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키: 라피엔 학교의 검술왕이라 불리는 17세의 고아 소년이다. 어느날 학교 운동장에 추락한 강철 새에 의해 학교와 다른 반 친구들을 잃고 니르바나를 만나 함께 수련 여행을 한다. 갈색 머리에 거금을 들여 산 판금갑옷을 항상 착용하고 있다. 약간은 거친 얼굴이지만 학교 내에서는 상당한 인기가 있다.
클루오: 라키의 Best friend다. 공격 마법에 일가견이 있으며, 현재 4클래스 마법을 마스터하고 5클래스를 배우는 중이다. 금발의 머리에 손목대가 덧씌워진 가죽글러브를 착용하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궁중 대마법사 제 2후보였던 칼리온의 유품 클루티젠 오브를 자나 깨나 소중히 여긴다. 동갑인 슈티보다 1클래스 더 빠른 진도를 나가고 있다.
슈티: 라키와 클루오의 같은 반 친구. 어떤 연유로 라키와 클루오를 따라나선다. 클루오보다 약간 실력이 뒤쳐지지만 둘 중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양 갈래로 땋은 핑크빛 머리에 핑크빛 눈동자가 매력적이다. 유니콘 나이트의 뿔을 제조하여 자신이 직접 만든 에더렌딘 완드를 들고 다닌다.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간섭하길 좋아하는 성격.
브래스: 젊은 나이에 수녀원장을 맡았다가 자퇴하시고 라피엔 학교의 양호선생님으로 근무 중이신 분이다. 라키와 클루오, 슈티와 함께 다니며 부상을 입으면 치료해주고 따뜻하게 아이들을 대해준다. 학교에서는 수녀복 차림이지만 평소에는 가죽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다.
니르바나: 라피엔 학교의 운동장에 떨어진 강철 새에서 나타난 부상을 입은 남자가 소환한 것으로 생각되는 청녹색 머리의 미청년. 경이적인 차원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이 있는 신검 엑스칼리버를 사용한다. 정확한 정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로베르토: 자줏빛머리에 흑갈색 망토가 트레이드마크이다. 니르바나를 친구처럼 대하며, 호탕한 성격의 엄청난 마력 소유자이다. 메리스와 함께 니르바나를 찾아온 듯하지만 정확한 목적은 불명이다. 다루는 무기는 없지만 마법보조용으로 추정되는 드레이크 매직 건들렛을 사용한다.
메리스: 로베르토와 함께 니르바나를 찾아온 그랜드 패러딘. 겉보기에는 청춘 가련 형의 순진한 여성처럼 보이지만 가끔씩 니르바나 이상으로 무뚝뚝하고 냉정하게 대할 때가 있다. 노란색의 긴 머리는 그녀의 매력 포인트. 사용하는 검은 에스케로즈 블레이드.
때는 세르온 왕국력 1203년.
왕국 제 3의 도시, 케리즈는 오늘도 시끌벅적했다. 케리즈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적들이 그만큼 쳐들어오기 힘들지만 천연 요새를 믿고 군사 시설을 소홀히 하여서 한번 전쟁이 나면 고아가 많이 발생하였다.
그런 도시인만큼 고아들을 위한 교육시설도 고급이었다. 그런 학교 가운데 하나인 라피엔 학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등교가 혼잡하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기숙사였다. 라피엔 학교는 건설 초기인 왕국력 942년에는 그저 고아들의 수용소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발전하고 규모도 거대해졌다. 주위에 나무가 많아서 공기도 좋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곧잘 야외수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곳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라키.
“야, 라키! 오늘은 이 수업만 듣고 땡땡이 칠래?”
단짝친구 클루오의 말이다.
“그럴까? 그럼 마치고 늘 모이던 장소로 가는 거다?”
“당연하지!”
“야, 거기 두 녀석! 오늘도 계속 떠들래?”
마법 담당 그리언 선생님의 한마디이다.
“아, 예!”
“시정하겠습니다!”
순간 선생님은 약간 당황했다.
‘저 녀석들이 웬일로 고분고분하지? 뭘 잘 못 먹었나?’
“자, 다음! 교과서 186쪽......”
그 때 옆자리의 슈티가 옆에서 궁시렁 거리기 시작했다.
“야, 너희 또 땡땡이치려고 작전 짜냐? 오늘은 제발 좀 참아봐라. 앞으로 네 인생 어쩌려고 그래? 하루쯤은 수업도 잘 들어야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너희가......”
“알았으니 좀 조용히 해! 걸리겠어!”
“이미 늦었다!”
어느새 선생님이 라키와 클루오에게 다가와 있었다.
“이 녀석들이 오늘은 왠지 고분고분하다 했더니......수상한 냄새가 나서 눈 여겨 보니 뭐라고? 땡-땡-이? 너 휜 이제 죽었어! 마치고 따라와!”
‘으윽......두고 보자, 슈티!’
라키는 오늘도 놀러 다니기는 끝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포기했다.
그때였다.
쿠우웅.
뭔가 무거운 물체가 땅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했다. 별 생각 없이 서있던 선생님이 쓰러짐은 물론이다.
“으악! 이게 무슨 일이야!”
라키는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다. 호기심 많은 녀석이니 그럴 만도 하다.
“앗!”
