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ello
VERDI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DECCA
reviewed: 1999/10/01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Mario del Monaco (오텔로), Renata Tebaldi (데스데모나), Aldo Protti (이아고), Nello Romanato
(카시오), Ana Raquel Satre (에밀리아), Fernando Corena (로도비코) , Tom Krause (몬타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빈 필
1961년, 50대 초반의 카라얀은 이후 확립된 '성골 카라얀 사운드',
즉 다듬고 또 다듬은 탐미의 극한에 비해 좀더 내추럴하고 직선적인 울림을 갖고 있었다.
딱 10년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발퀴레 3막" 실황녹음 (EMI)에서 보여준 차갑고 잘
직조된 유려한 소릿결의 도발적인 표정과 후기 '성골 카라얀 사운드'의 중간에 위치한,
이름하여 '진골 카라얀 사운드'가 바로 이 시기의 카라얀이 내던 '목소리'인 것이다.
카라얀이 남긴 베르디 후기 오페라 녹음은 어느 하나 가릴 것없이 모두 다 최고 수준에 올라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1961년의 "오텔로"는 완벽주의자 카라얀이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자신의 '정책노선'을 가장 극명하게 펼쳐 보인 작품이란 점에서 특필할만 하다.
카라얀의 오페라는 자극적인 드라마성을 적절한 선에서 잘라내는 대신,
장중하고 두터운 선율선을 바탕으로 가수들의 목소리를 품어안으며
상승하는 웅변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특징으로 한다.
빈 필은 카라얀의 이런 '정책'에 어울리는 완벽한 앙상블을 자랑하는데,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현의 질주나 이를 호위하듯 좌우에서 터져나오는 금관의 웅장함은
'완벽'이란 단어만이 어울리는 빈 필의 위대함이다.
극과 음악의 유기적 일치를 지향하는 연속형 오페라인 "오텔로"를 다룸에 있어
카라얀은 부분의 화려함 대신 극 전체의 균질감있는 통일성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가수 대신 풍부한 표정의 오케스트라가 극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전막을 강렬한
긴장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때때로 관현악이 가수들의 목소리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바그너 오페라를 연상케하는 심포닉한 사운드의 향연으로 청자를 매혹시키는 점은
확실히 카라얀의 "오텔로"가 가진 마력의 하나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들으며, 상대적으로 빈약한 관현악의 울림에 불만을 느낀 적이 있다면
당장 이 음반을 들어볼 일이다.
타이틀롤을 맡은 마리오 델 모나코는 오텔로 장군만 427회를 노래한 금세기를 대표하는 명 오텔로 가수이다. 델 모나코는 이보다 7년 앞서 에레데의 지휘로도 "오텔로"를 녹음한 적이
있는데 목소리 자체의 당당함은 에레데의 음반이, 전체적인 음악성과 해석의 깊이에서는
카라얀의 음반이 더 뛰어나다. 즉, 가수들에게 방점을 둔 에레데의 굴곡이 심한 연주에 비해
카라얀의 음반은 오케스트라가 주도권을 잡고 있어 성악가들은 자신의 백열한 개성을 표출하는
대신 작품 전체의 통일적 미감을 살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델 모나코 또한 시종 그답잖게(?) 밝은 톤의 깨끗한 선율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델 모나코의 파워 넘치는 가창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모나코 매니아들에게는
이 음반이 베스트 초이스가 되지 못함을 뜻한다.
과연 1막의 'Esultate'는 장엄한 열정으로 가득찼으나 모나코
그만의 대담한 프레이징이 보이질 않는다. 되려 뒤를 받치는 호른의 영웅적 울림이
더 인상적이라고나할까. 한편 이런 델 모나코의 '절제'가 빛을 발하는 장면도 꽤 있는데,
1막 2중창이 대표적인 예다. 모나코의 완벽하게 조율된 웅혼한 음성이 테발디의 귀족적인 고아함과 어우러져 음반사상 최고의 2중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갈등이 본격화되는 2막에선 '배우 델 모나코'의 기질이 빛을 발한다.
유명한 4중창 장면에서 툭툭 내던지듯 뱉어내는 대사 ("Non ora!","Mi lascia!","Escite!")의
감칠맛이 보통을 넘고, "Ella e perduta e irriso io sono"에선 다른 세사람 위에
얹힌 음성이 마치 현악군을 뚫고 나오는 트럼펫 소리같은 쾌감을 던져준다.
"Ora e sempre addio"가 너무 소프트하게 해석된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이후 2막의 끝자락까지 감동적인 음성연기를 들려준다.
