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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귀국, 그리고 다시 현실
a, 아름다운 가을
2001년 9월 중순, 첫 '까미노'를 마쳤던 이 인야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당시의 심정을 기록한 글을 보면,
'석 달 전, 떠나갈 때의 바람대로 나는 맑은 가을날 서울에 돌아왔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공기가 맑아 서울 주변의 산들이 아주 깨끗하고 가깝게 보여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스페인에서의 석 달은 꽤 길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달이 세 번 둥글어졌고, 그걸 볼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아주 특별하면서도 뭔가 길고도 아름다운 꿈 하나를 꾼 듯도 하다. 오롯이 두 달 정도를 보냈던 ‘산티아고 가는 길(El Camino de Santiago)'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자유’를 만끽했고, 오랜 세월 갈망했던 '방랑의 맛'도 맘껏 누려보았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주체 못 할 충동으로 드로잉을 해댔고, 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날마다 글을 쓴 건 물론, 눈앞에 펼쳐지던 아름다운 풍광이거나 재미있는 일들을 사진으로도 담아, 마치 무슨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소중하게 간직한 채 돌아온 것이다. 비록 겉모습은 시커멓게 그을린 건 물론 비쩍 곯아 추레했지만......'
하듯,
이 인야 자신이 그 동안 다른 외국 생활을 하다가 돌아오던 '귀국길'에 비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인천공항 수화물 찾는 곳에서부터 현실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배낭은 나왔는데 지팡이가 없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배낭과 지팡이, 두 개의 화물을 부쳤는데 배낭만 나온 것이었다. 인야는 JAL 수화물 취급소를 찾아가 항의했다.
"그 물건은 나무 지팡이로 별건 아니지만, 나에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물건이랍니다."
결국 직원이 어딘가로 가더니 수화물 딱지가 붙은 지팡이를 찾아왔고, 인야는 마치 잃어버린 사람을 찾은 심정으로... 그 지팡이를 반갑게 받아 들고 세관을 나왔다.
그렇게 그는 조용히 돌아왔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던 것처럼, 돌아올 때도 조용히였다.
외출하듯 아파트 열쇠 문을 잠그고 떠났고, 돌아와 그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갑지도 않은 듯, 석 달 동안 주인 없이 지낸 아파트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핸드폰을 복원시켜 제일 먼저 누님과 통화를 했는데,
"야! 내가 너 땜에 잠도 못 자고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어?" 누님의 호통이 터졌다.
언젠가 처음에 전화를 거니 안 받아서, 저녁에 다시 거니 또 안 받아서, 다음 날 아침 또 걸어도 안 받기에... 군산의 형제들에게도 물어보고, 결국은 친구 P에게까지 전화를 걸어도 모른다기에 밤잠을 못 자며 걱정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스페인에서 인야가 조카의 이 메일에 영어로 소식을 전해서야 스페인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런 동생이 얼마나 밉던지, 돌아오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며 웃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무튼 몸 건강히 돌아왔으니 다행이야!"라고, 요즘 미국 테러 사건으로 비행기 여행도 문제가 많아 또 걱정했다고 했다.
인야는 오히려 짜증어린 변명을 했다.
"누님도 참! 나는 그저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돌아오려 했을 뿐인데... 웬 호들갑이었대요?"
그렇게 그 일은 지나갔는데,
귀국한 며칠 뒤, 인야는 우편함에서 뜻밖의 엽서 하나를 꺼냈다.
자신이 스페인에서 보낸 엽서였다. 한국에 돌아오기 일주일 전쯤, 바르셀로나에서 남은 우표를 어떻게 쓸까 하다가... 마땅한 상대가 없어 그냥 자기 주소로 써서 부쳤던 것이었다.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엽서가 나보다 빨리 내 자리에 도착할 것인가? 한 일주일 남은 시간이 너무 지리하여 엽서를 보낸다. 여기거나 거기거나 날씨는 비슷할 것 같은데, 느낌은 다를 것 같다. 바람 끝이 달라져 있어서......'
그 게 인야라는 사람이다.
