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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병(落伍兵) 일기
김 문 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것과 때를 같이하여 동녘 산봉우리에선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새 아침의 눈부신 햇살을 피하기 위해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앞엔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의 눈부심이 한동안 머물고 있었다. 마치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수한 화살들을 하늘 위로 끊임없이 쏘아올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눈부심이었다. 오래된 일이지만 나는 언젠가도 꼭 이런 눈부심을 경험했던 일이 있었다. 곤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유리 창문의 문턱 위에서 일시에 치솟던 무수한 햇살들―. 그 눈부시기만한 아침 햇살을 가득 담은 유리창들이 갑작스레 드르르 흔들리는 환영과 함께 요란한 비행음을 의식하면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번쩍 눈을 떴다. 소리보다 훨씬 앞선 아침 하늘 저쪽 끝으로 반짝반짝 은익을 빛내며 사라지는 제트기의 편대가 눈에 잡혔을 때 이미 나는 소스라치는 놀라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지금 이미 싸늘하게 죽어 있는 내가, 시체가 된 나를 살아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나 아니냐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나 자신을 그토록 심한 놀라움 속으로 밀어넣었다고 함이 옳았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산과 나무와 잘 개인 하늘로 멋지게 한데 어울린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분명히 살아 있는 거야, 분명히.
나는 기뻤다. 내 몸 안에서 아직도 뜨거운 피가 쉬지 않고 돌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여간만 다행스럽고 기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스러운 것은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아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험으로 증명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누워 있던 자세를 흐트리고 일어나 앉으려 했다. 그때 나는 목부분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일어나려던 동작을 범추고 손으로 목을 한 바퀴 쓸어보았다. 그러나 목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다시 몸을 일으켜세우려 했으나 역시 목부분의 심한 통증 때문에 일어나 앉기가 거북했다. 나는 누운 채로 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픽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잘 되었어야 서너 해쯤 자랐을까 한 산비탈의 오리나무 둥치에 배를 걸치고 꺾쇠 꼬락서니로 척 꺽여져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때문이었다. 팔을 뻗쳐 그 오리나무 둥치를 잡아보았다. 오리나무는 손바닥 하나로 충분히 감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굵기였다. 나무 둥치를 감아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상체를 세워보았다. 목부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통증을 참으며 안간힘을 썼다.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목부분의 통증 때문에 그대로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한쪽 어깨와 이마를 오리나무에 기대었다. 이런 정도로 견딜 수 있는 통증이라면 목이 부러져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다행한 일이었다.
내가 이 산비탈에 온 것은 다부동(多富洞)의 그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겪은 지 일주일쯤 지난 뒤였다. 그날이 어제인지 아니면 그제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여하튼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이 비탈을 기어올라야 하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과 그 전투에서 내가 낙오병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산비탈을 기어오르던 내 철모를 후려치며 적의 포탄이 폭발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투가 있던 그날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날이 언제인지 혹은 그제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지가 멀쩡했고 목도 부러지지 않았고 좁쌀만한 파편도 맞지를 않은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다.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었다. 그때 내 철모를 후려치며 터진 것은 포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철모를 후려친 건 포탄이 아니고 산꼭대기로부터 굴러 내려온 돌덩이였던 모양이다. 돌덩이가 내 철모를 후려치는 바로 그 순간 가까운 곳에서 포탄이 터진 모양이었다. 돌덩이가 철모 위를 내려치는 충격에 실신한 나는 서둘러대는 북상(北上)의 작전 때문에 굶주려왔던 잠도 겸해서 잤던 모양이다. 아무리 생각을 짜내어도 더 이상 달리 어떻게도 생각이 돌아가질 않았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만화 같은 생각이었지만 일단 그렇게 굳혀버릴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하튼 지금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멀잖은 곳에서 울리는 포성이 가볍게 산자락을 흔들었다. 어깨와 이마를 붙이고 있는 오리나무가 부르르 떨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나무둥치에 붙이고 있던 어깨와 이마에 힘을 주었다. 잇단 포성이 다시 산자락을 흔들면 오리나무는 또 오리나무대로 그때마다 잊지 않고 부르르 떨었다. 그때였다. 내가 앉아 있는 곳에 무엇인가 흐릿한 그림자가 잠깐 생겼다간 사라졌다. 나는 머리끝이 하늘로 쭈뼛 치솟도록 놀랐다. 내 무릎을 스치고 지나간 그림자는 벌써 저쪽 다복솔을 타고 넘어 사라졌다.