3막은 레나타 테발디와 델 모나코의 명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음색의 맺힘이 또렷하지 못한 테발디는 CD 시대에 들어 손해를 보는 대표적인 성악가인데,
비록 칼라스류의 자극적인 카리스마는 좀 떨어진다 해도 양감있는 풍부한 음성과 귀족적인
기품 등은 높게 인정받아야 하겠다.
푸치니와 베르디에서 공히 뛰어났지만, 특히 데스데모나는 테발디 최고의 배역으로
기억되고 있다. 델 모나코와의 호흡 또한 칼라스 - 디 스테파노 커플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나서
수많은 명반을 남기고 있는데, "오텔로"에서 그 정점을 이뤘다.
파국을 향해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3막의 숙명적 2중창에서 트럼펫 (델 모나코)과
바이올린 (테발디)은 '협'과 '불협'을 곡예하듯 넘나들면서 전율적인 감동을 자아낸다.
원래 이아고역은 델 모나코 - 테발디와 함께 데카가 자랑하는 '황금의 트리오'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의 몫이었으나, 바스티아니니가 역에 대한 심각한
이해부족을 드러내 황급히 알도 프로티로 교체되었다.
프로티는 청정하고 투명한 음색의 바리톤으로 에레데와의 첫 녹음때보다
훨씬 더 안정감있는 노래를 들려준다.
연극적인 대사처리보다 정교한 음악성을 강조하는 - 아마도 카라얀의 의도인 것 같다 -
프로티의 이아고는 조금 밋밋한 감도 없지 않으나,
델 모나코와의 호흡면에선 최고점을 받을 만하다.
2막, 악마에의 신앙고백인 '크레도'와 3막, 소위 '거미줄' 장면(Questa e una ragna dove il tuo cuor)의 능란한 대사처리는 특필할만하다.
결론적으로 이 음반은 카라얀이라는 완벽주의 기질의 지휘자가 오페라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명가수들을 기용해 만든, 음반사상 최고의 "오텔로"라 할 수 있다.
1986 Digital
Otello
VERDI
Lorin Maazel (conductor)
Orchestra del Teatro alla Scala
EMI
reviewed: 1999/10/01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Placido Domingo (오텔로), Katia Ricciarelli (데스데모나), Justino Diaz (이아고), Ezio di Cesare (카시오), Petra Malakova (에밀리아), John Macurdy (로도비코), Edward Toumajian (몬타노)
로린 마젤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놀라운 연주다. 오디오의 볼륨을 크게 올려놓고 큰소리로 따라부르고 싶은 마음이 절로난다.
주지하다시피, 이 음반은 제피렐리가 만든 영화의 사운드트랙이다.
영화에선 오텔로와 이아고간의 대화 (2막) 일부나 데스데모나의 '버들의 노래' (4막)
등을 삭제해버렸지만, 음반은 그런 걱정이 없다.
유스티노 디아즈다.
베이스 바리톤으로, 같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파올로 엘비라와 함께 메트
무대에서 주로 활동해왔는데, 사무엘 바버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세계초연에서
주인공 안토니를 불러 유명세를 탔다. 영화에 출연하게 된 건 도밍고의
강력한 천거 덕분이라고하는데, 실제로 둘 사이의 호흡은 절묘하다.
베이스에 가까운 낮은 톤이기 때문에 그의 이아고는 마성이 끓어넘치는 익사이팅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음침한 악마에 가깝다. 영화출연이후 세계 각지에서 도밍고의 상대역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 음반 최고의 즐거움은 단연 리치아렐리이다. 물기를 한껏 머금고 흐느끼듯
노래하는 그녀의 데스데모나는 금새 동정과 연민을 자아낸다.
사랑의 2중창에서 보이는 황홀한 엑스터시, 2막 4중창의 섬세한 표정,
'버들의 노래'와 '아베마리아'의 깊디 깊은 슬픔은 감동적이다.
역대 데스데모나중에서 수동적인 모습
(이는 세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찾을 수 없는, 베르디만의 특성이다)을 가장
성공적으로 그려낸 가수다.
도밍고의 오텔로는 비상한 열정과 자기확신으로 가득차있다.
남성적인 매력면에선 그의 세 가지 스튜디오 녹음 중 단연 최고다.
마젤이 지휘하는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은 참으로 달콤하고 감미로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통속성이라는 함정을 슬기롭게 피해나간다.
마치 푸치니의 오페라를 듣고 있는 듯하다. 확실히 이 음반에서 심오한
경지의 드라마성을 느끼긴 힘들다. 그러나 지성보단 감성을 앞세운 마젤의 연주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영화와 함께 감상하면 더욱 감동적인,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오텔로"다.