아파트 십일 층 창밖으로는 산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빛 한 자락 들지 않던 지하 2층 작업실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인야는 하늘의 문을 열고 행복의 나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었다. 그러나 감격은 짧았고, 현실의 거친 파도가 창문을 두드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뜨거웠던 순례길의 기억이 채 식기도 전에, 서울의 아파트는 서서히 거대한 침묵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창밖의 풍경은 어느새 화려한 하늘 대신 차가운 도시의 잿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인야는 다시 홀로 밥을 짓고 고독과 함께 하는 현실의 시간 속으로 완전히 내던져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점점 더 꺼려하게 되었다.
마트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도 현관 앞에서 되돌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은행에 가야 할 일이 있어도, 약속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샤워까지 하고 면도도 했는데, 문손잡이 앞에서 그냥 신발을 벗어버리는 날도 있었다.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안에서 이렇게 살다가 죽고 말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10월이 되면서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졌다.
군산에 가서 형제들과 추석을 지냈다. 성묘도 했고, 아버지 제사도 지냈고, 고스톱도 쳤다.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인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이 절정으로 가고 있었다.
그해 가을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최소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던 하루, 인야는 '내 자리'에 친구들을 불러 가을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고등학교 동창 대여섯 명이 모였다.
사실 지난 6월 인야가 스페인에 갈 때도, 형제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었는데,
하필이면 인야가 스페인에 떠나기 바로 전 날 밤에 한 친구의 전화가 왔고, 조만간에 얼굴을 보자기에,
"사실은 나, 내일 스페인에 가는데......" 하고, 어쩔 수 없이 만남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고,
"혼자만 알고 있어라!" 하고 입단속을 해놓았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 제법 많은 친구들이 인야의 행방을 알고 있어서,
마치, 무슨 '스페인 여행 보고회'나 되는 것처럼 모이게 된 꼴이었다.
겉으로는 '가을 맞이 식사'라고 했지만, 인야 스스로는 그것을 '가을 축제'라고 불렀다. 간단하나마 스페인 식으로 음식을 준비했고, 마놀로가 선물로 준 독한 술 '오루호'도 열었다.
밤이 깊어 돌아가기 애매해진 친구 둘은 그냥 하룻밤을 자고 갔다.
사실, 인야는 오랜 동안 이런 꿈을 꾸며 살아왔다.
나이 들면 제주도의 한 바닷가 집에 자리를 잡고, 가을이 되면 하얀 들국화가 만발하는 뜰에 사람들을 불러 일주일짜리 가을 축제를 여는 것.
그 시나리오는 이미 어릴 적부터 써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제주도는커녕 서울의 열댓 평 아파트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 나는 여전한 몽상가로, 그런 꿈은 가슴 한 구석에 간직한 채, 이런 식으로나마 이 가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해 가을, 이 인야는 날마다 반복되는 허무와 궁핍 속에서도 드로잉만은 놓지 않았다.
'시월하늘', '비 오는 밤 이야기'... 벽에 하나씩 붙어가는 드로잉들이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내 일만 해나갈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 비가 오는 이 가을 밤,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은행 잔고는 바닥이었다.
밀린 관리비, 공과금 고지서가 우편함에 수북했다.
어느 날 간이창구에서 잔고 조회를 해보니 600원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인야는 그 숫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b, '까미노에서 쓴 편지'
귀국하자마자 인야가 온 정신을 쏟아부은 것은 하나였다.
까미노를 걸으며 종이 양면에 깨알같이 써 내려간 편지 형식의 글이 백 편을 넘겨 있었다. 스스로도 놀라운 양이었다. 길에서 틈틈이 그린 드로잉과 사진들까지 한데 모아놓고 보니, 무언가 온전한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그것들을 컴퓨터로 옮기고 편집하는 고단한 작업에 매달렸다.
처음부터 책을 내겠다는 거창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출판이라는 개념도 없이 까미노(Camino) 구석에 숨어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기 시작한 지 고작 만 하루가 지났을 때부터 인야는,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가슴이 뛰도록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일기 대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독백하는 글을 써 내려갔다. 남들은 다들 먹고살려고 치열하게 뛰고 있는데 혼자 유유자적 놀아난다는 자책감과 압박감도 있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안에서 들끓는 표현의 욕망을 참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미 '독백' 사이트를 운영한 지도 1년이 넘은 터라, 인야에게 독백은 가장 익숙한 언어이기도 했다. 길 위에서도 처음엔 일기를 쓰듯 기록만 남기다가, 이내 밀려드는 허전함에... 자신의 사이트에서 하던 방식대로 일기와는 차별화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까미노에서 누군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쓴 편지'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그림과 글을 쌓아갔다.
