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문삼다(爲文三多) 해석 관견
1. 문제 제기
좋은 글을 쓰려면 첫째, 남의 글을 많이 읽어보고, 둘째, 스스로 글을 많이 지어보고, 셋째, 생각을 많이 해 보는 일이다. 대체로 다독(多讀)ㆍ다작
(多作)ㆍ다사(多思) 등 한자어로 흔히 쓰인다.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순서에 있어서는 다독ㆍ다사ㆍ다작이 좋을 듯하다. 남의 글을 많이 읽거나 세
계를 많이 관찰하고, 그 다음 그것들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 많이 작문해보는 일이 좋은 글을 짓는 지름길임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다독ㆍ다작ㆍ다사라는 말을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인 구양수(歐陽脩)의 말이라고 주장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구양수의 위문삼다(爲
文三多)는 ‘간다(看多)ㆍ주다(做多)ㆍ상량다(商量多)’이기 때문이다.
이 간다ㆍ주다ㆍ상량다를 어떤 사람은 다독(多讀)ㆍ다작(多作)ㆍ다사(多思)로 풀이하고, 또 어떤 이는 다독(多讀)ㆍ다작(多作)ㆍ다퇴고(多推敲)
로 풀이한다.
왜 이렇게 달리 해석하고 있는지 또는 왜 이렇게 달리 해석되어 왔는지 그 전말을 밝혀 보고자 한다.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는 격으로 살펴볼 따름
이다.
2. 구양수의 위문삼다
(1) 원문
歐陽公曰 「爲文有三多 看多 做多 商量多」
- 왕응린(王應麟) 찬(撰) 『옥해사학지남작문법(玉海辭學指南作文法)』
歐陽永叔謂 「爲文有三多 看多 做多 商量多也」
- 진사도(陳師道) 찬(撰) 『후산시화(後山詩話)』
(2) 번역
① 「좋은 작문의 세 조건은 눈으로 읽는 것이 많아야 하고, 짓기가 많아야 하고, 상의하거나 토의하거나 흥정함이 많아야 한다.」
② 「좋은 글을 잘 짓는데 세 가지 방법은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이 지어야 하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
③ 「작문의 세 조건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사(多思)이다.」
④ 「문장의 향상을 위한 세 조건은 읽기〔독서〕의 경험을 많이 하고, 많이 지어보고, 많이 다듬기〔다퇴고〕하는 일이다.」
3. 대표적 해석자들
(1) 이은상
문장은 단순한 문자의 나열만이 아니다. 그 속에 있는 근본 생명 되는 핵심을 붙들어서 남을 능히 감동하게 해야 한다는 점과 또 그것을 남
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성실하고 정확한 표현 방법, 곧 기술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말했다. 이로써 문장 쓰기의 안팎이 설명되었
거니와, 아무리 세밀한 문장 강화(文章講話)도 요약을 하면 이 두 가지 이상을 넘을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요령을 알고 또 거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누구나 곧 돌아서서 한 편의 문장을 쓰기에 조금도 거칠 것이 없어야 할 것인데, 왜 반드시 그렇게 되지 못하는가? 문장도 속에 덜 설명된 무엇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리라. 과연 그러하다. 아직도 남은 한 가
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수련(修鍊)이다.
아무리 문장에 대한 온갖 이론과 방법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백 번 천 번의 수련을 쌓지 않으면, 저는 저대로 있고 문장은 문장 대로 있을 뿐, 저 자신의 손에서 한 편의 문장도 지어져 나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일찍이 송(宋)나라 때의 큰 문장가 구양수(歐陽修)라는 이 가 “문장을 잘 지으려면, 세 가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이 지어야 하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첫째로, 왜 구태여 남의 글을 많이 읽으라는 것일까? 그것은 남의 글을 읽음으로써 자기의 지식 세계가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서 자
기 글을 짓는 방법상의 시사점을 얻고, 또 큰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벌이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꿀을 만들어 내고, 누에
가 뽕잎을 먹지마는 나중에 실을 뽑아내는 것처럼, 남의 것을 먹고도 필경은 제 것을 낳으라는 뜻에서 남의 글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둘째로, 왜 많이 지으라는 것일까? 아무리 문장을 많이 읽고, 잘 되고 못 됨을 비평할 수 있는 눈까지 갖추었더라도, 제 스스로 지어 보지 않
으 면 제 손이면서 제 말을 잘 듣지 않아 문장을 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꾸만 경험해 본다는 것, 자꾸만 연습해 본다는 것, 그것처럼 성공
의 정확한 첩경(捷徑)은 다시없는 것이다.