1959 Stereo
Otello
VERDI
Alberto Erede (conductor)
NHK Symphony Orchestra
MEMORIES
reviewed: 1999/10/01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Mario del Monaco (오텔로), Gabriella Tucci (데스데모나), Tito Gobbi (이아고),
Mario Caruso (카시오), Anna di Stasio (에밀리아), Plinio Clabassi (로도비코), Takao Okamura (몬타노)
알베르토 에레데 (지휘)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과거 "Lirica Italia"란 이름으로 이탈리아의 명가수들이 일본을 방문하여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음반은 바로 그 당시의 공연을 기록한 것이다. 1959년
2월 4일 도쿄실황으로, 마리오 델 모나코 - 가브리엘라 투치 - 티토 곱비로 이어지는
초호화 가수진에 정통 오페라 지휘자인 에레데가 지휘봉을 잡았다.
"Lirica Italia"의 실황물로는 "오텔로" 외에도 "팔리아치","아이다","카르멘" 등이
남아있는데 테너주역이 모두 다 델 모나코인걸로 봐서 당시 일본에서의 델
모나코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오텔로" 공연은 일왕 히로히토가 관례를 깨고 극장을 직접 찾아 관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음반은 철저히 가수들에게 촛점이 맞춰져있다. 관현악을 맡은 NHK 심포니는
그야말로 '반주'에 충실하다. 울림이 세련되지 못하고, 에레데의 기민한 지휘봉에
대한 반응도 늦어 "오텔로" 특유의 불같은 오케스트레이션을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NHK 합창단은 한마디로 최악인데, 다듬어지지 않은 천한 소리에다 훈련마저 덜되어서 공연내내 좌충우돌이다. 특히 '에술다테' 바로 뒷부분에선 이탈리아어 발음이 제대로 안돼 웅얼웅얼하고 대충 넘어가는데, 듣다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음반의 메리트는 불세출의 명가수들이 들려주는 박력만점의 가창에 있다.
델 모나코 매니아들에게 이 음반은 하나의 축복이다.
'내추럴 본 오텔로' - 금세기 최고의 오텔로 가수 마리오 델 모나코는
스튜디오 녹음과는 비교도 안되는 당당하고 격정적인 오텔로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44세로 캐리어의 절정에 달해있던 델 모나코는 젊은 시절의 강력하고 곧은 오텔로상에 고뇌와 번민의 표정을 첨가하여 좀더 심오해진 인물이해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내려치듯 끊어내던 발음을 다소 유연하게 바꿔 오텔로의 지성을 강조했고, ff 일색의 소리에 다채로운 강약조절을 첨가하여 감정의 진폭을 크게 넓혔다. 'Esultate'의 대담무쌍한 프레이징은 피를 끓게 만들고, 사랑의 2중창에서 선보이는 절묘한 메사 보체는 베르디가 꿈꾸던 바로 그것이다.
티토 곱비가 노래하는 이아고는 더이상 비열한 악당이 아니다.
악마의 철학을 설파하는 철학자의 모습이랄까. 그는 '드라마'를 위해 기꺼이 '음악'을 포기한다. 의식적으로 발음을 굴절시키면서 이아고의 엽기성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소름끼치는 1막 '축배의 노래', 더 이상이 불가능한 악마에의 신앙고백 '크레도', 'Era la notte'의 그 기만적 사악함 등 이아고란 배역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해부하듯 보여주는 곱비다. 전속 음반사가 달라서 만나지 못했던 델 모나코와의 호흡도 기대이상이다. 델 모나코 - 프로티 콤비가 음악적 조형미에 있어 뛰어났다면, 델 모나코 - 곱비는 드라마적 긴장감면에서 단연 전자를 압도한다. 강직하게 울리는 델 모나코의 음성과 베베꼬인 곱비의 목소리는 서로를 자극해가면서 파괴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이아고의 변설에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오텔로의 모습이 눈에 선히 잡힐 정도다. 곱비는 세라핀의 지휘로 스튜디오 녹음 (RCA)도 남겼지만 실황의 유니크한 감동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데스데모나역의 투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리릭 스핀토 소프라노인데,
다른 일급 데스데모나에 비해 표정변화가 너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조역으로는 카시오를 맡은 마리오 카루소가 발군이다.