넓은 운동장에는 커다란 물체가 연기를 뿜으며 추락해 있었다.
말이 커다란 물체이지 거의 학교만한 크기였다. 추락하면서 땅에 반 정도 박혀서 실제 크기는 더 큰 것 같았다. 날개가 있는 걸로 봐서 커다란 강철 새 인 듯싶었다.
“엥? 저게 뭐야?”
옆에서 클루오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라키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 물체 벽면이 터지듯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파란색 머리의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커헉!”
남자는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뒤틀었다.
그때 강철 새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지금까지 버틴 건 칭찬해주마. 자, Z계획의 설계도, 어디에 숨겼나?”
“큭! 대답할 것 같으냐?”
남자는 입에서 피를 쏟으면서도 간신히 말했다.
“후......말이 안 통하는군. 역시 너에겐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게 빠른 것 같다.”
“......”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싼 흑회색 장발의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야, 라키. 저걸 보고만 있을 거냐?”
“......”
라키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흑회색 장발의 남자가 파란머리의 남자를 협박하는 듯 했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들고 몸을 날렸다.
“하아앗!”
“음?”
흑회색 머리의 남자는 라키를 보고 잠시 당황하더니 곧이어 피식 웃으며 라키에게 손을 뻗었다.
“쓰레기는 꺼져라!”
피잉.
“크앗!”
언제 당했는지도 모른 채 라키는 쓰러지고 말았다.
“라, 라키!”
학교 내에서도 검술실력은 상급생도 간단히 이기는 일급으로 쳐주는 라키였기에 모두는 경악했다. 때로는 검술선생님도 이기는 그가 간단히 당했으니 당연했다.
“어, 어서 치료 마법을 할줄 아는 학생들은 라키를 치료할 준비를 해! 힘쓰는 녀석들은 어서 가서 라키를 데리고 와!”
신속한 선생님의 지휘에 학생들은 서둘러 움직였다.
“어, 어떡해......괜찮은 거야?”
슈티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녀는 할줄 아는 게 공격마법 뿐이니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크윽......컥!”
고통스러워하던 라키가 곧이어 피를 토했다.
“상급 치유마법을 쓸 수 있는 학생은 어서 라키를 지혈시켜! 클루오, 가서 브래스 선생님을 모셔와!”
브래스 선생님은 젊은 나이에 수녀원장도 하셨고, 현재 양호선생님을 맡고 계시는데, 1급 치유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 알았어요.”
클루오가 나가고 나자 그리언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을 진정시키랴, 라키의 치료를 돕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사이 파란 머리의 남자는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나, 네프리가 피의 계약을 깨노니, 신계 제왕, 아르센 퀼로는 내 말에 답하라. 나 이제 내 피와 영혼을 그대에게 바치노니, 그대는 나를 대신하여 모든 이를 구제하리......”
“앗! 네프리! 어딜 감히......”
흑회색 장발의 남자는 당황하여 파란머리의 남자를 죽이려 달려들었으나, 갑작스런 빛으로 인해 오히려 튕겨져 나갔다.
“큭! 사생결단을 했군! 좋아, 이번엔 그냥 물러가주마. 하지만 네 녀석이 소환한 녀석은 이 세계를 멸망시킬 만큼 엄청난 녀석인 걸 잊지 마라.”
그 말과 함께 흑회색 장발의 남자는 텔레포트 주문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사이 파란머리의 남자가 외운 주문은 끝나고, 그 남자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연기가 걷히자 그 자리에는 청녹색 머리의 미청년만이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 제1부 끝
청녹색 머리의 미청년은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먼지가 풀풀 나는 운동장에서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브래스 선생님이 라키를 거의 다 치료했을 무렵, 그는 움직이며 중얼댔다.
“멍청한 녀석......그 몸으로 날 부르면 어쩌겠다는 거야......하긴, 그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도 없었겠지만......”
“저기요......”
“.....?”
클루오였다.
“죄송한데요, 여기 운동장에 있는 이 커다란 것 좀 어떻게 할 수 없을까요?”
“내가 알 바 아니지.”
“......”
클루오는 어이없어했다.
“아니, 이건 당신이 타고 온 게 아닌가요?”
“정확히 말해 날 부른 녀석과 그 일행이 타고 온 거겠지.”
“그럼 당신이 대신해서 치워주셔야죠!”
“......난 이런 일 할 시간 없어.”
“뭐라고요!”
클루오의 화가 폭발했다.
“저는 여기서 어릴 때부터 자라왔어요! 제 목숨과도 같은 운동장이란 말입니다!”
“......그래? 그럼 네 목숨과 바꿔라.”
“예?”
“바꾸라니까.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내가 이걸 치워주고, 운동장을 원래대로 복원시켜 주겠다.”
“윽......”
클루오는 할 말이 없었다.
미청년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난 갈 길이 바쁜 사람이야. 널 상대할 시간조차 없다고. 벌써부터 몬스터가 아까 흑회색 머리의 남자에게 조종되기 시작했어. 각지에서 몬스터들이 날뛰기 시작했단 말이다. 곧 이 세계는 죽음의 세계가 될 거다. 난 이만 가겠다.”
“......”
클루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함부로 말을 내뱉은 자신의 책임도 있었지만 자신과도 같다고 생각해온 운동장이 이렇게 처참히 뭉그러진 모습은 보기도 싫었다.