그 그림자가 다복솔을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야 나는 그것이 하늘을 날으는 새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무슨 냄새를 맡고 왔는지 모를 까마귀 한 마리가 유유히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그 놈은 하늘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점점 낮아지더니 이윽고 골짜기 건너 바위 위에 펄럭거리고 내려앉으며 까아억, 까아억, 기분나쁜 소리로 울어대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놈이 앉은 부근에 시체라도 늘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 놈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쭉 끼치며 오한 비슷한 것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까마귀의 부리가 시체를 쪼아대는 상상을 했던 모양이다. 까아역, 까아억 그러나 그놈은 무엇이 마땅찮은지 냉큼 먹이를 찾아 달려들지를 않고 공연히 울어대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다른 한 마리의 까마귀가 난데없이 나타나선 아까 그 놈처럼, 앉아 있는 나의 무릎 위로 검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넓게 원을 그리며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미구에 꼭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대고 앉았던 나무 둥치를 잡고 엉거주춤 일어서선 낮은 포복의 자세로 비탈을 타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렇게 비탈을 타던 나의 발길을 막는 것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엎어져 있는 아군의 시체였다. 그날 산 위에서 미친듯이 퍼부어대던 놈들의 총탄에 쓰러진 모양이었다. 엎어져 있는 시체여서 누군인지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등 한가운데 총탄이 지나간 자리에 핏덩이가 엉겨 있었다. 아마 저 놈의 까마귀들이 노리는 시체가 이것인치도 몰랐다. 시체의 근처에 앉았던 나 때문에 냉큼 달라붙을 수가 없어 까아억, 까아억 애가 타 울어댔는지도 몰랐다. 시체의 등덜미를 온통 검붉게 물들이고 있는 피를 빨아먹기에 여념이 없던 파리떼들이 내가 다가서자 윙, 일시에 흩어졌다간 다시 한 놈 두 놈 꼬여대기 시작했다. 역시 그 시체에서 흘러 땅을 적셨다간 말라비틀어진 핏자국 가운데서 피와 범벅이 된 십자가 하나가 흐릿하게 내 눈에 띄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최 중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마 저 피묻은 십자가의 주인도 최 중사처럼 항상 목에다 인식표와 함께 그 십자가를 걸고 다녔으리라.
최 중사는 이 전투가 시작되기 3일 전의 632고지 후퇴 때 부상을 입었다. 중상이었다. 나와 몇몇 전우가 달려들어 그를 떠메려했으나 그는 완강히 거절했던 것이다. 허리 밑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중상이면서도 그의 얼굴 표정은 별달리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자기는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살아남은 우리들이나 빨리 철수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자기 때문에 공연히 우리까지 놈들에게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인식표줄에 매달린 십자가를 떼어 손바닥에 놓고 꼬옥 쥐면서 우리들의 무사한 철수를 빌었다. 그러는 그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피묻은 십자가에서 눈길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시체의 한쪽 옆에서 흙고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 엠원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산허리를 가로질러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탄창이 꽂힌 채 버려졌던 총이었다. 나는 옷자락을 빼어 흙고물이 된 총의 목질부를 대충 닦았다.