이 공연은 영상물로도 남아있는데, 델 모나코의 동선이 큰 연기와 곱비의 시니컬한 모습 등이 기억에 남는다. 별 네 개는 위대한 성악가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1978 Stereo
Otello
VERDI
James Levine (conductor)
National Philharmonic Orchestra
RCA
reviewed: 1999/10/01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Placido Domingo (오텔로), Renata Scotto (데스데모나), Sherrill Milnes (이아고), Frank Little (카시오), Jean Kraft (에밀리아), Paul Plishka (로도비코), Malcolm King (몬타노)
제임스 레바인 (지휘)
내셔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밍고가 "오텔로"를 처음 노래한 것은 1975년 함부르크에서였다
(데스데모나에 카티아 리치아렐리, 이아고에 셰릴 밀른즈, 지휘는 레바인이었고
연출은 아우구스트 에버딩이 맡았다). 그로부터 3년뒤 녹음된 이 음반은 출반과
동시에 명반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 음반은
'최고의 명반'일까?
레바인은 특별한 개념에 구애됨없이 정확하고 빠른 박자감각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나간다. 일견 토스카니니류로 보이지만
노대가에게서 보이는 심오한 정신성이 레바인에게는 없다. 밀도높은 건 인정하지만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마젤보다 진지하지만 '이거다' 싶은 매력적인 장면이 없는
건 전체적인 표정이 너무 밋밋한 탓이다.
가수 쪽도 마찬가지다. 밀른즈의 이아고는 기대치에 크게 못미친다.
특유의 시니컬한 음성으로 파괴적인 이아고를 들려주리라 기대했건만 그의
연기는 특별한 개성이 없다. 이런 담담한 스타일의 이아고라면 굳이
밀른즈를 들을 이유가 없다. 프로티도 있잖은가.
젊은 시절의 도밍고는 당당한 음성이 돋보인다. 그가 남긴 세 개의 스튜디오 녹음 중에서 가장 싱싱하다. 그는 델 모나코에겐 없는 음악적 정교함을 가졌다. 대신 중음역에 깊이가
없고, 조여드는 고음은 듣기에 괴롭다. 이 음반의 오텔로는 대본에 충실한 모범생일 뿐,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천부적인 배우의 모습은 아니다. 도밍고의 오텔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 녹음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완성의 길로가는 과정의 녹음이다.
정리하면, 특별히 흠잡을만한 곳은 없는 음반이다. 그렇다고 뜨거운 찬사를 보내기도 어렵다. 가수와 지휘자는 정확하게 계산된 연주를 들려준다. 그래도 아쉬운 건 열정이다.
이 음반은 어쩔 수 없이 '무난한 선택'이다.
1954 Stereo
Otello
VERDI
Alberto Erede (conductor)
Orchestra dell'Accademia di Santa Cecilia
DECCA
reviewed: 1999/10/01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Mario del Monaco (오텔로), Renata Tebaldi (데스데모나),
Aldo Protti (이아고), Piero de Palma (카시오),
Luisa Ribacchi (에밀리아), Fernando Corena (로도비코), Pier Luigi Latinucci (몬타노)
알베르토 에레데 (지휘)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DECCA의 첫 "오텔로" 녹음이다. 세 명의 주역이 1961년 카라얀의 음반과
똑같아서 여러가지로 비교되기도 하는데, 간단히
말해 가수들의 '젊음'을 빼놓고는 모두 비교열위에 놓여있다.
델 모나코의 기백이 넘치는, 그러나 상당히 무뚝뚝하고 거친
질감의 오텔로는 이 당시 델 모나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별다른 고려없이 직선적인 가창을 들려주지만, 지나치게 강성 위주인데다가
피치도 꽤나 낮은 편이라 저러다 고음이 플랫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들게 만든다. 소릿결이 한결같다보니 감정표현은 당연 단순하다. 희열어린 'Esultate'나 죽음의 장면에서 들리는 오텔로의 흐느낌이나 모두 다 똑같이 들린다는 말이다.
데스데모나의 테발디와 이아고의 프로티는 공히 젊은 시절의 싱싱함이 넘쳐난다. 대신에 노련미라든가 깊은 감정이입은 없는 편이다. 테발디의 경우 그녀 특유의 벨벳과도 같은 부드러운 배음이 느껴지질 않는데, 초기 스테레오 녹음의 열악한 음질도 그 원인일 수 있다. 프로티의 이아고는 직업군인풍의 건조한 인물일 뿐, 위선적인 사악함을 가진 악마의 매력을 찾을 수 없다.