그때였다.
“어이,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군.”
미청년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네? 계획이라뇨?”
그와 동시에 청년의 몸이 사라졌다. 클루오는 놀라 그를 찾았지만, 곧이어 들려온 폭음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콰앙.
“아앗!”
학교 건물에 엄청난 빛이 날아와 충돌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학교 건물이 커다란 빛에 휩싸이며 분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
클루오는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앗! 라...라키! 슈티! 선생님!”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검은색 구멍이 뚫렸다. 그곳에서는 청년이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뒤에 줄줄이 나오고 있는 클루오의 반 학생들과 브래스 선생님, 그리언 선생님이었다.
“크......클루오?”
라키가 얼른 클루오를 알아보고 놀라워했다. 그는 학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라키, 이젠 괜찮아?”
“그럭저럭......”
그때 미청년이 한마디 했다.
“아까 본 흑회색 장발 녀석이 자신을 본 존재를 없애려 너희 학교를 파괴시켰다. 너희들과 선생님 두 분 외의 사람들은 시간상 구출한 시간이 없었지만 이정도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도록.”
“.....”
모두들 침묵에 빠졌다. 정들었던 학교와 친구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청년이 한마디 했다.
“이제 이곳을 떠난다. 그 녀석은 확인 안하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곧 다시 여기로 올 것이다. 내가 가까운 곳으로 워프 시켜 줄 테니 알아서 살아가라.”
“자......잠깐만요!”
“.....?”
“성함이라도 가르쳐주세요!”
“......니르바나.”
- 제2부 끝
자신을 니르바나라고 밝힌 미청년은 자꾸만 자신에 대해 캐묻는 라키를 귀찮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라키는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아저씨는 어디서 왔죠? 집은 어디에요? 직업은 뭐죠? 취미랑 특기는요? 여자친구는 있어요?”
“아저씨? 이봐, 난 아직 결혼 안했어.”
“아무렴 어때요? 그럼 이제 아저씬 어디로 갈 거에요?”
“수도.”
“수도요? 뭐 하러 가시는데요?”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항구도시 제라프에 워프된 학생들과 선생님은 니르바나와 작별을 하려했다.
그때였다.
쿠콰쾅.
어디선가 폭음이 들리더니 사람들이 놀라 대피하는 것이 보였다. 당황한 아이들은 얼른 길가로 비켜섰다. 곧이어 사람들이 놀라 허둥지둥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니르바나는 도망치는 한 어부를 붙잡아 물었다.
“이봐, 무슨 일인가?”
“지금 출항준비 중이던 배에 웬 문어 한 마리와 커다란 악어 3마리가 달라붙어 있어요! 승무원들은 거의 다 죽었을 겁니다! 당신도 어서 피하세요!”
“......벌써 시작된 건가. 아직은 때가 이른데. 브리더 녀석, 급하긴 했나 보군.”
“브리더요? 그게 누구에요?”
또다시 시작된 라키의 질문에 니르바나는 짜증을 냈다.
“한번만 더 입을 열면 너부터 베어버리겠다.”
“.....”
니르바나의 협박 아닌 협박에 군말 없이 입을 다문 라키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아저씬 어쩌실 거에요?”
“......아저씨란 말 하지 말라고 했지. 차라리 형이라고 불러.”
“네, 형. 어쩌실 거에요?”
“놈들을 없애러 간다.”
“농담이죠?”
“내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남자로 보이나.”
“.....”
그리고 니르바나는 곧장 항구를 향해 달려갔다.
라키와 클루오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곧장 뒤쫓았다.
“우린 어쩌죠, 선생님?”
슈티가 걱정스레 물었다. 둘을 기다려야 하는 건지, 그냥 가야 하는 건지 물어보는 것이다.
“......일단 기다리자. 정 안되면 도망치자.”
한편, 니르바나는 이제는 항구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대형문어, 크라켄과 옆에 따라다니는 대형악어 엘리게이츠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곳 일은 그냥 무시할 수도 있지만 브리더의 공격이 시작된 이상 그냥 넘어 갈수는 없었다.
“......오래간만에 땀 좀 빼겠군. 후훗, 즐겨볼까.
그와 동시에 니르바나의 몸은 공간의 일그러짐과 함께 사라졌다.
“앗? 니르바나가 어디로 갔지?”
“항구 쪽으로 가보자. 거기로 갔을 거야.”
라키와 클루오는 니르바나가 갑자기 사라지자 놀라서 그를 찾기 시작했다.
“헉, 헉, 헉......니르바나는 어디 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음? 저게 뭐야!”
“엄청나게 크다......”
항구에 도착한 라키와 클루오는 크라켄과 엘리게이츠를 보고 겁에 질려 얼른 건물 뒤로 숨어버렸다. 그사이 니르바나는 어느새 크라켄의 머리위에 서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 도시를 공격했나?”
[인간, 죽인다!]
[브리더님께 영광을!]
“.....”
이미 브리더에게 정신을 지배당한 것을 알아챈 니르바나는 곧 손을 내뻗었다.
“오래간만이군, 엑스칼리버. 나 니르바나가 너를 소환하겠다.”
[하핫, 반갑군. 니르바나. 어쨌든 1000년 전 계약대로 너의 명령에 따르겠다.]