이번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몇 발의 포성이 일며 산자락을 누비고 사라졌다. 그러고 나자 산 속은 또 쥐죽은 듯한 고요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이곳은 어느 쪽이 점령한 지역인가. 얼마 전에 보았던 제트기 편대의 방향과 가끔 산자락을 울리는 포성의 위치가 북쪽이었다는 점으로만 미루어본다 해도 이 지역은 확실히 아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목숨이 끊어질지 모를 일인 것이다. 우리들의 점령 지역이라고 적의 총구가 나를 노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나는 주위를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내가 앉은 이 나무숲속이라면 외부로부터 그리 쉽사리 관측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총으로 눈을 옮겼다. 아무래도 한 번쯤 수입을 해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소리를 죽여 가스활대의 손잡이를 후퇴시켰다. 장진되어 있던 탄환이 툭 튀어 오르더니 옆자리로 떨어진다. 탄창을 뽑아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스활대 손잡이를 전진시킨 다음 총을 뒤집었다.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꿰고 흔들어서 방아틀 뭉치를 들어냈다. 탄창이 꽃힌 채 버려져 있어 방아쇠 뭉치에까진 모래가 들어가지 못했다. 총열과 몸통에서 총대를 빼어냈다. 총대의 홈에 흙먼지가 수북했다. 나는 다시 총대 홈에 수북이 들어 있는 흙먼지를 닦아내고 총열과 몸통에 묻은 흙도 털어냈다. 이젠 총구만 한 번 쑤셔내면 총은 아무런 지장없이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엠 원 탄띠의 첫번째 주머니를 따고 야전 꽃을대를 꺼내었다. 야전 꽂을대란 한 발쯤 되는 길이의 전화선 끝에 기름걸레를 매단 것 이었다. 거개의 병사들이 그리하듯 나도 탄띠의 한 주머니에 그 야전 꽃을대라는 것을 간수하고 다녔다. 기름걸레가 매달리지 않은 전화줄의 다른 한쪽 끝을 총구에 꿰어 훑어내렸다. 총구에 잔뜩 들러붙어 있던 흙먼지가 기름걸레에 묻어나왔다. 묻어 나온 흙먼지를 털고 다시 같은 방법으로 두세 번 총구를 닦아냈다. 그것으로 총의 수입은 대충 끝낸 셈이 된다. 이제 결합만 하면 되는 것이다. 소대장의 네모진 얼굴이 눈앞에 그려진다. 군인의 제2생명은 총이다. 군인은 자기가 가진 무기를 신뢰함으로써 살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대장은 없었다. 소대장뿐만 아니라 모두들 내 곁을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이 넓은 산자락 속에 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불안하기만 했다.
총열과 몸통을 총대의 홈에 넣으려던 나는 손놀림을 멈추고 앉은 채로 그 자리에 납짝 엎드렸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쇳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귀를 바짝 세우고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 소리는 계속되지 않았다. 얼마를 기다려도 역시 조금 전에 들려왔던 그 강한 쇳소리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환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총대에 총열과 몸통을 맞추고 방아틀 뭉치를 끼웠다. 그때 또다시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전에 들려왔던 그 소리였다. 여태까지 정적만이 산자락에 안겨 있던 그런 산 속에서 알 수 없는 쇳소리가 들린다는 건 그냥 들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결합된 총을 소리나는 쪽으로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숨을 죽였다. 그때 또다시 예의 그 엿장수 가위 소리 같은 외마디의 쇳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눈을 키우고 봐도 그 쇳소리가 울려 온 곳에선 이렇다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소리인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그 쇳소리는 분명 사람이 낸 소리라고 나는 그렇게 단정을 했다. 가까운 곳에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나 이외의 인간이 또 있다고 생각하니 여간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또다시 그 쇳소리가 울려왔다. 이번에는 두 번 계속해서 울렸다간 끊기었다. 나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소리가 울려온 쪽을 향해 포복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약 2미터쯤 포복으로 다가간 곳에 조그만 바위가 나타났다. 나는 포복을 멈추고 엎드린 자세인 채로 바위의 오른쪽에 붙었다. 다시 그쪽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다시 한 번 그 소리를 듣고 정확한 방향과 거리 정 도를 알아내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예의 그 쇳소리는 냉큼 울려오지 않았다. 