에레데는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의 제자인데, 평생 이탈리아 오페라 전문 지휘자로 일했으면서도, 데뷔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로 한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에레데와 산타 체칠리아 관현악단은 외향적인 화려함을 지향한다. 덕분에 선명한 인상을 남기긴 한다. 허나 부분의 효과에 관심을 두다보니 전편을 꽤뚫는 통일감이 부족한 편이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심오한 표정도 보이질 않는다. 모범답안임에는 틀림없으나, 듣는 이를 매혹시키는 그 무엇이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1961년 카라얀 음반의 '보완재'로써는 훌륭하다 할 수 있으나, 결코 '대체재'는 될 수 없는 음반이다. 2 for 1의 경제적 메리트만 믿고 덥썩 집어들기에는 다소 위험한 음반.
1993 Digital
Otello
VERDI
Myung-Whun Chung (conductor)
Orchestre de l'Opera Bastille
DG
녹음년도를 기준으로 이번 비교대상 음반 중 가장 최신의 것이다
(1993년,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구노홀에서 녹음되었다). 정명훈의 첫
베르디 녹음이며, DG가 만든 최초의 "오텔로"다.
아울러 이 작품에 관한 한 도밍고가 남길 최후의 스튜디오 녹음으로 예상된다.
연주진의 라인업을 잠시 살펴보자. 동양인 지휘자, 스페인 출신의 타이틀롤,
미국인 소프라노, 키로프에서 날아온 신성 등 '다국적군'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정명훈. 정명훈과 그의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사운드는 솔직히 실망스럽다. 이탈리아적 열정도, 독일적 중후함도,
인터내셔널한 표정의 분방한 다이내미즘도 아닌 어정쩡한 절충이다. 첫
인상으로만 따진다면 바비롤리의 음반과 다를 게 없다.
KBS향과의 공연 (콘서트 형식이었다)에서 보여준 정명훈의
불같은 지휘봉을 기억하는 필자로선 의아할 수 밖에.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중심을 잡아주는 주선율이 두텁지 못하고,
작품전체를 조망하는 컨셉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막을 관통하는
큰 흐름이 느껴지질 않는다. 지휘자가 놓쳐버린 주도권은 가수들이 대신
가져갔는데, 나중에 말하겠지만 이 음반의 진짜 지휘자 (?)는 오히려 도밍고다.
템포는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고, 장면마다 자잘한 표정으로 조금씩 바뀐다.
3막의 concertato는 한마디로 심심하다. 왜 좀 더 대담하게 끌고나가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정리하자면, 정명훈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나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결코 비범하지도 않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이 음반으로써 세 번째 스튜디오 "오텔로"를 남겼다.
20년 가까이 세계 최고의 오텔로 자리를 지켜온 그이지만, 최근 은퇴소동을 벌일만큼
스태미너에서 문제를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음반에서도
목소리의 기울어짐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음질문제다. 4D라는 최신 테크노롤러지로 무장한 음반임에도, 웬지 미덥지 못하다. 배음이 풍부하지 못하고, 다이나믹 레인지도 상대적으로 좁게 설정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가수들의 음성은 답답하고 깊이없이 들린다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선명하게 녹음되었다). 특히 도밍고의 경우는 마치 마이크
앞에 얇은 천을 쳐놓은 듯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Esultate'의 괴로울만큼 억지스런
'Nostra e del ciel e gloria'를 들어보라. 'Ora e per sempre addio'의 'Clamori e canti di battaglia, addio!'에선
이상한 에코까지 들어가있다.
이제 도밍고의 오텔로 해석을 이야기해보자. 1978년 녹음
(RCA, 레바인)에선 그늘진 곳 없는 당당한 음성으로 품위있는 오텔로상을 그려내었고, 마젤과의 두 번째 녹음(EMI, 1986년)에서는 낭만주의 영웅상에 충실한, 대담하고 확신에 찬 매력적인
오텔로를 연기했다. 이제 백발이 섞인 90년대의 오텔로는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수사마냥 자못 심각하다. 그러나 시종일관 무거운 톤의 목소리로 뇌까리듯 노래하는 도밍고의 해석은 너무 단순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용맹한 장군이 서서히 본능의 지배를 받아 파멸해 나간다는 극적인 변전의 과정을 느끼기엔 도밍고의 오텔로는 지나치게 지적이고,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말이다. 'Esultate'에선 승전의 희열보다는 되려 엄숙함만이 느껴진다. 2막, 이아고와의 대화는 일견 깊이있고 훌륭하게 들리나, 연극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텔로가 이같은 신중함을 가졌다면 애초에 이아고의 간계에 빠질리가 없잖은가. 3막은 2중창보다는 역시 오텔로의 절망적 모놀로그 'Dio mi potevi scagliar'가 돋보인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인간 오텔로의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도밍고는 작품에 대한 발언권이 지나치게 큰데, 몇몇 장면에선 아예 지휘자 수준이다. 사랑의 2중창, 3막 독백 등에서 자신이 템포 등 전체적인 윤곽을 설정하고는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가수들이 너무 앞서나가다보니 작품전체의 표정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그대로다.
