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나절 오 진사의 외동딸과
오 진사네 노총각 머슴의 혼례식이 조촐하게 치러졌다
. 누가 올세라 대문을 굳게 잠가버리고
사방이 꽉 막힌 좁은 안마당에서
멍석 한장 깔아놓고 신랑과 각시가 마주 섰다.
대례상에는 닭 한쌍도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 진사 내외·하인·하녀뿐,
하객이 아무도 없었다.
부랴부랴 혼례식이라고 대충 마치자
오 진사 외동딸은 지겹다는 듯
족두리를 벗어던졌다.
뒤뜰 토란밭 옆 초당에 신혼 첫날밤 화촉을 밝혔다.
신랑, 노총각 머슴 만석이는
조촐한 혼례식이 조금 섭섭했지만 그게 대수랴.
빨리 신부 옷고름을 풀고 싶은데 신부가 오지 않았다.
이경이 넘어서 초당으로 들어온 신부는
유월 생감 씹은 듯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배를 움켜쥐고 들어와
요강에 얼굴을 박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만석아.”
“네, 아씨.”
“오늘 저녁을 잘못 먹은 것 같다.
벌써 통시를 세번째 다녀왔네.
오늘 밤은 얌전히 자자.”
오 진사의 무남독녀 외동딸은
갓 혼례를 올린 새색시면서
새신랑에게 하대하고
만석이는 아직도 버릇대로 주인집 딸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 만석이는 허망했지만,
오늘만 날인가!
이튿날 새벽,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새색시가 없어진 것이다.
만석이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적반하장,
오히려 오 진사가 만석이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우리 딸 찾아내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먼저 오 진사의 무남독녀와 머슴이
혼인하게 된 연유를 알아보자.
오 진사의 외동딸은 다섯해 전에
온 고을이 떠들썩하게
이 초시네 셋째 아들과 혼례식을 올렸다.
하오나 어찌 된 영문인지
한해도 지나지 않아 친정으로 돌아와
머리 싸매고 누웠는데
열흘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춘하추동이 바뀌어도
새신랑은 처가에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 진사네 머슴 만석이는 좀 덜떨어진 노총각으로
주인 오 진사가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할 위인이다.
힘은 좋아 쌀 두가마를 지고
삼십리를 단숨에 간 적도 있는 장사다.
오 진사네 머슴 첫해,
새경 받을 날만 기다리는 만석이가
사랑방으로 불려들어갔다.
오 진사가 술잔을 만석이에게 주고 술을 따랐다.
황공해서 뒤돌아 술잔을 비우자 오 진사가
“양반놈들 하는 짓거리를 보면 달려가서 박살을 내고 싶지만…”
하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돈을 맺었던 이 초시네를 두고
이렇게 혼잣말을 하더니 난데없이
“만석아, 너를 내 사위로 삼고 싶다”고 내뱉었다.
오 진사의 이 한마디에 만석이는 몸이 얼어붙었다.
양반들을 저주하는 오 진사 자신도
돈으로 진사를 산 위인이다.
오 진사는 천석꾼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수백석을 하는 부농에
장리쌀을 놓는 고리채 돈놀이꾼이다.
“남의 눈도 있고 하니 3년 후에 혼례를 올리세
. 자네도 알다시피 내 자식이라고는 쟤밖에 없으니
자네는 내 아들과 마찬가지야.”
그렇게 새경 한푼 안 받고 3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후
마침내 혼례를 올렸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만석이는 주막으로 가서 술을 퍼마시고 땅을 치고 울었다.
그날 밤, 오 진사의 사랑방에
그의 부인 매촌댁이 들어왔다.
“나으리,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부인이 말하자,
오 진사가 비꼬는 투로
“벙어리인 줄 알았더니 말을 하는구려”
하고 빈정거렸다.
오 진사의 첫 부인은 딸 하나를 낳고 집을 나갔다.
그때 오 진사는 진사가 아닌 오 생원이었다.
저잣거리에서 밑바닥을 헤매며
오로지 돈만 쫓아다녔다.
사기도 치고 속임수 도박도 하고
방탕한 나날을 보내며 손버릇까지 나빠
가뭄에 콩 나듯이 집에 오면 마누라를 두드려 팼다.
그 후 그녀가 삭발하고 입산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후 오 진사는 돈을 모아 부자 소리를 듣자
양반 행세가 목말라 돈을 주고 진사를 샀던 것이다.
매촌댁이 오 진사의 후처로 들어온 사연도 기구하다.
양반집이 기울어지고
홀아버지는 소갈병으로 몸져눕자
오 진사로부터 장리쌀을 빌렸다.
조금 남아 있던 논밭도, 집도 오 진사 수중으로 빨려 들어갔고
결국 홀아버지도 이승을 하직하고
효심 깊던 딸은 오 진사에게 팔려왔다.
매촌댁은 말이 없었다.
오 진사가 안방을 찾으면 목석이 되었다.
오 진사는 집에 오는 날이 뜸해졌다.
매촌댁이 만석이에게 삼년치 새경을 주라 하자
오 진사는 펄펄 뛰었다.
오 진사가 첩 살림집에 처박혀 있다가
보름 만에 제 어미 제삿날이라고 집에 오니
매촌댁이 없어졌다.
행랑아범이 말하기를
집 나간 지 열흘이 됐다는 것이다.
허구한 날 울고 지내던 만석이도 없어졌다.
사랑방 다락 속의 돈통도 텅 비었고
문전옥답 땅문서 묶음도 통째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