나는 더없이 초조한 마음으로 소리를 기다렸다. 그래도 역시 그 이상한 쇳소리는 울려오질 않았다. 조금 전의 간격보다도 더 뜨는 듯싶었다. 이쪽의 기척이라도 알아챘을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기습을 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재빨리 주위를 한 바퀴 살펴보았다. 주위에는 은폐물이 많았다. 바위도 있고 풀숲도 있다. 어디서 언제 내 목숨을 앗아갈 총알이나 칼날이 날아올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다시 머리끝이 쭈뼛쭈뼛 곤두서며 등골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이었다. 그때 갑작스레 예의 그 엿장수 가위 소리 같은 쇳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나는 하마터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왈칵 방아쇠를 잡아당길 뻔했다. 그러나 나는 용케도 방아쇠를 잡아당기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이제 그 쇳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끊임없이 울려오는 것이었다. 그 연속되는 쇳소리를 들으며 나는 적이 안심이 되어 바위 곁을 떠나 소리가 울려오는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쇳소리는 끊기지 않고 계속 울려왔다. 나는 풀숲의 은폐물을 버리고 커다란 바위 곁에 몸을 붙였다. 그 쇳소리는 바로 귀밑에서 울려오듯 가까워졌다. 고개를 빼들고 앞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눈앞에 시뻘건 황토흙이 펼쳐졌다.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호(壕) 주변 특유의 지저분한 풍경이었다. 소리는 그 호 속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계속되던 그 쇳소리가 문득 끊어졌다. 나는 호의 중앙 부분으로 총구를 겨누고 숨을 죽였다. 아니나 다를까 호 속에서 무엇인가 서서히 솟아오르는 것이 있었다. 녹두색 전투모를 뒤집어 쓴 인민군이었다. 나는 방아쇠에 걸고 있는 손가락에 가만히 힘을 주어 방아쇠 일단을 잡아당겼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격발되는 것이다. 호 밖으로 나타났던 녹두색의 전투모는 조심스레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다시 호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져버렸다. 나는 손가락에 주었던 힘을 빼고 방아쇠 일단을 풀었다. 그러자 호 속에선 또 예의 그 쇳소리가 잇달아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럴까? 통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이 지역이 우리의 손 안에 들어온 곳이 아니라면?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북으로부터 들려오는 포성으로 미루어보아도 전지(戰地)가 그쪽으로 옮겨진 것을 알 수 있었고 놈들이 쫓겨갔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 이 산중에 홀로 남은 저놈은 도대체 무얼하느라고 그런 쇳소리를 내며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고양이 걸음으로 호의 뒤쪽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섰다. 호 속에는 인민군 병사 한 놈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놈은 지금 무엇인가를 열심히 두들겨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녀석이 무엇을 그토록 열심히 두들겨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녀석의 몸에 가려서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나는 총부리로 놈의 뒤통수를 호되게 찔러주곤 뒤집어 쓰고 있는 전투모를 벗겨버렸다. 전투모가 벗겨지자 녀석은 박박 깎인 까까머리가 되었다. 손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기겁을 하고 놀라며 녀석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드는 것이었다. 그 꼴은 사람의 행동이라기보다 용수철이라도 달린 인형의
갑작스런 퉁겨짐이라는 게 알맞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번쩍 추켜진 한쪽 손아귀에서 무슨 총기(銃器)의 부속품인 듯한 쇳덩이가 힘없이 떨어져 호의 바닥에 뒹굴었다. 나는 까까머리의 어깨짬에다 총부리를 박은 채 놈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의 몸에선 아무런 무기도 나오질 않았다.
“이 새끼, 너 뭐야?”
“인민군입니다.”
나는 까까머리의 코밑에서 세 발〔三脚臺〕을 쫘악 펼친 채 하늘을 바라보고 나둥그러진 경기관총을 바라보며,
“그건 나도 안단 말야!”
하고 퉁명을 부렸다. 까까머리는 경기관총의 사수인 모양이었다.
“뒤로 돌앗!”