“......고맙군.”
곧이어 니르바나의 손에선 빛과 함께 파란색검신의 대검이 솟아올랐다. 무기라기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웠다. 검은색 손잡이와 그에 어울리는 황금색 무늬와 장식, 중앙의 크리스털은 손재주가 좋다는 난쟁이 족 드워프의 최고장인도 만들어내지 못할 듯싶었다.
니르바나는 검신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검에게 말을 했다. 누가 보면 혼잣말을 하는 미치광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검의 말은 그에게만 들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래간만에 신나게 부숴 보자고, 친구.”
[원하는 대로. 후훗.]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듯 하던 니르바나의 무표정한 얼굴이 잠깐 동안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만 있을 엘리게이츠가 아니었다.
[쿠오오! 인간, 죽인다!]
콰앙.
하지만 맞아야 할 니르바나는 멀쩡했다. 한손으로 검을 쥔 채 엘리게이츠의 공격을 간단히 막고 있었다.
[크으으...건방진 인간!]
엘리게이츠는 분노하여 다시금 공격하려 하였다.
그때였다.
피이잉.
[쿠...쿠오오!]
두 가닥의 파란색 섬광이 번뜩인 후 엘리게이츠는 양쪽 눈을 감싼 채 고통스러워했다.
“아이큐가 소수점 이하인 것은 여전하군. 상대를 가리는 법도 모르다니.”
[크...크윽...]
“편히 쉬게 해주마.”
니르바나의 몸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두 눈을 당한 엘리게이츠의 몸이 튀어 올랐다. 곧이어 엘리게이츠의 몸은 항구의 구석에 쳐박혔다.
[크아악!]
“자, 단역1은 대본에서 제거됐으니, 다음은 누구냐?”
- 제3부 끝
니르바나의 실력에 라키와 클루오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이런 엄청난 괴물을 단 일격에 쓰러뜨리는 엄청난 검술의 소유자는 보지 못했다. 검술을 전공한 라키는 더욱 놀라워했다.
“아, 아니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거지?”
“나도 몰라. 앗! 저길 봐!”
클루오의 말대로 니르바나는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까와는 달랐다.
“라이트닝 브레이커.”
츠즈즈즛.
니르바나의 엑스칼리버의 파란색 검신이 노랗게 물들었다. 라키의 놀라움은 더했다.
“저건 마법과 검을 합해 공격하는 것 같은데? 저런 것도 가능한가?”
“아닌 것 같아. 보통의 검에 전격마법을 걸면 검 사용자도 감전 될 텐데 니르바나는 멀쩡하잖아.”
클루오의 물음에 라키가 대답해 주었다. 그사이 니르바나도 움직였다.
슈슈슛.
눈 깜짝할 새에 엘리게이츠 두 마리의 뒤에 나타난 니르바나는 곧장 양손으로 검을 잡고 크게 휘둘렀다.
츠카카캇.
[크...크아아악!]
[크핫!]
전기가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엘리게이츠는 비명을 질러댔다.
“뭐......뭐지?”
“언제 뒤로 돌아 간 거야?”
“게다가 어떻게 한 번의 공격에 엘리게이츠가......”
간단히 엘리게이츠 두 마리를 잠재운 니르바나는 마지막 남은 크라켄에게 몸을 날렸다.
슈슈슛.
그러나 크라켄의 다리가 더 빨랐다. 자신의 다리로 니르바나를 꽁꽁 묶은 크라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리에 힘을 가했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자 라키와 클루오는 기겁을 했다.
“서...설마 니르바나가 당한 건...?”
“재수 없는 소리 하지도 마!”
[쿠...쿠오오!]
그러나 우두둑 소리는 크라켄의 다리뼈에서 난 소리였다. 문어가 다리뼈가 있을 리가 없지만, 고대생물인 크라켄 이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니르바나는 멀쩡하다는 것이다.
“후, 어딜 감히 지저분한 다리를 내 몸에 갖다대는 거냐.”
[크...크어어...]
“리버스 크레비트.”
곧이어 중력이 뒤집히는 소리와 함께 크라켄의 몸은 깡통 구겨지듯 눌러지더니 터져버려 바다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
라키와 클루오는 할 말이 없었다. 여태껏 그런 형태의 검술은 본적도 없었다.
“야, 클루오”
“......”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클루오는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클루오!”
“응? 왜?”
“나 말이야, 니르바나를 따라갈 거야.”
“뭐?”
“니르바나 형의 검술을 꼭 배우고 싶어.”
“그럼 나도 같이 가.”
“뭐? 넌 검술은 배워도 안 쓰잖아. 넌 마법사라고.”
“우린 친구잖아.”
“그래! 그러자고!”
“목구멍에 바리게이트 치는 소리 하고 있네.”
어느새 니르바나가 자신의 뒤에 와 있었다.
“누구 맘대로 따라오니 마니 하는 거냐.”
“형! 전 형의 검술을 꼭 배우고 싶어요.”
그 말에 니르바나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싫어.”
“왜, 왜요?
니르바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귀찮아.”
“저희 일은 저희가 알아서 모두 할께요. 식사도 만들고. 제발 허락해 줘요, 형.”
“그럼 좋을 대로.”