결론적으로 도밍고의 연주는 그 비장함에선 공감을 살만하나, 지나치게 정적인 면만을 강조하여 자기모순에 빠진 꼴이 되고 말았다.
스튜더의 데스데모나는 이지적인 울림이 돋보인다.
그러나 배역에 깊은 공감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4막 '버들의 노래'를 들어보라. 여기서 무슨 처연한 감정이 느껴지는가. 질감이 두텁고 기름진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좀더 섬세한 표정이 요구된다. 바그너와 베르디를 동시에 소화하는 그녀지만, 베르디를 부르기 위해선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세르게이 라이페르쿠스. 페테르스부르크 태생의 바리톤으로,
키로프 극장의 간판스타였다. 그간 몇몇 러시아 오페라를 중심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왔지만, 본격 이탈리아 레퍼토리를 녹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음반이 출시되기 전 필자는 코벤트 가든의 "오텔로" 실황 영상물(92년/솔티 지휘, 도밍고, 키리 테 카나와 출연)을 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이아고를 맡은 라이페르쿠스를 보면서 저 가수가 대체 누구일까하고 궁금해 한 경험이 있다. 어쨋거나 그는 음반으로 남은 이아고 중에서 가장 독특하다.
일단 그의 모나고 각진 음성은 이아고의 마성을 드러내는데 유리하다. 그러나 그에겐 베르디 특유의 서정성과 깊은 울림이 없다. 또 무릇 바리톤이라면 명암교차가 확실해야 하는데(그래야 폭넓은 감정표현이 가능하다), 라이페르쿠스는 이점이 부족하다. 때문에 그의 이아고는 손에 잡힐 듯 실감나는 악마가 아니라, 별세계의 괴짜로 보인다.
라몬 바르가스는 달콤한 레가토에만 마음이 있을 뿐,
카시오의 나이브한 성격표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젊은 가수가 벌써부터 이런 편한 길을 택해서야 되겠는가. 차세대 유망주란 이름에 걸맞는 노력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CD 내지에 실린 니콜라스 소아메스의 글이다.
지금껏 많은 음반을 보아왔지만, 찬사일색의 리뷰까지 붙여서 판매하는 음반은 처음이다(마지막엔 '이 새로운 해석의 음반이 다음 천년간의 작업을 강력하게 이끌어 갈 것이다'라는 요란한 과장까지 달아놓았다). 또한 도밍고가 소아메스에게 이야기한 3막 독백의 템포 -
'나는 그렇게 느리게 노래를 불러 녹음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마젤과의 녹음에선 이보다 더 느리게 불렀다.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다주는 음반이다. 좋게보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참신함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이단이다. 다음 세기의 "오텔로"는
어떤 모습을 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Maria Callas
베스트 음반 10선
도니제티: 람머무어의 루치아
세라핀 (지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EMI 2CD) 1959 Stereo
도니제티: 람머무어의 루치아
세라핀 (지휘)/Orchestra del Maggio Musicale Fiorentino (EMI 2CD) 1954 Mono
벨리니: 노르마
세라핀 (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EMI 3CD) 1954 Mono
비제: 카르멘
프레트레 (지휘)/파리 국립 가극장 오케스트라 (EMI 2CD)
l964 Stereo
푸치니: 라 보엠
보토(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EMI 2CD) 1957
푸치니: 나비부인
카라얀(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EMI 2CD) 1955
푸치니: 토스카
사바타 (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EMI 2CD) 1953
베르디: 리콜레토
세라핀 (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EMI 2CD) 1955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
카라얀 (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EMI 2CD) 1956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줄리니 (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EMI 2CD) 1955
전성기때의 마리아 칼라스
칼라스의 생애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12월 2일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1937년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되돌아왔으며
이듬해부터 아테네의 국립 콘서바토리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1945년까지 그리스에서 착실한 경력을 쌓아가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스가 소란스러워지자 다시 미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돌아온다. 이해 겨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오디션을
받았지만 탈락하게 된다. 그후 힘들게 얻어낸 계약도 기획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또다시 좌절에 빠지지만 그 기획사의 멤버이기도 했던
베이스 가수 레메니의 소개로
1947년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La Gioconda"를 부를 기회를 잡게 되어
6월에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다. 이때 부유한 이탈리아 사업가 지오반니 파티스타 메네기니를 알게된다.
