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웃는 이유- 글 / 정 귀 옥

[아침이슬]

혼자 웃는 이유- 글 / 정 귀 옥

• 글쓴이: 라일락
• 조회수 : 10
• 08.12.28 22:29

http://cafe.daum.net/namjijung/RAGY/32

-혼자 웃는 이유-

 예를 들어 남편이 한국을 방문하려고 계획을 세운다거나 혹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타 지역으로 출타하고자 할 때 나는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아본 적이 없다.  
얼핏 들으면 이해심이 많고 심성이 좋은 아내다.  
하지만 솔직한 이유는 남편의 출타는 바로 나의 휴가이기 때문이다.        
잠시 혼자된다는 것이 8.15 해방만큼의 감격은 못 되더라도 당분간 챙겨야하는 
가사노동으로 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시시콜콜한 간섭이나 시답잖은 일로 충돌하게 
되는 굴레에서 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시시한 불평이 되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남편의 부재는
누에고치에서 벗어난 나방이 된다는 것이다.  
작년 시월 남편이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에 있었던 일이다.   
좋은 기회로 여겨 평소 남편 때문에 할 수 없이 머릿속에만 저장해 놓은 보따리들을 
하나씩 꺼내 보기로 했다.  주중이나 낮 시간은 생업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늦은 시간과 
주일오후라야 가능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남의 울타리를 넘거나 도박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보고 싶은 영화 보고 시계 없는 상태에서 실 컨 읽고 쓰는 정도이다.    
굳이 색을 첨가 한다면 주일 오후 쇼핑센터에서 눈요기 하는 정도.   
오랜만에 차지하게 된 공간에서 숨 한번 크게 쉬었다가 들어 마셔보는 것이 
마치 어린이날에 사탕 얻어먹는 듯 나에겐 특별한 일탈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인들을 초대한 날,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존재인가에 대한 솔직 토론에서 받아낸 만장일치는 전체를 축제의 
분위기로 달구기에 충분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가게로 출발하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걸었으나 자동차가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정신없이 이집 저집 이웃집 문을 두드리다 한 이웃의 도움을 얻어 배터리를 
확인했지만 갈아 끼 운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배터리문제는 아니었다.   
혼자 동동거렸지만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에 결론은 내리게 되자 
여기저기 주위 사람들에게 심려만 끼치다 결국 2주 동안 자동차를 렌트하게 되었다.   
꼼짝 않던 자동차가 다시 움직이게 된 것은 남편이 한국에서 돌아온 다음날 이였다.  
 “그래도 있을 건 있어야지.”  말로만 듣던 혼자 사는 여자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이해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였다.  어쩌면 창조주께서는 남자의 존재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여자로 하여금 이와 같은 문제로 남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자동차를 다시 몰고 자유스럽게 볼일을 보게 되니 남편의 존재에 대해 다시 감사하게
 여긴 것도 결혼 후 그때가 처음 이였다.   그러나 군대에 있을 때의 아들과 제대 후의 
아들의 다르듯이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면 그 감격과 고마움도 단막으로 끝나고 마는 법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적과의 동침 하는 일상이 지속 되었다.  
 
몇 주 전 주말을 이용해서 남편이 또 출타하게 되였다.  
다시 맞이하게 된 해방을 놓고 행복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주말을 이용한 극히 짧은 방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일 하루만이라도
나를 위해 투자하게 되는 사실에 만족을 했다.  
주일날 삐져나오는 흥분을 눌리면서 교회로 향했다.   
겨우 몇 집을 스치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차를 세우고 자동차를 둘러보니 
뒤쪽 타이어에 바람이 다 빠져있는 것이었다.  십리는커녕 겨우 
옆집 지나자마자 펑크가 난 것을 발견한 것이다.   
두 말 필요 없이 하루살이가 하필이면 비 오는 날에 태어난 꼴이 된 셈이다.  
그날 오후의 내 계획은 펑크 난 타이어 떼어내고 스페어로 갈아 끼우는 시간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자동차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있는 조카를 바라보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결혼 후 자동차 오일점검 하는 것이나 타이어에 바람을 넣거나 갈아 끼우는 
일등 자동차에 생기는 모든 문제는 으레 남편 몫으로 여겨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자동차 뚜껑을 어떻게 여는지 조차 모르면서 지금까지 운전을 해온 셈이다.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땐 자신감인지 오기인지 모르지만 혼자이면 더 잘살 것처럼 
큰소리쳤던 적도 있었다.  점점 자동차 문제뿐 아니더라도 언제부터인가 혼자 잘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남의 손과 힘에 의지하거나 필요로 하는 일만 생기는 것이다.   
하필 남편 부재중에 연달아 낭패를 당하는 경험이 마치 벌 서는 것처럼 여겨져 혼자 
구시렁거리며 팬터마임을 해본다.   늘 물리쳐야 하는 적으로 여기던 남편이 절대 
필요한 존재로 부각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부부란 억만 겁으로 쌓인 인연으로 맺어진 인연이라는 말에 포복해야 하나.  
부부란 때에 따라 서로에게 필요악이 되어 상호 작용을 해야 하나.   
가시처럼 여기오던 파트너가 이젠 양탄자로 느껴지게 되는 이 복잡한 이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내가 자동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 동안 남편의 도움이 필수적인 것처럼

언제가 돌팔이 간병인 노릇이라도 해서 품앗이를 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그 때까지의 사이에 서있는 지금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세상에는 

저절로 오는 것도 거저 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 귀옥

[아침이슬]

윗글 글쓴이는 미국에서 칼럼트로 활동하고 계신 저희 학교선배님입니다 글쓴이의 성씨는 (정씨)고 미국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르다보니까 (이씨)로 기록됏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