목숨까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라키와 클루오 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형! 이젠 형 이름 좀 줄여서 부르면 안 되요?”
“.....?”
“너무 길잖아요.”
“네 글자가 뭐가 길다는 거냐.”
“이젠 니르 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니르 형.”
“마음대로.”
- 제4부 끝
니르바나가 크라켄과 엘리게이츠를 처리하자 마을사람들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약간의 노자를 주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있는 곳으로 가니 선생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학생들은 영영 못 볼 줄 알았던 친구들이 돌아오자 뛸 듯이 기뻐했다.
특히 슈티는 더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서야 온 거야? 너희가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애타게 기다린 줄 알아?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걱정 시킬 수가 있어?”
그 말을 듣자 둘은 킥킥거리더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동시에 말했다.
“너, 클루오 좋아하지?”
“아하, 이제 보니 라키를 좋아하는구나?”
그 말에 슈티는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라키는 장난기를 거두고 말했다.
“난 앞으로 니르 형을 따라다니면서 검술을 배울 거야. 클루오도 따라오기로 했어. 니르 형도 허락했고. 아쉽지만 여기서 너희들과 헤어져야 할 것 같아.”
“뭐, 뭐라고?”
모두가 놀라자 이번엔 클루오가 말했다.
“나는 마법사라 라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따라 가는 거야. 라키는 니르 형의 검술을 익혀서 마검사가 되겠다고 했어.”
“마, 마검사? 라키, 마법도 할줄 알았어?”
“아니, 니르 형의 검술은 매우 특별해. 차원과 중력을 조절하여 나타나는 에너지를 다른 물질로 바꾸어서 검에 특별한 능력을 덧씌우는 검술 이라고 했어. 얼마나 훈련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확고한 라키의 말에 그의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 학생들은 아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과연 차원과 중력을 조절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때 슈티가 말했다.
“나도 같이 가겠어.”
“뭐?”
그녀의 폭탄선언에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예상은 했는지 니르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친구를 셋이나 떠나보내기는 싫었는지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가마.”
옆에서 잠자코 그들의 말을 듣던 브래스 선생님도 동참했다.
“너희의 앞길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단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있는가 하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지. 몬스터의 습격을 받으면 부상을 당하기 쉽단다. 그때 내 치유마법이 도움이 될 거야.”
“아니, 브래스 선생님께서도.....?”
그리언 선생님은 당황한 얼굴로 브래스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리언 선생님, 학생들을 부탁합니다.”
브래스가 따뜻하게 웃어주며 말하자, 몇몇 아이들은 급기야 울음까지 터뜨렸다. 언제나 어머니처럼 대해주시던 브래스 마저 떠난다는 말에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잠시 후 상황이 진정되자, 니르바나는 서서히 워프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하며 말했다.
“대충 정리되었으면 여길 떠난다. 시간이 없어.”
“아, 예!”
‘이제 시작이다.’
라키는 앞으로 일어날 모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떤 어둠의 내막이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그였다.
- 제5부 끝
저벅저벅.
아름답기로 소문난 칼리아치 숲은 세르온 왕국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숲이다.
지금 그곳에는 지친얼굴의 십대 소년소녀 세 명과 평상복 차림의 20대 여성, 무표정한 얼굴에 청녹색 머리의 미청년의 발소리가 조용한 숲을 잠에서 깨웠다. 그중 한 소년이 미청년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니르 형. 좀 쉬었다 가요. 더 이상은 못 걷겠다고요.”
“그래요, 니르 오빠. 오빠는 체력이 얼마나 되 길래 5네즈(5시간)동안 쉬지 않고 걷고도 힘든 기색하나 없어요?”
“좀 쉬었다가 가지 않으면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을 거 에요.”
“그럼 따라오지 마.”
“......”
아이들의 투정을 말 한마디로 간단히 제압한 니르바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길을 걸었다. 보다 못한 브래스가 나서서 부탁했다.
“니르바나 님.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는데요. 조금만 쉰다고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저의 검술은 많은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검술입니다. 저도 놀고만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체력을 길러주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래도 갑자기 무리해서 걸으면 아이들 다리에 무리가 가거나 근육이 뭉치거나 하지 않을까요?”
“제가 상관할 바 아닙니다.”
“......”
역시나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노발대발 했을 말에도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애이지 않습니까. 날도 어둑해져 가는데 적당한 야영지라도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마지못해 승낙한 그는 빠른 속도로 여기저기 쑤시고(?)다니며 적당한 야영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브래스가 아이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여러분, 이제 쉬어도 괜찮아요. 힘들죠? 액티브 스테미너를 걸어 줄테니 이리로 오세요.”
“와아! 고맙습니다, 선생님!”
살았다는 듯이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고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걷느라 떨어진 체력을 보충해주는 액티브 스테미너를 걸어주었다.
“후-아. 이제야 살 것 같네.”
“이렇게 힘든 훈련은 처음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그 사이에 돌아온 니르바나는 브래스와 야영지 선정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화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 이 주위를 오크와 고블린들이 포위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몬스터들이 보통 녀석들보다 훨씬 더 강한 종입니다. 게다가 그 녀석들의 지휘관은 보통이 아닌 것 같군요. 주위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이정도의 기력을 가진 존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죠? 지금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요.”