8월 2일 이탈리아 데뷰 공연을 세라핀의 지휘로 갖게 된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음에도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해서 추가 계약은
맺어지지 않았지만 그해 12월에 이탈리아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역을 부르게되고 푸치니의 "투란도트"중 타이틀롤로
재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게 된다.
1949년에는 이탈리아 벨칸토 레파토리를 부르는
소프라노로서의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지휘자 세라핀의 강력한 고집으로 마카레타 카로시오가 맡았던
"I Puritani"에서 엘비라역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해 4월 21일에는 메네기니와 결혼하게되고 남편으로서 그리고
매니저로서 메네기니의 도움을 받아
2년간 이탈리아와 유럽등지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결국 칼라스는 1951년 라 스칼라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은 시즌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1958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맡게된다.
그녀는 곧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같은 벨칸토 레파토리로
옮기기 시작함으로써 수년동안 무시당했던 많은
오페라의 레파토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드디어 1952년 6월엔 EMI사와 전속 계약을 맺게되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죠반니"중의 돈나 안나의 아리아 "Non mi dir"를 테스트로 녹음하게 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칼라스는 뚱뚱하고 덩치 크고 껑충해서
외모는 그리 매력이 없었는데
1954년 극히 짧은 기간만에 30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해서
그녀의 외모는 타인이 알아보기 힘들만큼 급격히 바뀌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만은 여전히 굵은 편이어서
칼라스는 발목이 드러나는 차림은 피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956년엔 과거 그녀를 오디션에 탈락시켰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 "노르마"를 부름으로 해서
최초로 서게되고 "토스카"와 "루치아"도 공연하게 된다.
1957년엔 베니스의 한 파티에서 메네기니와 칼라스 부부는
후에 칼라스의 연인이 되게 되는
그리스의 선박 재벌 오나시스를 처음 만나게된다.
1958년은 칼라스에게 많은 사건이 터지는 해라고 기억된다.
1월엔 이탈리아 대통령이 참석했던 "노르마"의 로마에서의
갈라 콘서트에서
1막이후 갑자기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퇴장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때문에 언론에 호된 지탄을 받게된다.
또한 그해 5월엔 라 스칼라의 감독
기링겔리와 말다툼후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다시는 라 스칼라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11월엔 메트르폴리탄에서도 해고된다.
하지만 12월 19일에 파리에서 갖은 데뷰 갈라 콘서트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만큼의 대성공을 거두게된다.
이때 청중속에 있던 오나시스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한다.
결국 이듬해 6월 메네기니 부부는 오나시스의 요트에 초대받게되고
항해가 끝나갈 즈음엔 칼라스는 오나시스의
연인이 되어있었으며 메네기니와의 결혼생활은
끝나버리게 된다.
1960년부터 61년까지 그녀는 무대에 서는 것은
포기하고 오나시스와 함께 화려한 상류생활을 즐기는데만
집착한다. 제피렐리의 설득으로 1964년부터 코벤트 가든에서의
"Tosca"를
시작으로 다시 무대에 서게된다.
이당시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전성기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공연들은 대성공을 거둔다.
점점 목소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칼라스는
의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1965년 6월 5일 코벤트 가든에서 로얄 갈라 콘서트를
열게되는데 이것이 오페라 가수로서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 된다.
은퇴한 칼라스는
1966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다시 그리스 국적을 가짐으로 해서
메네기니와의 결혼을 무효화하려고 시도한다.
오나시스가 그녀와 결혼해 줄것을 기대했으나
관계가 멀어져가던 오나시스는
1968년 J.F.케네디 미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해버린다. 칼라스로서는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게된 것이다.
1971년과 72년, 칼라스는 뉴욕의 줄리어드 스쿨에서
일련의 마스터 클래스를 연다. 또한 그녀의 옛동료이자
만년의 연인이자 친구가 된 주세페 디 스페파노와 재회한다.
1973년 스테파노는 그의 딸의 치료비를 위해서 마리아를 설득해
전세계 투어를 그와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 이 공연은 74년까지 계속된다.
1974년 11월 일본 사포로 공연을 끝으로 스테파노와의
공연은 끝이나고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 된다.
이로써 스테파노와의 관계도 끝이 나게된다.
1975년엔 오나시스가 죽게되고 칼라스는
1977년 9월 16일 54세의 나이로
그녀의 아파트에서 홀로 죽을때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은둔하게된다.
"Singing for me is not an act of pride, but an effort to elevate towards those heavens where everything is harmony."
- Maria Callas
무대의상의 마리아 칼라스
칼라스의 음악
필자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드라마틱함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페라의 매력에 필자를 빠져들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마리아 칼라스이다.