그러면 많이 읽고 많이 짓는 것으로써 족할 것인데, 왜 셋째로 많이 생각하라는 것일까? 문장도에서는 읽고, 짓는 것 이상으로 가장 중요
한 것이 바로 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장이란 무엇보다도 제 뜻을 표현하는 것을 근본 생명으로 삼기 때문이다. 문장은 세상의 온갖 사물 중에 서도 가장 엄숙하고 가장 창조적인 것이어서 제 생각, 제 뜻, 제 주견(主見), 제 말, 제 방법에 의한 글로써 최고의 도달점을 삼는다. 그러므로 수련 가운데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것이다. 심사묵고(深思黙考)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립시키고, 다시 그 자신을 그대 로 문장 속에 실어다 놓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수련이란 것도 필경은 문장의 근본 생명을 붙들어야 한다는 데 결부되고 마는 것이다.
- 『중학국어 3-1』, 「문장도(文章道)」, 교육부, 1997년 3월 1일 발행. p.16
(2) 김영봉
‘상량다(商量多)’는 구양수의 말에서 왔습니다. ‘商量’을 퇴고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인 듯합니다. 여러 문헌을 조사해 보아
도 ‘다상량’을 ‘퇴고를 많이 하라’는 뜻으로 푸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입론(立論)’ (한어대사전) 또는 ‘지론(持論) (통속편) 등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많이 생각해’ 이론 무장을 잘하고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조선일보」 2006년 11월 7일 화요일 A33
(3) 전광진(全廣鎭)
구양수(歐陽脩)의 논술 비결을 소개해 본다. ‘글을 잘 짓자면, 많이 보아야 하고 많이 써야 하고 많이 토론해야 한다.’ (爲文有三多 ; 看多,
做多, 商量多)
- 「조선일보」, 2007년 11월 2일(금). B9
(4) 유시민
글쓰기의 철칙은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고, 둘째, 많이 쓸수록 잘 쓰게 된다. 이것이 글쓰기 근육이다. 여기에 예외가 없다. 그래서 철
칙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말이 구양수의 ‘위문 삼다(爲文 三多)’에 나오는 ‘견다ㆍ주다ㆍ상량다(見多ㆍ做多ㆍ商量多)’이다. 이것을 우리 식으로 표
현한 말이 ‘다독ㆍ다작ㆍ다상량(多讀ㆍ多作ㆍ多商量)’이다. ‘견다ㆍ주다ㆍ상량다’는 “많이 읽고, 많이 짓고, 많이 생각하라”란 뜻이다. ‘商
量’을 ‘다듬다’로 해석하여, 퇴고를 많이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러 문헌을 조사해 보아도 ‘다상량’을 ‘퇴고를 많이 하
라’는 뜻으로 푸는 경우는 없다. 많이 생각하여 이론무장을 잘하고 있어야 좋을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 [출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정리 |작성자 mirrkim
(5)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
【商量多】 宋歐陽修作文三多之一。爲作文應多思考推敲之意。
〚상량다〛 송나라 구양수의 작문 3가지 요건 중 하나. 작문을 위하여서는 당연히 많이 사고하여 퇴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6)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三多】 文章の上達に必要な三條件。多く読む 多く作る 多く推敲する。
〚삼다〛 문장의 향상에 필요한 세 조건. 많이 읽고, 많이 지으며, 많이 퇴고하다.
【商量多】 宋の歐陽修の作文三多の一つ。考へはかつて文章をよく推敲する意。
〚商量多〛 송나라 구양수의 작문삼다의 하나. 이것저것 생각하여 이전부터 문장을 아름답게 퇴고한다는 의미다.
4. 맺음말
11세기에 사용된 ‘看多간다ㆍ做多주다ㆍ商量多상량다’를 현대어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작문(作文)』이라는 교과서를 중등학교에서
사용한 시대는 1990년대 초반까지였다. ‘작문’이라는 용어는 ‘글짓기’와 같은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쓰기’를 선호해서
‘작문’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남아 있을 정도일 뿐이다. 편지글도 옛날에는 ‘편지를 짓는다’고 했으나 지금은 ‘편지를 쓴다’가 되었다. 언어의 가변성
때문이다.