“싸우게 해야죠.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라키 녀석 실력이라면 브래스님의 프로텍션 마법(보이지 않는 쉴드를 형성하여 일정한 피해를 막아줌)만 잘 활용한다면 큰 부상은 없을 겁니다. 슈티와 클루오는 뒤에 서서 고블린의 석궁저격만 주의하면서 불이나 얼음계열의 2~3클래스( 마법은 1클래스부터 현재 10클래스 까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마법만 적절하게 사용해준다면 큰 어려움 없이 50정도의 오크와 고블린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남은 건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이군요.”
“그 녀석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예. 그런데 현재 아이들 상태로 그들을 언제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요?”
“액티브 스테미너 덕분에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나머지는 아이들 몫이죠.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곧 니르바나는 가장 높은 나무위로 올라가 인비져빌리티(투명마법 또는 하이드(hide)라고도 불리는 8클래스의 고급 마법이다. 하지만 니르바나는 차원의 틈새에 몸과 정신을 감추는 것이기에 큰 마력소비 없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를 가동한 후 적들의 지휘관을 찾아 나무와 나무사이를 소리 없이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 제6부 끝
사사사삭.
바람이 풀잎에 부딪쳐 깨지는 소리와 함께 덤불들이 일제히 바스락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브래스로부터 설명을 들은 후라 아이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라키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피곤을 쫒으려 애썼다. 클루오는 클루티젠 오브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슈티는 에더렌딘 완드를 혹시라도 놓칠까봐 붕대로 손과 완드를 감아나갔다.(이 방법은 검사들도 손에 힘이 빠질 때를 대비하여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붕대가 하나뿐이라 라키가 슈티에게 양보했다)그리고 강철 미라쥬 로브를 몇 번 두드려 본 후 마력을 집중하였다.
어느 순간 덤불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고블린의 화살이 브래스의 머리를 겨냥하고 날아왔다. 라키가 몸을 날려 가까스로 화살을 막았다.
[키이이잇!]
그 화살을 신호로 수십의 오크와 고블린들이 일제히 덤불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중 오크 두 마리가 라키에게 달려들었다.
라키는 날아드는 오크들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내면서 나머지 일행들을 엄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스티!”
“파이어 레볼루션!”
“디바인 애로우!”
클루오와 슈티, 브래스의 마법이 동시에 발사되었다. 그 공격에 수 마리의 오크가 저항도 못해보고 먼지로 변했다.
일행들이 고군분투 하고 있는 동안 니르바나는 그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들의 지휘관을 찾기 위해 나무사이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분, 숲의 안쪽에 붉은색 갑옷을 걸친 괴한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차원이 달랐다. 현재 대부분의 힘이 봉인된 상태인 자신과 맞먹거나 그 이상일 거라 판단한 그는 일행의 위험을 감지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어딜 가시려고. 이왕 온 거 통성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큭!”
니르바나는 언제자신에게 다가왔는지도 느끼지 못한 건 둘째 치고, 인비져빌리티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낸 것에 당황하여 엑스칼리버를 뽑아들었다.
[조심해라, 니르바나. 보통이 아닌 것 같다. 현재의 너로서는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야.]
“쳇, 알고 있어!”
그 말에 남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이런. 난 싸우러 온 게 아니라 통성명을 하러 온 거라고.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나는 브리더님의 수하인 3대장군 중 한 명, 커미스라 한다. 흔히들 블러디 소드맨이라고 하더군. 너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타천사 니르바나.”
“훗...타천사라. 틀린 건 아니지만 맞다 고도 할 수 없겠군.”
“그런가? 어쨌든 반갑다.”
상당한 압박감이었다. 이런 상대가 고작 오크와 고블린 같은 몬스터의 우두머리로 등장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다.
“꺄아아악!”
멀리서 슈티의 목소리로 생각되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니르바나는 아차싶어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으나 어느새 그의 목에는 커미스의 검, 붉은색의 블러드 슬레이어가 닿아있었다.
“크윽......”
“그냥 가면 내가 아쉽지. 자, 제1라운드 시작이다. 스타트 끈을 끊는 것은 내가 양보하지.”
“건방진 녀석, 이제 그 입에서 피를 토하게 될 거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 가능하다면.”
“......정 그렇다면 소원대로.”
니르바나의 몸에서 강렬한 푸른색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커미스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몸에서 붉은색 오로라를 방출했다.
둘의 격돌이 시작된 것은 그 직후였다.
한편 어깨에 고블린의 저격용 화살을 맞은 슈티는 출혈로 인해 가물거리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 놈들 몇이나 되는 거야? 끝이 없잖아!”
“니르 형은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엄청난 숫자였다. 지금까지 없앤 몬스터의 수만 해도 200은 족히 넘어 보였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기에 그들은 이미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라키와 클루오가 독설을 내뱉으며 싸우는 동안 브래스는 슈티를 치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독화살이라 그런지 상처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슈티, 눈을 떠요, 제발! 여기서 죽으면 안되요!”
“으윽......”
고통스러워하는 슈티를 안타까운 마음에 모든 마법을 집중했지만 클렌징(해독주문)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맹독이라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 제7부 끝
엄청난 폭음과 함께 몬스터의 절반이 밀려나갔다.
“어라, 이건 또 뭐야. 여기도 사람이 당하고 있잖아.”