나는 까까머리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멧국에 절은 얼굴이었다. 아직 수염터도 잡히지 못한 새파란 애숭이의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이 잔뜩 겁에 질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나의 이런 명령이 떨어지자 까까머리의 얼굴엔 잠시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곧 그런 기색을 지워버리고 마치 뜀틀을 앞에 두었을 때처럼 양손을 쫙 펴서 호의 언덕을 짚더니 껑충 뛰어오르며 호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호 밖으로 기어나오는 까까머리의 발목에 매달려 딸려 나오는 것이 있었다. 한 팔 길이쯤 되는 쇠사슬이었다. 그 쇠사슬은 녀석의 오른쪽 발목에 채인 쇠고랑에 붙어 있었다. 나는 까까머리의 발목에 잠시 주고 있던 눈을 돌려 이제까지 녀석이 들어앉아 있던 호의 바닥을 보았다. 호 전면의 바닥 모서리에 소나무 뿌리인 듯한 동아줄 굵기의 나무 뿌리가 활모양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 활모양의 나무 뿌리는 한가운데가 짤려 있었고 뻘건 황토흙의 호 바닥엔 그 나무 뿌리를 잘랐을 것으로 짐작되는 칼과 그것을 자를 때 생긴 칼법이 비에 진 복사꽃 꽃잎처럼 허옇게 널려 있었다. 나는 다시 까까머리의 발목을 두르고 있는 쇠고랑으로 눈을 가져갔다.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를 파다가 생긴 자연적인 나무 뿌리의 고리에 쇠사슬을 꿰고 그 쇠사슬의 양쪽 끝을 모아 녀석의 발목을 감은 쇠고랑에 같이 채웠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까까머리는 놈들이 버리고 간 땅에 홀로 남아 있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까까머리는 칼로 천연적인 나무 뿌리의 고리를 잘라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완전히 묶인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고 칼로서는 쇠고랑도 또한 발목도 짜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 묻혀 있던 나는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싸늘한 냉기를 느꼈다. 그런 냉기를 느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의 이 까까머리가 쩔컹쩔컹 무엇인가를 열심히 두드려대던 소리가 바로 이 발목에 묶인 쇠사슬을 끊기 위한 작업 때문에 낸 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때, 하늘을 찢는 듯한 폭음이 일었다. 그런 폭음이 일었는가 했더니 까까머리는 눈깜짝할 사이에 벌써 호 속으로 나둥그러지듯 떨어져 들어가선 마치 놀란 고슴도치처럼 똥그랗게 뭉쳐져 있었다. 북을 향한 제트기의 편대가 일으킨 소리였다. 나는 까까머리의 그런 꼬락서니를 보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지간히 겁도 많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놈이 오늘날까지 용케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요란스런 비행음이 사라지고 난 뒤,
“나와!”
나는 호 속에 있는 까까머리에게 다시 명령을 했다. 그러나 녀석은 냉큼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 것이다.
“나오란 말얏!”
또 한 번 이렇게 소리치자 녀석은 그제서야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세우며 먼저처럼. 뜀틀 넘을 때처럼 쫙 편 양쪽 손바닥을 호의 언덕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펄쩍 뛰어 밖으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녀석은 또다시 비행기가 뜨지나 않을까 싶었던지 하늘을 추켜보는 것이었다. 녀석이 품고 있을 그런 생각도 생각이지만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었다. 우리들의 몸을 숨겨줄 만한 별다른 은폐물도 없는 이런 산꼭대기에 언제까지고 이렇게 뻣뻣이 서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그런 생각이었다. 나는 녀석을 끌고 총수입을 했던 그 나무숲 속으로
갈 작정 이었다.
“왼손을 머리에 얹어!”
녀석은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왼쪽 손을 머리 위에 얹었다.
“오른손은 발에 묶인 사슬 끝을 쥐고…….”
그러자 녀석은 또 재빨리 땅에 끌려 있는 사슬의 끝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내가 시킨 대로 잡질 않고 마치 여자들이 핸드백 의 손잡이의 끈을 걸듯 그렇게 손목에 거는 것이었다.
“가!”