‘간다ㆍ주다ㆍ상량다’의 현대어 번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간다(看多) : 다독(多讀), 독다(讀多), 견다(見多), 다견(多見), 많이 읽기, 많이 보기, 많이 관찰하기
② 주다(做多) : 다작(多作), 작다(作多), 많이 쓰기, 많이 구성하기,
③ 상량다(商量多) : 다사(多思), 다사고(多思考), 문다(聞多), 많이 묻기, 많이 토론하기, 입지(立持), 다퇴고(多推敲)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독ㆍ다작ㆍ다사로 굳어진 것 같다. 오십년 전에 나온 사전에서나 최근에 나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
전』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뜻풀이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이렇다.
【삼다(三多)】 : 「명사」. 좋은 글을 짓는 데 필요한 세 가지 방법. 많이 읽고, 많이 짓고, 많이 생각하는 것을 이른다.
【상량(商量)】 : [-냥]. 「명사」. 헤아려서 잘 생각함.
하지만 국어국립원에서 그 의미를 위와 같이 확정하여 사전에 올렸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를 맹종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필자
나름으로 가까운 선배 정휘창의 견해를 근거로 하여 필자의 생각을 적어 둔다.
구양수의 ‘위문삼다(爲文三多)’ 가운데 첫째인 ‘간다(看多)’는 ‘讀多’라 쓰여 있는 글자가 아니어서 ‘다독’ 만의 뜻으로 해석하지를 않는다. 글 읽기를
포함하여 자연과 사물을 잘 관찰하는 것, 곧 자연의 질서를 잘 관찰하고 물리의 이치를 잘 파악하는 것, 여러 종류의 남의 글을 많이 읽는 것을 뜻한
다. 여행을 통하여 견문을 넓히거나, 대화를 통하여 세계를 파악하거나, 독서를 통하여 간접 체험을 하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많이 경험하기에
가깝다.
‘주다(做多)’는 구상하고 구성하여 집필하는 것이며, 직접 많이 써 보는 행위이다. 2단으로도 써 보고, 3단으로도 써 보고, 4단으로도 써 보고, 5단
등으로도 써 보며, 원인을 먼저 쓰고 결과를 나중에 쓰거나, 결과를 먼저 쓰고 원인을 나중에 써 보는 것 등, 얽고 짜서 집필을 여러 번 많이 해 본다
는 뜻이다. 다작(多作)이라는 말은 ‘작품을 많이 만든다’는 뜻이 강하여 한 작품을 여러 번 지어본다는 ‘주다(做多)’와는 거리가 멀다.
‘상량다(商量多)’의 번역이 매우 어렵다. 이 글자가 ‘개다(改多)’ 또는 ‘선다(繕多)’ 또는 ‘개작다(改作多)’로 기록되어 있다면 당연히 ‘다퇴고(多推
敲)’가 된다. 그렇다고 하여 ‘商量多’를 ‘다사(多思)’ 또는 ‘다상(多想)’ 또는 ‘다사고(多思考)’로 번역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글짓기의 순서로 보아 〈간다→상량다→주다〉로 기록되어 있으면 〈다독→다사→다작〉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사(多思) 또는 많이 생각
하기, 또는 많이 생각해 이론 무장하기 도 가능하다. 그러나 작문의 경우는 마지막이 ‘퇴고’다. 퇴고를 마쳐야 글이 된다.
구양수는 한유(韓愈)를 매우 존경했다. 구양수는 한유보다 250여 년 정도 뒤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래서 한퇴지와 가도의 퇴고고사(推敲故事)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구양수 시대에는 ‘퇴고’라는 말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구양수는 한유와 가도의 고사(故事)에 걸맞은 ‘상
량(商量)’이라는 말을 선택하였다고 필자는 믿는다. ‘상량’은 오늘날에도 ‘의논하기’, ‘자문하기’, ‘토의하기’, ‘흥정하기’ 등의 뜻으로 중국에서는 사
용한다.
상량(商量)는 초고(草稿)를 보면서 이렇게 고칠까 저렇게 고칠까 저울질하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도 문의하거나 품평하게 하여서, 자신의 입론(立
論)이나 지론(持論)으로 확정하라는 뜻이다.
결국 위문삼다(爲文三多)는 많이 보기, 여러 번 지어보기, 다퇴고(多推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