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낯선 과학에 다가가기
‘김상욱의 과학 공부’라는 책은 참으로 독특하다. 김상욱은 분명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따라서 이 책은 당연히 과학 이야기로 가득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상식을 깨뜨리고 마치 철학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마치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하다. 하기는 고등학교에서 이제는 더 이상 문과니 이과니 하고 구분하지 않으니 그것이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과학자가 인문학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인문학 언저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그의 인문학적 통찰로 가득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정말 제대로 된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이야기 거리를 한 가득 안겨준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선물을 한 보따리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자는 영화 이야기나 작은 생활 속 이야기들 속에서 과학적 사실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아마도 학교의 모든 과학 선생님들이 그랬다면 학생들은 지금보다 더 과학에 깊이 빠져들 것 같다. 어쩌면 노벨상 수상자가 여럿 나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오래도록 음미해야할 정도로 여운이 길다. 더러는 무릎을 치게 하고 더러는 슬며시 미소 짓게도 한다. 그런가 하면 미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치 이야기를 접할 때 특히 그랬다.
나는 그 동안 쓸데없는 물리학에 관심으로 관련 서적을 몇 권이나 읽었다. 그때마다 양자역학에 이르면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옛날 학교에서 배운 물리학은 고전물리학이었으므로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것은 뉴턴 물리학까지다.
그러니까 고전물리학적 시각으로 양자역학을 더듬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전문서가 아니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을 모은 것이므로 그나마 한 걸음 양자역학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다.
나. 과학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과학자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예술가와 비슷한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다. 과학자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아 가던 시기, 그 일의 성격이 예술과 비슷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겉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어 두 분야는 통하는 부분이다.
과학자가 되려면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 물리학의 역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당시로서는 정신 나간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별들의 운동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려다 혹시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위대한 상상에 이른 것이다.
갈릴레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등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말이 안 되는 상상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구가 움직이고 있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다. 속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뉴턴의 제2법칙 F=ma이다.
패러데이는 빈 공간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역선(力線)이 있다고 생각했다. 맥스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간에 톱니바퀴 같은 것이 가득 차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전자기학을 완성했다. 이 이론이 예언하는 전자기파가 없다면 TV나 휴대폰은 바로 무용지물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간다는 양자역학에는 두 손을 들었다.
이런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공통점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경험적 사실을 무시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과학적 진실은 종종 경험을 뛰어넘을 때, 상식을 의심할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장벽을 뛰어넘게 하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옥의 티
’대한민국 방정식’은 읽기가 껄끄러웠다. 2장 전체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나친 반감으로 시종일관되고 있었다. 과학자가 정치색을 가지지 말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그럴 양이면 서문에서 정중히 이를 밝혀야했었다.
저자의 원전에 대한 생각은 지난 정부 사람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 같다. 그는 원전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여긴다. 세상에 절대 안전한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전을 전문으로 다루는 과학자도 아니고 기술자도 아니다.
이곳까지 읽다가 보니 저자의 한쪽으로 치우진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읽어야할지 고민이 생겼다. 나는 어느 한 편으로 경도된 과학을 보고 싶지는 않다. 가급적이면 어느 진영으로도 기울지 않는 객관적인 글을 읽고 싶은 것이다.
책의 도처에서 저자는 보수정권의 실정을 부각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세월호 사건은 곶감 빼먹듯 이곳저곳에서 빼먹고 원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국정원에 대한 불만도 가득하고 마침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도 비판하고, 위안부 합의도 마찬가지다.
혹시 ’내가 하면 과학이고 남이 하면 사이비‘는 아닐까? 나는 저자의 정치적 입장을 듣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치적 입장과는 하등 상관없이 그가 과학과 인문학을 어떻게 연결시켰는지를 엿보기 위한 것이다. 어떻든 저자의 말은 이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만들어진‘ 신화와 동요가 있다. 철학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과학도 고발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신화와 동요에 눈감고, 모른 척하는 과학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