나는 까까머리에게 말했다. 그러나 녀석은 냉큼 발을 떼놓지 않고 힐끗 내 얼굴을 홈쳐보는 것이었다. 어느 쪽으로 가라는 것인지 방향을 가르쳐달라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말없이 총부리로 녀석의 옆구리를 밀었다. 나의 총부리에 떠밀린 까까머리는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떠밀린 쪽으로 비칠비칠 게걸음을 치다간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놈을 나무숲 속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를 심문했다. 놈의 고향은 황해도 갈산(葛山)이라는 부락에서도 더 들어가는 두메라고 했다. 열아홉이라는 게 녀석의 나이였다. 전장이 이 산을 넘어간 것은 그제의 일이고 인민군의 신병(新兵)인 자기는 경기관총의 사수로 커다란 싸움이 있을 때면 으레 쇠고랑에 채여 묶인다는 것이었다. 자기뿐만 아니라 신병들은 모두가 다 그렇게 쇠고랑에 묶여진다는 것이었다. 까닭이란 싸우다가 달아날 염려가 있다고 그런다지만 목숨이 다할 때까지 방아쇠를 열심히 잡아당기고 죽으라는 뜻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또 한 번 온몸을 휘감는 냉기를 느꼈다. 놈들은 신병들을 마치 무슨 소모품(消耗品)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쇠고랑을 찬 신병에겐 감시병이 하나씩 따르게 마련인데 자기에게 딸린 감시병이 총을 맞고 자기 위를 덮치면서 국군들이 밀려닥쳤기 때문에 자기는 피투성이의 시체 밑에서 산송장 노릇을 하여 살아남게 되었다고 했다. 가보면 알지만 자기네가 판 호에는 호마다 쇠고랑에 묶인 신병들의 시체가 하나씩 들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다시 싸늘한 냉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소름을 끼치게 했다. 나는 그런 전율을 느끼며 까까머리의 발목을 멍청히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끊을려고 했는지 복사뼈의 바로 윗부분쯤 감긴 쇠고랑이 약간 우그러져 있었고 어떻게 쇠고랑을 헛때려서 입은 상처인지 복사뼈 바로 밑이 찢어져서 피가 배어 있었다. 나에게 발각되기 직전에 입은 상처인 모양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그 발을 내 앞으로 뻗게 했다. 까까머리가 내 앞으로 길게 발을 뻗자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온 햇빛이 마름모꼴로 그 상처 위에 떨어졌다. 나는 그 상처 위에 머물고 있는 눈길을 옮겨 녀석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녹두색의 군복이 피에 얼룩져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감시병의 시체 밑에 깔려서 송장 노릇을 했었노라는 녀석의 얘기를 그대로 믿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란 녀석이 나의 적(敵)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적 이며 나의 포로였다. 나는 마음내키는 대로 너석을 다룰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벌거벗은 두 인간의 순수한 힘으로 측정 된 강자와 약자의 차이가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적대 관계에 있는 놈과 나는 생명을 끊을 수 있는 총기를 가졌다는 것과 갖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전장에 나온 일개 군인으로서 현재 놈과 내가 다른 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한 생명으로 생각할 때 나도 또한 놈도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 산자락의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숱한 주검들을 생각하면 확실이 놈과 나는 어떤 혜택을 받은 생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녀석을 죽이지 않는 한 그런 동등한 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나는 다시 까까머리의 발로 시선을 옮겼다. 마름모꼴로 내려앉은 햇빛 속에 들어 있는 상처 부분이 눈을 끌었다. 아직 응고되지 않은 상처의 피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순수한 피라고 느껴졌다. 그것은 물론 아직 검붉게 응고되어 있지 않은 피여서 깨끗하게 느껴졌던 까닭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쇠고랑을 끊으려는 그런 피맺힌 작업 때문에 홀린 피라는 생각이 가져다준 느낌이었다.
피에 얼룩진 녹두색의 낯선 군복 색깔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녀석이 걸치고 있는 그 군복의 낯선 빛깔이 나를 비웃는 듯했다. 나는 너의 적이다! 나는 너의 적이다 ! 라고. 그러나 나는 그런 비웃음을 몰아내기라도 하듯 너는 나의 포로다 ! 너는 나의 포로다 ! 하고 열심히 중얼거려보았지만 그것은 횟수를 더할수록 점점 맥이 빠지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분명 녀석은 나의 포로이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로서는 그 포로를 앞에 놓고 자랑스런 표정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대에서 낙오된 한 낙오병의 손에 아무런 저항도 없는 한 명의 적이 덜미를 잡혔기로서니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 말이다. 아무도 없는 이 산
중에서 한 명의 포로를 데리고 있는 낙오병 ―. 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낙오병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뿐이었다. 부대를 찾아야 한다.
