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5:5).
그리스도인들이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환난이 성도들에게서 소망을 빼앗아 가기는커녕 더욱 굳게 붙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렇다면 이 “소망”(所望)이,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지는 않을 것인가? 다른 번역대로 한다면, “성도들을 실망(失望)시키지는 않을 것인가?” 이에 대해 결코 그럴 수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보증(保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보증이 무엇인가?
①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5) 하고 말씀합니다.
㉠ 사도는 5장에 들어와서 우선적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이 누릴 축복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도의 궁극적인 의도는 칭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確信)을 주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본문 5절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해야할 점은 “성령”(聖靈)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여기가 처음입니다. 이점이 왜 중요하냐하면, 구원계획은 성부(聖父)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으며, 성자(聖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춘다면 주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구속이 우리와는 무관(無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에게 적용(適用)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②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聖靈)으로 말미암아”(5중) 라는 언급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입니다.
㉠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모든 복음이 이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1절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2절과 9절에서도, “그로 말미암아”,
㉰ 10절에서도,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 11절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고 말씀합니다.
③ 그런데 5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또 한 분의 “말미암아”가 우리와 관계(關係)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우리에게 주신 성령(聖靈)으로 말미암아”가 그것입니다.
㉠ 그러므로 1-5절의 짧은 말씀 속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되어 있으며,
㉮ 믿음(1절), 소망(4절), 사랑(5절)등 신앙의 3대요소가 들어 있고,
㉯ 은혜(2절), 화평(1절), 즐거움(3절)등 풍성한 축복과,
㉰ 환난(3), 인내(3), 연단(4)등 성도들의 단련에 관한 요점들이 있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④ 이 “말미암아”를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과 결부를 시킨다면 어떻게 되는가?
㉠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 성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계획되었으며,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 성령으로 말미암아 적용이 된다는 말씀이 됩니다.
⑤ 그러므로 사도는 이 대목에 와서야 성령(聖靈)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 한다”는 점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있는 “소망을, 성령으로 보증”(保證) 하기 위해서 “성령”에 대한 증거를 아껴두고 있었다는 인상을 받게 합니다.
㉠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족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구원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전달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⑥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은, 성령님이 아니면 알 길이 없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성령님이 아니면 우리와는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5) 하는 것입니다.
㉠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豫備)해 놓으신 축복들을 어떻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 “오직 하나님의 성령(聖靈)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9-10, 12) 하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의 뜻입니다.
⑦ 사도는 6-8절을 통해서,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으며, ㉯ 어떻게 확증되었으며, ㉰ 어떻게 부은바가 되었는가를 설명할 것입니다.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6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8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10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確證)하셨느니라”(8절) 하고 증거 합니다.
⑧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하는 말씀이 형제의 마음을 울립니까? 형제의 마음을 저며 오게 합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형제의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 실제로 로마서 5:8절은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시베리아 얼음보다도 더 얼어붙었던 그 마음을 녹인 말씀입니다.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말씀이요, 목석같은 그녀를 울린 말씀입니다. 그녀는 간증합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칠 줄 모르는 눈물과 감격에 사로 잡혔었노라” 하고 말합니다.
㉡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이 대목은 천인공노할 흉악범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셔서, 자녀로 삼으시는데 성령께서 사용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으며 보증이 되어 주시는데, 우리에게 있는 소망(所望)이 어찌 우리를 실망(失望)시킬 수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⑨ 사도는 “부은바 됨이니” 하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아낌없이, 인색함이 없이, 남김없이, 송두리째 쏟아 부으셨다는 뜻입니다.
㉠ 창세기 27장에는 축복을 빼앗긴 에서의 통곡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 하셨나이까”(36) 하고 울부짖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말고,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을 조금도 남기시지 않고 다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 여기서 말씀하는 “부은바 됨이니”는 완료(完了)형으로써 벌써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마음에 이미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은 언제나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행 2:17) 하신 예언의 성취입니다.
㉢ 또한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행 2:33) 하고 베드로 사도는 증거 합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실로 쏟아 부어주심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로 말씀하시기를,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 비를 내리리라”(겔 34:26) 하셨습니다.
⑩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지식적으로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지, “마음에 부은바 됨”은 아닌 것입니다.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엡 3:18)이 있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에 부은바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이상 “소망(所望)이 실망(失望)을 주지 않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