자줏빛 머리에 커다란 흑갈색 망토를 걸친 남자가 왼손을 편 채 하늘에 떠 있었다.
“아, 아니? 저건 스페이스 플라이?”
스페이스 플라이는 전설적인 대마법사 제이스커 만이 쓸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10클래스 마법이다.
워프 또는 텔레포트라고도 불리는 공간이동 마법은 7클래스에 사용가능하지만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마력소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어중간한 마법사는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 플라이는 시속 600~1800km으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이 마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고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워프 못지않은 마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 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의 남자가 이 마법은 물론이고 몬스터의 절반을 쓸어버리자 클루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하핫, 이거 너무 약한데 그래? 후하하핫! 죽어버려, 파이어 스톰!”
남자는 크게 웃으며 6클래스의 파이어 스톰을 사방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5클래스 이상부터는 마력소모가 엄청난 마법이 대부분인데, 이 남자는 아무 이상도 없이 마법을 여기저기 뿌려대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수십의 고블린이 일제히 저격용 석궁을 들고 남자를 겨냥하는 것을 목격한 라키는 남자에게 얼른 소리쳤다.
“위험해요!”
슈슈슉.
수십 개의 화살들이 남자를 향해 발사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유 만만했다.
“이 정도로 이 몸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리플렉션 배리어!”
곧이어 남자의 주위에 녹색의 장막이 생성되었다. 고블린의 화살들은 그 장막에 닿자마자 녹색의 빛에 감기면서 화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듯 고블린들을 향해 거꾸로 튕겨져 나가 그들의 몸에 박히기 시작했다.
클루오의 경악은 계속되었다.
“저, 저럴 수가! 저 정도로 배리어를 생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게다가 날아온 수십의 화살을 저렇게 조종해서 다시 쏘아대는 건 또 뭐야?”
그사이 남자는 오른손으로 또 다른 마법진을 만들어 나갔다.
“자아, 마무리다! 라이트닝 소울!”
곧이어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살아서 꿈틀대는 고블린들에게 정확히 떨어졌다.
[키에엑!]
[캬악!]
고블린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들이 있던 자리는 쑥밭이 되었다.
“......”
클루오는 놀란 나머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 때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여어, 괜찮냐? 거기 있는 꼬마아가씨가 좀 다친 것 같은데.”
그의 물음에 브래스가 대답했다.
“고블린의 독화살에 맞았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독화살이요? 전 치료 마법 쪽으로는 눈 뜬 장님이니 제 일행이 오면 치료해 달라고 부탁해 보죠.”
“그럼, 일행 분은 어디에 계신가요?”
“아마 뒤따라오고 있을 겁니다. 슬슬 올 때가 되었을 텐데.....윽!”
남자는 갑자기 짧은 소리를 지르며 뒤통수를 움켜잡았다. 그의 뒤에는 청춘 가련 형의 노란색 긴 머리의 여성이 서 있었다.
“어디로 사라졌다 했더니, 여기서 또 빈둥거리고 있어? 남의 일에 상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우린 어서 니르바나를 찾아야 한다고!”
“쳇, 알았으니 여기 꼬마아가씨나 치료해 줘. 꽤 심한 부상인 것 같은데......”
“시끄러워, 어서 가자고! 시간 없어!”
그녀에게 혼이 난 남자는 다시 한 번 슈티를 치료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지 말고 좀 해주라. 네 마법 한번이면 죽어가는 사람 한 명 살리는 건데, 그거 하나 못 해주냐?”
여성은 마지못해 슈티에게 오른손을 뻗고 짧게 중얼거렸다.
“큐어.”
파아앗.
여성의 손에서 부드러운 연녹색 빛이 나타나 슈티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곧이어 슈티의 눈이 편안히 감겼다.
‘큐, 큐어? 클렌징의 상위마법이잖아? 나하고 나이가 비슷한 듯싶은데, 벌써 저런 경지에 올라 있다니!’
브래스는 자신도 치유 마법에 상당히 자신이 있었는데, 이 수수께끼의 여성에 의해 자신의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지자 한숨을 쉬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자아, 우린 니르바나를 찾으러 가자고.”
“뭐라고요?”
그들의 입에서 니르바나가 언급되자 라키는 얼른 되물었다.
“어? 니르바나를 알아?”
“우리 일행 중 한명이자 제 사부에요! 그분 혹시 청녹색 머리에 파란색 검을 쓰시지 않으세요?”
“맞아. 그럼 녀석은 어디로 갔어?”
“그건 아마... 저기에 있는 것 같네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라키는 숲의 한쪽에서 폭음이 들리자 그 쪽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라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니르바나와 커미스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제8부 끝
“하아앗!”
니르바나의 일격이 오른쪽 허리를 노리고 날아오자 커미스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그 공격을 막은 후 발로 니르바나를 걷어찼다.
“큭!”
“후우, 위험했군. 하압!”
커미스는 니르바나가 뒤로 쭉 밀려나가자 곧바로 검신으로 니르바나를 올려쳤다.
파아악.
그러나 공격을 한 건 커미스 뿐만이 아니었다. 니르바나 역시 필사적으로 그 공격을 피해 커미스의 얼굴을 올려 친 것이다.
“이런!”
커미스는 연달아 날아오는 후속타를 막기 위해 방어자세를 취한 후 최대한 빠른 속력으로 니르바나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엑스칼리버의 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했다.