까까머리는 제 발목을 두르고 있는 쇠고랑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우그러뜨린 부분을 만져보는 것이었다. 나는 내 무릎에 비스듬히 기대어 두었던 총을 잡았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던 때문이다. 내가 총을 세워들자 제 발목에 채인 쇠고랑을 만져보고 있던 까까머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손을 거뒤들이며 잔뜩 겁먹은 눈으로 나를 빠안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녀석의 겁먹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픽 웃어주곤 총에서 멜빵을 풀어냈다. 풀어낸 총의 멜빵으로 녀석의 손을 묶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발에 채인 그 쇠고랑을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나는 총에서 떼어낸 멜빵을 들고 녀석의 뒤에 다가서며 손을 뒤로 뻗치라고 명령 했다. 그러나 녀석은 내가 자기를 해치려는 줄만 알고 있는지 냉큼 내 말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군화로 녀석의 엉덩짬을 걷어찼다. 그제야 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체념해버린 표정을 지으며 양쪽 팔을 뒤로 뻗쳤다. 뻗쳐진 녀석의 양쪽 팔을 모아 꽁꽁 묶어놓은 나는 다시 녀석의 앞으로 와서 총을 던지고 앉았다. 그리고 녀석이 두드려서 끊으려던 쇠고랑의 우그러진 부분을 살펴보았다. 쇠고랑은 그다지 단단한 것이 못 되었다. 모양은 꼭 죄수들에게 채우는 것과 흡사한 것이었느나 힘만 들여 끊으려들면 아주 안 될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을 바위 곁으로 끌고 가서 바위 모서리에 쇠고랑이 얹히도록 하고 대검(帶劒)을 빼어들었다. 그리고 바위 모서리에 얹힌 쇠고랑에 대검을 세우고 돌로 내려쳤다. 그 힘에 대검 끝이 잘못 비틀어지면 발목에 깊은 상처를 입을 그런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쇠고랑을 끊어낼 좋은 방법 이 나에겐 없었다. 위험하지만 조심해서 해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몇 번이고 그렇게 쇠고랑 위에 세운 대검 손잡이 위를 돌로 내려치곤 했다. 그때마다 대검의 손잡이 위를 내려치는 소리가 조용한 산자락을 울리곤 했다. 이렇게 쇠고랑을 끊는 작업이 시작되자 녀석은 녀석대로 사방을 살펴보며 경계를 게 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업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단념 해버리고 싶진 않았다.
돌이 대검 손잡이를 내려치는 소리는 근 한 시간이 넘도록 산자락을 울려댔다. 그런 보람이 있어 드디어 나와 녀석의 공동작업인 쇠고랑 끊기에 성공을 거두었다. 쇠고랑이 녀석의 발목에서 떨어져 나가자 녀석의 얼굴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되어 있었다.
“국군동무, 고맙습니다.”
녀석이 커다란 소리로 울먹이듯 말했다. 녀석이 국군동무라고 불렀을 때 나는 또 한 번 녀석이 걸치고 있는 눈에 익지 않은 군복 빛깔을 의식했다. 녀석은 나의 적인 것이다. 나는 디 이상 녀석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탄띠에 매달린 대검집에 꽂고 일어서서 총을 집어들었다.
나는 녀석을 앞세우고 산비탈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하였다. 앞장 선 까까머리는 걸으면서도 자꾸만 쇠고랑이 채였던 발목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뒤따르던 나는 녀석의 엉덩이에 와락 부딪히곤 했다.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졌으리라. 나는 문득 심한 허깃증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 배고파. 이렇게 내뱉고 말았다. 배가 고팠다. 아무것이라도 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한 번 이렇게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자 이젠 도저히 더 이상 그 심한 공복감을 떨쳐버 릴 수가 없었다.
까아억, 까아억, 까아억 ―. 어디서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찾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는 보이지 않고 까아억, 까아억 우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역시 까마귀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야 ! 임마, 넌 배고프지 않아?”
나는 앞장 선 까까머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녀석은 대답을 주지않았다.
“야 ! 이 새끼, 넌 배때기가 고프잖느냔 말이다 !”
나는 공연히 짜증이 나서 뒤로 돌려져 결박된 녀석의 손을 총부리로 쿡 찔렀다.
“동무, 뭘 좀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제야 녀석은 뒤로 돌린 얼굴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나를 바라보는 것 이었다.
“동무라는 소리 빼고 말하지 못해?”
나는 또 총부리로 녀석의 묶인 손을 쿡 찔렀다. 화가 치밀었다. 너는 나의 포로다 !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건 그저 그런 중얼거림 일 뿐 도대체 아무런 실감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너는 나의 포로다! 잇달아 중얼거려보는 소리였지만 역시 무의미한 발음에 지나지 않았다.
까아억, 까아억, 까마귀는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런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더없이 음산하고 기괴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철모를 내려치며 터지는 포탄을 상상해보았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는 생각에 묻혀 걷고 있었다. 그날 나의 철모 위를 내려친 것이 포탄이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느 산골짜기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을 것이고 그러한 내 살점들을 노리는 까마귀 떼들이 빙글빙글 하늘을 돌며 울어댈 것이다. 까아억, 까아억.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너 이 새끼,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까까머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내 고함에 움찔 놀라 걸음을 멈춘 까까머리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동무, 은혜를·…….”
또다시 입꼬리에 헤식은 웃음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이 새끼가 그래도 또 그 놈의 동무라는 소릴…….”
