
3. 참된 속사람 벧전 5:2-6
①겸손소유
②감화력 소유 : 설득보다는 감화력. 자기희생
③열심 : 인간적 열심히 아니다.
④이해력 : 그의 입장이 되어 보라.
⑤의지력 소유 : 혼자를 채찍질하라.
⑥영적판단력 소유: 영적분별력이 있나? 영혼관심↑
⑦진지함 소유: 기도, 인격적 관계, 분위기를 쇄신하라.
⑧성실함 소유: 부지런함/끝마무리 잘할 것. 이기심 버릴 것.
⑨유머센스 소유: 항상 심각하면 문제 있다.
⑩용기, 결단력 소유: 변화시점파악. 밀어붙일 때를 찾으라.
4. 자기 훈련의 사람. 딤후2:3
①우선권 : 복음에 두라.
②지속적 성경연구 : 연구하는 리더. 실력있는 리더되라.
③댓가 치룸: 기쁘게, 감사로 시간, 사랑, 물질 드리라. 계산이 필요하다. 댓가 세볼 것
④시험이기기: 성적유혹, 교만의 유혹, 육신의 유혹
⑤위험대처능력 : 깊이 묵상하고 예상하라. 하나님의 지혜, 경험 필요. 예방하라.
⑥미리 준비, 계획 : 미리 철저히 계획 준비하자.
⑦능동적인 사역의 사람: 섬기는 자, 듣는 자, 친구, 조언자, 다스리는 자,
결정자, 동역자, 수행자, 훈련자
결 론
문제는 태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인격적인 헌신이 리더쉽의 가장 큰 척도가 된다.
실제적 결단, 행동하는 리더쉽이 있는가? 그 결단을 실현시킬 수 있는가?
리더쉽 연구
<리더쉽>
힘이다?-힘이 리더쉽인가? 정말 그런가?
위치다?-걸맞지 않게 않은이는 경멸 당할 수 있다. 실력 없으면 안된다.
전문성?-분야에서 잘하면 다 잘하는가? 한우물 전문가는 전체를 보지 못한다.
자신의 장기가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한다.
기도가 목회방법? 기도만하다? 성경공부, 묵상도 필요하다.
성경공부만? 아카데미화? 훈련만으로 목회하나?
<< leadership >>
1) 배이다
이끌고 있는 배를 정해진 목표에 잘 갖다 놓은 일이다.
선장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리더쉽은 실천력이 중요하다.
군인들이 정권 창출하는 경향이 센 것도 이것이 이유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군대이다.
2) 배모양은 △이다.
위에 선장이 있다. 그러나 따르는 이가 있어야 한다.
선장 ←follower
←상황(폭풍우, 암초 etc)
세 각이 맞물릴 때 제대로 갈 수 있다.
리더쉽 강의는 누구나 들어야 한다.
특정인이 듣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결국 리더쉽 아니겠는가?
<리더쉽 형태>
1. 보스 아부형(아래 사람 무시형)
2. 자기모임만 중심형(동료와는 불화형)
자기자신 보살피는 리더쉽
보스와 사귀는 리더쉽
동료와의 리더쉽
따르는 이들 앞의 리더쉽
→
<타고난 리더쉽>
50% 시간 에너지를 자기위해 씀
25%는 상위를 위한 에너지
20%는 동료위한 에너지
5%는 실제 아랫사람 위한 에너지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이가 탁월한 리더이다.
탁월한 목회자는 자신을 잘 목회해야 한다.
네 몸 사람하는 그대로, 이웃을 사랑하라.
네 자신을 먼저 하나님 사람으로 사랑해야 한다.
자기 사랑해야 남을 사랑한다.
열등감이 크면, 부부관계, 목회에 그 영향이 드러나게 된다.
뭔가 보여 주려고? 두고봐?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못함이다. 자기를 잘 care하라.
목사가 교회에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은 곧 건강한 자기 자신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설교로, 태도로, 목회로 나온다.
자기자신을 먼저 굳게 세우는 리더 되어라.
건강한 육체, 정신력, 냉정한 판단력, 있어야 한다.
성장한 교인은 자기 목회자의 영적인 충족을 위해 관심 기울일 것이다. 쉴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다.
이런 신앙가가 되자. 메시아적 신드롬을 버리자. 한 명 한 명, 베스트 다하라. 주어진 시간, 기회 중에서
유진 피터슨:
기도/말씀 묵상/ 영적 방향제시가 필요함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내적 요소이다.
소홀히 하기 쉬운데 포기하면 안된다.
목회자들이 예수 잘 믿으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리라
하나님께 들으려 기도해야 한다.
찬양으로 속의 위로를 구하라. 지휘자 바꾸어야 한다고 여기지 말라.
목회가 일이 되면 안된다. 첫사람 감격으로 하라.
<1>. 셀프 리더쉽하라. 삼상 30장
처자식이 끌려감, 부하들은 그를 돌로 죽이려함, 이 때.
다윗이 기도함-여호와로 인해 크게 힘얻었다. 급습해서 되찾아옴.
이사이에 뭔가 있었다. 그 한나절 울면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재충전하여, 나아갔다. 개인부흥회였다. 빛나는 얼굴로 되었다.
하나님 만나고 온 리더를 보면, 사람들은 꼼짝 못한다.
다윗: 가자 : 큰소리도 안했으리라.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보고 따랐으리라.
육체 관리 우선→잠을 잘자라. 피곤을 피하라.
리더가 영육감에 충만하면 좋은 영향력이 미쳐진다.
편협하려 말라. 더 넓어지라. 살찌우도록 넉넉히 나눠주라. 자기가 커지면 넉넉히 된다.
짚어져라. 그래도 돌아온자. 자기관리가 이것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을 자신에게 쓰라. 자기자신을 풍성히 하라.
그래야 흘러나오는 것이다. 영성, 리더쉽도 그렇다. 짜내려하지 말라.
<2>. 어른들을 잘 모시라.
세상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가지지 말라. 배신 크게 당한다.
세상은 사랑하고 용서 대상이다.
다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실력 있는 이를 인정해 주라
인정해 주면 그는 충성 다한다. 또 늘 충성하다가 한마디 하면 들을 수밖에 없다.
자기 권위 인정하는 자에게 마음이 열린다. 정직하게 리드하라.
관계를 잘 만들어 가라. 지혜를 발휘하라. 의사소통 잘하라. 중요한 문제는 중요하게 말하라.
어디서나 줄 세우기 잘하는 사람들, 서로 대접 받으려고 한다.
우리는 종 됨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본을 배워야 한다.
<3>. 동료의 성공을 도우라.
내가 가진 적은 것이라도 도와주라. 그에게 도움이 된다면 주라
맡겨진 일은 완벽히 해주라.
이것이 충성하는 자다. 대충하려 말라.
음, 대충 맞춰보고 성가대 선다? 그럼 안 됨, 항상 일찍 준비를 맞춰주라.
깔끔하게 끝내줘라.
<4>. 아래 사람을 위해 정직하게 주라.
거짓말 하지 말고 솔직해라. 그들을 세워주라.
사랑해 주라. love 그리고 주라. give
결론/
칼의 힘인 징기스칸 2, 3 백년감 .. 그러나 자신을 주어 사랑한 그리스도의 능력은 수 천년 간다. 이 리더쉽을 배우라. 그분은 리더들을 세워주고, 전수해 주었다.
예화
미스터 홀랜드씨의 오페라
20년간 가르침. 허무함.. 그 때 제자들이 콘서트 열어 줌
우리도 천국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리라. 그 때의 영광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