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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시편 91:1-8절
제 목 :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삶
일 시 : 2018. 7. 25.
시편 91:1-8/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고 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라고 했습니다.
지존자란 엘레온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분인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최고의 신이시기 때문에 그의 대적이 아무리 악한 음모를 실행에 옮기고, 악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날뛴다고 할지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초월해 계시는 분이십니다.
은밀한 곳이란 세테르 라고 하는데 덮는, 숨는 장소, 비밀(스럽게, 비밀장소)라는 뜻입니다. 은밀한 곳이란 비밀 장소로서 누구에게나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곳인 성전의 지성소를 암시하는 말이며, 여기서는 어떤 영향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밀접하게 교통하는 자, 곧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자는 세상의 어떤 위협이나 난관에 봉착해도 동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하다란 야솨브라고 하는데 거하다, 남아있다, 거주하다, 결혼하다 라는 뜻입니다. 거하다란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의 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과 일대일로 은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올라가서 40일을 금식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여 만났듯이 그렇게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여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은밀한 곳이란 구약시대 성전의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의 지성소가 얼마나 은밀한 장소인가 하면 오직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밖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장소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오직 혼자서 일년에 한 번 밖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과의 만남이 은밀하고 비밀스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쉽고 편하고 함부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가 되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넓어졌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둘로 찢어졌습니다. 그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둘로 찢어지면서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일대일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4: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보좌란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를 의미하며,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쉽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만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신약시대가 되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대는 조건이 있습니다. 렘29:12-13/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1) 먼저 내게 부르짖으면 내게 와서 기도하면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든지 그 외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성전으로 나와야 합니다. 2)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아야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순절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성령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500명이 함께 기도를 시작했지만 기도의 목적대로 성령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불과 120명에 밖에 되지 않았고 380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성령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지금이나 온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오직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두 번째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피난처란 마하쎄라고 하는데 피난처, 보호소,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요새란 마쭈-드라고 하는데 성채, 산성, 방어 기지, (강한)요새, 접근하기 힘든 장소라는 뜻입니다. 원수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의뢰하는이란 바타흐라고 하는데 본래 의미는 피난하기 위해 서둘러 가다, 상징적으로는 신뢰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의 삶의 유일한 피난처라고 한다면 위기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께로 서둘로 달려가겠죠? 그것이 곧 의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리켜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로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의 어려움과 위기를 만났을 때 서둘러 하나님께 피하기 위해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로 달려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면 예배당, 즉 성전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찾는 기도의 장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원에 가는 것입니다. 그 장소는 기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려진 장소이기 때문에 성전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께 예배한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성전을 찾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힘들고 어렵고 고민이 생기면 아무도 몰래 예배당으로 달려가서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곳은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장소였습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포근하고 편안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왔느냐? 어서 와라! 힘들었지! 라면서 두 손을 벌려서 앉아 주는 것처럼 그렇게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배당과 집과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주일날이면 반드시 자기 예배당에 달려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부산에서도 서울로 올라가서 예배 드리고, 제주도에서도 서울로 올라가서 예배 드리고, 서울에서도 부산으로, 부산에서도 서울로 대구에서 서울로 자기 예배당으로 달려갑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이 불이 나서 다 타 버리면 교회 마당에다 텐트를 처 놓고 거기에서 예배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만큼 예배당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요 하나님이 계시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그런데도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기도한다는 것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12지파가 항상 성전을 중심으로 모여서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식 무리를 지어서 행진하며 텐트를 치고 살았고, 성전이 불타고 무너져 버렸을 때에는 회당을 지어놓고 회당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장소로서의 성전(예배당/교회)이 없다는 것은 그 마음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항상 성전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12잘 때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부모님만 내려오고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먹고 자고 거이서 랍비들과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유월절을 마치도 집으로 돌아가던 예수님의 부모님은 하루 반나절이 지나서야 예수님이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하루 반나절을 성전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해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48-50/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벌서 12살 때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라고 생각하시고, 거기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신구약성경은 일관되게 성전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성전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장소, 아버지의 집인 예배당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그곳에 달려 나오는 것을 너무나 그리워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시84:2-5/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으며, 시84:10-12/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향하여 이런 고백과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정상적인 성도라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삶이란 무슨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달려 나와서 기도하는 삶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함을 깨닫고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기 때문에 삶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달려가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달려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이런 사람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시91:2-13/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고 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사는 사람은 사고와 질병과 재앙과 그 외에도 원수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고와 재앙과 질병과 원수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발로 밟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