나는 말끝을 흐려버렸다. 이번엔 총부리로 녀석을 찌르는 퉁명도 부리지 않았다. 웬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동무 쉬었다 갑시다.”
까까머리는 걸음을 멈추고 제 앞에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널바위 위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는 것이었다. 실은 나도 좀 쉬고 싶었던 참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녀석의 옆에 앉았다. 몹시 배가 고팠다. 물이라도 맘껏 들이켰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더욱 심한 공복감을 느끼게 할 따름이었다. 까아억, 까아억, 또다시 어디선가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까머리가 추켜올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을 살피는 것이었다. 까마귀를 찾는 것이리라. 까마귀가 나타났다. 부리가 사나운 놈이었다. 그 까마귀가 사나운 부리로 까까머리의 눈을 쪼아댔다. 아! 나는 까까머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나의 환상이었다.
“너 이 새끼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까까머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여태 걸어온 것이 힘에 겨웠던지 얼굴이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녀석의 녹두빛 군복을 바라보았다. 피투성이로 얼룩이 진 군복에 어느결에 달려들었는지 쇠파리떼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나의 눈앞엔 아까 보았던 국군의 시체가 떠올랐다. 핏속에서 범벅 이 된 십자가도 나타나 눈앞을 어지럽혔다. 최 중사의 조용한 웃음이 떠올랐다. 전쟁이란 악(惡) 그것뿐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형태의 전쟁이든 전쟁은 곧 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까머리의 땀투성이인 얼굴에서 땀방울이 주룩주룩 홀러내린다. 땟국을 씻어내리는 새까만 땀줄기였다.
“야, 이 새꺄 땀 좀 닦아!”
그러나 녀석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뒤로 돌려서 묶인 손으로 어떻게 땀을 닦느냐고 비웃는 듯했다. 나는 짜증이 났다. 녀석의 웃음은 묘하게도 나를 짜증나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 녀석이 나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그런 방법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녀석을 죽일 수가 있다. 이대로 묶은 채 부대를 찾아가 실감나는 포로 생활을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가 모두 싫었다. 난 녀석을 싸늘한 시체로 만들기도 싫었고 포로로 끌고 다니기도 싫었다. 땟국을 씻으며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불을 근지럽 혔는지 녀석은 무릎을 세우고 그 무릎 위에다 얼굴을 문질러 땀을 닦아냈다. 나는 녀석의 그런 꼬락서니를 지켜보면서 문득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몹시 가려울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약간의 손놀림으로 그 못 견디게 가려운 것을 해결할 수 있건만 손이 닿아주지 않을 때의 안타까움은 참으로 미칠 지경인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 녀석이 살아 있다는 실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적이기 전에, 인간이기 전에 그 놈은 단순한 생명인 것이다. 순간 나는 그 생명을, 살기 위해서 꿈틀거리는 한 생명에 간섭하기 싫다고 생각했다. 그 놈은 그 놈, 나는 나다. 그 놈은 그놈이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나는 나대로 살아갈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내 옆에서 꿈틀거리는 그 생명에 대해 간섭치 않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녀석의 등 뒤로 다가가서 총의 멜빵으로 묶인 손을 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묶어놨던 것이다.
“이젠 네 놈 말대로다. 난 네 놈을 간섭하고 싶지 않다!”
까까머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명 청하게 내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발목에 둘렀던 쇠고랑 때문에 벌겋게 부풀어오른 자국과 상처를 바라보면서,
“야, 임마! 넌 이제 네 맘대로란 말이다. 나도 또 너도 오늘 다시 태어난 거란 말이다.”
빠른 소리로 지껄였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무슨 소린지 몰라?”
나는 버럭 역정을 내었다. 그러자 까까머리는 두서너 번 고개를 끄덕여보일 뿐 역시 멍청한 눈길로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야, 임마! 네 녀석이 언제 다시 날 만나면 말이다. 술이나 한 잔 잘 사란 말이다!”
나는 녀석의 팔을 묶었던 멜빵을 다시 총멜빵으로 하고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길 내키는 대로 비탈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앉아 있던 그 산허리에선 아무 곳으로도 뚫려진 길은 없었다. 이제 발길을 옮겨 걸으면 그것이 곧 길의 시초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목적지도 모를 길을 만들며 가듯 까까머리는 또 그 녀석대로의 길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1969년 〈한국전쟁 문학전집〉
2016년 12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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