파아악.
“커헉!”
치명적인 타격은 면했지만 그 역시 뒤로 쭈욱 밀려나갔다.
“크윽, 생각보다 실력이 좋군. 그럼 이것도 받아봐라!”
곧이어 커미스의 몸은 오색의 섬광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의 검은 그에 반응하듯 음산한 공명음을 내기 시작했다.
우우웅.
“저건 또 뭐지?”
“이것도 막아낸다면 널 확실히 인정해 주마! 블러디 콜렉션, 제 1격!”순간 커미스의 몸은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섬광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이런, 빠르다!’
니르바나는 순간 당황하여 자신도 엑스칼리버로 카운터 검술을 펼쳤다.
“오너라, 버밀레온 트라이!”
니르바나의 몸도 파란색의 섬광에 휩싸였다. 그 때 무수한 검광이 니르바나의 몸에 꽂혔다.
“제 2격, 백령살!”
커미스의 외침과 함께 수십의 섬광이 니르바나의 몸을 가로질렀다. 곧이어 커미스가 굳은 얼굴로 니르바나의 뒤에 나타났다.
커미스가 중얼거렸다.
“크윽, 이 녀석...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군. 오히려 내 피해가 더 심한데?”
그의 말대로 니르바나의 몸에는 상처하나 없었다. 그러나 커미스의 등판에는 길고 얇은 큰 칼자국이 하나 나 있었다.
그러나 니르바나도 아주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큭!”
그의 몸에서 파란색 섬광이 사라지자, 그는 피를 토하며 상반신을 굽혔다.
니르바나는 입에서 묻어나오는 피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 상당한 실력인데?”
“후우, 큰소리 칠 만하군.”
둘은 서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봐, 뒤 좀 보고 다녀, 피투성이 아저씨.”
어느새 자줏빛 머리의 남자가 커미스의 뒤에 왼손을 편 채 서 있었다.
“누구냐?”
“나?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커미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순간 남자의 손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뿜어 졌다.
그와 동시에 커미스는 방어할 새도 없이 구석의 커다란 나무로 날려졌다.
쿠웅.
커미스가 충돌한 나무는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쓰러졌다.
커미스는 긴장했다. 니르바나와도 싸우기 버거운데 이 남자 또한 니르바나 못지않게 강한 힘을 가진 듯 했다.
“피 빠진 얼간이는 상대하기도 싫으니까 조용히 사라져주면 고맙겠어. 아, 참고로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말해. 몸으로 느끼게 해 줄 테니까.
“크윽, 두고 보자. 이 빚은 꼭 갚아주마. 다음번엔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커미스는 호주머니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곧이어 그의 몸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헤헹, 두고 보자며 도망치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더라. 어이, 괜찮냐?”
“쳇, 빨리도 오는군.”
“하여간, 구해줘도 투덜거리는 버릇 여전하구나.”
“......”
“어쨌든, 미카엘님의 명령으로 온 거야. 앞으로 너와 같이 행동해야겠어,”
그 말에 니르바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댔다.
“그 영감이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이, 메리스. 잘 지냈어?”
“그럭저럭.”
니르바나의 물음에 그녀는 찬바람이 쌩 부는 듯한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반응에 니르바나는 조용히 남자에게 물었다.
“화 많이 났나 봐?”
“당연하지. 너 찾느라 며칠을 헤맸다고. 그 고생 정말 말로 못해.”
“어쨌든, 지금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듯 하군.”
“동감이야.”
그렇게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은 니르바나는 일행에게 남자와 여자를 소개했다.
“아깐 시간이 없어서 말도 못 해서 지금 정식으로 소개하겠다. 여기 자줏빛 머리의 남자의 이름은 로베르토다. 마법사지. 아마 실력은 보았을 거다. 그리고 여기 숙녀 같지 않은 숙녀는......”
“이봐, 누가 숙녀 같지 않다는 거야?”
“사실이잖아. 어쨌든 이 여잔 그랜드 패러딘, 메리스야.”
“그, 그랜드 패러딘?”
성기사도 계급이 존재한다, ‘클레릭-패러딘-홀리 나이트-그랜드 패러딘’이 일반적이다. 어쨌거나 메리스가 성기사 계열의 최고위 계급이라는 것이다. 성기사는 보통 언데드와 싸우지만, 홀리 나이트부터는 살생권을 발부받기 때문에 어떠한 적이든 상관없이 살해해도 구속되지 않는다.
“이 젊은 나이에 벌써 그랜드 패러딘이요? 대단하시네요.”
“그래? 고맙다.”
라키의 말에 어느 정도 기분이 풀어진 메리스는 라키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사이 클루오와 슈티는 로베르토에게 마법을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제발 좀 가르쳐 주세요, 네?”
“가만히 있지만 말고 대답이라도 좀 해줘요!”
그들의 매달림은 온종일 계속되었다. 결국 그날 밤을 설친 로베르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겠다, 알겠어. 가르쳐 주마. 대신 좀 힘들 거다.”
“네! 사부님!”
“좋아, 그럼 오늘부터 훈련에 들어간다.”
“예!”
첫댓글 세삼 존경 스럽습니다.
쩝...평가해달란 말이었는데....-_-;