여정이 길어지자 함께 걷던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한글을 모르는 그들은 그림만이라도 보여달라며 간절하게 요청해 오곤 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그림을 보여주면,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감탄했다.
"당신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책으로 만들면 너무 멋지겠는데요."
처음엔 얼토당토않은 의례적인 칭찬이려니 귀담아듣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길 위에서 그런 상황과 권유가 몇 차례 반복되자, 인야의 안에서도,
'정말, 그래도 될까?' 하는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건 인야는 자신의 일을 할 뿐이라는 고집으로 이어간 작업이었다. 남들처럼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기듯 걷지는 못했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것이 결국 인야의 성격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 것들 역시, 다 홈페이지 '독백'을 운영하면서 글쓰기가 일상적인 생활화가 되어, 이런 식으로 이어진 것으로...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운명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세 달간의 스페인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서울, 현실은 차갑고 묵직하게 그를 억압했다. 당장 살아갈 길이 막막해 머리를 짜내 보아도 다른 방도는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원고를 정리하면서도,
'이걸 정말 책으로 낸다고?' 하던 의구심은, 급기야 '혹시 책을 낸다면 어떨까?' 하는 간절한 기대로 바뀌어 갔다. 어쩌면 길 위에서 해왔던 그 일들이 자신을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인야는 원고에 모든 것을 걸었다. 다행히 원고를 본 주변 지인들의 반응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서 생활은 숨이 막힐 정도로 쪼들렸다. 헤어나오기 힘들 만큼 힘에 부쳤지만, 기어이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일종의 보상심리와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 교차했다.
'이 글이 내 살아가는 인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준다면......'
그 간절함이 마침내 인야를 움직였다.
안 냈을 때보다야 나을 테니, 최소한 그동안 들인 인건비나마 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래, 한번 해보자!' 하는 결심과 함께, 그는 세상 밖으로 원고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시도한 것은 신문사 연재였다.
정중하게 샘플 원고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가부간의 짧은 답장 하나 없는 침묵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출판사 쪽에 원고를 넣어보기로 했다. 몇 군데에 e-mail로 원고 일부를 부쳤다.
그 중 한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
내부 검토를 거친 뒤 추가 자료와 이미지를 요청해 오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연락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인야에게는 그랬다.
그 짧은 메일 하나가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를 단숨에 들어올렸다. 곧 책이 나오고, 다시 화가이자 작가로서 세상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매일 메일함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전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날이 이어졌다.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은 더디게 갔다. 한편으론 그 기다림이 지금 이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기도 했다.
이 책이 나오면, 이 책이 팔리면, 그때는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기에.
11월이 되었고, 며칠씩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잦아졌다.
전화 한 통 없는 날들,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는 날들. 이불도 개지 않고 얼굴도 씻지 않은 채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계절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드로잉만은 계속했다. 압핀도 잘 들어가지 않는 콘크리트 벽면에 하나씩 붙여나간 드로잉들이 어느새 방 안의 모든 벽을 채웠다.
남들이 보기엔 무당집 같다느니, 만화동산 같다느니 했지만, 그에게 그 공간은 유일한 성채였다.
사방에서 숨을 조여오는 세상의 냉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인야만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즈음의 기록을 보면, 인야는 이때부터 훗날 '화가와 아파트의 나팔꽃'이 될 글 작업을 이미 시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뒤에야 완성을 했지만, 이 즈음에도 그 글을 염두에 두고 뭔가 작업을 시작한 흔적이 발견된다.
이 인야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뒤의 이야기는 훗날 소설 '정상적인 생활'(2013년 출간)로도 이어졌다. 2001년 한 해만을 배경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고, 수 차례에 걸쳐 반복된 생활의 종합적인 산물이지만, 그 기본적인 배경은 바로 2000년대 초의 이 시간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