마리아 칼라스를 알고 난 이후에야
"인간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최고의 악기이다."라는 조금은 식상한 말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필자가 칼라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은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마무어의 루치아"에서
결혼 첫날밤에 남편을 살해하고 미쳐버린 후
부르는 소위 광란의 아리아 (Scena dalla pazzia)를 듣고부터다.
그 때 말로 표현할수 없는 감동으로 빠져버렸으며,
그 이후 마리아 칼라스라는 여인은 필자의 여신이 되어버렸다.
또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In mia man' alfin tu sei (마침내 그대는 내 수중에)"라는 아리아를
부른 후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드루이드의 여승인 노르마역도
칼라스 아니면 불가능한 매력을 풍긴다.
미친 여인과 복수에 가득찬 여인,
완전히 다른 성격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반대의
모습으로 바꾸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할 수 밖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연약하고 섬세한 질다를, 정열적이면서도 요염한 카르멘을
마리아 칼라스에게서 기대한다면 아마도 실망을 할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세하면서도 드라마틱함을
느낄수 있는 콜로라투라보다는 오히려 아주 파워풀한
느낌으로서 시원함을 갖게 한다.
때때로 아주 경직되어 있으며 듣기 거북스러운 쇳소리가 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약함이나 요염함 보다는 카라스마적인 것을 느낀다면
마리아 칼라스의 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라는 쟝르는
설정된 대본에 의해 무대위에서 소프라노를 비롯한 배우들이
연기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만 배우들이 어느만큼
그 연기에 얼마나 몰두할 수 있을까 하는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특히 칼라스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마리아 칼라스가 아닌 다른 소프라노들도 열심히 노래를
했지만 필자가 느낀 바는 "람마무어의 루치아"를 듣고 있으면 루치아가
아닌 마치 마리아 칼라스가 미쳐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것이다.
"노르마"를 듣고 있으면 여신인 노르마가 불타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 칼라스가 불타 죽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칼라스는 주어진 배역에 스스로를 던져버려 몰입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이런 특징이 잘 살아있은 음반으로 줄리니와 함께한 1955년 스칼라 극장의
시즌 첫 공연의 실황음반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줄리니의 곡에 대한 사랑이 잘 들어나는 반주와 함께
극의 후반부로 갈 수록 점점 배역과 자신을 합일시키는 칼라스는
결국 그녀의 죽음에 도달하면
청자로 하여금 극과 현실을 혼돈시킬 정도의 몰입된 노래와 연기를
들려준다. 실제로 이날 객석은 눈물바다가 될만치 감동적인 공연이었다한다.
또한 마리아 칼라스라는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카리스마라는것을 느끼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것을 느낀다.
아름다움과 카리스마가 동시에 와 닿는것이다.
아름다움은 다른 소프라노를 통해서도 느낄수 있다.
그러나 카리스마라는 것은 필자가 여러 음반을 그리고
여러 소프라노를 들어봤지만 아직까지 마리아 칼라스 만큼이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으로 다가온 사람이 없다.
필자가 비제의 "카르멘"을 처음 들었을 때 카르멘이란
여인에게서 연상되는것을 열거하자면 일단 주 무대인
스페인이 먼저 생각나고, 영화배우인 소피아 로렌, 그리고 영화
"해바라기"가 생각난다.
말하자면 "정열"과 "요염"이란 단어가 연상되었다.
마리아 칼라스와 요염함,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마음속에 내재된 요염함으로
따진다면 마리아 칼라스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물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드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필자가
원하는(?) 요염함을 묘사하자면 마릴린 먼로형의 백치미를 갖고
스커트를 살랑 살랑 흔들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육체파의
요염함보다는 소피아 로렌형의 아주 쌀쌀맞고 냉정하면서도
지적인 눈빛 하나만으로도 원하는 것을 얻을수 있는 지성파의 모습이다.
어쩌면 소피아 로렌이란 여인과 마리아 칼라스라는
여인을 합한 필자의 이상형일수도 있다.
카르멘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무리일까?
베스트 10이란 이름으로 10개의 타이틀을 선택하였지만,
사실 베스트 10 이라고 하니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굳이 순서를 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마리아 칼라스의 녹음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이건 별로야"라고
할 수가 없기에, 필자의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음반들의 순서라고 말할수 있다.
만약 마리아 칼라스의 매니아가 되고 싶다면,
하일라이트 판이 아닌 전곡반을 반드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소름이 끼칠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던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당신은 마리아 칼라스에 중독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She shone for all too brief a while in the world of opera, like a vivid flame attracting the attention of the whole world, and she had a strange magic which was all her own. I always thought she was immortal - and she is"
- Tito Gobbi (Bari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